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 국정화 돌격대’ 자처한 새누리당
정부와 새누리당이 11일 오후 당정협의를 하고, 중고등학교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를 강행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역사학계를 비롯한 사회 각계의 극심한 반대와 우려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역사의 시곗바늘을 거꾸로 돌리는 일에 여당이 첨병 노릇을 자처한 것이다.
이제 나라는 반쪽으로 갈라지고, 교육 현장은 극심한 혼란에 빠지게 됐다. 국정을 책임진 정부 여당이 스스로 화약을 지고 섶에 뛰어드는 무리수를 둔 것이다.
지금 정부 여당이 하는 모습을 보면, 교육이 백년지대계라는 말이 무색하기만 하다.
정부는 이르면 12일, 늦어도 박근혜 대통령이 방미 길에 오르는 13일까지는 국정화 전환 내용을 담은 교과서 구분고시를 행정예고할 예정이라고 한다. 자라나는 세대들에 대한 역사 교육이 중요하다고 입에 거품을 물면서도 정작 추진 일정은 대통령의 일정에 허겁지겁 맞추는 어이없는 모습이다.
게다가 교육부는 지난달 23일 ‘2015 교육과정 개정’을 고시한 뒤 불과 20여일 만에 재고시를 해야 할 처지다. 졸속이 졸속을 낳고, 억지가 억지를 부르는 악순환이다.
정부 여당의 이날 회의도 말이 당정협의지 일종의 요식행위에 불과했다. 이날 회의는 새누리당이 자기네 의견을 제시하는 자리가 아니라, 박근혜 대통령의 뜻에 대한 무조건적인 복종을 맹세하는 자리였다.
새누리당은 최근까지만 해도 국정화에 대한 거센 반대 여론을 고려해, 국정화가 아닌 검인정 기준 강화 쪽에 무게를 두어왔다.
게다가 2년 전에는 국정화를 명시적으로 반대한 게 바로 새누리당이다. 새누리당의 싱크탱크인 여의도연구원은 2013년 11월에 발간한 보고서에서 “자유민주주의 이념과 맞지 않고 경쟁을 통한 교과서의 질적 수준 제고를 어렵게 한다”는 등의 의견을 들어 국정화를 반대했다.
하지만 새누리당은 자신들이 언제 그랬느냐는 듯이 입장을 180도 선회했다.
새누리당은 앞으로 역사 교과서 국정화의 당위성을 알리기 위한 대국민 여론전을 적극적으로 펼칠 방침이라고 한다. 이날의 당정협의는 말하자면 일종의 ‘홍보전략회의’ 정도 수준이었던 셈이다.
하지만 자기들 스스로도 확신이 없는 내용을 국민에게 설득하겠다고 나서는 것은 한마디로 코미디다. 새누리당은 자신을 속이고 국민을 속이겠다고 안간힘을 쓰고 있다.
새누리당이 국정교과서 돌격대를 자처하고 나섬으로써, 새정치민주연합과 정의당 등 야당도 국정화 전면 저지를 선언하고 나섰다.
이렇게 되면 정부 여당이 추진해온 각종 국정 개혁이나 법안 추진 등도 일제히 제동이 걸릴 게 불을 보듯 뻔하다.
역사 교과서 국정화 강행이 박근혜 대통령 고집의 산물임은 천하가 아는 일이다.
이승만·박정희 시대를 찬양하고, 독재정권의 치부를 교과서에서 가리는 일은 박근혜 대통령으로서는 필생의 소원일지 모른다. 하지만 여당까지 거기에 장단을 맞출 일은 결코 아니다.
그런데 정부 여당이 손잡고 나라를 구렁텅이로 몰아넣고 있으니 참으로 안타깝고 분노하지 않을 수 없다.
