맞다. 난장에도 규칙이 있는 거 맞다. 하지만 난장에만 규칙이 있나? 집구석에 앉아 홀로 중얼거리는 공염불이 아닌 이상, 사회에 공개적으로 발표되는 주장을 하는 데에는 훨씬 더 엄격한 규칙이 있는 법이다.
특히나 하루가 다르게 바뀌는 기술, 그것도 인터넷의 기반이 되는 네트워크 기술이 관련된 내용을 놓고 의혹제기와 해명이 엇갈리는 상황에서 어느 한편의 손을 들어주는 주장을 메이저 언론의 기명 기사로 발표하는 데에는 “상응하는 수준의 기술적인 검토”는 필수적인 일이 된다.
선관위가 10월 26일 서울시장 선거를 치르는 과정에서 깔끔하지 못한 선거 관리를 보여준 덕에 온갖 의혹이 제기되고 있는 상황이다. 의혹은 언제나 음모론에 기반을 하는 게 맞다.
오늘 오후 장안의 화제가 되었던 박원순 시장의 아들 박주신씨에 대한 병역비리 의혹도 결국 박원순 시장측의 MRI 공개 재촬영으로 깔금하게 해명되면서, 오히려 해당 음모론을 제기한 강용석 의원의 의원직 사퇴 기자회견(심지어 그 사퇴건 조차도 국회의장의 공석으로 당분간 접수도 안된단다.)으로 마무리 되는 희대의 코미디가 되어 버렸으니 음모론이 사실로 밝혀지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모양이다. 음모론은 음모론일뿐, 이라는 말이 더욱 설득력있게 들리기도 한다.
하지만, 그렇게 한편의 허무개그로 끝나기 쉬운 음모론이라 하더라도, 상당한 수준의 근거와 상당한 수준의 개연성 있는 추론에 기반한 의혹제기라면 반드시 해명되어야 하는 것도 사실이다. 그 상황에서 의혹제기가 지나쳐 보이고, 근거 없어 보인다 하더라도, 의혹제기 자체를 나무라기 위해서는 최소한 의혹을 제기하는 측의 논리에 대해 기술적으로 유의미한 반론을 포함하고 있어야 한다는 것 역시 자명한 일이다.
10.26 서울시장 선거를 둘러싸고 선관위측에 제기되고 있는 의혹의 주축은 표현 그대로 난장을 표방하고 있는 인기 팟캐스트 “나는 꼼수다”가 차지하고 있다.
그들이 제기하는 선관위에 관한 의혹은 선거 당일, 선관위 웹사이트가 제공하는 서비스, 유권자 개개인이 사는 지역에 따르는 투표소의 위치 확인 서비스가 직장인들이 몰리는 새벽 출근시간에 상당시간 동안 마비된 것에서부터 시작된 것이다. 이것은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직접 경험한 사실에서 출발한다.
물론 이 마비가 발생하게 된 기술적인 배경에 대해서는 나꼼수 측은 아무런 정보를 가지고 있지 못하다는 것도 사실이다. 당연한 일인 것이, 국가기관, 그것도 헌법에 명시된 기관의 내부 사정을 일개 민간인들어 어떻게 구체적으로 알 수 있었겠는가. 따라서 그 동안의 의혹제기는 “석연치 않다” 라는 수준의 추론에서 그다지 멀리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참여연대의 지속적인 문제제기로 인해 선관위 측에서 각종 관련 기술업체의 보고서와 함께 해명자료를 발표했고, 그 해명자료에는 선관위의 의도와는 달리 매우 중요한 기술적 결함이 또 다른 측면에서 포함되어 있었던 것이 밝혀졌다. 이로써 의혹제기는 보다 현실적이고 합리적인 근거에 기반한 수준으로 업그레이드 되었고, 이제 상황은 새로운 국면으로 바뀌고 있는 중이라는 것이다.
