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1 총선을 앞두고 대기업 관련 제도 개혁 문제가 정치권의 화두로 떠오르면서, 김종인 한나라당 비상대책위원과 유종일 민주통합당 경제민주화특별위원장(한국개발연구원 교수)에게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이들은 외부 인사로 당에 참여하면서 대기업의 지배구조 개선 방안과 증세 등에 대한 정책개발을 주도하고 있다. ![](http://player.uniqube.tv/Logging/ArticleViewTracking/moneytoday_eco/2012013015090893536/mt.co.kr/1/0)
30일 정치권에 따르면 김 위원은 지난 27일 박근혜 한나라당 비대위원장과 만나 기업 제도 개선 문제에 대해 심도 있는 대화를 나눈 것으로 알려졌다. 이 자리에서 김 위원장은 박 위원장으로부터 강력한 경제민주화 정책 추진에 대한 전폭적 지지를 이끌어냈다고 한다.
김 위원은 1987년 헌법 개정 때 기업 규제의 근거가 되는 헌법 제119조2항(경제민주화 조항)을 입안한 대표적인 '재벌개혁론자'다.
김 위원은 정부의 견제 역할을 중시하고 있으며 소득 재분배를 위한 고소득자 증세를 주장했다. 한나라당 비대위원으로 와서도 출자총액제한제도 부활의 필요성을 제기했다.
한나라당에 김 위원이 있다면 민주통합당에는 유 위원장이 있다.
유 위원장은 유종근 전 전북지사 동생으로 진보진영의 대표적인 경제학자다.
김대중·노무현 정부 시절 경제자문을 했지만, 해당 정부에서 이뤄진 법인세 인하 등 '신자유주의정책'을 강하게 비판하기도 했다.
유 위원장은 지난해 민주통합당 경제민주화특별위장으로 임명돼서는 출총제 부활과 순환출자 금지, 법인세·소득세 최고구간 신설 등을 제안했다.
최근에는 대기업의 '문어발식 확장'에 불이익을 주는 '재벌세' 도입을 추진한다고 밝혔다.
유 위원장은 머니투데이와의 통화에서 "대기업의 후진적인 지배구조를 개선해 한국 경제를 끌고나가는 집단으로서 사회적 책임을 다하고 국제 경쟁력을 갖추도록 하는 것이 '재벌 개혁'의 목표"라고 말했다.
이처럼 김 위원과 유 위원장은 당을 달리하고 있지만 기업 제도 개선과 관련해서는 입장을 같이한다. 실제 이들은 최근까지도 자주 만나 의견을 교환한 사이다.
김 위원과 유 위원장의 사이에는 정운찬 동반성장위원장이 있다.
정 위원장이 1986년 서울대 교수 신분으로 대통령 직선제 개헌 서명운동을 주도하자 여권에서는 정 위원장을 해고하려 했었다. 이를 막아준 게 당시 여당 의원이던 김 위원이다.
이후 25년 넘게 김 위원과 정 위원장은 '멘토'(조언자)와 '멘티'(조언받는 사람) 관계를 이어왔다.
유 위원장은 정 위원장이 아끼는 서울대 제자 중 한 명으로 정 위원장을 통해 김 위원과 친분관계를 형성했다. 정 위원장이 동반성장위에서 대기업과 중소기업 상생에 힘쓰고 있는 점을 감안하면 3명 모두 기업 제도 개선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는 셈이다.
외부인사인 김 위원과 유 위원장으로서는 상대적으로 보수적인 당 지도부를 설득하는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김 위원은 박 위원장과 지난 27일 회동으로 관계를 '봉합'하기는 했지만 여전히 큰 인식 차이를 갖고 있다. 앞서 김 위원은 당 정강·정책에서 '보수' 문구를 삭제하는 문제와 이명박 대통령 탈당 문제 등을 놓고 박 위원장과 대립했다.
세금 문제와 관련해서도 이른바 '버핏세'를 반대하는 박 위원장과 생각이 다르다.
유 위원장은 당 지도부와 사전 조율 없는 정책 발표가 논란이 되기도 했다. 지난 29일 기자간담회에서 '재벌세'도입을 발표, 당 지도부가 가슴을 쓸어내리게 했다.
민주통합당은 참여정부 시절 '세금폭탄' 공격을 받은 기억이 있어 '증세' 문제에 극히 민감하다.
유 위원장은 '재벌세'에 대해 "세목 신설을 의미하진 않는다"고 해명했지만 박재완 기획재정부 장관이 "기업의 국제경쟁력을 떨어뜨리고 외국인 투자를 위축시킬 수 있다"고 반대하는 등 논란이 이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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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종일 민주당 특위위원장
“한나라당 늦었지만 환영, 아직 선언적 얘기…지켜봐야”
“재벌 개혁은 재벌의 잘못된 행태를 바로잡아 국민이 사랑하는 기업으로 발전하도록 하는 규제 개혁이다.”