[ 2015. 10. 12 한겨레 사설 ]
*******************************************************************************************************
임기내 밀어붙이는 ‘박근혜 교과서’…‘시민 불복종’ 불붙는다
* 한국청년연대, 흥사단 전국청년위원회 등 청년단체 소속 청년·학생들이 11일 밤 서울 세종로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열린 ‘친일미화·독재미화 국사 교과서 국정화 반대 촛불집회’에서 ‘어디서 감히 역사를 바꿔!’ 등이 적힌 손팻말을 들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 김경호 선임기자 jijae@hani.co.kr
역사학자·사회원로 이어 청소년들도 “국정교과서 반대”오늘 466개단체 규탄 회견…65개대 역사학도 반대선언“시민들, 이념대결 아닌 ‘상식 대 비상식’ 싸움으로 여겨”
정부·여당이 한국사 국정 교과서 도입을 결국 확정한 데 대해, 시민들의 분노와 반발이 분출하고 있다. 각계의 반대와 무리한 일정에도 불구하고, 속도전을 방불케 할 정도로 밀어붙이는 것은, 대통령 임기 안에 ‘박근혜 교과서’를 만들겠다는 의도라는 지적이 나온다. 역사학자와 사회 원로, 시민단체의 반대에 이어, 평범한 학생과 청년들도 거리에 나서면서, 이제 국정 교과서 반대는 각계각층의 ‘시민 불복종 운동’으로 번지는 양상이다.
11일 오후 1시께 서울 종로구 안국역 주변에 앳된 얼굴을 한 10대 청소년 수십명이 모였다. “한국사 국정 교과서를 반대하는 청소년과 청소년 활동가”라고 밝힌 이들은 이날 기자회견을 열어 “친일파를 친일파라고 배우고, 독재를 독재라고 배우는 것이 왜 ‘좌편향’인가. 학생들은 한국사 국정 교과서를 거부한다”고 밝혔다.
기자회견을 마친 뒤 세종로 정부서울청사 앞까지 행진을 한 청소년들은 “제대로 된 역사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정성재(19)군은 “평소에도 역사인식을 획일화하는 국정 교과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동생이 중학교 3학년인데, 국정 교과서가 정해지면 내 동생은 그 교과서로 배우게 된다. 내가 당사자는 아니지만 동생을 생각하면서 나왔다”고 했다.
전유정(17)양은 “우리를 안 좋게 쳐다본 어른들도 있었다. 그런데 그분 자식들도 국정 교과서로 공부할 것이다. 제대로 된 역사인식이나 역사 공부를 배울 수 없는 환경에서 자란다면 문제라는 생각이 더 확고해졌다”고 했다.
친일·독재를 미화하는 ‘박근혜 교과서’에 대한 ‘불복종 선언’도 이어지고 있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대학생 단체인 ‘평화나비 네트워크’와 한국청년연대 소속 대학생 150여명은, 11일 저녁 7시께부터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 시도 중단을 요구하는 촛불집회를 열었다.
이들은 집회를 마친 뒤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노숙 농성을 벌였다. 갑자기 추워진 날씨와 간간이 내리는 빗줄기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김샘 평화나비 네트워크 대표는 “학생들은 수업·토론에서 역사적 사실을 훼손하고 역사적 의미를 비하하는 일베(일간베스트 저장소) 문제를 직접적으로 느끼고 있다. 젊은 학생·청년들 사이에도 국정화가 되면 이런 문제가 더 심각해질 거라는 인식을 함께하고 있다”고 했다.
12일엔 전국 466개 시민단체가 모인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 저지 네트워크’ 주최로 국정화 도입을 이끈 청와대를 규탄하는 기자회견이 열린다. 광화문 정부서울청사 앞에서는 역사 연구와 교육을 이끌어갈 역사학도들의 국정화 반대 선언도 이어진다. 11일 오전까지 65개 대학 2000여명의 역사학도들이 서명을 마친 상태다.
전문가들은 역사 교육을 이념대결과 정치적 편가르기로 몰아가는 청와대와 정부·여당의 행태를 강하게 비판했다.
7종의 고등학교 한국사 교과서 집필자들은 이날 공동성명을 내어 “교육부가 검정 통과시켜 학교에서 쓰도록 했는데, 편향됐다고 비난하는 건 자기모순이고 자가당착”이라고 반박하고, “한국사 교과서 집필자와 역사교육자들에 대한 사실 왜곡과 편파적인 폄하 행위를 중단하고,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 정책을 폐기하라”고 촉구했다. 교과서 집필자들이 공동성명을 낸 것은 처음이다.
역사교육연구회 등 역사교육 관련 4개 학회도 공동성명을 내어 “정부와 여당은 역사교수와 역사교사들의 절대다수가 한국사 및 역사 교과서의 국정화에 반대하는 현실을 직시하고, 이들의 의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고 밝혔다.
