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간인 사찰 관련

이적 행위 자행한 정부

道雨 2012. 4. 10. 14:05

 

           

              이적 행위 자행한 정부

 

       
미국의 제37대 대통령 리처드 닉슨은 상반된 역사적 평가를 받는다.

긍정적 평가는 미-중 수교로 탈냉전의 물꼬를 튼 점에 맞춰져 있다.

반면 워터게이트 사건은 미국 역사상 유일무이한 ‘임기 중 퇴진 대통령’이라는 불명예를 닉슨에게 안겼다.

이 사건은 1972년 닉슨 대통령 쪽이 워싱턴 워터게이트 빌딩에 있던 민주당 전국위원회 본부에 도청 장치를 설치한 사실이 발각되고도 증거 조작과 수사 방해를 일삼다 의회의 탄핵을 받은 일련의 과정을 일컫는다.

 

40년 전 남의 나라 이야기를 되짚는 건, 이명박 정부의 ‘전 국민’ 사찰 때문이다.

두 사건은 닮았다. 그런데 두 나라 국가기구의 대응은 천양지차다.

 

워터게이트 사건은 미 일간지 <워싱턴포스트>의 기자 밥 우드워드와 칼 번스타인이 ‘딥 스로트’(내부고발자·훗날 미 연방수사국(FBI) 부국장 마크 펠트로 밝혀졌다)의 도움을 받아 사건의 실체를 고발했다.

언론과 고위 공직자의 고발로 닉슨의 위헌적 범죄행위는 만천하에 까발려졌다.

 

MB 정부 사찰의 경우 2010년, 피해자 김종익씨의 고발로 실체의 한 자락이 드러났으나 검찰과 법원의 덮어주기식 수사·재판으로 은폐의 늪에 잠겼다.

그러나 진실을 영원히 감출 수는 없는 법. 뒤늦긴 했으나 <한겨레21>의 ‘청와대의 민간인 불법사찰 증거인멸 지시’ 단독 보도(901호 표지이야기), 팟캐스트 <이슈 털어주는 남자>가 전한 장진수씨의 고발, 한국방송 새노조의 팟캐스트 <리셋 KBS 뉴스9>의 사찰 파일 내용 보도 등으로 망각의 수렁을 빠져나왔다.

국가기구의 외면 속에 시민과 하위 공직자, 언론의 고발이 이뤄낸 성과다.

 

워터게이트 사건 때 미국 의회와 사법부는 미국의 민주주의를 지키려 분투했다.

연방재판소는 행정부의 압력을 뿌리치고 사건 관련자들에게 중형을 내려 진실의 편에 서려 했다. 상원 워터게이트 특위는 청문회 등을 통해 사건의 실체를 파헤쳤다. 하원 사법위원회는 1974년 7월 세 차례에 걸쳐 탄핵안을 가결했다. 사법 방해(1차), 권력 남용(2차), 의회 모독(3차) 등이 탄핵의 근거였다.

닉슨은 1974년 8월8일 TV 연설을 통해 사임을 발표했다. 미국 정치사의 오점인 이 사건이 미국 민주주의 시스템의 힘을 보여준 사건으로도 기억되는 까닭이다.

 

한국 사회를 거대한 파놉티콘(원형감옥)으로 만들려 한 이명박 정부의 무차별적 사찰에 비하면, 워터게이트 사건은 새 발의 피다.

 

전 국민을 범죄자로 취급하며 ‘언제 어디서나 감시당하고 있다’는 공포를 느끼게 하는 사찰은, 민주주의의 적이다. 민주공화국 대한민국을 뿌리부터 갉아먹는 ‘이적 범죄’다.

행정부의 ‘이적 행위’를, 국민의 세금으로 운영되는 대한민국의 검찰과 국회, 법원은 지금껏 나 몰라라 했다.

 

한국에서 사찰의 역사는 뿌리가 깊다. 하지만 진실의 전모가 드러난 적도, 정의가 바로 선 적도 없다.

