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후감, 감상문, 관람후기

체인질링이 가진 7가지 코드

道雨 2009. 2. 4. 16:40

 

* 이 글은 인터넷('씨네 21'의 네티즌 리뷰)에서 옮겨온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체인질링이 가진 7가지 코드
 
 

영화 체인질링은 '크리스틴 콜린스' 라는 여성의 모성애만을 보여준 것은 아니었다. 그 안에는 모성애와, 흐르는 물과 같이 잔잔함을 떠올리게도 하며, 거친 파도와 같이 행동하는 여성, 공권력이라는 이름하의 정치적 폭력, 정상과 비정상의 구분, 정의의 이름으로 소리내는 여론, 철저히 무시되는 소수자의 권리, 마지막으로 영화를 결정짓는 또 하나의 키워드는 희망이다.



모성애라는 코드를 가지고 영화를 살펴본다면, 한국의 전도연이 주연한 영화 '밀양'과 비슷하지만 다른 '그것'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영화속의 안젤리나 졸리는 처음 부터 끝까지 아들에 대한 그리움을 극단적이고 격렬하게 표현하지 않는다. 아이를 찾을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갖고 흐트러지지 않은 모습을 보이려 노력하는 것을 볼 수 있다.

대놓고 '이런 게 어머니의 사랑이다.' 라고 보여주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관객이었던 나는 두 손을 꼭 쥐고, 안젤리나 졸리의 연기를 통해서, 크리스틴 콜린스의 모습을 통해서 충분히 모성애를 느낄 수 있었다는 것이다.

전도연이 손목을 긋고 미친듯이 동네를 돌아다니는 것을 지켜보며 느꼈던 모성애와는 다른 무언가가 있었다. 물론 '밀양'에서 보여졌던 모성애코드가 충분하지 않았다거나 억지스러웠다는 것은 아니다. 단지 격하게 표현된 밀양에서의 모성애가 있다면, 흐트러짐 없는 체인질링에서의 모성애도 있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다.



체인질링에서 볼 수 있었던 또 다른 코드는 행동하는 여성이었다.

영화 '브레이브 원' 의 조디포스터처럼, 직접 총을 들고 나서서, (원했던 원치않든)적극적으로 행동하는 여성과, 영화 '여자, 정혜'의 김지수의 안타까울 정도로 수동적인 여성의 중간 즈음 되는 행동하는 여성이었다. 쉽게 말해 너무 적극적이지도 않고 너무 수동적이지도 않은, 부드러우면서도 할말은 다하는 여성상을 볼 수 있었다는 것이다.

주인공 크리스틴 콜린스는 주위 환경으로 인해 흔들리는 모습을 보일 때도 있지만, 자신의 아들이 아니라는 것은 명백히 증명하고자 하는 강한 의지를 보여주었다.

자식이 실종되었는 데도, 실종신고를 한 직후 24시간 내에는 경찰의 수사를 진행시킬 수 없다는 연락을 받고도 침착하게 아이를 기다리는 크리스틴의 모습은, 이를 부득부득 갈고 두 주먹을 불끈 쥐며 경찰에 대한 강한 적대감을 드러냈던 나와는 다른, 침착함을 가진 여성이라는 것을 볼 수 있었다.

한 차례 두 차례 경찰을 찾아가, 경찰이 찾아준 아이가 자신의 아이가 아니라고 이야기 하지만, 경찰은 그녀를 무책임한 부모로 몰고 간다.

실종된 아이를 찾기위해 행동했던 그녀의 노력은 영화의 처음 부터 끝까지 이어진다. 이를 통해 볼 수 있었던 것은, 앞으로 돌진하는 여전사 같은 행동력이 아닌, 잔잔하면서도 거친 파도를 연상시키게 해주는 행동력이었다. 이러한 모습을 보며 그녀와 같은 잔잔하고 침착한 파워를 나 또한 가지고 싶었다.



세 번째 코드는 정치적 폭력이었다.

영화의 시대적 배경은 1900년대 초 미국이었다. 2000년대 초 한국의 '용산 참사' 를 떠올리지 않을래야 않을 수가 없었다.

약 100여년 전 미국에서 벌어진, 여성이라는 소수자에게 행사된 정치적 폭력과, 현재 우리나라에서 행사된 철거민이라는 소수자에게 행사된 정치적 폭력을 생각했을 때 나온 결론은, 100년이 지난 지금도 일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공권력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정치적 폭력이 100년이 지난 지금도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이 놀랍기만 하다. 시대가 거꾸로 흐르고 있다는 느낌마저도 들었다.

영화의 처음부터 끝까지 두 주먹을 불끈 쥐고 두 눈을 부릎뜨고 이를 꽉 깨물고 볼 수 있었던 것은, 이러한 정치적 폭력에 강한 적대감을 느꼈기 때문이라고 본다.

크리스틴의 아이가 아닌데도 불구하고, 자신들의 실수를 가리기 위해, 실종된 아이를 찾아준 훌륭한 경찰이라는 것을 여론에 알리려고 진실을 감춘다. 그것도 모자라서 크리스틴에게 부모에 대한 책임감을 운운하며 정신이상자로 몰고, 그녀를 소리소문 없이 정신병동에 가둔다. 경찰에게 항의를 하거나 마음에 들지 않는 행동을 했을 경우에 찍히게 되는, '코드12' 라는 낙인을 찍어서 말이다.

