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최순실, 측근) 비리

헌재 존립 흔드는 초유의 ‘김기춘-박한철 커넥션’ 의혹. 헌재는 청와대의 아바타였다

道雨 2016. 12. 5. 11:27





통합진보당 해산, 헌법재판소는 청와대의 아바타였다


-김영한 전 민정수석 비망록 분석-







김영한 전 청와대 민정수석의 ‘회의 비망록’ 2014년 8월 25일 메모

김영한 전 청와대 민정수석의 ‘회의 비망록’ 2014년 8월 25일 메모ⓒ전국언론노동조합

통합진보당 해산심판청구 사건에서 통합진보당의 소송대리인으로 변론했던 필자는 최근 공개된 ‘김영한 전 민정수석의 업무수첩(비망록)’에 적힌 내용을 보고 깜짝 놀랐다. 혹시나 했는데, 역시나였다.

약 1년 동안 이 사건을 변론하면서 헌법재판소의 재판진행에 대해 석연찮게 느낀 대목이 한 두 가지가 아니었는데 이 비망록은 그 의문에 답을 주고 있다.



내란음모 무죄선고되자 헌재와 대책 마련했나?

 

이 비망록의 2014년 8월 25일자 메모에는 “통진당 사건 관련 지원방안 마련 시행, 재판진행상황 법무부 TF와 협력”이라고 기재돼 있다. 이 기재 내용은 무슨 의미일까?

원고인 법무부가 정당해산청구를 하면서 ‘이른바 이석기 전 의원이 지하혁명조직 RO의 수괴이고 이 RO가 통합진보당을 장악하여 북한식 사회주의를 추구하는 내란음모를 하였다’고 주장했다. 정당해산심판 도중 정부의 예상과는 달리 내란음모사건은 2014년 8월 11일 항소심에서 무죄가 선고되었다. 내란음모사건을 맡은 서울고등법원이 ‘지하혁명조직 RO는 존재하지 않고 내란음모는 없었다’며 내란음모죄에 대해 무죄를 선고한 것이다.

정부측의 정당해산청구는 더 이상 설득력을 잃어버린 것이다. 내란음모 사건에서 무죄가 선고되자, 법무부는 갑자기 ‘RO가 통합진보당을 장악했다’는 종전 주장을 ‘민혁당 잔존세력이 통합진보당을 장악했다’는 내용으로 변경했다. 법무부측은 변경한 주장을 입증할 이렇다 할 증거가 없자 민혁당 활동을 하다가 전향한 ‘강철’ 김영환을 증인으로 신청했다.

헌법재판소는 원고인 정부측이 이처럼 주된 주장을 바꾸는 것을 허용해서는 안되고 새롭게 신청하는 증인도 채택해서는 안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헌법재판소는 정부측에 왜 갑자기 주장을 바꾸는지, 종전에 신청하지 않은 증인을 새로이 신청하는지 한 마디도 물어보지 않고 증인신청을 받아들였다. 마치 정부측과 헌법재판소가 사전에 협의한 것처럼.

통합진보당 소송대리인이었던 필자는 헌법재판소의 이러한 태도를 이해할 수 없었는데, 김영한 전 수석 ‘비망록’의 2014년 8월 25일자에 기재된 메모는 이러한 의문에 답을 줬다. 청와대 김기춘 비서실장이 헌법재판소와 협의한 후 소송을 수행하고 있는 법무부측에 종전의 주장을 바꾸고 새롭게 증인신청을 하도록 했음을 드러내주고 있다. 헌법재판소는 사전에 이와 같이 청와대와 협의를 하였기 때문에 주장을 변경하는 것에 대해서 아무런 의문을 제기하지 않았고, 새로운 증인신청을 하였는데도 그대로 증인을 채택했던 것이다. 한마디로 ‘짜고 치는 고스톱’이었던 것이다.





선고기일까지도 사전에 협의했나?


이 비망록의 2014년 10월 4일자 메모에는 “비서실장, 통진당 해산 판결- 연내 선고”라고 기재돼 있다. 청와대 김기춘 실장이 2014년 10월 4일 수석비서관회의에서 통합진보당 해산심판사건이 연내에 선고된다고 말했다는 것이다.

이 무렵에는 정부와 통합진보당측에서 제출한 서증에 대한 증거조사를 마치지 않았고, 핵심 증인 4명에 대한 증인신문도 하지 않은 상태였기 때문에 소송당사자들조차 선고가 언제 날지 아무도 예측할 수 없었다. 그런데 김기춘 비서실장은 선고기일을 어떻게 알았을까? 2014년 10월 4일 이전에 박한철 소장을 만나 선고기일을 사전에 협의하지 않고는 선고가 연내에 이뤄질 것이라고 말할 수는 없는 일이다. 이 메모는 김기춘 비서실장과 박한철 소장이 내밀하게 의논하면서 재판을 진행했음을 드러내주는 결정적인 증거이다.