예컨대 1990년 보안사 민간인 사찰 사건 때 고발자인 윤석양 이병은 2년간 감옥에 갇혀야 했다. 반면 사찰의 배후인 노태우 대통령은 보안사령관 경질로 꼬리를 자르고는 며칠 뒤 ‘범죄와 폭력에 대한 전쟁’ 선포라는 공포정치로 진실을 덮으려 했다. 광주학살의 원흉 전두환이 삼청교육대로 한국 사회를 공포의 수렁에 밀어넣으려 한 것처럼.

 

21세기 한국 사회를 중세의 공포정치 시대로 역주행시킨 MB는 전두환·노태우의 전례를 따라 무사히 임기를 마치고 떵떵거리며 살게 될 것인가. 한국 사회의 민주주의 역량이 백척간두의 시험대에 섰다.

 

이제훈 편집장

 

*사찰 대상에 <한겨레21> 전임 편집장을 포함시킨 이명박 정부에 감사 인사를 전한다. 진실의 전모를 파헤칠 때까지 경각심을 잃지 말고 긴장하라는 배려로 받아들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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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편집장의 무엇을 캐려 했나 
 박용현 <한겨레21> 전 편집장, 재직 당시 불법사찰 당한 것으로 드러나 미행·도청 당했을 가능성 높아… MB의 ‘보위부’는 무엇이 두려워 언론인 사찰하고, 검찰은 왜 사찰파일 숨겼나
 김남일
            싸이월드 공감  
<한겨레21>이 사찰당했다. 국무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실(이하 지원관실) 1팀이 <한겨레21> 불법사찰을 맡았다. 총리실 민간인 불법사찰을 주도한 바로 그 팀이다. 불법사찰 관련자 재판 기록에 첨부된 검찰 수사 기록에서 일단이 드러났다. 2009년 11월9일 작성된 ‘1팀 사건 진행 상황’ 파일을 보면, ‘연번3/ 사건명/ <한겨레21> 박용현 편집장’이 등장한다. 처리 결과와 종결 사유는 공란으로 돼 있다. 사찰이 계속 진행 중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사찰 담당자는 현재 경기지방경찰청 관할 지역에서 파출소장을 맡고 있는 최아무개 경위다. 최 경위는 3월30일 기자와의 통화에서 “바쁘다”며 바로 전화를 끊어버렸다. 박 전 편집장 사건이 하명 또는 인지 사건인지도 공란으로 남아 있다. 앞서 그해 8월25일에 작성된 ‘1팀 사건 진행 상황’ 파일에는 △B·H(청와대) 하명 사건 △총리실 자체 인지 사건 두 가지로 구분돼 있다.

 

 

박용현 전 편집장의 경우는 본인 이름이 특정됐다는 점에서 사찰 강도와 밀도가 매우 높았을 것으로 보인다. 박 전 편집장에 대한 사찰이 어떤 수준과 방식, 내용으로 이뤄졌을지는 다른 사찰 보고서를 통해 가늠해볼 수 있다.

 

 

“애원하듯이” 등 미세한 표정도 사찰해


» 국무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실의 민간인 불법사찰 대상에는 박용현 전 <한겨레21> 편집장도 포함돼 있었다. 그는 사찰을 받게 된 이유를 편집장 시절 만들었던 <한겨레21>에서 찾았다. <한겨레21> 박승화
연번2 사건명은 ‘KBS·YTN·MBC 임원진 교체 방향 보고’, 연번4 사건명은 ‘ 역대 작가 확인’이다. 당시 언론의 동향 파악과 사찰이 동시다발적으로 진행 중이었다는 얘기다. KBS·YTN·MBC 동향 보고는 ‘하명’ 사건으로 분류돼 있다. 방송사 임원진 교체는 청와대의 낙점과 입김이 강력하게 작용했다. 대통령 측근들이 낙하산을 타고 사장으로 포진했으니 당연히 이명박 대통령의 관심 사안이었을 것이다. 박 전 편집장 사찰이 청와대 하명에 의한 것인지, 총리실 인지에 의한 것인지는 파일에 표기돼 있지 않다. 다만, <한겨레21>이 이명박 정부에 대한 가장 강력한 감시자이자 비판자 가운데 하나였다는 점은 분명하다. 박 전 편집장의 뒤를 캔 이유야 누구든 미뤄 짐작할 수 있다. 지원관실 내부 장부를 보면 <한겨레21> 사찰을 맡은 담당자는 2009년 2월 ‘09년 좌익세력의 동향 및 대응방안에 대한 보고’도 맡았다.

