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승춘 보훈처장의 부적절한 향군 선거 개입
선거를 앞두고 고소·고발 등의 진흙탕 싸움이 벌어지는 것은 보는 이의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그렇다고 선거를 아예 중단하자고 하면 정신 나간 사람 취급을 받을 것이다.
그런데 15일로 예정된 재향군인회(향군) 회장 선거를 며칠 앞두고, 국가보훈처가 선거를 중단하겠다고 나섰다.
박승춘 보훈처장은 최근 향군 부회장단 및 부장급 간부 등과 간담회를 열어, 향군 회장 선거 중단 방침을 내비쳤다. 향군의 한 대의원이 “일부 후보들이 지난해 치러진 회장 선거에서 대의원들을 상대로 금품을 뿌린 혐의가 있다”는 진정서를 낸 것을 빌미 삼아서다. 이 사건은 현재 서울중앙지검 조사1부(부장검사 이진동)에 배당돼 있다.
보훈처는 선거 중단 이유를 “당선자가 다시 검찰 조사를 받아야 하는 상황이 올 수 있기 때문”이라고 주장하지만 억지다. 그런 식의 논리라면 앞으로는 향군 회장 선거를 치를 때마다 누가 고발장을 내면 선거를 중단해야 한다는 이야기다.
보훈처의 속셈은 사실 다른 데 있을 것이다.
현재 금품 살포 혐의를 받고 있는 세 명의 후보들은 모두 학군과 3사관학교 출신들이다. 이들을 배제하고 나면 지난 선거에 출마하지 않은 육사 출신 후보 2명만 남는다.
보훈처가 육사 출신을 향군 회장에 앉히기 위해 무리하게 향군 선거에 개입한다는 비판이 나올 수밖에 없다.
검찰도 비판받을 대목이 많다.
비리 척결은 물론 중요하다. 하지만 수사를 선거 전에 깔끔하게 마무리할 수 없는 상황이라면, 수사를 뒤로 미뤄 일단은 선거에 영향을 끼치지 않는 게 옳다. 그런데도 검찰은 어설프게 수사에 속도를 내고 있다.
이런 수사가 결과적으로 다른 후보들에 대한 지원 활동이 된다는 것은 검찰이 누구보다 잘 알 것이다. 보나 마나 검찰은 수사가 채 무르익기도 전에 후보들에 대한 소환장 발부 등의 조처를 취해, ‘선거 중단론’에 힘을 실어줄 게 뻔하다.
검찰이 보훈처와 육사의 도우미 노릇을 하고 있다는 손가락질이 나오게 돼 있다.
향군 회장 선거 중단 움직임에 학군 및 3사관학교 출신들이 반발하면서, 예비역 군 출신 간 갈등도 고조되고 있다. 입만 열면 안보를 위한 국민 단합과 단결을 외치는 보훈처가, 오히려 군 내부의 갈등과 대립만 조장하고 있으니 혀를 찰 노릇이다.
[ 2016. 4. 11 한겨레 사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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