나꼼수측에서 추정했던 것, 즉 내부에서 누군가가 DB(데이터베이스)와의 연동을 끊은 것이 아니냐는 추론은 선관위의 해명자료에 근거한다면, 사실이 아닌 것으로 밝혀졌다. 이 부분, 나꼼수 역시 봉주6회차 방송에서 인정하고 있다. 그러나, 기술적으로 별로 대수롭지 않았던 디도스 공격에 대한 선관위의 대응조치, 그것도 디도스 공격의 규모가 줄어들고 있던 시점에서 선관위측이 취한 대응조치가 “KT가 제공하던 네트워크 두 라인을 끊었다는 것”이라면, 이 조치는 오히려 내부 DB 연동을 끊거나 하는 행위에 비해 더 심각한 문제점을 내포하고 있는 잘못된 조치였다는 지적이 새로 등장하게 된 것이다. 나꼼수 봉주6회의 핵심 내용은 바로 이것이었다.
이 부분은 사실 일반인의 수준에서는 이해하기가 무척 힘든 기술적인 부분이 된다. 그래서 나꼼수들 역시 자신들만의 주장이 아닌, 현업에 종사하고 있는 이 분야의 기술 전문가들의 조언을 통해 문제점을 설명하는 것으로 되어 있고, 그 전문가들의 의견은 일반인들도 이해할 수 있는 수준으로 설명되어 인터넷에 공개되어 있다.
그렇다면, 최소한 이 의혹 제기 자체에 대한 문제점을 지적하려면, 이 의혹제기의 기반이 되고 있는 기술적인 의견을 검토하고 거기에 걸맞는 수준의 반론이 필요했었다는 얘기가 된다. 그러나 경향신문 웹사이트에 오늘 공개된 해당 기사, “난장에도 규칙은 있다”를 제기한 이중근 기획에디터의 의견에는 이런 기술적 반론은 없었다.
아니, 기술적 반론이 없는 것이 아니라 선관위측의 하소연에 포함되어 있는 의견, 그것도 기술적으로 말이 안되는 반론이 한줄 포함되어 있었다는 얘기이다. 그 내용은 이렇다.
“디도스(DDoS·분산서비스거부) 공격과 유사하다는 판단을 내린 뒤 공격 통로가 되고 있는 통신선을 차단했다. ”
이 부분이 왜 말이 안되는 지는 인터넷 관련 네트워크 엔지니어들은 초보 수준에서도 다들 이해할 것이다. 물론 기사를 쓰신 기획에디터님과 선관위의 담당 사무관은 이해를 못할 수도 있다. 하지만 기술적으로 엉터리임은 확실하다.
인터넷은 다들 익히 알다시피 수도없이 많은 작은 네트워크들이 거미줄처럼 얽혀 있는 공간이다. 그 복잡한 공간 안에서 두 지점을 잇는 통로는 무수히 많이 존재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피씨와 서버사이를 오가는 데이터들이 유실되지 않고 정확하게 전달되는 이유는 그런 “경로를 찾아주는 기능”이 매우 잘 구현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 기능 덕분에, 어떤 특정 경로에 문제가 생길경우, 네트웍과 네트웍을 이어주는 중계기, 보통 라우터라 불리는 이 장비들은 스스로 자동으로 새로운 경로를 찾아 주게 되는 것이다. 이 기능 덕분에 전 세계에 퍼져있는 인터넷이 수시로 발생하는 부분적인 마비와 상관없이 언제나 신뢰도 있게 작동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러니, “공격 통로가 되고 있는 통신선”이라는 말은 인터넷 엔지니어의 입장에서는 아무 의미도 없을 뿐더러 상황을 호도하려는 의도가 담긴 “기술적 거짓말”이 된다는 것이다. 어떤 종류의 디도스 공격도 특정 통로를 지정해서 이루어 지지 않는다는 기술적 상식에도 위배된다.
거기다가 그 통로는 공격에만 이용되는 것이 아니라 일반 사용자들의 정상적인 접속에도 이용되던 중요한 통로였다. 그걸 끊는 다는 것은 정상적인 사용자들의 접속을 받지 않겠다는 말이 된다. 사용자들의 접속이 안되는 시스템은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공격을 막기위해 시스템을 고립시킨다는 얘기는, 음식물에 병균이 섞여 있으니 환자에게 식사공급을 중단하겠다는 말과 다르지 않다.
