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해자가 직접 검사가 되는 나라
세월호 특별법 협상 과정에서 유족들은 진상조사위원회에 수사·기소권을 줘야 한다는 태도에서 물러나, 특별검사 추천 과정에라도 참여하게 해달라는 최소한의 요구를 해왔다.
그러나 이마저도 차갑게 외면받고 있다.
어떤 이는 더 냉소적으로 물을지 모른다.
‘그럼, 아예 피해자가 검사를 맡겠다고 하지?’ ‘판사도 마음에 들지 않으면 바꿔달라고 하겠네?’
그런데 그렇게 하는 나라들이 있다.
유가족들을 향해 ‘피해자는 빠져 있으라’는 강박이 횡행하는 배경에는, ‘피해자 쪽이 형사절차에 능동적으로 개입하는 것은 사법정의와 양립할 수 없다’는 사고방식이 깔려 있다.
하지만 이는 국제 원칙이나 선진국의 추세와 동떨어진 시대착오적 발상이다.
유엔은 이미 1985년 ‘범죄 및 권력남용 피해자를 위한 정의의 기본원칙’을 선언했다. 이 선언은 다른 여러 원칙과 함께 “형사절차의 여러 단계에서 피해자의 시각과 관심사가 표명되고 감안돼야 한다”(6조)고 천명했다. 인권의식의 성장과 함께 피의자·피고인의 권리는 많은 주목을 받는 반면, 오히려 피해자는 사법체계에서 “잊혀진 사람”이란 말이 나올 정도로 도외시되는 현상을 타개하려는 노력이었다.
일찍이 1940년대부터 피해자학(被害者學)의 선구자들은 소외계층에 속한 범죄 피해자가 수사기관의 홀대로 ‘2차 피해’를 입거나 수사·재판 과정에서 제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현상을 짚어냈다.
특히 국가기관이나 정부 인사가 연루된 사건에서 피해자가 피해자로 대우받지 못하고, 형사절차에서 피해자보다 국가의 이해가 우선시되는 폐단을 유엔은 지적했다. 때맞춰 유럽과 미국에서는 피해자 지위 강화를 위한 노력이 펼쳐졌다.
이들 나라의 현실은 어떨까. 일부만 살펴봐도 자못 흥미롭다.
프랑스에서는 피해자가 수사 단계에서부터 자신의 변호사가 입회한 가운데, 현장조사나 증인·피의자 신문, 전문가 의견 청취 등을 진행하도록 요구할 수 있다.
재판에도 한 당사자로 참여해, 증인을 요구하거나 재판부를 통해 증인·피고인을 신문할 수 있다.
한발 더 나아간 나라들도 있다.
독일에서는 특정 범죄의 피해자가 ‘보조 검사’로 형사절차에 참여할 수 있다.(이때 국가가 변호사를 선임해 피해자를 돕도록 한다.) 공정성이 의심될 경우 판사의 교체도 법원에 청구할 수 있다.
여기서 잠시 짚어보자. 세월호 유족들의 바람은 특검의 공정성을 확보하고 싶다는 것뿐이다. 기소권자에 불과한 특검에 대해서조차 이런 요구가 무리하다고 배척당하는 우리 현실에서, 최종 심판권자인 판사에 대해 같은 요구를 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그런데 독일에서는 그게 제도적으로 가능한 셈이다.
오스트리아에서는 검사가 불기소 처분을 하면 피해자가 ‘보조 검사’로서 대신 기소할 수 있다.
스웨덴에서는 검사가 기소를 한 뒤, 피해자도 재판의 한 당사자로서 검사와 거의 동일한 지위를 갖게 된다.
네덜란드에서는 피해자가 검사에게 특정 문서를 수사기록에 추가할 것을 요구할 수 있다.
미국의 일부 주에서는 검사가 사건 처리에 대한 최종 결정을 내리기 전에 피해자의 의견을 얻도록 강제하고 있다.
이런 제도들은 국가의 형벌권 독점이나 국가소추주의, 재판의 공정성 같은 사법체계의 원칙을 해치지 않는 범위 내에서도, 피해자의 능동적인 형사절차 참여를 보장하는 다양한 제도가 가능하다는 걸 보여준다.
외국 제도를 그대로 베끼자는 얘기가 아니다.
공정한 특검 선정이라는 소박한 요구조차 뒷받침하지 못하는 우리 정치권의 빈곤한 제도적 상상력이 한탄스러울 뿐이다.
앵무새도 아닌데, ‘사법체계를 흔든다’는 핑계는 제발 그만 되뇌길 바란다.
박용현 논설위원 pia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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