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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왕실의 건강법, 식치食治

道雨 2010. 6. 25. 16:56

 

 

 

 

 

조선 왕실의 건강법, 식치食治


 

왕의 건강을 책임지는 최고의 의사, 식의食醫

조선의 임금들 중에서 의학에 가장 관심 많았던 왕은 세조였다. 부왕인 세종대왕이 향약집성방, 의방유취 등의 의서를 출간하고 궁중에 의서습독관을 배치하여 의사 교육에 매진하는 등의 의학적 분위기를 체험하여 의학의 중요성을 깨달은 탓으로 보인다. 세조실록에 의하면 왕이 신하들을 불러 공부하는 경연經筵에서 경서 외에 내의원 의원을 불러 의서에 대한 강의를 들었다는 것이 나온다.

세조는 평생토록 질병에 시달려 많은 의원들을 겪은 체험을 바탕으로 ‘의약론醫藥論’을 저술했는데, 여기서 의원의 자질을 8가지 등급으로 나눈 ‘팔의론八醫論’을 제창했다.

팔의 중에 으뜸은 ‘심의心醫’이다. 우선 환자의 마음부터 안정시켜서 마음을 편안하게 해 주는 의원으로서 환자의 마음을 이해해주는 의사이다.

둘째가 ‘식의食醫’인데, 모든 의사가 심의가 되어야 하니 실질적인 최고의 의사는 식의였다. 식이요법 전문가로서 음식으로 질병을 예방하고 치료한다.

셋째가 ‘약의藥醫’이니 약방문에 따라 약을 쓸 줄만 아는 의원이다. 환자가 무슨 질병이건 약만 주면 낫게 된다고 믿기에 마음의 안정과 음식보다 약으로만 치료하는 의사이다.

나머지는 혼의昏醫, 광의狂醫, 망의妄醫, 사의詐醫 및 살의殺醫이다.

식의가 약의보다 높은 등급을 받은 이유는 약보다 음식이 우선으로서 식치食治가 약치藥治보다 중요하기 때문이다.

‘약식동원藥食同源’이니 평소에 먹는 음식을 잘 조절하면 병이 생기지 않게 마련이다. 그러니 어의는 당연히 식치에 밝은 식의일 수밖에 없었다.

드라마에서 중종 임금의 치료를 맡았던 대장금이 바로 식의이다. 장금은 왕조실록에 20회나 등장하는데 진찰, 약물, 침구 등에 모두 뛰어났고, 특히 보양식에 조예가 깊었다. 과로와 스트레스에 지친 왕을 위해 적합한 음식으로 기력을 보충해 주어 왕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았던 것이다.

중국 원나라의 인종(仁宗) 황제가 발기부전이 되었을 때 ‘양신구채죽(羊腎구菜粥)’으로 완치시킨 홀사혜도 황제가 먹고 마시는 음식을 담당하는 음선어의(飮膳御醫)였다.

식의의 원조는 수, 당나라 때의 명의였던 손사막(581-682)인데, “질병을 치료하는데 있어 먼저 음식으로 치료하고 그래도 낫지 않으면 약을 쓰라”고 했다.

음식이 몸에 맞지 않는다면 독이 될 수도 있고, 특히 비타민이나 칼슘, 철, 아연 등의 좋은 성분이 들어 있다고 누구나 먹어서 좋은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모든 음식과 약은 제각기 성질(四氣 : 차고 뜨겁고 따뜻하고 서늘한 寒熱溫凉)과 맛(五味 : 시고 쓰고 달고 맵고 짠 酸苦甘辛鹹)을 가지고 있어 그에 따라 약효가 달리 나타나기 때문이다.

또한 음식 사이에도 함께 먹어서 좋은 경우가 있는가 하면 함께 먹으면 상극이 되어 탈을 일으키는 음식도 있다.

그래서 질병의 예방과 치료에 음식요법이 매우 중요하다. 식의는 체질에 어울리는 성질과 맛을 가진 음식을 섭취하도록 하여 질병이 생기지 않게 하고, 만약 병이 생기면 환자의 상태에 맞게 음식을 처방해 준다. 그러니 ‘음식 예방의학 전문가’이자 ‘건강 컨설턴트’라고 할 수 있다.


 

임금의 정력 보강을 위한 최고의 보양식

검은콩, 검은깨, 오골계烏骨鷄, 흑염소에다 검정소 등등 ‘검은색 음식’이었다. 궁중에서는 소고기도 토종 검정소만 썼다고 한다. 왜냐하면 검은색이 오장 가운데 신장에 주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한의학에서 신장은 콩팥뿐만 아니라 고환을 포함한 비뇨생식기 전부와 성호르몬을 비롯한 호르몬을 통 틀은 개념으로써 원기의 근본이며 음기와 양기의 본산이다.

신장이 생장, 발육의 기본이 되므로 신장이 허약하면 기력이 쇠퇴하고 정력이 떨어지며 각종 성인병이 유발되고 나아가 노화가 빨리 진행되는 것이다.

방광, 허리, 뼈, 뇌, 귀, 머리카락 및 생식기 등이 신장의 정기를 받아야 정상적인 기능을 유지하는 ‘신장 계통’에 속한다.

그렇기에 검은색 음식과 약은 최고의 보약이 되어 뼈와 허리를 튼튼하게 하고 기억력을 좋게 하며 소변을 잘 나오게 하고 귀를 밝게 하며 머리카락을 검게 하고 정력을 강화시키며 노화를 방지하는 효능을 나타낸다.

연산군의 정력제 리스트에 들어 있는 ‘용봉탕龍鳳湯’에도 오골계가 사용되었고, 장희빈과 사랑을 나누었던 숙종도 오골계, 흑염소, 검은깨를 즐겨 먹었다고 한다.

