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대법원, ‘직장에서 성소수자 차별 금지’ 역사적 판결

민권법의 성별 차별 금지를 성소수자 차별 금지로 확대
보수 성향 대법관 고서치 가세해 6대3으로 판결
헌법 해석이 아닌 구체적 법률 인용해 직접적인 판결 효과
트랜스젠더 군 복무 금지 등 주도한 트럼프 행정부 타격

 

15일(현지시간) 미국 대법원이 동성애자나 트랜스젠더라는 이유로 해고될 수 없다면서 개인의 성적 성향에 의한 고용 차별을 금지하는 판결을 내리자 한 성소수자 지지자가 워싱턴DC 연방대법원 청사 앞에서 '프라이드 플래그'(성소수자의 인권을 상징하는 무지개 깃발)를 펼쳐 들고 있다. 워싱턴 로이터/연합뉴스

 

미국 대법원이 직장에서 성소수자 차별을 금지하는 역사적 판결을 내렸다. 민권법에서 성차별 금지 조항을 성적 지향에 따른 차별 금지로까지 확대한 판결이다.

미국 연방대법원은 15일 민권법은 고용자가 성적 지향이나 성 정체성에 근거해 종업원들을 차별하는 것을 금지토록 해야 한다고 파결했다. 이는 직장에서 연방정부의 작업자 보호 조처가 성소수자(LGBT, 레즈비언·게이·바이섹슈얼·트랜스젠더) 종업원으로까지 전국적으로 확대돼야 한다는 첫 판결이다. 대법원 판사 9명 중 6대3으로 판결났다.

 

대법원은 성별에 근거한 직장 차별을 금지한 1964년의 민권법에서의 광의의 조항들이 성적 지향도 포함되는 것으로 해석돼야 한다고 명시했다. 보수적 성향의 대법관 닐 고서치와 대법원장 존 로버츠도 다른 4명의 자유주의적 성향 대법관과 함께 성적 취향에 따른 차별 반대에 찬성했다. 이들은 “단순히 게이이거나 트랜스젠더라는 이유로 개인을 해고하는 고용자는 법을 위배한 것이다”는 의견을 냈다.

 

이번 사건에 대한 판결은 대법원에서 지난 25년 동안 진행된 성소수자 권리 옹호에서 중대한 진전이다. 대법원은 지난 2015년 동성결혼을 합법화하는 판결을 내린바 있다.

 

이날 판결은 고서치 대법관이 지적한 것처럼 “성별로” 개인에 대한 직장 차별을 금지한 민권법의 7조를 그대로 해석해야 한다는 것이다. 고서치 대법관은 “동성애자거나 성전환자라는 이유로 개인을 해고하는 고용자는, 다른 성을 가진 사람들에게서는 문제시되지 않을 행태나 행위로 해고하는 것”이라며 “성이 그 결정에서 필수적이고 감출 수 없는 역할을 한 것이고, 이는 정확히 민권법 7조를 위배한다”고 판시했다.

 

미국 대법원은 은퇴한 앤서니 케네디 전 대법관의 주도로 성소수자 권리를 확장하는 판결을 내려왔다. 케네디 전 대법관은 적절한 절차와 평등보호권이라는 폭넓은 헌법적 원리에 바탕해 성소수자 보호 판결을 내렸다. 대법원은 이에 바탕해 2015년에 동성결혼 합법화 판결도 내렸다.

 

이번 판결은 구체적인 법 조항을 인용한 것이서 더 직접적이다. 의원 등 입법자들이 추구하려는 목적에 대한 폭넓은 탐구가 아니라, 의회가 제정한 법률 조항을 가지고 구체적으로 뒷받침한 것이다.

 

이번 판결은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에게는 큰 타격이다. 트럼프 행정부는 성소수자 종업원들은 차별로부터 보호돼야 한다는 버락 오바마 전 행정부의 법무부 입장을 명확히 뒤집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2018년 3월 트랜스젠더의 군복무를 금지하는 정책을 발표했다. 앞서, 오바마 행정부 때 국방부는 트랜스젠더의 군 복무를 허용하는 조처를 내렸다. 노엘 프랜시스코 법무부 차관은 이번 사건에서 법정에 출석해 재판부의 취한 입장에 반대 입장을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기자들에게 “이 판결을 읽었고, 일부 사람들은 놀랐으나, 법원이 판결했고 우리는 그들의 결정을 감수한다”며 “사실, 아주 강력한 결정이고, 그들을 그렇게 판결했다”고 말했다.

이번 판결은 특히 보수적 성향의 대법관 고서치의 가세로 결정나, 기독교 복음주의자 등 사회적 보수 세력에게 뼈아픈 것으로 평가된다. 고서치는 앤터닌 스캘리아 전 대법관의 후임이다. 공화당은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의 임기 말기에 은퇴한 스캘리아 전 대법관의 후임으로 보수 성향의 대법관을 임명하려고, 오바마 대통령의 대법관 지명 인준 절차를 거부하기도 했다. 그 결과, 공화당은 오바마가 퇴임한 뒤 트럼프 대통령에 의해 고서치를 임명케 했다.

 

이번 사건에서 소수의견을 낸 새뮤얼 얼리토, 클래런스 토머스 대법관은 다수 의견을 낸 이들의 추론은 “터무니 없다”고 주장했다. 앨리토 대법관은 다수 의견이 해당 조항을 엄격히 해석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그는 “‘성’과 ‘성적 지향’, 그리고 ‘성 정체성’은 다른 개념”이라고 주장했다.

 

이번 판결을 낳은 사건은 성소수자라는 이유로 해고됐다고 주장한 에이미 오스트랠리아 스티븐스 등에 의해 제기됐다. 그는 직장에서 6년 동안 남성으로 일하다가, 성전환을 한 뒤 여성으로 작업장에 복귀하겠다는 편지를 보낸 뒤 해고됐다. 그는 여성 복장을 하고는 일하겠다고 주장하다가 해고됐다.

앞서, 뉴욕의 스카이다이빙 강사인 고 도널드 자다도 동성애자라는 이유로 해고됐다고 제소했다. 그는 여성 고객에게 ‘내가 100% 게이이기 때문에 나와의 육체적 접촉을 우려할 필요가 없다’고 농담했다가 해고됐다. 회사 쪽은 그가 고객과 개인정보를 공유했다는 이유로 해고했다고 주장했으나, 그는 성소수자 차별이라고 반박했다.

조지아의 사회복지사인 제럴드 보스톡도 게이 소프트볼 경기에 참가해 자신의 성정체성을 밝힌 뒤 해고돼 제소했다.

 

 

정의길 선임기자 Egi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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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hani.co.kr/arti/international/america/949529.html?_fr=mt2#csidx7c2bec4ca9e7ebbbc29299e8ce982d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