박한철 소장은 2014년 10월 17일 국정감사 오찬장에서 국회의원들에게 해산심판 선고는 ‘올해 안에 선고하겠다’는 입장을 밝혔으나, 피고측 소송대리인은 헌법재판소장의 이와 같은 말을 귀담아 듣지 않았다. 앞으로 진행해야할 내용도 많이 남아 있었다. 정당해산 사건의 핵심내용인 내란음모사건의 대법원 판결이 2015년 1월 22일에나 선고되기 때문에 그 결과를 지켜보는 것이 상식이었다. 변론을 종결한 후 13만 페이지에 달하는 기록도 꼼꼼히 살펴보아야 했다. 여로모로보나 연내에 선고하는 것은 불가능한 상황이었다.

김기춘 비서실장이 수석비서관 회의에서 한 말은 현실화되었다. 헌법재판소는 2014년 11월 25일 변론을 종결했다. 2014년 12월 17일 이틀 후에 선고하겠다고 소송대리인에게 통지했다. 박근혜 대통령 당선 2주년이 되는 2014년 12월 19일 통합진보당을 해산하는 판결을 선고한 것이다.

박한철 소장이 김기춘 비서실장과 한 ‘연내 선고’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 일까? 헌법재판소는 불과 한 달 후면 선고하는 대법원의 내란음모사건 결과도 지켜보지 않고, 13만 페이지에 달하는 기록도 제대로 보지 않은 채 서둘러 이날 판결을 선고했다. 판결문도 주심 재판관인 이정미 재판관이 아닌 다른 재판관이 작성했다고 한다.

헌정사상 최초의 정당해산판결임에도 판결문에는 오류투성이었다. 시간에 쫓겨 허겁지겁 쓴 흔적이 곳곳에 역력했다. 수개월 동안 재판을 하면서 밝혀진 기초적인 사실도 반영되지 않은 채 최초의 정당해산청구서에 기재된 내용 그대로 판결문에 기재되어 있었다. 헌법재판소는 통합진보당측 소송대리인이 판결문의 오류를 지적하자 해산판결 후 5주 만인 2015년 1월 22일 스스로 해산판결문에 오류가 있음을 시인하고 판결경정결정을 했다. 헌법을 수호해야할 헌법재판소가 청와대의 ‘정치적 계산’에 놀아났던 것이다.



중앙선관위에 비례대표 지방의원 자격박탈도 지시했나?


이 비망록의 2014년 11월 26일자 메모에는 “선관위 사무총장 - 지방의원 자격 불포함 - 법 흠결(?)”이라고 기재돼 있다. 무슨 의미일까? 김기춘 실장이 ‘2014년 11월 26일 수석비서관 회의에서 선관위 사무총장을 만났는데, 선관위 사무총장은 법해석상 통합진보당 소속 지방의원의 자격은 상실되지 않는다고 하니 대책을 수립하라’는 취지의 말을 한 것으로 해석된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헌법재판소의 해산결정이 난지 3일 후인 2014년 12월 22일 통합진보당 소속 비례대표 지방의원 6명에 대하여 ‘공직선거법 제192조 제4항에 따라 퇴직한다’는 유권해석을 내렸고, 이 유권해석에 따라 각 지방자치단체 의회의장과 각 선거관리위원회는 지방의원들에게 의원직 상실통보를 하였다.

김기춘 실장의 수석비서관회의에서 한 말과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의 유권해석을 종합해보면, 청와대가 지방의원의 자격을 상실하지 않는다고 입장을 취하고 있던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영향력을 행사하여 중앙선거관리위원회로 하여금 ‘의원직 상실’이라는 유권해석을 하도록 했다는 결론을 얻을 수 있다.

다행히 통합진보당 소속 비례대표 지방의원 6명은 그후 법원에 지방의회의원 지위확인소송을 제기해 승소하여 현재 지방의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국회는 진상을 규명해야 한다

김영한 전 민정수석의 비망록을 통해 청와대 김기춘 실장이 헌법재판소가 진행하던 통합진보당 해산심판 사건에 깊숙이 개입했고, 중앙선관위로 하여금 아무런 법적 근거도 없이 의원직 상실 통보를 하도록 했음이 드러났다. 이는 헌법을 수호해야 할 헌법재판소와 독립성이 생명인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청와대의 지시에 따라 판결을 하고 유권해석을 한 것이다. 헌법재판소와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청와대의 아바타였던 것이다.

최근 한 보도에 의하면 최순실이 “대통령에 당선되면 제일 먼저 통합진보당을 해산시키고, XXX들을 감옥에 쳐 넣겠다”고 말한 후 이에 따라 청와대 일부 직원과 법률전문가들이 TF를 구성해 통합진보당 해산 청구를 하게 되었다고 한다.