 




비위장을 돕는 처방

조선시대 왕들의 주된 질병이 ‘만성 위장병’이었다는 조사 연구가 있다.

순조 시절에 왕실에서 복용했던 한약 가운데 가장 많이 처방되었던 것이 ‘군자탕君子湯’과 ‘양위탕養胃湯’이었다.

군자탕은 비위장을 건실하게 하고 기운을 끌어올려주는 처방으로 비위장의 기가 허약하거나 만성 소화불량이 있고 입맛이 없으며 대변이 묽고 피로하고 기운이 없어 말 소리도 약하게 나오고 몸이 야윈 경우에 활용된다.

양위탕도 위장을 보양한다는 의미로서 소화불량을 치료하는 처방이다. 그러므로 왕을 비롯한 왕실 가족들은 거의 대부분 스트레스와 운동 부족으로 인해 만성 위장질환을 가지고 있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조선의 역대 임금 가운데 가장 장수했던 영조대왕 조차도 군자탕을 즐겨먹었다.

 

왕들이 위장약을 수시로 먹었던 이유는 뭘까. 그것은 우리 몸에서 비위장이 제 역할을 하느냐 못 하느냐가 건강에 매우 중요하기 때문이다.

한의학에서 우리 몸에 근본은 둘인데, 하나는 부모로부터 물려받는 정기를 간직한 곳인 ‘신장’으로 ‘선천先天의 근본’이라 하고, 다른 하나는 음식물을 소화하고 흡수시켜 영양을 공급하게 하는 ‘비위장’으로서 ‘후천後天의 근본’이라 한다.

근본이 무너지면 목숨을 지탱하기 어려운데, 비위장의 기가 쇠약해지면 음식을 먹지 못하거나 소화가 되지 않아 백약으로 다스리기 어렵다.

그래서 중국이나 조선의 궁중에는 비위장을 건실하게 하는 좋은 처방이 많았다. 청나라의 황궁에 ‘청궁팔선고淸宮八仙’라는 떡이 있었는데, 인삼人蔘, 연자육蓮子肉, 산약山藥, 복령茯笭, 율무薏苡仁 등으로 이루어졌다.

비위장의 기능을 보충하고 신장을 보강하며 정신을 안정시키고 소변을 잘 나오게 하며 습기를 없애주고 기와 혈을 자양해주는 효과가 있다. 허약한 환자가 오래 먹으면 질병에 대항하는 항병력이 증강되고 정기가 충족되며, 질병이 없는 사람이 장기 복용하면 건강이 유지되고 노화가 억제된다.

조선 왕실에는 ‘구선왕도고九仙王道’가 있었다. 정신을 기르고 원기를 돋구어주며 비위장을 건실하게 하고 입맛을 좋게 하며 허약해진 몸을 보충해주는 효능이 있다. 또한 피부와 근육을 튼튼하게 하고 습기와 열기를 없애주는 효능도 있다.

재료는 청궁팔선고에 들어있는 연자육, 산약, 복령, 율무를 비롯하여 맥아麥芽, 백편두白扁豆, 검인仁 및 시상霜이 들어간다. 미숫가루로 만들어 시원한 물에 타서 마실 수도 있다.


식치 처방, 약선藥膳

단오절에 임금은 중신들에게 여름을 잘 지내라고 ‘제호탕醍湯’을 하사했다. 청량음료 겸 식중독 예방약으로서 매실을 위주로 백단향, 사인, 초과 그리고 꿀이 들어간다.

백단향은 향나무이며, 사인과 초과는 소화제이다. 약재들을 고운 가루로 만들어 꿀을 넣고 섞은 다음 약간 끓여서 도자기에 담아 두었다가 필요할 때 냉수에 타서 마시면 된다. 그러면 갈증이 풀리고 가슴 속이 시원해지며 정신이 상쾌해진다. 약재 모두가 따뜻한 성질이어서 여름철에 뱃속을 따뜻하게 하는 원칙에 들어맞는다. 여름에는 양기가 피부 표면으로 발산하고 음기가 뱃속에 잠복하므로 뱃속이 항상 차갑기 때문이다.

동짓날에 왕이 중신들에게 하사한 보양식은 ‘전약煎藥’이다. 어의들이 왕실의 겨울철 건강을 위해 개발한 것으로 계피桂皮, 건강乾薑, 정향丁香, 후추胡椒, 대추大棗, 아교阿膠 및 꿀이 들어간다. 약재들을 부드럽게 가루내어 꿀에 버무린 다음 대추살과 아교를 넣고 서너 번 끓여 달여서 자기磁器에 담아두면 식으면서 응고되어 고약처럼 굳어진다. 재료들이 모두 따뜻한 성질이기에 추위를 물리치게 하는 효능이 있다.

 

한편, 왕이 상추쌈을 먹은 뒤에는 반드시 ‘계지차’를 마셨다. 계지桂枝는 따뜻한 성질로서 경락을 잘 통하게 하고 땀을 나게 하여 찬 기운을 몰아내는 약효가 있기에 상추의 찬 성질을 중화中和시켜 탈나지 않게 해 주기 때문이다.

이밖에 왕들이 즐겨먹었던 잣, 표고버섯, 꿩고기, 숭어 등도 조화와 중용이라는 한의학의 원칙에 부합되는 약식藥食이었기 때문이다.

  


글·정지천 동국대학교 한의대 교수  
사진제공·문화재청 국립고궁박물관, 서울역사박물관, 궁중음식연구원, 연합콘텐츠,한국콘텐츠진흥원(문화콘텐츠닷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