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메테르의 화관, 장안농장 쌈채
일러스트레이션 이림니키 |
곽병찬의 향원익청
류근모 대표의 6대조는 1851년 <과채재배법>을 탈고했다. “항상 쓰고 읽어 언제나 이유를 알아 재촉하되 걸어두지 말고 모든 사람이 알게 하라.” 류 대표도 할아버지의 가르침 그대로 채소를 기른다. 물질생태순환농법이라는 특별한 이름과 특허까지 얻었지만, 그건 할아버지들이 짓던 전통농법이었다.
2012년 청와대 신년회에 초대를 받았다. 대통령은 말했다. “상추, 참 맛있소. 어떻게 이렇게 잘 키웠소.” 후루룩 쩝쩝, 음식을 들이붓다시피 먹는 것으로 유명했던 그 대통령조차 장안농장 쌈채 맛에 반했다. 그런 이의 미각까지 감동시켰으니, 과연 ‘활인쌈채’다.
멀티 그린과 레드, 볼 레드와 그린, 오크 그린과 레드, 로메인, 이탈리아 치커리, 셀러리, 잎쌈채, 항암쌈배추, 적근대, 케일, 상추, 쑥갓, 겨자채, 홍쌈, 브로콜리, 허브…. 식탁 위 채소 소반엔 온갖 쌈채가 푸르고 붉다. 식접시 위에도 비타민, 청경채, 쑥갓, 비트, 아마란스, 보리순 등으로 버무린 샐러드, 양배추 쌈, 양배추 김치, 배추김치 그리고 경연대회 우승작 쌈장 두 종류, 아침에 도정해 지은 5분도 쌀밥의 구릿빛 윤기가 반짝인다.
땅에서 자란 온갖 곡물로 엮은 화관을 항상 쓰고 있다는 그리스 신화 속 곡물의 신 데메테르. 그의 아름다운 화관이 그랬을까. 한련화 붉은 꽃 한 송이가 올라앉은 장안농장 채식뷔페 쌈채 소반은 데메테르의 화관 같다.
충북 충주시 신니면 호랭이골 장안농장, 농장 대표 류근모씨의 6대조 류제완 선생은 1851년 3월17일 <과채재배법>을 탈고했다.
그는 서문에 이렇게 썼다.
“항상 쓰고 읽어 언제나 이유를 알아 재촉하되 걸어두지 말고 모든 사람이 알게 하라.”
이곳에 터를 잡은 지 19년째인 류 대표도 할아버지의 가르침 그대로 채소를 기른다. 물질생태순환농법이라는 특별한 이름과 특허까지 얻었지만, 그건 할아버지들이 짓던 전통농법이었다. 소출이 안 좋고 때깔도 나쁘다 하여 모두가 버린 철저한 것을 온전히 되살렸을 뿐이다.
사람이 남긴 것으로 소와 돼지를 기르고, 소와 돼지가 남긴 것으로 채소를 기르고, 그렇게 기른 채소를 사람이 먹는다. 사람을 기르듯이 소, 돼지와 채소를 기르고, 소, 돼지, 채소처럼 사람도 모신다. 그렇게 160여명의 사람들과 100가지 쌈채, 30마리의 돼지와 소 등은 살아간다. 감히 ‘163년 전통의…’라고 소개하는 까닭이다.
19년째 이곳에서 함께 일을 하신 마수리마을 할머니가 그랬다. 할머니는 지금도 농장에 오기 전 빠지지 않고 새벽기도에 나가신다. 아들딸 건강하고 반듯하게 살고, 농장의 상추도 반듯하게 자라고, 그로 말미암아 모두가 건강하기를…. 상추를 따는 할머니의 손은 그렇게 기도하는 손이다.
아버지는 말씀하셨다. 최고의 퇴비는 농부의 발길이다!
농부는 밖에 나가서 품을 팔아서는 안 된다(돈 한푼이라도 벌겠다고 제 논밭을 떠나선 안 된다는 말씀), 농부는 놀아도 제 밭에서 놀아야 한다, 똥은 반드시 집에서 눠라.
그의 일과도 새벽 5시부터다. 첫새벽 마음과 귀를 열면 소, 돼지, 채소들이 하는 푸념이 들린다. 예컨대 배가 아프다는 소리가 들리면 배수가 안 되는 것이다. 그런 이야기가 들릴 때쯤에야 농사꾼은 철이 들었다고 할 수 있다.
철을 모르면 낭패인 것이 농사. 새벽 여명엔 두 시간이면 끝낼 일을, 해 뜬 뒤 시작하면 하루 종일 걸린다. 제때 매면 30분이면 끝낼 김매기도 하루 지나면 하루, 미룬 사이 비라도 2~3일 오면 아예 손을 들어버려야 한다.
농장 들머리를 지키는 건 장안 돼지들. 애완동물인 양 방문객을 졸졸 따라다니며 추근댄다. 채소라도 손에 쥐면 이놈 저놈 달려들어 야단이다. 우드칩 파헤치는 놈, 파헤친 우드칩에서 뒹굴거리는 놈, 낮잠 자는 놈, 주인아저씨 다리에 몸을 비비고 킁킁대는 놈, 천방지축 까부는 것이 영락없는 철부지다. 털에선 윤기가 흐르고, 몸에선 채소 냄새가 난다.
요즘 돼지를 직접 본 사람이 얼마나 될까. 대개는 굽거나 삶기 전 고깃덩어리로 돼지와 만난다. 일부러 돼지를 보겠다는 사람도 없지만, 농가는 구제역 전염 우려 때문에 가족들까지도 축사 출입을 제한한다. 돼지들은 밀폐된 공간에서 사람 손을 빌려 씨를 받고, 새끼를 낳고, 격리된 곳에서 길러진 뒤, 부위별로 나뉘어 매장으로 출하된다.
