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0년 된 간송가 국보 불감, 외국 가상화폐 계모임에 팔렸다
NFT 상품화 지분만 확보하고 실물은 간송가에 기탁
일제강점기 국외 유출 위기에 놓였던 이 땅의 최고 문화유산들을 사모으며 지켜낸 대수장가 간송 전형필(1906~1962). 그의 국보 명품이 최근 ‘다오’(DAO)라는 약칭으로 불리는 국외 디지털 가상화폐 투자자들의 계모임에 팔린 것으로 밝혀졌다.
해당 국보는 간송의 불교미술 컬렉션을 대표하는 11~12세기 고려시대의 금동불감과 석가삼존상이다. 지난 1월 고인의 친손자인 전인건 간송미술관장이 케이옥션 정기 경매에 내놓았다가 응찰자가 나타나지 않아 유찰됐는데, 국립박물관이 인수할 가능성이 크다는 문화재학계의 예상을 깨고, 외국 디지털 투자자들에게 매각된 것이다.
국보·보물의 현황을 관리하는 문화재청의 한 관계자는, 지난달 23일 ‘헤리티지DAO’란 가상화폐 투자자모임이 간송가의 국보 불감에 대한 소유자 변경 신고서를 제출했으며, 매각 사실을 바로 확인해 국보 불감의 소유자 명의를 바꿨다고 16일 밝혔다.
‘DAO’는 ‘Decentralized Autonomous Organization’의 약자로, 직역하면 ‘중심이 없는 자율적인 기관 혹은 조직’이란 뜻이다. 최근 전세계적으로 유행하는 엔에프티(NFT·대체불가능토큰을 뜻하는 디지털물품인증서)를 활용하는 가상화폐 투자자들의 계조직 같은 모임을 일컫는 용어로 흔히 쓰인다. ‘다오’란 명칭으로 대표되는 디지털 투자자 모임이 국보를 매입한 건 국내 첫 사례다.
지난 1월 작품을 경매에 올렸던 케이옥션 쪽은, 지난달부터 간송가를 대리해 헤리티지DAO 쪽과 작품 인수 협상을 벌여온 것으로 전해졌다. 매각 액수가 얼마였는지는 공표되지 않았으나, 지난 1월 경매 당시 책정된 금동삼존불감의 시작가가 28억원이었던 점을 감안하면, 시작가를 기준으로 액수가 조율됐을 것으로 보인다.
헤리티지DAO 쪽이 작품을 구입한 뒤 실물을 인수하지 않은 점도 주목된다. 매입 직후 소유자 변경 신고서와 함께 간송가가 운영하는 간송미술문화재단에 사들인 국보를 기탁한다는 ‘관리자 선임 신고서’를 함께 낸 것으로 확인됐다. 간송가 쪽에 계속 국보 불감의 관리를 맡기겠다는 의향으로 풀이된다.
헤리티지DAO는 이와 관련해 최근 미국 경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국보 불감을 활용한 엔에프티 상품 사업의 지분 확보를 조건으로, 간송 쪽에 불감을 다시 기증하겠다는 의향을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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