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최순실, 측근) 비리

비선과 실세…최순실이 비선(秘線)이라고?

道雨 2016. 11. 21. 10:50

 

 

비선과 실세…최순실이 비선(秘線)이라고?

이진우  | 등록:2016-11-21 09:00:41 | 최종:2016-11-21 09:43:49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보내기    



최순실로 상징되는 비선실세 국정농단 사태에 대한 검찰 수사가 막바지로 치닫고 있다. 오늘(20일) 중간 수사 발표가 이루어졌는데, 검찰은 박근혜 대통령을 ‘피의자’로 확실하게 못을 박았을 뿐 아니라 공소장에 박근혜 대통령이 최순실·안종범·정호성과 ‘공모했다’고 기술했다. 건국 이래 최초로 현직 대통령이 피의자로 적시된 거다.

 

1차 대국민 사과에서 박근혜 대통령은 취임 후 청와대 비서실 진용이 갖춰질 때까지 한시적으로 일부 연설문에 대해 최순실의 도움을 받았다고 시인했다. 그런데 이번 검찰 수사 발표에 따르면 정호성 비서관은 올해 4월까지 연설문 뿐만 아니라 대통령 순방일정, 장·차관급 인사자료, 대통령 주재 회의자료 등을 최순실에게 계속 유출한 것으로 나와 있다. 대통령이 국민에게 거짓말한 거다.

그런데 여기서 궁금한 게 하나 있다. 도대체 최순실에게 연설문과 관련하여 무슨 도움을 받으려고 했던 것일까? 법조인이라면 준법기준(Compliance)과 관련하여 조언을 받을 수 있고, 외교안보·경제통상·사회문화 등 주요 현안과 관련하여 해당분야 전문가들의 조언을 받을 수 있다. 사회적으로 존경을 받는 정치인이나 언론인에게 민심이나 여론을 듣고 반영하기 위해 조언을 받는 경우도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최순실은 이 중 어느 카테고리에도 들어가지 않는다. 다시 말해 대통령의 연설에 조언을 하거나 자문을 줄 만한 어떠한 전문성도 없다는 거다. 더욱이 앞서 언급한 전문가들은 그저 자신과 관련된 분야에 대해서만 조언할 뿐 모든 연설을 다 받아보고 의견을 주는 일은 결코 없다. 결론적으로, 전문성도 없는 강남 복부인이 모든 문제에 끼어들어 자신의 의견을 개진하고 이를 반영시켰다는 이야기가 된다.

과거에도 비선들은 있었다. 전두환에게는 허삼수·허화평·허문도가 있었고, 노태우에게는 박철언·강재섭이 있었고, 김영삼에게는 김현철·전병민이 있었다. 김대중의 경우에도 권노갑·이수동이 있었고, 노무현에게도 송기인·강금원이 있었다. 바로 직전 대통령이었던 이명박에게도 이상득·최시중이 있었다. 그런데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이들 모두에게 명확한 전문성이 있었고, 자신의 전문성과 관련된 분야에 국한하여 의견을 개진했다. 유일한 예외가 김현철, 권노갑, 이상득 정도이다.

그러나 이들도 대통령과의 관계에서 결코 우위에 서거나, 대통령의 비서들을 마치 자기 부하처럼 부리거나 하는 일은 결코 없었다. 그만큼 최순실의 행보는 그녀가 비선의 위치에 있었다는 것을 인정하더라도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 많다. 어떠한 전문성도 없는 강남 복부인이 모든 국정 현안에 간섭하고, 더 나아가 대통령의 비서들을 자신의 수하처럼 부렸다… 그러니 대통령과 공모했다는 거다.

박근혜 대통령을 지지하고 지키기 위해 광화문에서 맞불집회를 개최한 사람들이 써먹는 멘트들이 있다.

“비선이 없는 정권이 어디 있냐? 도리어 박근혜 대통령이 마음이 약해서 이 사람들을 청와대로 데리고 들어가지 않은 것이 문제다…”

“대통령의 마음을 가장 잘 아는 사람과 대통령이 국정을 상의한 게 뭐가 잘못이냐? 김대중과 노무현도 그러지 않았느냐?”

내가 그들에게 꼭 묻고 싶은 것이 있다. 앞서 언급한 비선들은 단지 대통령과 친하다는 이유만으로 의견을 개진한 것이 아니라 명확한 그들만의 전문성을 갖고 조언했다. 뿐만 아니라 자신의 이름으로 공직에 출마하거나 기업을 이끌거나 연구소를 운영했다. 다시 말해 커튼 뒤에 숨지 않고 자신의 이름을 걸고 대통령에게 의견을 개진한 거다. 그러나 최순실은 철저하게 대통령 뒤에 숨었고, 대통령 또한 행여 최순실이 커튼 밖으로 드러날까 노심초사하며 그녀를 기꺼이 숨겨줬다. 이것이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의 핵심 팩트이고, 이것이야말로 범죄의 공모에 해당하는 거다.

최순실의 죄질이 더 나쁜 이유는 훨씬 더 명확하다. 최소한 우리는 비선으로 등장했던 사람들의 가족에 대해서는 어떠한 기억도 없다. 권노갑의 부인이 누구인지, 박철언의 딸이 누구인지, 허삼수의 동생이 누구인지, 최시중의 아들이 누구인지, 강금원의 형이 누구인지… 그런데 최순실은 등장인물이 너무 많다. 최태민(아버지), 정윤회(남편), 최순득(언니), 정유라(딸), 장시호(조카)… 이들 중 변변한 직업과 전문성을 가진 사람은 단 한 명도 없다. 비선 실세의 가족이 총망라하여 국정을 농단한 케이스는 고려왕조 500년과 조선왕조 500년 역사를 다 뒤져도 나오지가 않는다.

최순실에 비하면 공민왕 때의 신돈, 연산군 때의 장녹수, 숙종 때의 장희빈, 명종 때의 정난정 등이 도리어 양반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다. 몇 백 년 전 역사까지 다 뒤져도 도무지 찾을 수 없는 ‘막장 드라마’를 21세기 대한민국에서 버젓이 보고 있으니 국민들이 얼마나 창피하고 화가 나겠는가? 그러니 더 이상 불쌍한 ‘유신공주’ 코스프레나 하면서 친박과 박사모 뒤에 숨어서 상황을 모면하려 하지 말고 당당하게 무대 앞으로 나와 국민의 질책이건 비판이건 받기 바란다.

능력이 부족하고 개념이 없는 것까지는 봐준다 치더라도, 애시당초 국군통수권자 자리에 오를만한 그릇도 책임감도 없었다는 자괴감을 국민이 느끼지는 않게 해야 될 것 아닌가? 4년 전 박근혜를 선택한 절반의 유권자들을 바보·등신으로 만들지 않아야 할 최소한의 책임이 있다는 것을 정말 모르는가?

이진우 / 한국정치커뮤니케이션센터(KPCC)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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