이 보도가 사실이라면 통합진보당의 해산은 ‘비선실세’ 최순실에 의해 시작되었고, 김기춘 비서실장에 의해 마무리된 것이고, 헌법재판소는 청와대의 아바타였던 것이다. 통합진보당 해산은 헌법의 이름으로 헌법질서를 파괴한 것이다. 해산청구는 철저히 기획된 것이고 해산판결은 의도된 오판이었음이 하나씩 드러나고 있다. 국회는 정당해산이 누구에 의해 기획된 것인지, 청와대가 이 재판에 어느 정도 관여했는지에 대해 하루 빨리 진상을 규명해야 할 것이다.



이재화 변호사, 민변 전 사법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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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재 존립 흔드는 초유의 ‘김기춘-박한철 커넥션’ 의혹

 





김영한 비망록 파문

1988년 헌법재판소 설립 이후
헌재소장 ‘재판과정’ 정치적 중립성 첫 도마


2013년 8월6일 김기춘 대통령 비서실장이 청와대,여야 5자회동을 제안하는 브리핑을 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2013년 8월6일 김기춘 대통령 비서실장이 청와대,여야 5자회동을 제안하는 브리핑을 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통진당 해산 결정-연내 선고’.

2014년 10월4일 김영한 전 청와대 민정수석이 당시 김기춘 대통령 비서실장의 비공개 회의 발언을 옮겨 적은 비망록의 파장은 간단치 않다.
13일 뒤 박한철 헌법재판소장은 여야 의원들과의 국정감사 오찬 자리에서 같은 취지의 발언으로 정치적 논란의 중심에 선다. 청와대가 박 소장의 ‘의중’을 사전에 알고 있었다는 의심이 가는 대목이다.
헌재 안팎에서는 만약 두 사람 사이에 어떤 식으로든 ‘교감’이 있었다면, 헌법재판소의 존립 근거 자체가 흔들릴 수 있다고 우려한다.

1988년 헌재가 만들어진 이후, 재판과 관련해 헌재소장의 정치적 중립성이 직접 문제가 된 경우는 사실상 이번이 처음이다.
헌재 사정을 잘 아는 헌법학계 인사는 4일 “10년 전 전효숙 헌재소장 후보자 파동은 ‘소장이 된 뒤에도 청와대가 시키는대로 할 것 아니냐’는 트집을 잡은 것에 불과하다. 반면, 김영한 비망록 의혹은 초유의 정당해산심판 사건 진행 과정에 청와대가 개입했을 수 있다는 점에서 비교 자체가 안 된다”고 했다.

 2006년 한나라당은 노무현 대통령이 지명한 전효숙 헌재소장 후보자를 청와대 민정수석과의 ‘전화 통화’를 빌미 삼아 후보직에서 끌어내렸다.
헌법은 ‘헌법재판관 중에서’ 헌재소장을 임명하도록 하고 있다. 이 때문에 기존 재판관이 헌재소장으로 지명될 경우 재판관 잔여 임기가 헌재소장의 임기가 되는 것인지, 아니면 새로 헌재소장의 임기 6년이 보장되는 것인지에 대한 헌법상 논란이 상존해 왔다.
당시 노 대통령은 대법원의 해석을 구한 뒤 ‘일단 재판관에서 사퇴한 뒤 헌재소장으로 임명해 6년 임기를 보장’하는 방안을 택했고, 이를 전해철 민정수석을 통해 전 재판관에게 전달한다. 전 재판관은 임명권자의 판단에 따라 재판관직에서 물러났다.
 

이 사실이 국회 인사청문회 과정 등을 통해서 알려지자 한나라당과 조순형 민주당 의원 등은 “대통령과 사전 조율해 사퇴했다. 헌재의 정치적 중립과 독립성을 해쳤다”며 맹공을 퍼부었다.
노 대통령과 사법시험 동기인 전 후보자를 겨냥해 “‘코드 인사’를 통해 다음 정권까지 헌재소장을 시키려는 것”, “민정수석의 ‘지시’를 받은 사퇴”라는 식으로 몰아갔다.
노 대통령은 “절차적 문제”를 사과했지만, 한나라당의 반발에 결국 지명을 철회했다. 당시 ‘사퇴 후 임명’은 헌법적 논란을 해소하기 위한 절차적 방편으로 보는 시각이 많았다.


2013년 3월, 박 대통령이 낙마한 이동흡 후보자에 이어, 대검 공안부장 출신의 박 소장을 후보로 지명하자, 헌재 안에서도 ‘검찰 출신 헌재소장’에 대한 우려가 제기됐다. 검찰 선후배인 김 전 실장과 박 소장의 공관은 담 하나를 두고 맞붙어 있기도 했다.


김남일 기자 namfic@hani.co.kr



원문보기:
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773209.html?_fr=mt2#csidxd0034b8c75c4539b79cf0326b20f0a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