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첩, 용공(조작) 사건

간첩 조작해 특진한 '그사람들'...특진취소 손놓은 정부

道雨 2020. 7. 20. 09:58

간첩 조작해 특진한 '그사람들'...특진취소 손놓은 정부

 

[조작간첩 리포트-책임]②조작간첩 특진 수사관 5명 공개
이근안 송성부 김제홍 김현창 김상기
반성 없는 가해자들.."한 번도 제대로 책임 안 물었다"
전문가들 "잘못된 공적 특진자 특진·서훈 취소해야"
국회서도 "관련법 개정해 특진 취소 명문화" 움직임

 

대공분실 5층에는 다른 층에 비해 훨씬 좁은 창문이 있다. 이 창문들은 ‘고문실’이라는 용도를 은폐하고 투신자살을 방지하고 밖을 내다볼 수 없도록 해 공포감을 주도록 돼 있다. 철조망 안 건물 안에서는 민주화 인사들의 비명이 끊이지 않았다.(사진=황진환 기자)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에서 재심을 권고한 간첩 사건 피고인 중 2000년 1월부터 2019년 6월까지 법원 재심을 통해 무죄를 받은 사람은 총 301명에 이른다. 이들은 모두 "범죄 증명이 없었다"는 사실이 수십년 만에 드러나 무죄를 받았다.

반면 이들을 수사하고 간첩으로 조작한 경찰 수사관들은 국가로부터 훈장과 특별승진을 받으며 승승장구했다. 국가폭력 피해자 지원단체인 '지금여기에'에 따르면 이들 사건과 관련해 훈·포장을 받은 것으로 보이는 수사관은 170명 이상으로 확인됐다.

이들 중 상당수가 표창과 함께 특진 혜택을 받았을 것으로 추정된다. 재심에서 수사관들의 불법구금이나 고문이 명백히 확인된 만큼 이들이 받은 혜택들을 취소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CBS노컷뉴스와 평화박물관은 공무원으로서 가장 민감하고 중요한 혜택인 특진에 주목했다. 더불어민주당 오영훈 의원실을 통해 확보한 경찰 내부의 역대 특진 통계 자료를 전수 분석하고, 진실화해위 등 국가기관의 과거사 조사 과정에서 나온 수사관들의 진술 자료 등을 입수해 이와 대조하는 작업을 진행했다. 이를 통해 재심 사건에서 무죄가 확정된 '조작 간첩' 사건으로 특진한 경찰 수사관 5명의 명단을 특정해 공개한다.

(사진=자료사진)

 

①이근안, 1984년 이장형 간첩사건(2008년 무죄)

 

이근안(82)은 '이장형 간첩 검거' 공적으로 1984년 1월 30일 경감으로 특진했다.

고(故) 이장형씨는 1984년 간첩 혐의로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15년을 복역하다가 1998년 가석방됐다. 2008년 무죄를 받았다. 이씨는 1972년 일본 도쿄에서 조총련 간부로 활동하던 숙부 이수근씨를 만난 뒤, 포섭돼 함께 간첩행위를 하며 그를 도운 혐의를 받았다.

이씨는 '고문 기술자'로 악명 높은 이근안으로부터 온갖 고문에 시달렸다. 그는 남영동 치안본부 대공분실에 57일간 불법 구금됐고, 온갖 고문·협박 속에서 허위 진술을 했다.

이근안은 1970년 입직 후 '간첩검거' 특진만 4차례나 했다. '대공 분야에서 이근안이 없으면 수사가 안된다'는 말이 나돌 정도였다. 1979년 남영동 대공분실 근무 시절엔 청룡봉사상을 받아 특진(경사→경위)했다.

1988년 고 김근태 전 의원을 고문한 혐의로 공개수배된 뒤 도망자 생활을 하다 12년 만인 1999년 자수했다. 이후 징역 7년을 복역한 그는 현재 서울 동대문구 모처에서 살고 있다.

 

②송성부, 1980년 신귀영 일가 간첩사건(2009년 무죄)

 

신귀영씨는 형, 사촌동생 등 일가족 4명과 함께 1980년 간첩 혐의로 징역형을 받고 15년간 옥살이를 했다. 일본 동포에게 돈을 받고 국가 기밀을 넘긴 죄로 경찰에 끌려가 2개월간 모진 고문을 당했다.

신씨의 변호를 맡아 2009년 무죄 판결을 이끌어낸 인물이 바로 문재인 대통령이다. 당시 재심 재판부는 불법 구금과 고문, 협박 사실을 인정했다.

그런 신씨를 30년간 간첩으로 살게 한 자는 송성부(83)다. 그는 부산시경 대공분실에 근무하던 1980년 당시 외근반장(공작주임) 이덕만 경위 지시로 '신귀영 사건'을 맡았다.

