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보기관의 들러리로 전락한 통일·외교부
‘북한 해외식당 종업원 집단 탈북’은 사건 자체만큼이나 정부 행태도 이례적이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탈북자 문제에 책임이 있는 통일부와 외교부가 철저하게 정보기관의 들러리로 전락한 점이다.
박근혜 정부 대북정책 결정과 집행 과정의 현주소를 보는 듯하다.
이제까지 탈북자와 관련된 사안은 인권 문제와 해당국과의 외교관계 등을 고려해 비공개로 다루는 게 원칙이었다. 어쩔 수 없이 공개해야 하는 경우에도 대외관계를 책임진 외교부가 떠맡았다.
그런데 이번엔 통일부가 갑작스럽게 발표를 했다. 게다가 통일부와 외교부 관계자들은 탈북자들이 서울로 오기 전에는 관련 사실을 전혀 몰랐다고 말한다.
당연히 통일부가 전하는 내용도 알맹이가 거의 없다. 국정원이 필요에 따라 흘리는 내용을 그냥 전달하는 것으로 보인다. 정보기관이 정부를 ‘조종’하는 모양새다.
그러다 보니 비정상이라고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조성되고 있다.
우선 탈북자 가족의 피해가 우려된다. 함께 오지 않은 종업원들의 신상에 문제가 생길 수도 있다. 사건 공개를 두고 중국이 불만을 품는다면 앞으로 탈북자들의 한국행이 더 어려워질 가능성도 있다.
탈북자들이 중국에 있는 것으로 알려진 식당에서 나온 뒤, 불과 이틀가량 만에 동남아 한두 나라를 거쳐 서울에 도착한 과정도 석연치 않다. 국내에 거주하는 탈북자들도 납득하지 못할 정도다.
더 문제가 되는 것은 국정원과 청와대의 의도다. 이번 사안에서 국정원이 핵심적 구실을 한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국정원을 통제하면서 통일부와 외교부를 들러리로 만들 수 있는 주체는 청와대밖에 없다.
이번 사건 발표가 청와대의 지시로 이뤄진 게 아니라는 통일부의 설명은 믿기가 어렵다. 통일부는 ‘관계기관과의 충분한 협의’를 내세웠는데, 사전에 사건에 대해 몰랐다면 협의할 것도 별로 없는 만큼 앞뒤가 잘 맞지 않는다.
경위가 어떻든 통일부와 외교부를 들러리로 삼은 것 자체가 정상적인 정부 모습이 아니다. 이번 사건의 이례적인 발표가 임박한 총선을 앞두고 보수 여론을 자극하기 위한 것으로 의심받는 이유의 하나다.
그 직후 북한의 대남 공작을 총괄하는 정찰총국 출신의 대좌(대령)와 북한 외교관 일가족 등이 지난해 탈북해 우리나라로 온 사실이 정부 쪽에서 흘러나온 것도 수상쩍다.
[ 2016. 4. 12 한겨레 사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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