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림에 대한 단상
1. 제주도 여행 갔을 때의 일이다.
저녁 시간 어느 정도 여유가 있어, 숙소에서 나와 시장을 눈요기하며 지나고, 식당에서 식사 한 후 관덕정 주변을 산책하였다. 갔던 길을 거의 그대로 되돌아 숙소 근처까지 왔는데, 아뿔싸 집사람이 겉 옷(가벼운 봄 코트)을 잃어버렸다고 한다.
혹 식사하면서 벗어놓고 왔는가 싶어, 저녁 식사를 한 식당에 가서 찾아보았는데 없었다. 어두워서 찾을 수 있을까 걱정하면서 다시 관덕정까지 가니, 관덕정 축대 근처에 옷이 있었다.
집사람 말은 걷다보니 몸이 더워져 겉옷을 벗어 가방 위로 걸치고 다니다가, 바람에 날려 떨어뜨렸는 듯 싶다고 하는데, 다시 찾아 다행이다.
2. 예전 동해남부선의 해운대역(지금은 폐역이 되었다)에는 멀구슬나무가 있는데, 매년 봄이 되면 멋진 보랏빛 꽃을 피운다.
어느 해 봄의 일이다. 어떤 분으로 부터 해운대역의 큰 나무에 보랏빛 꽃이 피었다는 얘기를 듣고는, 일을 마치고 난 저녁 시간에 집사람과 함께 간단한 복장으로 멀구슬나무꽃을 보러 갔다. 과연 보랏빛으로 만개한 멀구슬나무의 꽃은 해운대역 일대에서는 장관이라고 할 만하였다. 뒤로 멀찌감치 철길 위까지 물러나 사진을 찍는 등 잠시 구경을 하다가 돌아왔다.
그런데 집에 와서는 집사람 신용카드가 없어졌다고 한다. 마트에 갈 때 지갑 없이 신용카드만 달랑 들고 가곤 하던 집사람이기에, 그 날도 아마 사진을 찍을 휴대폰과 신용카드만 상의 주머니에 넣었던 듯하다고 하는데, 집과 한의원(근무처)에서는 아무리 찾아도 없었다.
다음날은 휴일이었다. 혹시 어제 멀구슬나무 사진찍으러 갔던 곳에 떨어뜨렸을 지 모른다고 생각해, 아침 먹고나서는 해운대역으로 다시 가보기로 하였다. 전날 갔던 코스 그대로 가면서, 혹시 길거리에 떨어뜨렸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계속 눈을 보도로 향하고 찾으면서 갔는데 보이지 않았다.
멀구슬나무 근처에 가서 찾는데, 약간 뒤쪽인 철길 근처에 신용카드가 떨어져 있는 것이 보였다. 하룻밤이 지났는데도 불구하고 그 자리에 그대로 떨어져 있어 안도의 숨을 쉬었다.
사실 분실 신고하고 새로 발급받으면 되지만, 그 번거로움과 불안감을 없앨 수 있었으니 이야말로 행운(?)이다.
3. 나의 장모님 사시는 곳(처가, 고창군 심원면)을 가려면 고속도로를 여러 시간 가기에, 중간에 휴게소에 들러 휴식 겸 간식(또는 식사) 시간을 갖는다.
어느 해 산청휴게소(대전 방향)에 들러 휴식을 취한 후, 다시 출발하려는데 집사람 휴대폰이 보이지 않는단다. 내 전화로 집사람휴대폰에 전화를 걸어도 받지를 않는다.
휴게소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찾아도 보이질 않는다. 휴게소 안내소에 들러 분실 휴대폰 습득 신고 들어왔는지 물어봤으나 없다고 하기에 연락처를 건네고 더 찾아보았으나 찾을 수 없었다.
혹시 차에 놔두고 왔는가 싶어, 주차해둔 차로 찾아와 여기저기 찾아보았는데도 찾을 수 없었다.
즉석에서 통신사 서비스로 친구찾기 등 가입하고 위치 추적을 해도 찾지를 못했다.
약 1시간 정도 휴게소 내에서 찾다가 포기하고, 통신사에 사용중지 요청해놓고, 일단 출발하기로 작정하고, 주차된 곳으로 다시 와 차를 타려는데 갑자기 집사람 환호성이다.
"여기 있네!"
"엉? 찾았어?"
집사람 휴대폰이 내 차 조수석 쪽 지붕 위에 있었다.
"우리가 떨어뜨린 걸 보고 누가 여기다가 올려놨나?"
"아까 차에서 내릴 때, 내가 휴대폰을 잠깐 차 지붕 위에 올려놓고는 그만 잊어버리고 간 것 같아"
이런 해프닝 끝에, 통신사에는 휴대폰을 찾았으니 사용중지 해제 요청하고, 가던 길을 계속 갈 수 있었다.
자칫 차 지붕 위 휴대폰을 보지 못하고 그냥 출발 했으면, 아마 산청휴게소내 어딘가 떨어져 있었을테지.
그 휴대폰을 집사람은 지금까지 쓰고 있다.
이래저래 인연이 깊은 휴대폰이다.
4. 부산에서는 지역화폐로 동백전(카드 형태로 충전해 씀)을 쓴다. 집사람은 동네 농축산마트에서 일 볼 때 동백전 카드를 쓴다.
어느날 어둑어둑한 저녁 시간, 집사람은 근처의 농축산마트에서 장을 봐서 한의원까지 가져왔는데, 동백전카드가 없어졌다고 한다. 마트에서 사용한 지 시간도 얼마 되지 않은 지라, 마트에 가서 물어보라고 하고, 덧붙여 오는 길에 떨어뜨렸을지도 모르니 길도 유심히 보라고 했다.
