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모음

낙엽의 꿈 (오봉렬)

道雨 2007. 6. 8. 19: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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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낙엽의 꿈

                                                                       -    오   봉   렬   -


나는 낙엽이라오.


지난 세월의 푸르름을 거두고 이제 떠나는 나는 낙엽이라오.

지금은 퇴색되어 볼품이 없지만 그래도 한때는 나도 생명의 물기를 가득 머금고 있었다오.

햇볕의 도움을 받아 광합성을 하면서 사람에게 이로운 산소를 많이 만들어내곤 했었다오.

산성비 내리면 이것을 받아들여 사람에게 해롭지 않게 하려고 애도 많이 썼지요.


친구들이 많을 때 우리는 시원한 바람에 흔들리며 멋진 꿈을 얘기하곤 했었소.

이제 하나 둘 내 곁을 떠난 친구들이 많아졌고, 어느덧 나도 정든 줄기를 떠날 때가 된 것이라오.

그러나 이별이 꼭 슬픈 것 만은 아니오. 이별은 또한 새로운 만남의 시작이 아니겠소?

내가 떨어져 나무의 밑거름이 되어야 이 나무가 계속 살아나가지 않겠소.


자, 이제 떠나기 전에 주위를 한 번 둘러봅시다.

그동안 우리를 위해 애쓴 태양이 아직도 여전히 빛나고 있소.

한결같이 우리를 감싸준 저 산도 빛깔은 다를지라도 여전히 그 자리를 지키고 있구려.

친구들과 더불어 속삭이게 하고 우리를 간지럽혀주던 바람도 약간 쌀쌀해지기는 했지만 또 찾아올 것을 기약해주고 있소.

무엇보다도 나를 길러준 이 나무도 여전히 이 자리를 지키고 있을 것이오.


자, 이제 내일을 기약하며 나는 떠나리다.

따뜻하고 기운오르는 봄이 오면 다시 그대들을 찾으리다.

그때 또 다시 생명을 기르며 멋진 삶을 살 것이외다.

그때는 올해보다는 조금 더 높은 곳에서 그대들을 보게 될지도 모르겠소.

그때도 변함없이 나를 반겨주구려. 그리고 함께 해주구려.

내가 다시 와서 눈을 뜬 날 그대들이 그대로 그 자리에 있어주기를 간절히 바라겠소.

그러면 내가 한 겨울에 꾸었던 꿈에 대해 얘기해 줄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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