정용욱 서울대 국사학과 교수는 “진보시민단체를 넘어서, 역사학자와 사회 원로에 이어, 중고생과 역사학도들까지 국정화 반대 선언에 나선 것은, 청와대가 결코 가볍게 넘겨서는 안 될 사회적 현상이다. 정부 여당은 한국사 국정화 문제를 자꾸 이념대결 프레임으로 몰고 가는데, 시민들은 이념대립이 아니라 ‘상식 대 비상식’의 싸움으로 이해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윤여준 전 환경부 장관은 “박근혜 대통령은 민주주의나 공화주의에 대한 인식은 전혀 없이, 모든 걸 국가가 결정하고 국민은 따라오면 된다는 국가주의적 관점으로 바라보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름을 밝히기 꺼려한 한 여론조사 전문가는 “박 대통령이 보수의 선봉에 서서, 경제와 민생 이슈가 아닌, 이념으로 세를 과시하거나 힘을 모으려 하는 것 같다. 결과적으로는 (국정 교과서 논란이) 경제 이슈를 덮는 효과도 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김성환 허승 전정윤 최혜정 황준범 기자 hwany@hani.co.kr
******************************************************************************************************
“가족사를 한국사로 만들고 튈 생각인가” ‘한국사 국정화’ 공분
‘한국사 국정화’ 공식발표 코앞 누리꾼들 비판 이어져진중권 교수·역사학자 전우용· 허지웅 등 한 목소리“아버지에 대한 추억, 본인만 간직, 국민에 강요말라”
* 카피라이터 정철씨가 트위터(@cwjccwjc)에 역사교과서 국정화를 반대하는 내용의 웹포스터를 만들어 게재했다.
정부와 새누리당이 속도전식으로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를 공식 발표하기로 결정하면서 누리꾼들이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공분하고 있다.
진중권 동양대 교수는 12일 0시께 자신의 트위터(@unheim)에 ‘정부,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 발표’ 기사를 게재한 뒤 “할 일 더럽게 없나 봅니다”라고 운을 뗐다. 그는 “이 ‘헬조선’에서 대통령으로서 할 일이 그렇게도 없나? 이미 실패한 대통령으로 끝날 것이 확실하므로, 가족사를 한국사로 만들어 놓고 튈 생각인가 보죠”라고 비판했다.
진 교수는 “대통령과 집권여당이 우리 헌법에 명시된 상해임시정부의 법통을 정면으로 부정하는 것은 실로 해괴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집단으로 실성을 했나 봅니다”라며, “나라 전체를 헬조선 만들어 놓고 지지율을 유지하려면, 시대착오적 이념전쟁으로 정치적 의식의 후진적 층위들을 집결시켜야겠지요. 나아가 이참에 제 선조들의 친일에 면죄부를 주고, 나아가 그 짓을 장한 애국질로 둔갑시킬 수도 있고”라고 지적했다.
역사학자 전우용씨도 정부와 새누리당의 행태를 강하게 비판했다. 전씨는 같은 날 트위터(@histopian)에 “2년 전 새누리당은 국정 역사교과서가 ‘자유민주주의 이념에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반대했다”면서, “지금 ‘자유민주주의’를 파괴하고 ‘유일사상’을 전파하려는 반국가 선동세력은 바로 새누리당”이라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국정 역사교과서가 민주주의에 위배된다는 건 상식적인 새누리당 의원들도 알 겁니다”라며 “가장 질 낮고 위험한 사회는, 몰상식한 사람이 많은 사회가 아니라, ‘몰상식한 지시라도 따르는 게 상식’인 사회”라고 밝혔다.
그는 또 “‘역사교과서 국정화로 아버지 명예회복이라는 소원을 이뤘으니 이제 됐다’는 멍청이들이 참 많다”며 “일제가 식민사관을 만들어 유포한 건 과거를 위해서가 아니라 미래를 위해서였습니다. 유신을 미화하는 건, 유신을 부활시키기 위해서”라고 설명했다.
카피라이터 정철씨도 트위터(@cwjccwjc)에 역사교과서 국정화를 반대하는 내용의 웹포스터를 만들어 게재했다. 정씨가 트위터에 올린 ‘21세기 분서갱유’라는 제목의 2장의 포스터에는 ‘우리 아빠를 조금이라도 부정적으로 기술한 역사책은 모두 불사르세요’와, ‘오일육혁명과 새마을운동을 적극 찬양하지 않는 역사학자는 모두 매장하세요’라는 내용의 글이 적혀있다. 그는 웹포스터와 함께 올린 글에서 “가을 야구보다 소피마르소보다 폭스바겐보다 사도보다 인턴보다 장기하보다 아이유보다 낙엽보다 셀카보다 먹방보다 역사가 먼저다”라고 밝혔다.
