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간인 사찰 관련

대포폰과 휴대폰이 똑같다? '비열한 청와대'

道雨 2012. 4. 10. 12:24

 

 

   대포폰과 휴대폰이 똑같다? '비열한 청와대' 
   'MB 각하-영부인' 나라... 무시무시합니다

 

[주장] 불법사찰 피해자 김종익 변호인 최강욱 변호사

 

 

 

2009년 6월 <한겨레21> 764호 표지이야기에는 미국 사회비평가 나오미 울프가 제시한, 민주주의에서 파시즘으로 넘어가는 이행기의 특성이 소개돼 있다.

 

▲ 일반 시민을 사찰한다. 개인의 전과와 정치성향, 사생활 등을 기록한 개인자료를 활용한다.

▲ 교수·공무원·언론인·문화예술인 등 비판적 인사들을 직장에서 쫓아내거나 경력을 파괴한다.

▲ 비판적 검사(판사)를 해임하는 등 법의 지배 방식을 뒤엎는다.

▲ 정치적 압박으로 자유언론을 탄압한다.

▲ 시민들의 사상·행위·표현을 '법의 이름으로' 처벌한다.

 

최근 우리 앞에 펼쳐진 현실과 소름 돋도록 일치한다.

 

이 글을 소개한 <한겨레21>의 당시 편집장 박용현 기자는 국무총리실 산하 공직윤리지원관실 직원들로부터 사찰을 당했다. 공직자의 사기를 진작하고 윤리의식을 제고하는 일을 한다는 공무원들이 무엇 때문에 한 언론인을 주시해야 했을까.

 

답은 간단하다. 그들의 '주군'에게 거슬리는 기사를 많이 쓰고, 트집 잡기 어려운 명문장으로 사람들의 마음을 울렸기 때문이다. 아니, 어쩌면 우리 앞에 펼쳐진 현실에 대한 그의 인용과 예측에 속내를 들킨 것이 그들에겐 너무도 불안했을지 모른다.

 

많은 이들이 민간인 불법사찰 사건에 분노하면서도 과거 정권에서도 같은 일이 있었다는 특정 세력의 근거 없는 물타기에 현혹된다.

당시에 이루어진 일은 적법한 직무감찰이었다고 아무리 설명해도 이미 마음속으로부터 '그쪽' 편이 되기로 작심한 이들에겐 아무런 효과가 없다.

 

정치적 이슈로 제기되어 상대의 물타기를 통해 한 번 진흙탕을 구른 이상, 뒤에 이루어지는 어떤 이성적 해명도 같은 수준의 물타기로 치부하는 게 대중의 속성이라는 어떤 기자의 말이 아프게 와닿는다.

 

"불법사찰과 직무감찰, 대포폰과 휴대폰의 차이"

 

  
 지난 3월 30일 <오마이뉴스> 팟캐스트 방송 '이슈 털어주는 남자'에 출연한 '민간인불법사찰' 피해자 김종익 전 KB한마음 대표가 녹음을 마친 뒤 이 사건의 청와대 개입 및 은혜 의혹을 폭로한 장진수 전 공직윤리지원관실 주무관을 보며 "꼭 한번 안아주고 싶었다"며 포옹을 하고 있다.
ⓒ 권우성
 민간인불법사찰

하지만 아무리 한쪽 편을 들고 싶어도 반드시 자제해야 할 일은 있다. 우리의 건강한 공동체가 지향하는 약속인 '민주공화국'의 근본을 부정하는 범죄가 바로 그것이다.

아무리 다급하고 아무리 선거 승리가 중요해도 제대로 된 정치세력이라면 절대 부인하지 말아야 할 일이 있다. 헌법이 규정한 '민주적 기본질서'를 파괴하는 국기문란 행위가 그것이다.

 

만일 그것을 왜곡하거나 의도적으로 곡해하여 본질을 흐리는 시도를 하는 자들이 있다면, 그들은 이미 우리 공동체의 구성원으로서 건강한 가치를 지킬 의지가 없다고 보아도 무방하다. 부모님이 밉다 하여 '인간'이라는 점 자체를 부정하는 자에게 '예절'을 따지는 것이 아무런 의미가 없는 까닭이다.

