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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촐라체 : 고통의 또 다른 이름

道雨 2009. 1. 16. 11:31

 

촐라체!

 

박범신의 소설 '촐라체'는 히말라야의 고봉 촐라체를 제목으로 삼았다.

두 형제가 겨울에 험난하기로 유명한 촐라체 산봉우리를 오르는 것은, 자신을 고통의 도가니로 끌고 가는 것에 다름 아니었다. 자신의 몸을 고통 속에 던져 놓음으로써 또 다른 괴로움으로부터 벗어나고자 하는 시도였다. 촐라체라는 숫돌에 나를 갈아서 무딘 나를 더욱 단단하고 쓸모있게 만들고자 하는 숙련의 시간이자 고통을 견뎌낸 그 곳에서 새로운 시작을 준비하고자 함이었다.

 

 

 

         카르마 : 업

         모든 것은 유동적이지만 삼라만상과 과거 현재가 다 서로 얽혀 있으므로

         어떻게 생각하고 어떻게 행동하고 어떻게 선택하느냐에 따라 카르마 또한

         변화시킬 수 있다는 말이었다. 고통이야말로 '온갖 부정적인 카르마를

         쓸어내는 빗자루'란 말도 그 원리와 맞닿아 있었다. 그렇다면 나로부터 설산

         속으로 떠난 그들 상민`영교 형제의 카르마도 그럴 것이었다.

 

 

초등학교 때 일이다.

시골에서 초등학교를 다니다가 5학년 때 서울의 변두리로 전학을 갔다. 그런데 서울 애들은 공부를 잘했다. 촌에서 상위권이라고 했는데 도시에서는 중하위 정도였다. 그래서 열심히 공부하는게 어떤건지를 초등학교 졸업할 무렵에 알게 되었다. 그 뒤 다시 지방으로 내려와서 고등학교를 다녔다. 그런데 서울에서 공부하는 방법을 배웠는지 지방에서는 다시 상위권이 되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서울이라는 곳이 나에게는 '촐라체'가 된 것 같다. 초등학교 때 받았던 문화충격 이후에 공부하는 자세를 나름대로 배웠고 지금까지도 좋은 습관으로 남아 있으니.

 

1998년에 IMF가 왔을 때이다.

남편은 빚으로 자영업을 시작한 지 4년차가 된 시점이었고, 또 빚도 어지간히 갚아졌었다. 그런데 IMF는 다 꺼진 줄 알았던 불씨가 다시 살아나 손 대기 어려운 불처럼 되버렸다. 그런 상황은 처음이었기 때문에 남편이 영업능력이 모자라서 그렇게 된 줄 알았다.  그런 상황에서 반성하고 영업 상태를 나아지게 하기 위해서 노력하며 살았던 지난 몇 년```````

그런데 또 다시 IMF처럼 혹독한 경제위기가 닥치고 있다고 한다.

그러자 지나온 날들이 떠오른다. 그동안 어려움을 극복하려고 노력하던 시간들이 숫돌에 칼을 가는 심정으로 현재를 견디었고 또한 미래를 준비한 시간들이었다고 느껴진다.

어려움에 처해서 그 어려움을 견디고 지나온 시간들이 어쩌면 내 인생의 또 다른 '촐라체'였었구나!라는 생각이 든다. 물론 촐라체의 고통의 정도와 비교가 안 되지만 내가 대면한 고통은 나에게는 극한의 어떤 것들을 요구하기도 했다. 남편과의 불화 끝에 이혼하자고도 했었고, 죽고 싶다고 혼자 눈물 흘리던 많은 시간들이 있었다. 죽고 싶어서가 아니라 현실의 고통을 피하고 싶다는 소망에 따른 부정적인 선택이었다. 삶을 끔찍이 사랑하는데 삶이 내게 준 고통은 견디기가 어려웠었다.

IMF를 통해서 다져온 단단함이 있어서 지금은 오히려 견디기가 수월한 것 같다.

 

인생이 크레바스 같다는 느낌이 가끔 든다.

한 발 앞에 나를 또는 우리를 곤두박치게 만들 수렁이 있을 수 있다.

내가 아니더라도 주위의 사람들을 보면 그게 느껴진다.

그저 성실하게 남에게 폐 끼치지 않으면서 오늘을 살아가다보면 나중에 어떤 상황에 처해지든

최선을 다한 대로 보람이 있을 것이다.

 

어려움에 처해 있을 때, 참고 견디는 것도 촐라체 봉우리를 넘어가는 것 못지않은 인내와 고통을 요구할 것이다. 그렇게 견디는 동안 더 나빠지지 않게 버티는 시간이 되어 줄 것이다.

그리고 `````` 그렇게 견디는 동안,  마음의 근육은 힘이 붙고 튼튼해질 것이다.

 

 

 

 

출처 : 해운대 부실이
글쓴이 : 부실이 원글보기
메모 : 이 글은 제 아내(김현숙)이 쓴 독후감으로서, 집사람의 블로그(해운대부실이)에서 옮겨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