공권력은 이따위 낙인을 찍어서 인간의 기본권을 침해하라고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인간의 기본권인 행복추구권을 보호할 의무를 가져야만 하는 권력이란 말이다. 타협을 통하지 않은 공권력을 행사한다면 그 공권력 또한 처벌 받아야 마땅하다고 생각한다.

영화에서는 경찰청장과 수사 반장을 해임시키지만 우리나라에서 이루어지는 공권력에 대한 처벌은 어떻게 진행될 지......



네 번째 코드는 정상과 비정상의 구분이다.

사실 이 것은 영화에서 크게 차지하는 부분은 아니었지만 개인적으로 생각해볼 만한 가치가 있다고 느꼈다. 영화에서는 정상과 비정상의 구분이 정당하게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것 또한 잘못된 공권력의 일부분일 수도 있지만, 좀 더 넓게 본다면 과연 의사는 그들이 비정상이라는 것을 판단할 수 있는 권리가 있을까? 하는 의문점들이다.

사람이 사람을 판단하고 구분짓는 다는 것 자체가 아이러니하기도 하고, 무엇이 정상이고 무엇이 비정상인지 구분 할 수 있는 존재가 정상인에 속한다는것은, 그들과 구별 짓고 그들의 우위에 서서 행동하기 위한 장치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공권력이라는 것도 그들의 우위에 서서 행동하기 위한 장치가 아닐까?



다섯번째 코드는 여론이다.

이것 또한 우리나라의 여론과 함께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는 종류의 것이었다. 최근 이슈였던 '미네르바' 사건을 떠올려본다.

국민의 자유권?

100년 전 미국에서도 보호 받았던 자유권은 100년 후인 지금도 우리나라는 보호받을 수 없다. 더 떠들면 잡혀갈까 겁난다.

영화 속 구스타브 목사와 그의 동료들은 크리스틴과 함께 공권력에 맞서게 된다. 목사를 포함한, 경찰을 믿지 못하고 크리스틴을 지지해 주는 시민들은 그녀의 든든한 빽이었다. 영화를 관람하는 내내 나또한 그녀의 빽이 되었다.

체인질링은 나 자신이 잘못된 것을 바로 잡고자 하는 시민이었다는 것을 상기시켜주었다.



여섯번째 코드는 철저히 무시되었던 소수자의 권리이다.

영화 속 크리스틴은 싱글맘이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있었고, 정신병동에 갇혀 있었던 여성들도 그들의 소리를 내지 못하고 강제로 약을 투여받는 소수자였다. 존중 받는 소수자가 아닌, 억압받고 무시되었던 소수자의 모습들이었다.

용산철거민을 떠올리지 않을 수가 없다. 그들 또한 생존권을 위협 받는 소수자에 속한다. 그들 또한 철저히 무시되었고, 위협적인 공권력에 대항하다 커다란 상처를 가지게 되었다.

또 한번 썩소만이 남는 이유는 이 영화는 실화를 바탕으로 이루어진 것이고, 100여년 전에 일어났던 사건이었지만, 바로 몇 일 전, 즉 100년이 지난 지금, 우리나라에서 일어난 '용산참사' 를 겪었던, 소수자들이 철저히 무시 당했던 사건이라는 것이다.



하... 마지막으로 크리스틴을 통해 얻을 수 있었던 것은 희망이라는 코드이다.

영화 마지막 자막에서 나왔듯, 크리스틴은 아들을 찾기 위한 희망을 끝까지 잃지 않았다. 나 또한 그녀가 아들을 꼭 찾을 것이라는 희망을 잃지 않고, 마지막 까지 손에 땀을 쥔채 영화를 관람했다.

그녀와 같이 나 또한 아이가 죽었을 것이라는 생각은 단 한번도 해본 적이 없었고, 영화를 보면서도 머릿속으로 그려내었다. 그녀와 아들이 몇 년이 지나서라도 다시 만나 뜨거운 포옹을 하는 장면을 말이다.

그러한 희망을 갖고 있기에, 즉 좋은 세상이 될 것이라는 희망을 갖고 있기에, 나를 포함한 온 국민이 다시 일어설 수 있기를 염원하고 기원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결론적으로, 영화는 여러가지 측면에서 생각해볼 수 있는 문제의식들을 담은 영화이다. 물론 안젤리나 졸리의 절제된 연기와 클린트이스트우드의 노련한 연출력이 돋보이기도 하였지만, '용산 참사' 라는 사회적 이슈를 최근 접했고, 무미건조한 삶을 살아가고 있는 나로써는 진지하게 생각하고 고민해볼 만한 것들이 한 껏 뭉쳐있었던 영화였다.

명장면을 꼽으라면 마지막 부분에서 크리스틴의 아들과 함께 탈출했다가 성공해서 돌아온, 또다른 희생자였던 아이와 어머니의 뜨거운 포옹씬이었다. 안젤리나 졸리와 그녀의 아들에게서 기대했던 모습을 그 모자를 통해 본 것만 같은 느낌이었다.

최근 리뷰를 남기고 싶었던 영화를 찾아 볼 수 없어서 심한 갈증을 느끼고 있던 터에, 체인질링이라는 영화를 만날 수 있게 되어서 한동안은 갈증을 해소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시원함을 남긴 채 리뷰를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