 

자꾸만 불법사찰과 직무감찰을 뒤섞어 헷갈리게 하려는 자들과, 그들에게 현혹될 위험이 있는 바쁜 시민을 위해 트윗에 간단한 설명을 올렸던 적이 있다.

'불법사찰과 직무감찰의 차이는 대포폰과 휴대폰의 차이와 같다'는 것.

대체 이토록 간명한 이치를 속이려 드는 자들은 누구이며, 그 검은 속셈은 무엇인가?

 

많은 이들이 이번 정부의 불법사찰 사건을 미국의 워터게이트 사건에 비유한다. 우리뿐만 아니라 세계의 시선도 그렇다.

워터게이트 사건의 본질은 무엇이었던가. 불법 도청에 의한 정적의 감시가 아니다. 그것은 모르쇠로 일관하던 대통령과, 결국 밝혀지고 말았던 그의 거짓이었다.

 

공포에 질려 있던 김종익씨와 그가 겪어야 했던 사건을 마주한 이후, 줄곧 나를 괴롭힌 것은 우리의 현실이었다. 미국과 달라도 너무 달랐기 때문이다.

말이 '한국판 워터게이트 사건'이었지 실제 벌어지는 상황을 보면, 우리 집권세력이 보여주는 모습은 도무지 법률가로서 나의 상상력과 이성을 훨씬 초월했기 때문이다.

 

폐일언하고, 말단 가담자의 입막음을 위해 돈을 전해주며 안달하고 설득하는 대한민국 고위 공직자의 모습을 보았다면, 과연 닉슨은 무슨 말을 했을까. 자신이 저지른 짓과 비교되는 것을 너무도 기분 나빠하지 않았을까?

 

우리 사회를 '빅 브라더'가 감시하는 감옥으로 바꾸려 한 이 정부의 무차별 사찰에 비하면, 워터게이트 사건의 불법은 미미하다. 평범한 시민에게 어느 날 다가온 국가폭력의 실상은 김종익씨의 경제적 기반과 정신적 삶은 물론, 그가 가진 모든 인연을 파괴하는 보복에까지 나아갔다.

 

국민에 대한 봉사자라는 공무원들이 특정 향우회의 조직원이자 폭력배의 일원으로 둔갑하여 자행한 범죄 앞에 대한민국 헌법은 휴지처럼 버려졌다.

'공직 윤리'를 지원하고 확립한다는 공무원들이 자행한 이런 범죄 앞에 대한민국 검찰과 법원, 청와대, 국회, 헌법재판소, 인권위원회는 아무런 역할을 하지 않았다.

새롭게 태어난다던 총리실조차 입막음을 위한 모의와 돈 심부름을 하는 조직으로 다시 전락하였음은 일단 제껴두더라도.

 

분명한 범죄로 기소되고 난 다음에도 범죄자들은 뻔뻔한 얼굴로 자신의 무죄를 강변하였으며, '진충보국'의 자세로 좌익 분자에 불과한 한 시민을 응징하였을 뿐이라고 주장하였다. 언제나 음지에서 국가를 위해 헌신한 자신의 삶을 스스로 고결한 것으로 전제하고는,  한 사람의 인생을 파괴한 것에 대하여는 발뺌으로 일관한다.

 

여기까진 그럴 수 있다 치자. 애초에 제대로 된 이성과 인격의 소유자였다면 그토록 더러운 범죄는 물론, 증거의 파괴까지 나갈 순 없었을 것이므로.

 

 

 

'정의의 수호자'라는 검찰, 국기문란 사건은 외면

 

  
 민주통합당 MB-새누리 국민심판위원회 박영선 위원장이 지난 5일 민간인 불법사찰과 관련한 기자브리핑에서 장진수 전 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실 주무관에게 전달된 관봉 형태의 5천만원 돈다발 사진을 공개하며 검찰의 수사 의지 부족을 강하게 비판하고 있다.
ⓒ 남소연
 박영선

그러나 그자들이 행한 그 더러운 범죄를 두고 '정의의 수호자'를 자임하는 우리 검찰이 보여준 모습은 어떠했는가.

총리실의 지시를 받은 경찰이 김종익씨의 횡령 혐의와 기타 비위사실에 대하여 샅샅이 털어 겨우 '쥐코 동영상' 하나만을 걸어 송치한 사건이 검찰에 도달한 2009년 3월에도, 이들은 이토록 명백한 국기문란 사건을 철저히 외면했다.

