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래의 시는 제가 가장 좋아하는 한의학적인 시입니다.
카다바(Cadaver)의 辯
서 석 철
그대 오게나.
내 이제 地上에서 가장 겸허한 자세로
그대를 기다리네.
Anatomical Position으로 누워서.
그대들 男男女女, 三三五五.
하얀 까운에 마스크.
차가운 고무장갑에
반짝이는 금속성 메스를 품고
生死의 關門을 지나 총총히 다가오네.
얼마나 기다렸던가. 이날을.
이 만남을 위해 난 거의 평생을 달려왔네.
가까이 오게. 두려워 말고.
····················
자, 이제 분해하게나.
나도 몰랐던 몸 곳곳에
많은 이름도 붙여주고,
생전에 보지도 못한 뼈랑, 살이랑,
심장도 잘 끄집어 보여주게나.
살아서 열심히 뛰어주던 심장,
이제는 내 것도 아닌.
난 이제 찔려도 피 한방울 나지 않고,
뼈, 살이 나뉘고,
肝·心·脾·肺·腎을 들어내도 아프지 않아.
生者 때나 느꼈던 아픔과 분노
사랑, 미움, 번뇌 ···
욕망 따위는 없어.
우리 카다바는 뭐든 조용히 받아들이지.
우리들의 첫 만남.
그대들은 이 만남을 한잔 술로 기념하네.
生者들은 카다바와 첫 만남을 잊지 못하지.
날 안주삼아 오늘밤은 醉해보게.
··· 그렇다고 너무 씹지마.
나도 살았을 땐 한가닥 했었다구.
한잔 술이 있어
산다는 건 좋은 건가.
爾時
난 防腐液에 취해
낮일을 더듬어 보네.
우린 기억 더듬는 게 전부야.
요골척측피신경에 와닿는
人間의 生氣.
참으로 生氣發者靑春이더군.
이름 외느라 정신없는 娘子의 고운 음성.
떠꺼머리 총각놈들의 엉성한 칼솜씨.
아, 장장근이 끊어졌네.
·····················
이 모두가 엄청난 生氣투성이.
生氣와 接하면 사무치게 生時가 그리워지기도 하지.
하지만 난 카다바가 된 걸 후회한 적은 없어.
사는 것이 좋다면 죽음 또한 나쁘진 않아.
아마도 난 카다바가 되기 위해 살았던 것 같아.
카다바가 된다는 것은 幸運이야.
그대와 나
우린 본래 둘이 아니었어.
太初, 太虛 ···
오직 氣만 쌩쌩 縱橫無盡.
爾時 우린 카다바와 실습생이 아니지.
하나였다고.
億年 흐르는 세월 속에
잠시 시간差로 死生이 나뉘네.
나는 카다바, 넌 후보로.
그래 우린 진정 하나이기에
어지러운 난도질이 끝나면
잘 태워서 나를 가루로 흩뿌려주게.
난 無形의 氣가 되려네.
五運六氣에 실려
天地의 陰陽과 짝하며,
四時의 次序에 따라
無窮한 生死를 流轉하려네.
한번은 陰이 되고,
한번은 陽이 되고,
六途四生, 往來하며,
因緣따라 노닐레라.
그대.
靑春의 벗이여.
후보여.
영원한 길동무여.
잘 들여다 보게나.
··· 껄껄껄.
一 淚 精 氣 何 處 來 한 점 정기는 어디에서 왔으며
四 肢 百 節 何 處 去 사지백절 내 몸은 어디로 가는가
一 爲 人 身 走 紅 塵 사람으로 태어나 홍진 속에 살고
呼 吸 暫 時 稱 人 生 잠시 숨 쉬며 사는 것이 인생이라
魂 飛 魄 絶 頃 刻 中 혼비백절 목숨이 다할 무렵에야
方 悟 勞 生 一 夢 間 고달픈 인생 꿈인 줄 깨닫누나.
剖 室 靜 夜 臥 無 言 해부실 고요한 밤에 말없이 누우니
寂 寂 寥 寥 本 自 然 적막하고 고요함이 자연의 모습이라
何 事 太 極 生 萬 儀 어찌하여 태극은 만물을 생하고
生 滅 無 盡 歷 萬 劫 생멸이 억겁을 돌아 끝이 없는가
* 위 시는 동의대학교 한의과대학 잡지인 ‘仁東龜 제28호(1994. 1. 19)’에 실린 글임.
* 작자 서석철은 서울대학교 토목과를 졸업하고, 토목기사 생활을 하다가 다시 동의대학교 한의대에 입학하여 예과 2학년 해부학 실습 중 위 시를 썼으며, 현재는 부산에서 한의사로서 **한의원 원장으로 재직 중임.
* 잡지 원문에는 작자가 無名氏로 되어 있음.
* 주 : 한시 원문 옆의 해석은 오봉렬이 붙임.
* ‘카다바’는 의대(한의대) 학생들의 해부학 실습을 위한 시신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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