유종일 민주통합당 경제민주화특위 위원장은 31일 재벌개혁이 일각에서 제기하는 ‘재벌 때리기’가 아니라는 점을 거듭 강조했다.
증세를 통한 복지재원 조달은 당연한 것이라면서도, 조세정의 실현이 우선해야 한다고 했다.
김종인 한나라당 비대위원이 주도한 것으로 알려진 한나라당의 새 재벌정책에 대해선 대체적으로 좋게 평가했다.
- 한나라당 비대위의 ‘김종인표 재벌정책’을 평가한다면?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늦었지만 환영한다. 선거가 임박해서 입장을 바꾼 거라, 과거의 잘못을 분명히 선언하고 반성하는 모습도 보이면 진정성을 인정받을 것이다.
(상위개념이어야 할) 경제민주주의가 공정한 경제의 한 부분으로 들어가 있어, 인식수준이 부족하다는 생각도 든다. 아직은 선언적 얘기가 많고 구체적 정책은 없어 지켜봐야 할 것이다.”
- 헌법 119조 2항 경제민주화 조항의 입안자인 김종인 전 의원이 한나라당 비대위에 참여했는데….
“최근 한 인터넷 언론 기사에 경제학자 3사람이 등장했다. 김종인, 정운찬, 그리고 제가 나오는데, 셋이 친한 사이다. 경제민주화나 재벌개혁에 대한 시각도 많은 공통점이 있다.
지금 보니 3대 정치세력, 박근혜, 이명박, 민주당으로 찢어져 있다. 한편으론, 경제민주화세력이 모든 정치세력에 침투했다고 얘기할 수도 있을 것 같다.(웃음)
이건 정파를 떠나 시대적 요구라는 뜻이다.
정치적으로 길이 엇갈려 좀 어색하긴 하지만, 저로선 어른들이고 스승들이다. 그분들의 뜻이 잘 실현됐으면 좋겠다.”
- 중소기업을 어떻게 지원할 수 있다고 보나.
“재벌은 재벌답게 중소기업 하도급 등을 공정하게 해야 한다. 재벌들에게 하도급 단가를 선정하는 원칙과 기준을 정해서 공표해달라고 요청하고 싶다.
연장근로수당 지급 여부 등 처우가 나쁘면 나쁜대로, 좋으면 좋은대로 기준을 제시해주면, 온 국민이 문제로 느끼고 있는 재벌독식이나 낙수효과 실종 등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복지재원은 어떻게 마련해야 하나.
“당연히 세금을 더 내야 한다. 증세 없는 복지야말로 포퓰리즘이 될 수 있다. 하지만 세금을 충분히 걷으려면 정부에 대한 신뢰가 필요하다. 우리는 4대강사업 같은 재정 낭비나 비리가 많아 신뢰도가 낮다. 국민이 체감하는 복지 혜택을 늘리고 조세정의가 갖춰져, 국민들이 ‘더 내도 되겠다’는 마음이 생길 때까지 세금을 함부로 늘릴 수 없다.”
- 기업과 권력의 관계는 어떻게 만들어가야 하나.
“신자유주의·시장만능주의에서 가장 잘못된 부분은 기업에 권력을 줬다는 것이다.
기업은 생산 활동, 고용 창출, 혁신 조직 등을 해야 한다. 아주 중요하다. 그러나 기업은 공적인 가치에 부합하는 활동을 하도록 규제를 받아야 한다. 규제를 하는 게 정부이고, 정부의 권력은 민주적 합의로 만들어야 한다.
그동안 주객이 전도되면서 기업 영향이 비대해져 정치적 영향력까지 행사하더니, 기업이 공익에 부합하지 않는 활동을 했고, 급기야 탐욕에 어두워 자멸하는 상태까지 왔다.
우리말에 ‘눈이 먼다’는 표현이 두 가지 있다. 사랑에 눈이 멀고, 욕심에 눈이 먼다. 탐욕은 이성을 마비시킨다. 적절한 규제로 더 건강한 기업으로 발전해나가도록, 쓸데없는 거 못하도록 억제해야 한다.”
- 재벌세 신설 이야기를 꺼냈는데.
“신설이라기보다는 정확히는 ‘재벌 과세 강화’이다. 기업들이 몸집 불리기하는 데 부담을 주겠다는 내용이다. 국민들 귀에 쏙 들어올 수 있도록 상징적으로 명명한 게 ‘재벌세’다. 신규 세목화는 검토해본 적이 없다. 그건 바람직하지 않다고 본다.”
글 김외현 기자 oscar@hani.co.kr
사진 이정우 선임기자 woo@hani.co.kr
■ 유종일은 누구
서울대 경제학과를 나와 하버드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진보적 경제학자다. 한국개발연구원(KDI) 교수로 재직중이다. 민주통합당 ‘헌법 제119조 경제민주화 특별위원회’ 위원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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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야 좌클릭을 이끄는 경제학자의 동행과 경쟁
ㆍ김종인 “특정 계층의 재벌세 따로 있을 수 없다”
ㆍ유종일 “재벌 문어발식 확장 땐 부담 주려는 것”
한나라당 김종인 비대위원(71)은 30일 민주통합당이 추진하는 재벌세를 두고 “특정 계층을 상대로 한 세금이라는 것은 존재할 수가 없다. 재벌세라는 게 따로 있을 수 없다”고 반대했다.
