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접시꽃 당신>으로 잘 알려져 있는 도종환 시인의 『꽃은 젖어도 향기는 젖지 않는다』를 읽고있는 중인데, 이 책에 수록된 시 <담쟁이>가 마음에 다가와 여기에 올려봅니다.
담쟁이
- 도 종 환 -
저것은 벽
어쩔 수 없는 벽이라고 우리가 느낄 때
그때
담쟁이는 말없이 그 벽을 오른다
물 한 방울 없고 씨앗 한 톨 살아남을 수 없는
저것은 절망의 벽이라고 말할 때
담쟁이는 서두르지 않고 앞으로 나아간다
한 뼘이라도 꼭 여럿이 함께 손을 잡고 올라간다
푸르게 절망을 다 덮을 때까지
바로 그 절망을 잡고 놓지 않는다
저것은 넘을 수 없는 벽이라고 고개를 떨구고 있을 때
담쟁이 잎 하나는 담쟁이 잎 수천개를 이끌고
결국 그 벽을 넘는다
<담쟁이>는 도종환 시인이 교원노조 활동 관계로 해직된 후, 해직교사모임에서 어려운 시절을 보내던 중 쓴 시라고 합니다.
해직된 동료 교사들과 함께 정신적, 사회적, 경제적으로 몹시 어려운 상황을 겪으면서도, 이 고난의 벽, 절망의 벽을 반드시 넘어서고야 말겠다는 불굴의 의지가 엿보이는 시입니다.
앞에 있던 담쟁이 잎 하나가 수천 개의 잎들을 이끌고 담벽을 넘듯이, 우리 일상생활 속에서도 사회적 고난의 벽을 넘기 위해 앞장서는 분들이 더욱 많아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분들 덕분에 우리 모두가 벽을 넘어서 왔고, 또 앞으로도 계속 넘어서게 될 것이니까요.
2009년 7월, 어느 일간신문에서 직장인 103만 명을 대상으로 '내 인생에 꼭 간직하고 싶은 시 한 편을 써달라'는 설문조사를 했는데, 그 설문조사에서 가장 많이 선택된 시가 바로 <담쟁이>였다고 합니다.
'IMF 구제금융 이후 더욱 살기가 힘들어진 사람들이, 이 시를 통해서 위안과 용기와 힘을 얻고자 했던 것이 아니었겠는가' 라고 도종환 시인은 말합니다.
앞으로 나의 삶에 어려움이 닥칠 때마다 이 詩가, 그리고 이 詩人이 생각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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