박 전 편집장 관련 사찰 내용은 확보하지 못했다. 청와대가 제공한 대포폰과 하드디스크 전문 파괴 장비까지 동원한 증거인멸 과정에서 삭제된 것으로 추정된다. 방송사들에 대한 사찰 내용은 낙하산 사장의 ‘개혁 조치’, 조직 분위기, 노동조합의 ‘동향 파악’ 정도였지만, 박 전 편집장의 경우는 본인 이름이 특정됐다는 점에서 사찰 강도와 밀도가 매우 높았을 것으로 보인다. 박 전 편집장에 대한 사찰이 어떤 수준과 방식, 내용으로 이뤄졌을지는 다른 사찰 보고서를 통해 가늠해볼 수 있다.

2009년 5월19일, 한 사정기관 고위 간부에 대한 지원관실의 사찰이 이뤄졌다. 저녁 7시9분부터 새벽 1시까지 이어진 사찰은, 해당 간부의 모든 동선을 따라붙어 최소 4분 단위로 촘촘하게 이뤄졌다. 보고서에는 “시큰둥한 표정” “무덤덤한 표정” “애원하듯이” 등 사찰 대상과 주변인의 미세한 표정도 놓치지 않았다. 관련자들이 작은 목소리로 나눈 은밀한 대화까지 세세하게 보고됐다. 미행뿐만 아니라 불법적인 도·감청까지 이뤄졌다는 의심을 낳는다.

법으로 규정된 지원관실의 업무는 △공직자 사기 진작 지원 △공직자 고충 처리 지원 △우수 공무원 발굴 △공직사회 기강 확립 △부조리 취약 분야 점검과 제도 개선 △공직윤리 지원과 관련한 국무총리 지시사항 처리에 한정돼 있다. 조직적인 증거인멸 탓에 그동안 지원관실의 업무 내용은 ‘파일 제목’으로 유추해보는 정도였다. 이번에 확보한 검찰 수사 기록을 통해 처음으로 지원관실의 업무 내용이 드러난 셈이다.

지원관실 업무의 상당 부분은 실제로 ‘공직자’와 관련 있기는 하다. 하지만 보고서의 내용과 구성을 보면, 공직 윤리에 대한 점검보다는 정권에 대한 충성도를 탐지하고 다녔다고 보는 편이 적절하다. 예를 들어 강희락 전 경찰청장에 대한 A4용지 7장짜리 보고서를 보면 △국정철학 구현(별 4개 반) △직무역량(별 4개 반) △대외관계(별 4개 반) △도덕성 및 복무기강(별 4개 반)으로 평가됐다.

 

사실상 대한민국 전체가 사찰 대상

총리실 산하 지원관실이 만들어진 것은 2008년 7월이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반대 촛불집회 대열이 수십 일 동안 서울 광화문을 점령하고 청와대 앞까지 진격하는 상황이 벌어진 직후다. 대통령 임기 첫해부터 ‘두려움’을 느껴야 했던 이명박 대통령은 “대체 저 많은 촛값은 누가 다 대는 거냐”며 ‘배후’를 궁금해했다. 제대로 된 정보를 물어오지 못하는 국가정보원, 정세 판단 능력이 떨어지는 참모들에 대한 불만도 컸을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이 대통령의 고향인 경북 포항 인맥을 중심으로 짜인 ‘영포 라인’이 지원관실의 주축을 이루며 등장한다. 지원관실 임무가 공직자 비위 감찰보다는 ‘정권 보위’에 무게가 실렸다는 점은 여러 곳에서 확인된다. ‘전 정부에서 임명된 인사의 뒤를 캐서 임기 전에 내쫓는’ 역할에 지원관실은 충실히 임했다. 이세웅 전 대한적십자사 총재, 김광식 전 한국조폐공사 감사, 김문식 전 국가시험원장, 박규환 전 한국소방검정공사 감사 등이 지원관실의 사찰을 받았고, 임기가 끝나기 전에 물갈이됐다.