이게 과연 정상적인 조치인가?
사고 당시 선관위 서버로 연결되는 통로는 모두 세개가 준비되어 있었다. KT 라인 두개, LG 라인 한개. 그 중에 주로 사용되던 KT 라인 두개가 공격 통로가 된다고 해서 끊었다는 얘기는 말 그대로 어불성설이다. 그렇게 할 경우, 통로를 잃어버린 공격 데이터 패킷들은 앞서 말한 “자동으로 새로운 경로를 찾아주는 기능”을 가진 라우터들의 작동으로 인해 남아있는 LG 라인 한개로 쏟아져 들어올 것이라는 점은 아주 초보적인 네트워크 기술자들도 바로 알 수 있는 초보적인 상식이라는 얘기다.
결국 선관위의 조치는 공격통로를 차단해서 선관위의 서버를 보호하려는 의도를 가진 선량한 조치가 아니라, 가뜩이나 공격으로 인해 좁아진 데이터의 경로를 더욱 좁혀서 실제 사용자들이 선관위 시스템에 접속하는 것을 더 어렵게 만들어 버린, 디도스 공격자들이 원하던 것을 도와준 조치, 즉, 아주 멍청한 조치이거나, 악한 의도를 가진 조치 둘중의 하나였다는 얘기가 된다.
이 새로운 의혹의 근거가 바로 다름 아닌 “선관위가 직접 제출한 해명자료”라는 점이 더욱 상황을 심각하게 만들고 있다는 것이다.
문제점은 또 있다. 적어도 언론인으로서 특정 사안에 대한 판단을 기사화 할 때, 양측의 주장을 동일한 비중으로 동시에 검토해야 한다는 기본 원칙이 있다. 의혹이 문제가 된다면, 의혹을 제기한 측과 해명하는 측의 주장을 동일한 비중으로 들어봐야 한다는 것은 그야말로 기본중의 기본이다.
과연 해당 기사를 작성하신 이중근 기획에디터께서는 선관위의 담당 사무관인 유훈옥 사무관의 하소연 섞인 호소를 듣는 비중으로 문제를 제기하던 나꼼수 혹은 참여연대 및 관련 인터넷 전문가의 의견을 들어 봤는지 의심스럽다.
그저 유 사무관이 털어놓는 “나꼼수들이 하도 의혹을 제기해서 힘들어 죽겠다, 걔들이 말하는 건 이런 건데 그 문제는 사실 이랬던 거다” 하는 일방의 설명만 듣고 기사를 쓴건 아닌지 묻고 싶다는 것이다. 그 해명에는 아주 중요한 기술적 오류가 포함되어 있다는 점은 위에서 설명한 그대로다.
물론 인터넷, 라우터, 네트워크 대역폭, 이런 용어들, 나아가서 UDP/ICMP 공격, BGP up/down 뭐 이런 용어들이 난무하는 기술적인 설명을 이해하기 어렵다는 점은 십분 이해한다. 그렇다 하더라도 해야 할 일은 해야 하는 법이다. 모르면 물어서라도 해야 한다. 나꼼수는 모르니까 물어 가면서 의혹을 제기하고 있지 않은가.
이 기사가 조중동 등을 통해 발표된 것이라면 의례히 그러려니 하고 납득하고 넘어갔을 것이다. 기사가 아닌 소설을 쓰는 신문들이니 말이다.
그러나 경향신문이라면 다르다. 왜 다른지는 설명하지 않겠다.
문제는 단순하다.
난장에도 규칙이 있다는 점잖은 훈계를 내리려면, 해당하는 만큼의 합리적 근거를 갖추라는 얘기이다. 근거없는 훈계는 다른 누구도 아닌 자기 자신에게 그대로 돌아갈 뿐이다.
기사 쓰는 데에도 규칙이 있고, 그 규칙을 지키지 않은 기사는 인터넷을 오염시키는 쓰레기에 불과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