그런 돼지가 장안농장에선 구제역이 창궐할 때도 방문객을 환영한다. 구제역이란 감기. 사람이 그렇듯이, 건강한 돼지에겐 병도 아니다. 마리당 평균 5평의 집과 50평의 운동공간이 주어지고, 집에는 우드칩이 침대용 쿠션 높이보다 더 높게 깔려 있으며, 150m 지하 암반수를 마시고, 100% 유기농으로 기른 채소들만 먹는 장안 돼지들이니, 허약할 리 없다.
100m쯤 떨어진 곳엔 소 외양간도 있다. 먹이도 공간도 돼지와 같다. 소들이 성장하는 3~4년간 먹는 식료품비는 무려 1천만원. 서민의 식비보다 월등하다. 판매 가격은 두배 이상 비싸지만, 들이는 비용을 따지면 손해다.
그럼에도 키우는 건 농약이나 항생제에 오염되지 않은 양질의 퇴비를 얻기 위해서다. 외양간 옆엔 5칸의 퇴비사가 있다. 우리에서 나온 우드칩과 부산물을 깻묵이나 쌀겨 등과 섞어 발효시키는 곳이다. 발효가 왕성할 때는 온도가 80도까지 오르며, 완숙한 퇴비는 사람 체온과 비슷한 40도. 발효 수준에 따라 한칸씩 옆으로 이동하며, 마지막 칸에는 출하될 퇴비가 쌓인다.
제초·살충·살균제, 항생제는 금기다. 그런 걸 뿌리거나 줘서 기른 것들의 반입도 금지다. 그래서 제초제 한병이면 해결될 잡초 제거에, 일당 3만원의 일꾼 3명을 쓴다.
해충 제거도 일일이 사람 손으로 한다. 해충은 낮엔 잎사귀 뒷면이나 비닐 밑에 숨기 때문에 밤이나 새벽에 작업을 해야 한다. 목초액이나 현미식초, 막걸리, 담뱃잎 즙 등을 섞어 뿌리거나, 친환경 제충국제나 마늘즙을 뿌리기도 한다.
인근 과수원에서 뿌린 화학약품들이 날아오는 것도 막기 위해, 과수원과 인접한 땅을 아예 사들여 일종의 비산 제초·살충·살균제 방어선을 쳤다. 날벌레도 골치다. 비닐하우스 안에 아예 모기장을 치기도 하지만 한증막이 되어버린다. 하루에 10차례 이상 문을 여닫으며 온도를 조절해야 한다. 방심하면 말라죽는 게 한순간이다.
건강한 돼지나 소는 구제역 등 질병에 잘 걸리지 않는다. 식물도 건강하면 스스로를 지킬 수 있다. 최선은 땅심 기르기다. 토양이 비옥하면 해충이 잘 꼬이지 않고, 채소가 미생물이나 벌레의 공격에도 잘 견딘다.
그래서 칼슘제 대용으로 밭에다 조개껍질이나 뼛조각을 뿌린다. 맥반석과 옥돌, 참숯 가루도 준다. 맥반석은 산소 공급량을 늘리고, 옥돌은 음이온과 기를 생성시키며, 숯은 불순물을 빨아들인다.
땅도 쉬어야 한다. 농장을 세 구역으로 나누어 매년 돌아가며 두 구역만 농사를 짓는다.
건강에 풍미까지 더하면 금상첨화.
10t짜리 물탱크에 맥반석과 옥돌 1t을 넣어두면 물속에 미네랄과 산소가 더욱 풍부해진다. 이 물을 성장기 쌈채들에게 준다. 키토산도 주고 한약재, 참나무 톱밥, 쌀겨, 옥수수 가루, 미강도 뿌려준다.
명품 진공관 오디오에 명품 스피커로 고전음악까지 들려준다.
그렇게 길렀으니 장안농장 쌈채는 시쳇말로 ‘고깃값’이다. 최상품은 1.5㎏ 한 상자에 10만원에 이른다. 물론 저렴한 상품도 있다. 겉보기에 볼품없지만 성분은 상품과 동일한 것들은 저렴하게 판다.
2011년 11월 비축산 농업인으로서는 처음으로 금탑산업훈장을 받고, 2012년 청와대 신년회에 초대를 받았다.
대통령은 말했다. “상추, 참 맛있소. 어떻게 이렇게 잘 키웠소.”
후루룩 쩝쩝, 음식을 들이붓다시피 먹는 것으로 유명했던 그 대통령조차 장안농장 쌈채 맛에 반했다. 그런 이의 미각까지 감동시켰으니 과연 ‘활인쌈채’다.
서양의 의성 히포크라테스는 “음식으로 고치지 못하는 병은 의사도 고치지 못한다”, “병을 낫게 하는 것은 자연뿐이며, 환자 자신이 갖고 있는 자연 치유력이다”라고 말했다. 약식동원이라는 우리의 믿음과도 같다.
일본 관상법의 대가 미즈노 난보쿠는 이렇게 말했다.
“얼굴 생김은 하늘이 주는 것이지만, 절제에 의해 바꿀 수 있다. 설사 가난하고 단명할 상이라도 식사에 주의하면 유복하고 장수하고, 비록 부귀하고 장수할 상이라도 헤프게 먹으면 박복한 상이 된다.”
장안농장의 채소, 소, 돼지 그리고 사람들도 그렇게 호상이다.
아삭아삭 새콤달콤, 고소하고 맵싸하고 향긋한 것들이 입안에 가득하다. 소반 위 데메테르의 화관은 그렇게 내 안으로 들어온다.
곽병찬 대기자 chankb@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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