그러나 마트에 다시 다녀온 집사람은 마트에서도 길에서도 동백전카드를 찾지 못했다.
나는 관심을 가지고 창문으로 내다보고 있었는데, 한의원 앞 횡단보도에 종이 쪼가리같은 것이 희미하게 보이길래, 집사람에게 저게 뭔지 가보라고 했다.
바로 내려간 집사람은 잃어버렸던 동백전 카드를 들고 올라왔다. 사람이 많이 건너다니고, 버스 등 차들도 많이 다니는 곳인데, 다행이 누가 주워가지도 않았고, 차에 훼손되지도 않았다.
역시나 분실 신고 및 재발급의 번거로움 없이 해결되었다.
이것도 행운이라면 행운이다.
5. 어느 해 추석 전에 토요일 대전에서 친구 아들의 결혼식에 참석할 일이 있었는데, 겸사겸사로 조상분들의 산소에도 다녀오기로 마음먹었다. 2박의 숙소까지 미리 예약해둔 터였다. 우리는 금요일 저녁 일을 마치고 대전으로 출발했다.
토요일 오전에 시간에 여유가 있어 한밭수목원에 구경을 갔다. 집사람과 나는 야생화와 나무 등에 관심이 있는 터라 비교적 장시간 동안 천천히 둘러보았다.
결혼식에 참석하여 여러 친구들과 담소를 나누고 헤어졌는데, 시간적 여유가있어서 전에부터 생각해두었던 청남대를 둘러보고, 저녁 가까이 산소에 들러 성묘를 하였다. 벌초는 지역 면사무소에 의뢰했는데, 추석이 아직 남아서인지 벌초는 되어있지 않았다.
대전 숙소에 갔는데, 집사람이 선글라스를 잃어버렸다고 한다. 아마 한밭수목원에서 놓아두고 온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고 한다.
다음날인 일요일, 다시 한밭수목원으로 갔다. 우리가 지나갔던 코스를 그대로 지나면서 주로 우리가 앉아 쉬었던 곳 몇 군데를 위주로 둘러보았는데 찾을 수 없었다.
수목원 관리소에 들러 어제 유실물 습득 신고 중 선글라스가 없었냐고 물으니, 지금까지는 없었다고 하며, 그런 소소한 것(?)까지 찾으려 하는 우리가 오히려 이상하게 여겨진다는 듯하다는 표정과 말투였다.
결국 집사람이 10여 년 간 써왔던 선글라스는 찾지 못하고 돌아왔다. 얼마 간의 시일이 지난 후 집사람은 동네 안경점에서 새로 선글라스를 맞추었다.
그런데 어느 날 내가 차 안을 정리하던 중, 조수석 의자 밑(뒤쪽 깊숙한 곳)에서, 예전에 대전 한밭수목원에서 잃어버렸다고 생각했던 선글라스를 발견했다. 잃어버린지 약 1년 가까이 되는 즈음이었다. 그 때의 반가움이란 정말 오랫만에 친구를 만난 기분이었다고 할까?
집사람은 새로 산 선글라스는 나에게 보관시키고, 다시 만난 옛 친구(선글라스)를 다시금 사용하고 있다.
구관이 명관인가, 아니면 새 것보다는 예전의 것에 익숙해졌던 것인지도 모를 일이다.
6. 얼마 전 집사람이 열쇠뭉치를 잃어버렸다. 그 열쇠 뭉치에는 집열쇠, 한의원 열쇠, 자동차 열쇠, 건물 현관 열쇠 등 여러 개가 한 고리에 묶여 있는 것이다. 똑같은 열쇠들을 나도 갖고 있기에 큰 걱정은 하지 않았지만, 그래도 불편함은 있었기에, 집 열쇠와 건물 현관 열쇠는 내 열쇠를 복사하여 새로 만들었다. 나머지는 예비가 있어서 추가로 만들지 않았다.
그런데 1주일 쯤 지난 후 한의원의 비품들(침대 카바, 방석 등) 사이에서 잃어버린 열쇠 뭉치를 발견했다. 집사람이 그 비품들을 세탁 후 갖고 내려오면서 열쇠를 그 사이에 넣고는 미처 생각해내지 못한 것이었다.
아뭏든 이렇게 해서 잃어버린 열쇠 뭉치를 다시 찾았고, 복사한 열쇠들은 예비군이 되었다.
지금까지 한 번(휴대폰은 여러 번) 잃어버렸다가 운이 좋아 다시 찾은 것들에 대한 얘기였다.
물론 잃어버리고 찾지 못한 것들도 있다. 우산, 양산, 모자, ···
내가 사용하고 아끼는 물건을 잃어버린다는 것은 아쉬운 일이다. 이제껏 길들였던 것을 잃고 다시 익숙해져야 하고, 또 경제적으로도 손해가 되는 일이다. 그러나 이것들은 비교적 감당하기 쉬운 일이다.
잃어버림에 감당하기 어려운 것은 마음이고 정신이다.
요즈음 내 꿈 속에서는, 집이 어디인지 생각나지 않기도 하고, 차가 어디에 있는 지 찾지 못하는 경우, 수업 들어가야 할 교실이 어딘지, 수업 과목(시간표)이 뭔지 모르겠는 경우가 자주 있다.
나 뿐만 아니라 집사람도 이와 비슷한 종류의 꿈을 자주 꾼다고 한다.
부모님들이나 기타 주변의 고령자들의 치매가 많이 신경쓰이는 나이때이다.
무엇보다 마음을, 정신을 잃어버리지 않는 것이 중요하고, 때로는 다시 찾으려는 노력으로, 또 때로는 행운의 도움으로 돌아오기도 한다. 또 그렇게 되도록 소망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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