‘보위부’의 임무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당장 비위가 

드러나지 않은 현 정부 인사들에 대해서도 끊임없이 감시와 사찰을 일삼았다. 이달곤 전 행정안전부 장관(현 청와대 정무수석)도 그 대상이었다. 이 전 장관이 현직에 있던 시절 작성된 A4용지 10장짜리 보고서에는 “한나라당 박희태 대표의 특별보좌역 출신으로 장관 임명에는 박 대표의 강력한 요구가 작용했다는 후문”이 ‘특이사항’으로 적시됐다. 예의 별점도 매겨졌다. “대통령 지시사항 이행실태 양호”라는 평가도 달렸다. 지원관실은 이달곤 장관 관련 정보 수집을 위해 한 달 넘게 행안부 소속 공무원(과장·서기관·팀장·사무관·보좌관·직장협의회 관련자·장관 비서실 관련자 등)들을 만난 것으로 드러났다. 이 전 장관 말고도 장·차관들의 ‘복무동향 보고서’는 수두룩하다. 사실상 인사평가 자료라고 해도 무방한 복무동향 보고서는 누구를 위해 만들어진 것일까. 정무직 장·차관 임면권자는 대통령이다. 다른 사람을 생각할 이유가 없다. 최근 <한겨레>는 지원관실 보고서가 정식 절차를 밟는 ‘민정수석용 보고서’와 ‘윗선’에 바로 보고하는 ‘직보용 보고서’가 따로 있었다고 보도했다.

» 이명박 정권을 비판한 <한겨레21> 725·764·769호 표지들(위부터).
지원관실의 사찰 범위는 사실상 대한민국 전체였다. 정권과 관련한 일이라면 어디든 뛰어들었다. 2009년 작성된 내사 처리부에는 김유정 당시 민주당 의원이 피내사자로 등장한다. 그해 2월12일치 하명 내용은 ‘청와대 국민소통비서관실에서 경찰청 홍보담당관실로 용산사태 대비책 관련 이메일 발송 확인사항’이라고 돼 있다. 2009년 2월 청와대 홍보기획관실 행정관이 ‘용산 화재참사 사태 확산에 대응하기 위해 군포 연쇄살인 사건을 적극 홍보하라’는 내용의 전자우편 지침을 경찰청에 보냈다. 김 의원이 이 문건을 입수해 공개한 바로 그날, 지원관실에 ‘하명’이 떨어진 것이다. ‘전직 지방경찰청장 민주당 입당 관련 보고’에는 홍영기 전 서울정창, 최석민 전 충북청장, 정광섭 전 강원청장 등이 지방선거 출마를 위해 민주당에 입당했다며, “용산 상황을 전직 고위 경찰을 동원해 왜곡·비난 확산 시도… 경찰청에서 반박 성명 등 적극 대응, 사실 왜곡 차단”이 필요하다고 적었다.

 

밑도 끝도 없는 개인정보 조회

2009년 10월12일 지원관실 1팀이 작성한 ‘전·현직 고위 공직자 재산 관련 조사보고’도 눈길을 끈다. 아파트 꼭대기층으로, 고가로 분양되는 펜트하우스 입주자 현황을 조사했다. 특혜 분양 여부 등을 따져보려는 것이었는지 모르지만, 조사하게 된 계기나 이유는 전혀 기록돼 있지 않다. 보고서는 “ㄹ아파트의 경우 소유자는 최○○, 이○○, 홍○○인데 고위 공직자가 아니다. 용산구·용인시 소유자는 확인을 위해 금융결제원에 공문 조회가 필요하다”고 했다. 고위 공직자 여부도 확인하지 않고 무턱대고 조사부터 들어간 것이다. 게다가 중요한 개인정보를 다루는 금융기관에도 밑도 끝도 없는 자료 요구가 있었음을 시사한다. 이 보고서에는 전 정권 고위 공직자의 펜트하우스 거주 여부가 실렸는데, 집 면적·층수·분양가 등이 적시됐다. ‘2009년 하명 사건처리부’에는 왜 이런 조사를 하게 됐는지가 나타난다. “9월7일 B·H(민정)에서 하명 접수”. 이유는, 없다.