방송인 허지웅씨도 지난 8일 자신의 트위터(@ozzyzzz)에 국정 교과서 논란에 대해 장문의 글을 남기며 일침을 가했다. 허씨는 “누군가에게 보기 편한 역사란 역사가 아니다. 역사란 누구에게나 불편해야만 정직한 것이다. 역사를 모르는 공동체는 반드시 망한다”며, “국정 역사교과서는 결국 모두를 망하게 할 것이라는 측면에서만 모두에게 공정하다”고 밝혔다.
포털사이트 다음과 네이버에도 친일·독재를 미화하는 ‘박근혜 교과서’를 비판하는 댓글이 이어지고 있다.
누리꾼들이 남긴 댓글을 보면 “아버지에 대한 좋은 추억은 본인만 간직하는 걸로, 국민들한테 강요하지 말라” (ymy2***) “전 세계 수많은 가문들 중 하나일 뿐인 가문을 미화시키려 역사책을 바꾸다니, 부끄러운 줄 알아야 한다. 지금의 아이들에게 너무나도 미안하다. 사리사욕 때문에 국익이 사라지고 국민들이 희생되는 게 너무나도 화가 난다” (conv****) “어느 훌륭한 지도자는 역사를 바꾸는데, 헬조선 지도자는 역사책을 바꾸고 있다” (***김말이) “유신정권의 회귀! 친일 보수 역사 사관의 재등장! 역사를 우상화하고 왜곡하는 북한과 일본을 닮아가려 하는가” (ycar****)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릴 수 있을 것인가? 대한민국은 정의가 실패하고 기회주의가 만연한 나라가 맞다. 박근혜 대통령과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가 대표 케이스 아니냐” (son6****) 라는 등의 댓글이 눈길을 끌고 있다.
황우여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12일 오후 2시 정부세종청사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국정화 결정 배경과 향후 일정 등을 설명할 예정이다. 교육부는 한국사 교과서의 발행 방식을 포함한 ‘중등학교 교과용 도서의 국·검·인정 구분안’을 행정 예고할 방침이다.
박수진 기자 jjinpd@hani.co.kr 사진/카피라이터 정철씨가 만든 웹포스터
*****************************************************************************************************
교회협의회 "유신으로 회귀하려는 국정화 중단하라"
"일본의 우경화 비판하면서 똑같이 닮아가"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는 12일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는 민주주의와 헌법 가치의 기틀을 파괴하고 국론 분열을 일으킨다”며 즉각적 국정화 중단을 촉구했다.
기독교회협의회는 이날 오전 서울 연지동 한국기독교회관 NCCK 예배실에서 기자회견을 통해 발표한 성명서를 통해 이같이 밝히며 “국정화는 독재 권력이 획일적 역사를 가르치던 유신 정권 시절로 회귀하는 반민주적 행위이고, 국정화보다는 검인정제가 헌법 이념에 더 부합한다고 판결했던 헌법재판소의 결정에 반하는 반헌법적 행위”라고 지적했다.
이들은 또한 “인성교육을 법제화하고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를 추진하는 일은, 일제 식민지 시대의 교육을 답습하는 것”이라며 “국정교과서의 가장 큰 문제는 정권의 입맛대로 역사교육이 이뤄질 가능성이 크다는 점인데, 그렇다면 5년마다 한 번씩 교과서가 달라지는 악순환이 반복될 가능성도 있다”고 지적했다.
이들은 “역사적 정통성은 힘과 권력으로 억지로 세워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 국민들에 의해 저절로 인정되는 것”이라며,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를 권력에 의지해서 추진하는 일은, 정통성을 왜곡하거나 하나님과 국민들을 무시하는 행위”라고 경고했다.
원로사학자인 윤경로 박사는 “국정화는 역사 퇴행이자 시대에 역행하는 것으로, 그렇게 한다 해서 역사가 바뀌는 게 아니”라며 “우리가 일본의 우경화를 비판하면서 똑같이 닮아가고 있는 것 아닌가”라며, 박근혜 정권의 이중성을 질타했다.
김혜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