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사, 독립군 5인 흉상 철거 논란..."대한민국 정부 맞나"
홍범도·지청천·이회영·이범석·김좌진 흉상 이전 추진에 반발..."누구 지시냐, 관련자 문책해야"
▲ 2018년 6월 8일 오후 서울 노원구 육군사관학교에 설치된 신흥무관학교 설립자 이회영 선생과 항일 독립운동에 일생을 바친 홍범도·김좌진·지청천·이범석 장군 등의 흉상에 신흥무관학교 107주년을 맞아 꽃목걸이가 걸려 있다.
"친일군인 동상은 버젓이 세우고, 독립전쟁 영웅 흉상은 철거하고. 도대체 대한민국이 맞는가. 독립운동가들이 목숨을 바쳐가면서 되찾으려고 했던 주권국가 대한민국의 모습이 과연 이런 것일까. 후손으로서 심한 자괴감이 들었다."
1940년 대한민국 임시정부 군대로 창설된 광복군 총사령관 지청천 장군의 외손자인 이준식 신흥무관학교기념사업회 공동대표가 25일, 육군사관학교의 홍범도·지청천·이회영·이범석·김좌진 등 독립전쟁 영웅 5인 흉상 철거·이전 추진을 비판하면서 한 말이다.
홍범도·지청천·이범석·김좌진 장군과 독립군 양성기관인 신흥무관학교를 세운 이회영 선생의 흉상은 지난 2018년 "3·1운동 및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 99주년을 맞이해 후배 장병들이 사용했던 탄피를 녹여 흉상을 세우다"는 문구와 함께 육사 충무관 중앙현관 앞에 설치됐다. 당시 육사는 "총과 실탄을 제대로 지급받지 못했음에도 봉오동·청산리 대첩 등 만주벌판에서 일본군을 대파하며 조국독립의 불씨를 타오르게 한 선배 전우들의 정신을 기리기 위해 흉상을 설치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여천홍범도장군기념사업회·우당이회영기념사업회·신흥무관학교기념사업회·백야김좌진장군기념사업회 등이 파악한 바에 따르면, 육사는 이들 흉상을 현 위치에서 철거해 독립기념관으로 이전하고자 했다. 육사의 요청을 받은 독립기념관이 전시는 어렵지만 수장고에 보관할 수 있다는 조건으로 이를 수락했던 것으로 기념사업회 측에서 확인했다.
이들은 "육사에서는 관련된 기념사업회서 기자회견을 한다는 얘길 듣고 급히 결정해서 일단 (흉상들을) 오늘 철거하려고 했던 계획은 유보했다"며 "하지만 아직도 육사에서 (흉상을) 철거해야 한다는 주장들이 있어서, 오늘 기자회견을 통해 반대 의사를 표현하고자 한다"고 밝혔다. 특히 "(흉상 철거 시도는) 국군의 역사적 정통성을 부정하고 헌법정신을 훼손하는 반헌법적 처사"라며, 이를 지시한 관련자와 이유를 밝히고 문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문재인 정부 지우기 하려다가 국군의 정통성 뿌리째 뒤흔든다"
이에 대해 김좌진 장군의 손녀 김을동 전 의원은 "대한군정서(북로군정서)는 임시정부 국무원령 205호에 의거해 설립돼 청산리대첩을 이끌었다. 임시정부 휘하의 군대인 북로군정서와 김좌진 장군은 대한민국 국군의 효시가 돼야 한다고 생각한다"면서, 육사의 흉상 철거 시도를 용납할 수 없다고 밝혔다.
그는 "북로군정서 등이 대한민국 국군의 모태가 돼야 하는 건 당연한 일이다. 이를 부정하고 국군의 모태를 철거하는 건, 항일 무장투쟁의 위대한 역사인 청산리대첩과 봉오동대첩까지도 부정하는 행위"라면서 "이것을 부정하려면 헌법부터 바꾸고 임시정부부터 부정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준식 공동대표는 "하도 기가 막혀서 지난 밤에 사실 잠을 못 이뤘다"며 "(흉상 철거 시도는) '지금 정부가 대한민국 정부 맞나, 항간에서 말하는 것처럼 일본 정부의 총독부인가'라는 의구심을 다시 증폭시킬 것"이라고 경고했다. 또 "독립전쟁 영웅 5분의 흉상 철거·이전 시도는 당장 중단돼야 한다"라며 "관계자들은 국민 앞에 사죄하라"고 요구했다.