대통령의 관심이 쏠린 4대강 사업도 지원관실의 주요 업무 중 하나였다. 2009년 8월10일 지원관실 1팀에서 작성한 ‘4대강 살리기 사업 추진실태 점검 결과보고’ 문건을 보자. 주요 현안 및 문제점 가운데 하나로 “외부세력이 주요 민원 예상지에 침투해 연계투쟁을 할 우려”가 지적된다. “향후 민원 발생지에 불순세력 개입 상황을 파악하겠다”는 계획이 첨부됐다. 쌍용차 파업 진압작전도 지원관실이 ‘스크린’을 했는데, 이 역시 청와대 보고사항이었음이 드러났다. 관련 보고서의 마지막은 “B·H에 조치사항 및 결과 구두보고 후 상황 종결”로 끝난다.

‘좌파단체’를 찍어 누르고, 보수단체를 도와주는 일도 지원관실 임무였다. ‘2009년 제도개선 대장’에는 “행정안전부에서 비영리 민간단체에 지원되는 보조금을 보수단체에 지원할 수 있는 방안을 강구”(2월24일)하겠다고 돼 있다. <한겨레21>을 사찰했던 최씨가 담당이었다. 반면 ‘2009년 하명사건 처리부’에는 ‘좌파 환경단체 보조금 중단 관련 공문’ 하명 내용이 보인다. 담당자는 1팀 전체였다.

보고서에는 지방자치단체인 서울시가 지원관실의 ‘을’로 등장한다. 2009년 전국공무원노조 부위원장의 불법노조 활동과 관련해 서울시에 적극 조처를 지시했는데 “서울시의 미온적 대응에 대해 엄중 문책을 경고했다”는 것이다. 해당 노조 간부는 해임됐다. 이 과정에서 신지호 새누리당 의원실이 협조했다는 내용이 나온다. 김종익씨 사건에서 조전혁 새누리당 의원을 ‘활용’한 정황과 비슷한 맥락이다.

 

 

쌍용차 파업 진압작전도 지원관실이 ‘스크린’을 했는데, 이 역시 청와대 보고사항이었음이 드러났다. 관련 보고서의 마지막은 “B·H에 조치사항 및 결과 구두보고 후 상황 종결”로 끝난다.

 

 

민주화 이후, 최초 청와대 개입 민간인 사찰

검찰은 왜 이런 중요한 물증을 확보하고도 “컴퓨터 하드디스크 복구에 실패했다”며 거짓말을 했을까. 이유야 간단하다. 민간인 불법사찰 수사가 이뤄지던 2010년 7~8월은 정권 후반기 향방을 가늠하던 시기였다. 그럼 법원은 왜 이런 중요한 물증이 수사 기록에 끼어 들어왔는데도 무시했을까. 검찰과 사법부는 무슨 정신으로 수사를, 재판을 했던 걸까. 1990년 10월, 국군보안사에 의한 민간인 사찰 사실이 윤석양 이병에 의해 폭로됐다. 국회의원·종교인·총학생회 간부·노동운동가·농민·대학교수·언론인 등 모두 1303명에 대해 주기적 사찰이 이뤄지고 있었다. 과거 보안사나 국군기무사, 국가안전기획부 등의 민간인 사찰 사실이 드러난 적은 있지만 청와대 인사가 직접 개입한 민간인 사찰은 문민정부 이후 처음이다. 대통령이 책임져라.