 

김종익씨가 다시 신변에 위협이 올지 모른다는 고민에도 마침내 헌법소원을 결심하고 2009년 12월 각종 인권 침해 사실을 들어 기소유예 처분을 취소하라는 청구를 하자, 답변서를 작성하여 제출한 검사는 여전히 비굴한 언사로 총리실의 범행을 외면하였다.

 

언론과 국회의 목소리로 불법사찰이 세상에 알려진 2010년 6월 말에도 역시 검찰은 요지부동이었다.

"수사할 일인지 모르겠다", "총리실이 자체 조사를 한다니 지켜보겠다", "우린 경찰로부터 동영상 올린 부분만 송치받았기에 불법사찰 문제는 수사할 이유도, 필요도 없었다"는 취지의 억지 한담만을 반복했다.

그 사이, 범죄자들은 증거를 파괴하고 자신들을 구명할 대책을 착착 세워나갔다.

 

이후에 벌어진 일은 더 가관이다. 검찰 수사가 시작되자 집권당 국회의원 조전혁은 기자회견을 열어, 김종익씨는 참여정부의 비자금 관리인이자 불법 자금 전달 창구였으며 특혜를 받아 회사의 대표이사로 취임했다면서 검찰에 수사를 의뢰했다.

이를 받아 집권당 원내대표 김무성과 정책위의장 고흥길, 대변인 조해진은 연달아 김종익씨를 음해하는 발언을 해대고 이를 보도자료로 만들어 언론에 배포했다.

 

마침내 장진수씨가 그 경위를 밝혔다.

진경락이 여직원을 시켜 만든 문건을 최종석과 함께 조전혁에게 전달하고, 조전혁은 그걸 그대로 읽더라는 것. 이런 터무니 없는 짓거리를 처벌해달라며 고소하자 검찰은 "국민의 알 권리를 충족시키기 위한 행위로서 죄가 되지 않는다"며 그들에게 면죄부를 주었다.

 

대체 국민이 무얼 알고자 했던 것인가? 국회의원의 사명감을 갖고 그들이 전하고자 했던 진실은 무엇이었던가?

노사모이자 이광재 의원의 선거운동원이었으므로 사찰받아 마땅하다는 것을 알고자 했다는 것인가? 도무지 알 수 없는 일이다.

국회는 더 이상 행정부를 견제하고 감시하는 곳이 아니었다. 그저 힘 없는 시민을 사찰하고 파괴한 정부의 계획대로 움직이는 '방조범'이자 하수인일 뿐.

 

새로운 사실이 드러나고 증언이 이어져도 검찰의 태도는 요지부동이었다. 다시 수사할 일이 아니라는 것. 그저 추이를 지켜본다는 것. 견디기 어렵도록 질타를 받자 마지못해 나선 다음에도 실질은 별반 달라지지 않았다.

여전히 수사는 미적거리고, 청와대는 예나 지금이나 할 말이 없단다. 아는 것도 없단다. 과거 근무한 이들이 사건의 은폐에 가담했든 말든, 이젠 그들이 전직 청와대 직원일 뿐이라 우긴다.

 

직책이 대통령실장이든, 민정수석이든, 민정2비서관이든 자신의 역할에 충실하였을 뿐이며 여전한 충복으로 최선을 다하고 있으므로 청와대가 보탤 말은 없을 지 모른다.

그들의 필요에 의해 충성을 다짐하는 이들이 법무부장관으로, 검찰총장으로 최선을 다할 것이기에 더 이상의 말이 필요 없을지 모른다.

여전히 불법사찰과 증거인멸로 처벌 받은 공무원은 안쓰러운 피해자이고, 김종익씨는 자신들을 곤란에 빠뜨린 불한당일지 모른다.

 

역시 법은 멀고 주먹은 가깝다. 뻔히 짐작되는 일을 갖은 궤변으로 피해가려는 이들의 속내는 짐작하고 남는다. 이미 스스로 범죄집단의 일원이 아니고서는 도저히 할 수 없는 행태를 반복하였기 때문이다.

 

'가카'의 심기를 불편하게 하는 자는 '불순분자'일 뿐

 

  
 민간인 불법 사찰의 '몸통'이라고 자처했던 이영호 전 청와대 고용노사비서관이 3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영장실질심사를 받기 위해 도착, 취재기자들의 질문을 받고 있다.
ⓒ 유성호
 이영호

이쯤에서 다시 워터게이트를 생각한다.

