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갑사해탈문(道岬寺解脫門) (국보 제50호)
도갑사는 월출산에 있는 절로, 신라말에 도선국사가
지었다고 하며 고려 후기에 크게 번성했다고 전한다.
원래 이곳은 문수사라는 절이 있던 터로 도선국사가
어린 시절을 보냈던 곳인데, 도선이 자라 중국을
다녀온 뒤 이 문수사터에 도갑사를 지었다고 한다.
그 뒤 수미.신미 두 스님이 조선 성종 4년(1473)에
다시 지었고, 한국전쟁 때 대부분의 건물이 불에 타
버린 것을 새로 지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이 절에서 가장 오래된 해탈문은 모든 번뇌를 벗어
버린다는 뜻으로, 앞면 3칸·옆면 2칸 크기이며,
절의 입구에 서 있다.
좌우 1칸에는 절 문을 지키는 금강역사상이 서 있고,
가운데 1칸은 통로로 사용하고 있다.
건물 위쪽에는 도갑사의 정문임을 알리는
"월출산도갑사(月出山道岬寺)"라는 현판이 걸려
있으며, 반대편에는 "해탈문(解脫門)"이라는 현판이
걸려 있다.
도갑사 해탈문은 우리 나라에서 흔하게 볼 수 없는
산문(山門)건축으로, 청평사 회전문(보물 제164호)과
비교되는 중요한 건물이다.
해탈문(解脫門)의 해탈(解脫)은 모든 번뇌(煩惱)를
벗어 버린다는 뜻으로 사찰(寺刹)의 입구(入口)에
세워져 있다.
1960년 해체(解體) 수리시(修理時)에 발견된
상량문上樑文)에 의하면 신미.수미(信眉守眉) 두
스님의 발원(發願)으로 조선(朝鮮) 성종(成宗) 4년
(1473)에 중건(重建)되었다고 한다.
이 문(門)의 건축양식(建築 樣式)은 부석사(浮石寺)
조사당(祖師堂)(국보(國寶 제19호)과 동일(同一)한
계통(系統)이나 특이한 점은 공포(包) 부분이
다포계통(多包系統)의 형태(形態)로 되어 있어
주심포(柱心包)집이면서 다포집 양식(樣式)의
수법(手法)을 혼용(混用)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건물(建物)은 우리 나라에서 그 예가 많지
않은 산문건축(山門建築)으로 매우 중요(重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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