 

김남일 기자 namfic@hani.co.kr

 

 

 

 

 

불법사찰 피해자 박용현 전 <한겨레21> 편집장 기고

 

‘파시즘의 전주곡’ 현실화, 소름 끼친다

 

 

이유는 하나로 짐작된다. 국무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실(이하 지원관실)이 ‘<한겨레21> 박용현 편집장’을 민간인 불법사찰의 명단에 올린 것은 <한겨레21>의 보도 때문일 것이다. 나는 그 밖에 그들의 관심을 끌 만한 족적을 남긴 바가 없는 평범한 시민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어떤 보도 내용 때문이었을까? <한겨레21>은 이명박 정부 초기 촛불 정국 때 713호부터 719호까지 7주 연속으로 촛불 사건을 표지이야기로 다뤘다. 같은 해 8월 725호 표지에는 이명박 대통령과 히틀러를 나란히 세운 이미지와 함께 ‘파시즘의 전주곡’이라는 제목을 달았다. 촛불을 역공하는 공안 드라이브를 정면으로 고발하는 내용이었다.

<한겨레21> 편집장의 이름이 등장하는 지원관실의 ‘1팀 사건 진행 상황’ 문건이 2009년 11월9일 작성된 점으로 보아, 사찰은 그해 본격적으로 이뤄졌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해에는 노무현 전 대통령 추모 특집호를 2주 연속으로 발행해 추가 인쇄까지 할 정도로 독자들의 폭발적인 호응을 얻은 데 이어, 764호에서는 다시 한번 청와대의 심기를 건드릴 만한 표지이야기를 내놨다. ‘나의 투쟁’. 이명박 정권이 노 전 대통령 추모 열기를 ‘좌파’와 연결짓고 각종 악법을 통해 시민의 자유를 옥죄오는 현실을 비판하며 ‘파시즘적 경향’의 급증을 우려하는 분석 기사였다. 이 대통령이 머리띠를 두르고 팔을 치켜든 표지 이미지는 시의적절한 풍자로 호평을 받았다. <한겨레21>은 이후에도 줄기차게 시민의 저항과 이에 대한 탄압을 의제화하며 ‘은밀한 저항’(765호), ‘완전정복, MB시대 수사받는 법’(769호) 등의 표지이야기를 선보였고, 9월에는 국가정보원의 새로운 인터넷·전자우편 실시간 감청 기법인 ‘패킷 감청’을 특종 보도하기도 했다. 김종익씨의 경우 이 대통령을 비방하는 동영상 하나가 사찰의 계기가 된 점에 비춰보면, 이런 일련의 보도가 지원관실의 관심을 끌었을 가능성은 충분해 보인다.

‘나의 투쟁’ 기사에서 소개한, 미국 사회비평가 나오미 울프의 ‘파시즘 이행기’ 판별법을 지금 다시 읽어보니, 소름이 돋도록 정확히 우리의 현실과 일치한다. △집회·시위에 나서거나 비판적 발언을 하면 신체적 위협을 가한다 △일반 시민을 사찰한다 △교수·공무원·언론인·문화예술인 등 비판적 인사들을 전략적으로 겨냥해 직장에서 쫓아내거나 경력을 파괴한다 △정치적 압박으로 자유언론을 탄압한다….

개인의 자유와 기본권을 파괴하는 파시즘적 체제의 도래를 걱정하는 기사를 쓴 <한겨레21>이 권력기관의 민간인 사찰이라는 파시즘적 탄압의 대상이 됐다. 선견지명이었던가? 기사의 자기실현이라고 해야 하나?

 

박용현 전 편집장 pia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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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권 날릴 ‘핵폭탄’ 터졌다 
 야권을 중심으로 대통령 하야 요구 나오는 가운데 새누리당 쪽 “MB 책임지고 탈당해야”… 총선 핵심 쟁점으로 떠올라
 조혜정
            싸이월드 공감  
국무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실(이하 지원관실)이 박용현 전 <한겨레21> 편집장을 비롯한 언론인과 언론사, 재벌, 금융계 인사 등 사회 각 분야를 무차별적으로 불법사찰한 사실이 드러났다. 이미 지원관실이 불법사찰한 내용을 이명박 대통령에게 직보했다는 의혹이 터져나왔으며, 불법사찰을 덮으려는 증거인멸은 물론 ‘윗선’을 보호하려고 청와대·검찰 등이 한 몸이 돼 진실을 은폐했다는 증언이 나온 터다. 그런데 검찰의 1차 수사 결과와 달리 불법사찰 피해자가 ‘전 국민’일 수 있다는 점은 ‘충격적’이라는 수식어만으로는 설명이 불가능하다.