독립운동가 김한의 외손자이자 홍범도장군기념사업회 이사장을 맡고 있는 우원식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이런 분들을 기념하는 것이야말로 민족적 자존심을 키우는 일인데, 왜 치우려고 하는지 납득이 안 된다. 절대로 동의할 수 없다"며 "저희가 들은대로 이 흉상을 철거하려는 시도가 사실이라면, 국민적 지탄에 직면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들은 이후 성명서를 통해 "(흉상 철거 시도는) 국군의 기원인 독립전쟁의 역사를 뒤집으려는 매우 심각하고 엄중한 문제"라고 규정했다.
또한 "멀쩡하게 세워진 독립전쟁 영웅들의 흉상을 육사 교정에서 철거하고 기념관으로 옮기라는 지시는 누구의 지시냐. 육사 교장이냐, 국방부 장관이냐, 국가보훈부 장관이냐. 아니면 더 윗선의 지시가 있었냐"면서 "이 내용이 사실이라면 철거를 지시한 이유를 국민께 명명백백하게 밝히고 관련자는 책임져야 할 것"이라고 촉구했다.
이들은 무엇보다 독립전쟁 영웅 5인 흉상 철거 시도가 '문재인 정부 지우기'의 일환이냐고도 물었다. 참고로, 신원식 국민의힘 의원은 지난해 10월 6.25 전쟁사나 북한학 등이 육사 교과과정의 필수과목에서 선택과목으로 변경하는 지시를 내릴 수 있는 건 문재인 전 대통령이라며, 홍범도 장군 흉상 설치를 문제 삼은 바 있다. 당시 그는 "공산주의자 간첩 신영복을 존경하고, 6·25 남침 주역인 김원봉을 국군의 뿌리라 하고, 홍범도 흉상을 육사에 걸라고 하는 등 문 전 대통령이 국군을 어떻게 만들고자 했는지 다 드러났다"라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이들은 "독립전쟁의 영웅 흉상을 철거하고 독립전쟁의 역사를 지우려는 윤석열 정부의 시도를 당장 멈추시라"며 "'문재인 정부 지우기'를 하려다가 우리 '국군의 정통성'을 뿌리 채 뒤흔드는 교각살우의 우를 범하지 마시길 바란다"고 말했다. 또 "윤석열 정부는 반헌법적 발상으로 독립전쟁의 역사를 훼손하려는 만행의 진상을 밝히고, 국민께 사과하시라"고 촉구했다.
국가보훈부를 향해서도 "보훈부 승격 이후 행보가 우려스럽다"며 "본연의 역할보다 가짜 유공자 서훈 박탈 논란, 백선엽 장군의 친일행적 삭제, 홍범도 장군의 서훈을 문제 삼더니 이제는 독립전쟁의 역사까지 부정한다는 의심이 든다"고 비판했다.
▲ 여천홍범도장군기념사업회·우당이회영기념사업회·신흥무관학교기념사업회·백야김좌진장군기념사업회가 25일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육군사관학교의 홍범도·지청천·이회영·이범석·김좌진 등 독립전쟁 영웅 5인 흉상 철거·이전 추진을 비판했다
육사 "자유민주주의 수호 및 한미동맹 가치 체감할 환경 조성할 것"
한편, 육사는 이날(25일) 입장문을 통해 "군의 역사와 전통을 기념하는 교내 다수의 기념물에 대해 재정비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면서, 흉상 철거·이전 방침을 인정했다. 다만, 학교 자체 계획임을 강조하면서 국방부나 보훈처 등의 지시에 따른 조치가 아님을 강조했다.
육사는 이에 대해 "2018년 생도들이 학습하는 건물 중앙현관 앞에 설치된 독립군·광복군 영웅 흉상은 위치의 적절성, 국난극복의 역사가 특정 시기에 국한되는 문제 등에 대한 논란이 이어져 왔다"며 "육사는 독립군·광복군 영웅 흉상을 다수 국민들이 공감할 수 있는 곳으로 이전하기 위해 최적의 장소를 검토 중에 있다"고 밝혔다.
또 "육사 교내에는 학교의 정체성과 설립 취지를 구현하고, 자유민주주의 수호 및 한미동맹의 가치와 의의를 체감할 수 있는 최적의 환경을 조성하는 데 중점을 두고 기념물 재정비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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