그는 “다만 한나라당이라고 무조건 감세만 주장할 수 없다”며 “증세를 하려면 어느 쪽 부담을 더 늘릴지 생각할 수밖에 없고, 여유가 있는 사람들이 부담을 더 한다는 것은 어느 나라나 공통된 상황”이라고 말했다.
유종일 민주통합당 경제민주화특별위원장(53)은 반박했다. 그는 경향신문과의 전화통화에서 “특정 계층을 상대로 세금을 만드는 게 아니라 법인세법에서 재벌이 계열사 출자를 통해 몸집을 불릴 경우 부담이 되도록 하겠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유 위원장은 전날 이 세금을 ‘재벌세’라 표현했다. 부자증세는 동의하면서도 재벌세 도입을 두고 두 사람의 시각이 미묘하게 엇갈린 것이다.
김종인(왼쪽)·유종일
여야가 합창하고 있는 ‘경제민주화’ 경쟁의 뒤에 ‘김종인’과 ‘유종일’이 있다. 김종인 위원은 노태우 정부 시절 청와대 경제수석을 지냈고, 유종일 위원장은 노무현 전 대통령이 후보이던 시절 ‘경제 가정교사’로 불렸다.
여야의 좌클릭을 주도하는 두 사람의 문제의식은 매우 비슷하다는 게 학계의 평가다. ‘재벌개혁’과 ‘증세를 통한 복지’를 주창하는 것이다. 김 위원이 재벌개혁 1세대라면 유 위원장은 2세대다. 두 사람은 시대를 달리 하면서 재벌개혁의 전통을 이어받았다. 김 위원이 부동산 규제 등을 통해 재벌규제에 나섰다면, 유 위원장은 환상형 순환출자 금지와 금산분리 등을 통해 재벌의 문어발식 확장을 막았다. 김 위원은 재벌들의 비업무용 토지 보유를 제한한 ‘5·8 부동산 규제 조치’ 등 재벌규제를 실제로 해본 야전형이다. 반면 유 위원장은 신자유주의 시대 재벌개혁과 지배구조개혁을 위한 탄탄한 이론적 토대를 마련했다.
두 사람의 인생경로는 만났다 헤어졌다를 반복했다. 김 위원은 군사정권 시절부터 제도권에 편입돼 정부 정책에 영향을 줬다. 유 위원장은 학생운동으로 두 번이나 퇴학을 당하는 등 제도권에 저항했다. 김대중·노무현 정부 때 두 사람은 민주당 쪽에서 함께 힘을 모았다. 2007년 정운찬 전 서울대 총장 대선 출마설이 나올 때도 의견이 다르지 않았다. 하지만 현 정부 들어 김 위원은 여권에, 유 위원장은 야권에 자리를 틀면서 다시 경쟁관계가 됐다.
김 위원을 상징할 수 있는 핵심은 헌법 119조 2항의 ‘경제민주화’ 조항이다. 이 조항은 적정한 소득분배를 유지하고, 시장의 지배와 경제력 남용을 방지하고 경제주체 간의 조화를 이루기 위해 국가가 규제와 조정을 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1987년 개헌 당시 김 위원은 국회 개헌특위 경제분과위원장으로서 이 조항을 끌어넣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 “한국에서 가장 선이 굵은 경제개혁가”(정운찬 동반성장위원장)라는 평가가 나온다.
한국개발연구원(KDI) 국제정책대학원 교수인 유종일 위원장은 경제민주화를 전파시킨 전도사다. 그는 10년이 넘도록 각종 저서와 방송 출연, 강연을 통해 경제민주화를 강조해 왔다. 유 위원장은 “경제민주화는 4·19 이후 역사적인 국면마다 경제학자들이 제기해온 것”이라며 “조순, 정운찬 전 총리 등이 맥을 이어온 만큼 특정인의 전유물로 봐서는 안된다”고 말했다.
여야를 ‘좌클릭’시키는 데는 방향이 같지만 당내 역할은 다소 다르다. 김 위원은 한나라당의 방향 제시 역할을 맡고, 유 위원장은 구체적인 정책 입안까지 하고 있다. 김 위원은 출자총액제한제도 부활과 금산분리 등에 대해 “내가 그것을 이니셔티브(주도권)를 갖고 끌고갈 생각은 없다”고 말했다. 반면 유 위원장은 “(재벌세 등) 우리가 이상론을 말하면 당의 다른 분들은 좀 더 현실적인 측면들을 고려해 최종 결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전성인 홍익대 교수는 “재벌개혁에 대한 두 사람의 문제의식은 똑같지만 어떤 수단을 쓸 것인가는 차이가 날 수 있다”고 말했다. 그 경쟁은 여의도에서 진행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