» ‘MB·새누리당 심판 국민위원회’ 위원장인 박영선 민주통합당 의원이 3월30일 서울 중앙지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민간인 불법사찰 보고서가 담긴 컴퓨터 파일을 설명하고 있다. 뉴시스

가늠하기 어려운 폭발력

야당은 “범국민적으로 대통령의 하야를 논의해야 할 시점”(박영선 민주통합당 의원), “이 대통령이 하야하는 게 마땅하다”(유시민 통합진보당 공동대표)라며 일제히 이 대통령의 하야를 촉구했다. 박은지 진보신당 대변인도 “이명박 정부는 한 나라의 정부였나, 아니면 전 국민 파파라치였나”라며 “이 대통령은 책임 있게 해명하고 자리에서 내려오라. 9개월가량 남은 임기도 국민은 인정할 수 없을 것”이라고 논평했다.

청와대는 공황 상태에 빠졌다. 청와대 관계자는 “무분별한 정치 공세는 자제해야 한다”는 말밖에 하지 못했다. 당장 총선이라는 ‘전쟁’을 치러야 하는 새누리당에선 당혹감과 위기감을 감추지 못한 채 이 대통령 탈당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쏟아졌다. 수도권의 한 초선 의원은 “이 대통령은 박 위원장이 나가라고 하기 전에 스스로 알아서 나가야 한다. 또한 (무차별적인) 불법사찰이 사실이라면, 이 정권 최고 책임자까지 책임을 져야 한다”고 말했다. 한 당직자도 “선거 쟁점으로 안 떠오를 수가 없다. 이제는 대통령이 탈당하고, 당과 선을 그어줘야 한다”고 했다.

새누리당이 이렇게 격하게 반응하는 건 ‘핵폭탄’이 터졌다는 인식 때문이다. 폭발력은 가늠하기 어렵다. 새누리당은 박 위원장을 내세우고 이름을 바꾸는 등 ‘신장개업’을 해 이명박 정권과 차별화를 시도해왔다. 이 때문인지 야당이 제기하는 정권심판론도 아직은 큰 힘을 발휘하지 못하는 상황이다. 하지만 총선 전에 지원관실 직원들의 추가 증언이 나오거나, 특별수사팀을 꾸린 검찰이 새로운 사실을 하나라도 확인한다면 부동층이 새누리당에 등을 돌릴 가능성이 높다. 기본적으로 선거가 ‘부동층 잡기 경쟁’의 성격이 강하다는 점을 고려하면, 새누리당이 심각한 타격을 입을 수 있는 것이다. 특히 박빙 지역이 많고, 중앙정치 이슈에 예민하게 반응하는 수도권 총선은 한 치 앞을 장담하기 어렵게 됐다.

“대통령 탄핵은 당위의 문제”


설령 총선을 어찌어찌 넘긴다 해도 더 중요한 문제는 그 이후다. ‘하야’ 카드를 꺼내든 야당이 가만히 있을 리 없는데다, 국정조사와 특별검사 도입까지 벼르고 있기 때문이다. 김수진 이화여대 교수(정치외교학)는 “이건 당위의 문제로, 이 대통령 탄핵감”이라고 잘라 말했다. 김 교수는 “대통령 임기가 얼마 안 남았으니 국정 안정을 위해 기다려야 한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이렇게 민주주의의 근간을 뒤흔든 행위를 그냥 넘어가는 것이 민주주의의 안정성을 해치는 것”이라며 “야당은 19대 국회를 새로 구성하면 이 대통령을 탄핵하겠다고 공약해야 한다”고 말했다.

조혜정 기자 zesty@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