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신문 ‘호반 비판 기사’ 일괄 삭제, 한국 언론사의 수치다
<서울신문>이 최근 대주주 ‘호반그룹 대해부’ 기사 50여건을 일괄 삭제했다. 지난 2019년 7월 호반건설이 포스코로부터 서울신문사 지분을 사들이며 인수를 본격 추진하던 7월15일부터 11월25일까지 4개월간 보도한 호반건설 비판 기사들이다.
황수정 서울신문 편집국장은 지난 16일 편집국 회의에서 “호반 측이 삭제를 요구해왔던 호반건설 그룹 대해부 기사를 내리기로 결정했다”고 통보하고, 이를 “상생을 위한 판단”이라 말한 것으로 전해진다.
곽태헌 서울신문 사장은 “호반이 최대주주가 됐는데 삭제할 때도 됐다고 봤다”고 말했다고 19일 <기자협회보>가 보도했다.
서울신문 내부에서 기자들의 비판 성명이 이어지자, 호반건설 대주주인 김상열 서울신문 회장은 19일 신문사 게시판에 직접 글을 올려 “반론 기회조차 없이 지속된 기사들로 호반그룹은 큰 상처를 입었다”며 “기사의 진실성이 밝혀진다면 회장 직권으로 다시 게재하겠다”고 했다.
한마디로 저널리즘의 원칙을 송두리째 부정하는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호반그룹이 서울신문을 인수할 당시 가장 우려했던 편집권 침해가 최악의 모습으로 현실화한 것이다.
김 회장의 말처럼 반론이 없었다면 늦었지만 반론을 충분히 붙일 수 있고, 사실관계가 잘못됐다면 호반건설이 정식으로 서울신문에 정정보도를 요구할 수 있고,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언론중재위나 법원에 제소를 할 수도 있다. 그런데 밑도 끝도 없이 기사를 삭제하는 건 상식 밖의 일이다.
일단 삭제한 뒤 ‘기사가 사실이라면 다시 게재한다’는 것 또한 듣도 보도 못한 방식이다. 일괄 삭제를 해야 할 만큼 문제가 많은 기사였다면, 서울신문은 먼저 독자들에게 사과부터 해야 했다.
한국기자협회, 전국언론노조, 방송기자연합회는 24일 기자회견을 열고, 삭제된 기사들의 복구와 편집권 독립을 촉구했다. 이들 단체는 “신문사를 인수한 대주주와의 상생이라는 어처구니없는 명분으로 기사가 무더기 삭제된 일은, 군홧발이 편집국을 짓밟던 군사독재 시절에도 없던 일”이라며 “현대판 분서갱유”라고 비판했다.
이번 사태는 한국 언론사의 수치로 기록될 것이다.
서울신문은 1904년 <대한매일신보>에서 출발한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신문사다. 부침을 겪었으나, 최근엔 외부 입김에 흔들리지 않고 객관적인 보도에 애쓰는 모습을 보여왔다.
호반그룹은 서울신문의 편집권을 유린하는 반언론적 행태를 당장 중단해야 할 것이다.
[ 2022. 1. 25 한겨레 사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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