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청년연대, 흥사단 전국청년위원회 등 청년단체 소속 청년·학생들이 11일 밤 서울 세종로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열린 ‘친일미화·독재미화 국사 교과서 국정화 반대 촛불집회’에서 ‘어디서 감히 역사를 바꿔!’ 등이 적힌 손팻말을 들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 김경호 선임기자 jijae@hani.co.kr
* 한국청년연대, 흥사단 전국청년위원회 등 청년단체 소속 청년·학생들이 11일 밤 서울 세종로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열린 ‘친일미화·독재미화 국사 교과서 국정화 반대 촛불집회’에서 ‘어디서 감히 역사를 바꿔!’ 등이 적힌 손팻말을 들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 김경호 선임기자 jijae@hani.co.kr

 

 

 

역사학자·사회원로 이어 청소년들도 “국정교과서 반대”
오늘 466개단체 규탄 회견…65개대 역사학도 반대선언
“시민들, 이념대결 아닌 ‘상식 대 비상식’ 싸움으로 여겨”

 

정부·여당이 한국사 국정 교과서 도입을 결국 확정한 데 대해, 시민들의 분노와 반발이 분출하고 있다. 각계의 반대와 무리한 일정에도 불구하고, 속도전을 방불케 할 정도로 밀어붙이는 것은, 대통령 임기 안에 ‘박근혜 교과서’를 만들겠다는 의도라는 지적이 나온다.

역사학자와 사회 원로, 시민단체의 반대에 이어, 평범한 학생과 청년들도 거리에 나서면서, 이제 국정 교과서 반대는 각계각층의 ‘시민 불복종 운동’으로 번지는 양상이다.

11일 오후 1시께 서울 종로구 안국역 주변에 앳된 얼굴을 한 10대 청소년 수십명이 모였다.

“한국사 국정 교과서를 반대하는 청소년과 청소년 활동가”라고 밝힌 이들은 이날 기자회견을 열어 “친일파를 친일파라고 배우고, 독재를 독재라고 배우는 것이 왜 ‘좌편향’인가. 학생들은 한국사 국정 교과서를 거부한다”고 밝혔다.

 

 

기자회견을 마친 뒤 세종로 정부서울청사 앞까지 행진을 한 청소년들은 “제대로 된 역사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정성재(19)군은 “평소에도 역사인식을 획일화하는 국정 교과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동생이 중학교 3학년인데, 국정 교과서가 정해지면 내 동생은 그 교과서로 배우게 된다. 내가 당사자는 아니지만 동생을 생각하면서 나왔다”고 했다.

전유정(17)양은 “우리를 안 좋게 쳐다본 어른들도 있었다. 그런데 그분 자식들도 국정 교과서로 공부할 것이다. 제대로 된 역사인식이나 역사 공부를 배울 수 없는 환경에서 자란다면 문제라는 생각이 더 확고해졌다”고 했다.

 

친일·독재를 미화하는 ‘박근혜 교과서’에 대한 ‘불복종 선언’도 이어지고 있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대학생 단체인 ‘평화나비 네트워크’와 한국청년연대 소속 대학생 150여명은, 11일 저녁 7시께부터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 시도 중단을 요구하는 촛불집회를 열었다.

이들은 집회를 마친 뒤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노숙 농성을 벌였다. 갑자기 추워진 날씨와 간간이 내리는 빗줄기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김샘 평화나비 네트워크 대표는 “학생들은 수업·토론에서 역사적 사실을 훼손하고 역사적 의미를 비하하는 일베(일간베스트 저장소) 문제를 직접적으로 느끼고 있다. 젊은 학생·청년들 사이에도 국정화가 되면 이런 문제가 더 심각해질 거라는 인식을 함께하고 있다”고 했다.

 

12일엔 전국 466개 시민단체가 모인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 저지 네트워크’ 주최로 국정화 도입을 이끈 청와대를 규탄하는 기자회견이 열린다.

광화문 정부서울청사 앞에서는 역사 연구와 교육을 이끌어갈 역사학도들의 국정화 반대 선언도 이어진다. 11일 오전까지 65개 대학 2000여명의 역사학도들이 서명을 마친 상태다.

 

전문가들은 역사 교육을 이념대결과 정치적 편가르기로 몰아가는 청와대와 정부·여당의 행태를 강하게 비판했다.

 

 

7종의 고등학교 한국사 교과서 집필자들은 이날 공동성명을 내어 “교육부가 검정 통과시켜 학교에서 쓰도록 했는데, 편향됐다고 비난하는 건 자기모순이고 자가당착”이라고 반박하고, “한국사 교과서 집필자와 역사교육자들에 대한 사실 왜곡과 편파적인 폄하 행위를 중단하고,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 정책을 폐기하라”고 촉구했다. 교과서 집필자들이 공동성명을 낸 것은 처음이다.

 

 

역사교육연구회 등 역사교육 관련 4개 학회도 공동성명을 내어 “정부와 여당은 역사교수와 역사교사들의 절대다수가 한국사 및 역사 교과서의 국정화에 반대하는 현실을 직시하고, 이들의 의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고 밝혔다.

 

정용욱 서울대 국사학과 교수는 “진보시민단체를 넘어서, 역사학자와 사회 원로에 이어, 중고생과 역사학도들까지 국정화 반대 선언에 나선 것은, 청와대가 결코 가볍게 넘겨서는 안 될 사회적 현상이다. 정부 여당은 한국사 국정화 문제를 자꾸 이념대결 프레임으로 몰고 가는데, 시민들은 이념대립이 아니라 ‘상식 대 비상식’의 싸움으로 이해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윤여준 전 환경부 장관은 “박근혜 대통령은 민주주의나 공화주의에 대한 인식은 전혀 없이, 모든 걸 국가가 결정하고 국민은 따라오면 된다는 국가주의적 관점으로 바라보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름을 밝히기 꺼려한 한 여론조사 전문가는 “박 대통령이 보수의 선봉에 서서, 경제와 민생 이슈가 아닌, 이념으로 세를 과시하거나 힘을 모으려 하는 것 같다. 결과적으로는 (국정 교과서 논란이) 경제 이슈를 덮는 효과도 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김성환 허승 전정윤 최혜정 황준범 기자 hwan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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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사를 한국사로 만들고 튈 생각인가” ‘한국사 국정화’ 공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