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정보원 직원이 자신에 대해 물어봤고 조선일보는 자신이 통합진보당 대의원이라는 내용을 대서특필했다. ‘유민아빠’ 주치의 이보라 의사에게 일어난 일이다.

심지어 이보라 의사가 보라색 옷을 입고 있는 것을 두고 인터넷에서는 통합진보당을 비꼬는 ‘보라돌이’라는 별명을 붙여줬고 조선일보는 <김영오 주치의(서울동부병원 이보라 과장)는 전 통합진보당 대의원>이라는 기사에서 아무런 맥락 없이 “서울동부병원 3층 기자회견장에서는 보라색 상의에 흰 가운을 걸친 ‘김영오씨 주치의’ 이보라 내과과장도 마이크 앞에 서 김씨 상태에 대해 설명했다”고 보도했다.

 

이보라 의사가 왜 김영오씨의 주치의가 됐는지에 대한 설명보다 보수언론은 그의 보라색 옷까지 통합진보당으로 연결시키는 ‘상상력’을 발휘했다. 나아가 국회의원도 이 의사의 신상정보를 요구하기에 이르렀다.

 

새누리당 이노근 의원은 자신의 병원 근무 직함과 계약 신분 내용, 김영오씨의 의료진료 활동이 공무원법 위반인지를 물었다. 이보라 의사의 신상 정보를 어떻게 활용하려고 했을지는 눈에 뻔하다.

현행법상 이보라 의사의 의료 진료활동은 전혀 문제될 게 없다. 그가 처음으로 김씨를 만나 진료활동을 한 것도 인도주의의사실천협의회 소속으로 유족들의 요청을 받고 이뤄졌다. 과거 단식 농성자와 노숙인, 독거노인 등을 돌보는 의료 진료활동의 연장선이다.

 

 

▲ ‘유민아빠’ 김영오 씨가 46일째 단식을 중단하기로 한 지난달 28일 오전 서울 동대문구 서울시립 동부병원에서 세월호가족대책위원회 이보라 주치의와 관계자들이 김영오 씨의 건강상태에 대해 발언하고 있다. ⓒ 연합뉴스

이 의사는 한때 통합진보당 당적을 가지고 있었지만 지난 2012년 탈당했다. 의사 신분은 조합원 자격이 없기 때문에 노조 경력도 없을 뿐더러, 그는 현재 서울동부시립병원의 1년 계약직으로 있다.
공무원 신분도 아니기 때문에 정치적 중립성 위반이라는 지적도 부적절하다.

 

김영오씨의 진료 활동은 순전히 세월호 가족들의 요청과 개인의 결정에 따라 이뤄진 것인데 어떻게든 이 의사의 활동에 ‘꼬투리’를 잡으려고 신상정보 등을 요구한 것으로 밖에 볼 수 없는 이유다.
이 의사는 미디어오늘과 인터뷰에서 김씨의 주치의가 된 것은 “순전히 개인과의 인연과 관계가 있다”고 말했다.

 

조선일보는 “김씨 측이 시립동부병원을 택한 또 다른 이유는 2011년 이 병원에 노조가 설립됐기 때문이라는 관측도 나온다”며, “동부병원 노조는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 소속인데 금속노조와 보건의료노조는 민주노총의 대표적인 산별 노조다. 그래서 김씨 상태에 대한 보안 유지나 협조가 보다 원활히 이뤄질 수 있다고 판단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라고 보도했다.

 

이에 대해 이 의사는 “강북삼성병원에도 제가 아는 의사들도 있지만 환자 입장에서 그동안 방문하고 봐줬던 의사가 근무하는 병원에 입원하고 싶어하는 것은 당연하다”며 “강북삼성병원의 경우 특진료 등 병원 비용이 비싼 그런 이유도 있을 수 있다”고 말했다.

 

이 의사는 서울동부시립병원에 근무하기 이전인 지난 2009년 삼성병원에서 근무한 사실도 있다. 노동조합 존재 여부와 이번 김씨의 이송과는 전혀 관련이 없다는 얘기이다.

 

이 의사는 통합진보당 대의원 활동에 대해서도 “사실 자체는 맞지만 전혀 관계가 없는 것을 끌어다 붙여서 통합진보당의 활동과 관계가 있는 것처럼 정치적인 의도로 진료를 했던 것처럼 덧씌운 것 같다”고 말했다.

 

이 의사는 또한 국정원 사찰 의혹이 불거진 것에 대해서도 “저도 레이더망에 걸렸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사실 무섭거나 두렵지는 않았다”며, “법적으로 문제 삼을 것도 없고 병원에서 잘리는 일이 있을 수 있지만 그만 두면 되는 문제인데, 이렇게 ‘보도거리’가 되는지도 사실 몰랐다”고 말했다.

 

이 의사는 오히려 김씨가 40일 넘게 단식 농성을 할 수밖에 없는 현실을 언급하며 “합리적으로 논의하는 과정이 전혀 없고 한쪽은 요구하고 한쪽은 전혀 들어주지 않아 이런 일이 생기는 것 같다”는 입장을 밝히기도 했다.

 

집요한 신상정보 캐기로 인해 이 의사의 심경 변화도 감지된다. 이보라 의사는 지난달 31일 조선일보 보도 이후 미디어오늘 인터뷰에서 “후회하지도 않고 부끄러울 게 없다”고 밝혔으나 지난 1일 국회의원의 신상정보 요구 사실이 알려진 두 번째 인터뷰에서는 “두렵다”라고 말했다. 이보라 의사는 최근 전화기를 꺼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