송성부는 이 사건으로 1980년 11월17일 경장에서 경사로 특진했다. 진화위 조사에서는 "양심을 걸고 신씨 일가가 간첩을 했던 것을 확신한다. 정권 교체마다 무조건 떼쓰면서 자기 주장들을 관철하려는 속셈에 동의할 수 없다"며 반성 없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그는 영화 '변호인'으로 유명한 부림사건(1981년) 고문 가담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그는 1983년 청룡봉사상 충상을 받고 경사에서 경위로 특진했다.

 

③김제홍, 1982년 오송회 간첩사건(2008년 무죄)

 

수사관 김제홍(77)은 오송회 간첩사건으로 1983년 3월12일 특진해 경장을 달았다.

오송회 사건은 전북 군산제일고 교사 9명이 이적단체를 조직해 간첩행위를 했다고 조작된 사건이다. 피해자들은 징역 1~7년을 억울하게 복역했다.

교사들은 전북도경 대공분실에서 각종 고문에 시달렸다. 굶기고 잠을 재우지 않는 상황에서 폭행까지 이어지자 허위 자백을 했다.

김제홍은 "자신은 주요 가담자가 아니고, 당시 고문 등을 주도한 공작 주체는 자신의 입사 동기인 수사관 양모씨"라고 고백했다. 취재 결과, 양 수사관도 오송회 사건 공로로 특진한 것으로 파악됐다.

 

④김현창, 1985년 이준호·배병희 사건(2009년 무죄)

 

2009년 무죄가 확정된 이준호·배병희 사건 역시 수사기관의 고문과 협박으로 조작된 것이다.

이준호씨와 어머니 배병희씨는 이씨의 작은아버지 간첩 활동을 도운 혐의로 1986년 3월 유죄가 확정돼 각각 징역 7년과 징역 3년6월을 살았다.

김현창(76)은 이 사건 공로로 1985년 12월 경장에서 경사로 특진했다. 서울시경 옥인동 대공분실 소속의 공안 경찰 김현창은 1989년 3월에는 청룡봉사상 충상을 받고 경위를 달았다.

재심에서 불법구금과 고문이 모두 인정됐지만, 김현창은 진화위 조사에서 당시 수사 과정에서 불법적인 행위가 없다고 연거푸 말한 것으로 파악됐다.

 

⑤김상기, 1975년 김우철·김이철 사건(2010년 무죄)

 

김우철·김이철씨도 간첩조작 피해자다. 16일 동안 불법 감금돼 당시 경찰 수사관으로부터 고문과 폭행, 협박 등을 받았다. 두 사람은 징역 10년과 징역 3년6월을 받고 만기 복역했다가 고문 후유증응로 결국 사망했다. 이들은 35년 후 2010년에야 무죄를 받았다.

김상기는 1975년 당시 목포서 외사계 반장으로, 이 사건을 최초 기획하고 수사한 인물이다. 그의 동료 김모 수사관은 진화위 조사에서 "김상기가 사건을 주도했고 이후 승진까지 했다"고 증언했다.

이 사건 역시 구타와 가혹행위가 인정됐다. 한 경찰 관계자는 진화위 조사에서 "당시 구타와 가혹행위는 상식선에서 했다. 어쩔 수 없었다"고 했다.

 

(사진=황진환 기자/자료사진)

 

◇반성 없는 조작 경찰들…왜 잘못 인정 안 할까

 

경찰은 과거의 특진을 단 한 번도 취소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반면 지난 수십년간 재심을 통해 법원에서 특진 공적 자체가 고문 혹은 가혹행위에 의한 것임이 명백히 밝혀진 사건은 100건이 훌쩍 넘는다.

행정안전부가 50명이 넘는 간첩조작 관련자의 서훈을 취소한 적이 있지만, 특진은 건드리지 않았다. 행안부는 국가 보안을 이유로 서훈 취소 명단조차 밝히지 않고 있다.

게다가 현행법상 어떤 경우에 특진을 취소할 수 있다는 규정 자체가 없다. 그동안 최소한의 취소 근거조차 마련하지 않고 방치해온 것이다.

인사혁신처 관계자는 "합당한 사유가 있다면 특진을 취소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경찰청 관계자도 "주요 공적이 잘못됐다는 근거가 있다면 취소할 수도 있다"고 했다. 제도적으로 불가능한 일이 아니었는데도 문제 해결에 손을 놓고있었던 셈이다.

간첩조작 경찰 대다수가 법원 판결로 잘못히 명백히 드러났는데도 이를 반성하지 않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평화박물관 변상철 연구위원은 "이근안은 지난 5월 보수 성향 유튜버와의 인터뷰에서 결백을 주장했다"며 "그동안 누구도 책임을 물은 적이 없으니 당당히 억울함을 호소하는 것"이라고 짚었다.

국회에서는 행정부 스스로 특진을 취소하는 것 외에, 관련 규정을 법에 명시하는 작업도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민주당 오영훈 의원은 "경찰 공무원법 등 관련법을 개정할 필요가 있다"며 "특진 취소가 가능한 경우를 법에 명시하고, 자세한 사항은 시행령에 위임하면 된다"고 밝혔다.

 

[CBS노컷뉴스 김태헌 기자] siam@cb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