미국의 민주주의를 지키려 분투하다 닉슨에 의해 해임된 특별검사 아치볼드 콕스, 그의 해임에 반대하며 사표를 던진 법무부장관과 차관, 관련자들에 대한 중형을 선고하며 진실을 토로하도록 압박한 미국 연방법원, 청문회를 통해 사건의 실체에 접근해 간 미국 연방 상원, 연임에 성공한 대통령의 탄핵을 결정한 미국 연방 하원.

 

그나마 미국 시민은 이런 기관을 갖고 있었기에 진실을 밝혀낼 수 있었다. 그러나 아직 우리 곁에 이런 기관과 이런 공직자는 없다.

헌법재판소와 국가인권위원회는 어떤가. 헌재는 2년 반이 다 되어가도록 사건 처리를 하지 않은 채 감감 무소식이다.

2010년 인권위는 사건을 질질 끌며 시한이 다하길 기다리다, 너무 오래된 일이므로 '각하'한다는 결정을 내렸다. 최근에 공개된 인권위원이란 이들의 당시 발언을 보면 더욱 가관이다.

 

"내용이 불분명하다. 무엇에 대해 하자는 것인지 모르겠다."

 

다른 이들의 말을 언급할 것도 없이, 대법원장이 추천한 부장판사 출신 위원이 했다는 이 발언을 전해 듣고 스리랑카와 방글라데시에서 나를 찾아왔던 인권활동가들은 그들의 귀를 의심했다. 자기 나라에서도 그 심각성이 널리 알려진 사건인데 정녕 법관을 지낸 이의 입에서 그런 말이 나왔느냐고.

 

목사님의 신분을 가진 위원의 말은 더욱 가슴을 때린다. "이 사건 이외에도 관심을 가져야 하는 일은 많다"고 했단다. 그렇다. 이 사건 외에도 관심을 가져야 할 일은 많다. 그런데 그에게 이 사건에 대한 관심은 거추장스러운 것이었고, 결국 그는 이 사건 조사의 숨통을 기어이 끊고 말았다.

 

과거 증거인멸과 배후를 밝히는 데 있어 부실수사를 한 적이 없었다는 수사책임자의 볼멘소리가 채 가시기도 전에, 검찰 수뇌가 나서 '사즉생'의 각오로 수사하겠다 한다.

잘못이 없는데 또 뭘 죽기 살기로 수사할 것인가. 아니나 다를까 수뇌부의 수사의지가 없어 수사가 표류하고 있다는 현직 검사의 토로가 전해진다.

 

이쯤 되면 이건 우리들의 나라가 아니다.

국가기관은 더 이상 모두에게 보탬이 되는 공익을 위해 존재하는 곳이 아니다. 그저 '각하'의 뜻을 구현하는데 매진하며 그의 심기를 불편하게 하는 일체의 대상에 대하여 가혹한 폭력을 행사하는 집단으로 존재하는 곳일 뿐.

 

우리가 그토록 소중히 생각한다던 민주주의, 수많은 이들의 목숨과 피가 맺혀 피어난 민주주의는 이렇게 다시 쓰레기통에 처박히고 말았다. 이제 그 당사자들은 주권자를 호도하며 다시 그 질긴 목숨을 이어가려 갖은 꼼수를 마다하지 않는다.

시민의 한과 눈물을 외면한채 앞장서서 불법사찰의 진실을 은폐하려 나서던 자들은 여전히 목소리를 높여 물타기에 여념이 없고, 이름을 바꾸었으니 자신과는 무관한 일이라 우긴다.

 

예전 그 고위당직자 회의에서 김종익씨를 상대로 악담을 퍼붓던 그 사람들은 대체 지금 어느 당 소속이란 말인가?

어째 하는 일마다, 하는 짓마다 그들이 그토록 증오한다는 북한을 닮았는가?

그렇게 약한 자의 팔을 비틀어대며 헌법을 휴지조각처럼 구겨가며 그들이 만들고자 하는 세상은 무엇인가?

 

그들의 눈에 시민은 없다. 언론도 노조도 공기업 간부도 민간기업 경영자도 모두 사찰과 감시의 대상일 뿐이다. 세상은 자신들의 뜻대로 이득을 안겨주는 곳이어야 하고, 그 탐욕에 걸림돌이 되는 모든 상대는 그저 척결해야 할 '불순분자'에 지나지 않기에.

 

우리에게 주어진 마지막 힘, 투표로 희망을!

 

  
 7일 오후 서울 덕수궁 대한문앞에서 열린 민간인불법사찰 진상규명 촉구 집회에서 자칭 '몸통' 이영호 전 청와대 고용노사비서관과 이명박 대통령 가면을 참가자들이 진상규명을 촉구하는 퍼포먼스를 벌이고 있다.
ⓒ 권우성
 민간인불법사찰

이제 우리가 할 일은 분명해졌다. 대한민국 안에서 힘깨나 쓴다는 이 기세등등한 자들을 한 번에 아울러 서슴없이 범행과 은폐에 나서게 재촉하는 거대한 힘의 발원을 찾아내 응징해야 한다.

주권자의 인권을 보호하고 법의 테두리 안에서 공공의 이익을 위해 헌신하는 공직자는 더 이상 우리 곁에 없다.

그렇다면 질식하려는 민주주의를 우리 스스로 되살려야 한다. '각하'의 나라나 '영부인'의 나라가 아닌, 국민의 나라를 되찾아야 한다.

 

방법은 하나 뿐이다. 담쟁이 잎 하나가 수많은 잎들을 이끌고 끝내 절망의 벽을 넘듯이, 우리 모두를 지키려는 마음으로 우리를 감시하고 우리 위에 군림하려는 그들에게 온 힘을 모아 철퇴를 안겨야 한다.

 

그리하지 않으면 언젠가 우리도 우리의 보금자리에서 쫓겨나 '비자금 관리인'이라는 오명을 뒤집어쓰게 될 것이므로. 손해배상은커녕 사과도 받지 못한 채 고단한 삶을 견디다, 끝내 자살을 결심하기에 이를 수 있으므로.

비록 지금은 저들과 이익을 같이 하는 일부 시민에게도, 언젠가 권력은 그들의 삶을 파괴하고 숨 쉴 자유마저 옭아매고야 말 것이다.

 

<뉴요커>의 특파원 자격으로 유대인 학살의 책임을 묻는 아돌프 아이히만에 대한 예루살렘 재판 과정을 지켜 본 한나 아렌트는 아이히만이 악마가 아니라 지극히 온순하고 가정적인 사람이라는 데 놀랐다.

 

"그는 사악하지도 않았고, 유대인을 증오하지도 않았다. 단지 히틀러에 대한 맹목적인 충성에서 관료적 의무를 기계적으로 충실히 수행했을 뿐이었다."

 

한나 아렌트의 결론은 '악의 평범성(banality of evil)'이라는 단어로 요약된다.

아이히만은 자기가 하는 일의 의미를 생각하지 않는 '반성적 사유의 결여' 때문에 '냉철한 톱니바퀴 기술자'가 되어 유대인을 아무렇지도 않게 학살했다는 것이었다.

예루살렘 법정의 검사는 "말하지도, 생각하지도, 행동하지도 않은 것이 아이히만의 죄"라며 그에게 사형을 구형했다.

 

괴벨스는 이런 말을 남겼다.

 

"거짓말은 처음에는 부정되고, 다음엔 의심받지만, 되풀이하면 결국 모두 믿게 된다."

"거짓과 진실의 적절한 배합이 100%의 거짓보다 더 큰 효과를 낸다."

"언론은 정부의 손 안에 있는 피아노가 돼야 한다."

"대중의 감성과 본능을 자극하라."

"복수에 목마른 적에게 맞서려면 한없는 증오를 활용해야 한다."

 

그러고는 끝내 이렇게 선언했다.

 

"우리는 국민들에게 강요하지 않았다. 그들이 우리에게 위임했을 뿐. 그리고 그들은 그 대가를 치르는 거다."

"승리한 자는 진실을 말했느냐 따위를 추궁당하지 않는다."

 

그러니 이제 우리는 누구에게 승리를 안길 것인가. 어떻게 진실을 말하도록 추궁할 것인가. 힘들고 두렵지만, 끝내 우리에게 주어진 마지막 힘을 다하자. 절대 포기하지 말자. 투표로, 희망을!

[ 오마이뉴스, 최강욱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