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심시간이 지나면 직원들은 업무용 노트북을 들고 무선인터넷을 이용할 수 있는 장소로 이동했다. 개별적으로 인터넷 활동을 하고 보안을 위해 활동 지역이나 카페도 수시로 바꾸었다.
“인터넷 자체가 종북좌파 세력들이 다 잡아 점령하다시피 했다. (국가정보원) 전 직원이 인터넷 자체를 청소한다는 자세로 이 세력들을 끌어내야 한다.”(2011년 10월21일)
원세훈 국정원장은 취임 한 달 만인 2009년 3월 “인터넷 청소”를 주도할 심리전단팀을 독립부서로 빼내고 사이버 심리전을 수행하는 팀을 신설했다. 이후에도 심리전단은 1급 부서로 격상됐고 인원이 80명으로 늘었다. 옛 심리전단팀은 주로 대북방송과 북한의 대남방송 차단을 맡았지만 새로운 팀은 ‘원장님 지시·강조 말씀’을 널리 전파하는 게 주 업무였다.
원세훈 원장은 매달 전 부서장 회의를 열어 국정원 운영 지침을 밝혔는데 그것이 ‘원장님 지시·강조 말씀’이다.
예를 들면 이렇다.
“선거에서 단일화하라는 게 북한의 지령이라고, 북한 지령대로 움직이는 건 결국 종북단체 아니야”(2010년 4월16일), “금년 아주 중요한 한 해 아닙니까. 총선도 있고 대선도 있고. 종북좌파들은 북한과 연계해 어떻게든 다시 정권을 잡으려고 그러고. 국정원이 금년에 잘못 싸우면 국정원이 없어지는 거야”(2012년 2월17일), “종북좌파 세력들이 국회에 다수 진출하는 등 사회 제 분야에서 활개치는데 우리 모두 부끄럽게 생각하고 반성해야 함. 직원 모두 새로운 각오를 (다져) 이들이 우리 사회에 발붙일 수 없도록 국정원의 존재 이유를 찾아야 할 것임”(2012년 6월15일).
2010년 2월부터 심리전단 활동을 총괄한 민병주 국정원 심리전단장은 ‘원장님 지시·강조 말씀’을 요약해 ‘이슈’와 이를 두세 줄로 정리한 ‘논단’을 날마다 심리전단 직원들에게 전달했다.
“외양이 커진 만큼 내실화에 힘써 종북좌파 척결, 현안 홍보뿐만 아니라 대통령 직속기관답게 VIP(대통령) 폄훼에도 적극 대응해야 함”(2012년 2월7일), “심리전단 업무는 법규에 접촉되는 것이 없으니 쫄지 말고 당당하게 일할 것”(2012년 8월24일), “선거 때문에 위축돼 우리가 하는 일을 소홀히 해서는 안 되며”(2012년 11월9일).
점심시간이 지나면 직원들은 업무용 노트북을 들고 무선인터넷을 이용할 수 있는 장소로 이동했다. 개별적으로 인터넷 활동을 하고 보안을 위해 활동 지역이나 카페도 수시로 바꾸었다.
검찰이 확보, 2심이 인정한 국정원의 정치·선거 글은 찬반 클릭 1214건, 게시글·댓글 2125건, 트위트·리트위트 27만4800건이다.
2012년 12월11일 국정원 심리전단 직원 김하영씨의 위치가 알려지면서 국정원이 증거(댓글·트위터)를 인멸했는데도 그 흔적을 완전히 감출 수 없었던 것이다.
국정원법 제9조(정치관여 금지)는 “직원은 특정 정당 또는 특정 정치인에 대해 지지 또는 반대하는 의견을 유포하는 행위를 해서는 아니 된다”고 돼 있다. 이를 어기면 5년 이하의 징역과 자격정지에 처해진다.
하지만 국정원은 노골적으로 이명박 대통령과 새누리당을 지지하고 야당을 비판하는 정치글을 퍼뜨렸다. “이(명박) 대통령이 라디오를 통해 기부문화의 정착을 강조했는데, 재산을 사회에 환원한 대통령 말씀이라 가슴에 크게 와닿는 것 같습니다”(12월11일), “(대통령의) 이번 순방도 신규 원전 수주를 위함이라는데 임기 말까지 국익을 위해 최선을 다하시는 열정이 느껴지네요”(11월26일), “차기 교육감은 반드시 우파에서 나와야 합니다”(9월18일), “현재까지 국회의원 공천받은 인간들 중 가장 쓰레기 같은 인간들만 모인 곳이 어디일까? 바로 통합민주당입니다”(3월8일), “불체포특권 포기, 연금제도 개선, 겸직 금지, 무노동·무임금 등 정치 혁신하는 새누리당”(6월8일).
2012년 국정원이 작성한 트위트·리트위트 27만4800건을 분석해보니, 1~6월엔 선거글이 5~16%로 낮은 비중을 차지하다가, 대선이 실시된 12월에 83%로 치솟았다. 역전 시점은 7월인데 특히 박근혜 후보가 새누리당의 대통령 후보로 확정된 8월20일을 기점으로 선거글 비중이 정치글을 앞질렀다.
선거글은 여당 지지, 야당 반대 성향을 뚜렷이 드러냈다.
△안철수 후보 반대:
“안철수에 대한 추석 민심은 대략 이렇다네요. 안철수는 정치할 줄도 모르면서 방송인에 편승해 대통령 나왔는데 검증 과정에서 국민들 실망만 안겨주고 대통령감도 아니다. 고집 있어 단일화 안 할 수도 있다.”(9월30일)
△문재인 후보·민주당 반대:
“문재인 후보가 75년 유신 반대 시위로 구속 수감된 전과가 있네요. 국법을 어긴 전과자가 대통령 출마하는 것이 과연 적절한지 잘 분별해야겠네요.”(9월18일)
△이정희 후보와 통합진보당 반대:
“종북녀 입만 열면 거짓말하고 질문을 하면 답변은 하지 않고 자기 미화만 하네. 확실히 종북녀를 아무나 하는 게 아니구나 하는 생각이 맞네.”(12월4일)
△박근혜 후보와 새누리당 지지:
“현 시점에서 친북, 종북은 절대 안 된다. 확고하고 올바른 안보관을 갖고 있는 박근혜가 정답이다.”(10월16일)
국정원은 선거 쟁점마다 특정 후보 지지·반대 글을 작성해 조직적·체계적으로 전파했다.
안철수 후보의 △룸살롱 발언 △아파트 입주권 구입 △논문 표절 논란에 대해선 부정적이었다.“악마는 천사의 얼굴로 온다. [단독] 안철수, 아내 다운계약서 이어 이번에는 서울대 채용 때 제출한 논문이… 충격.”(9월28일)
역시 민주당의 △당내 경선 △북방한계선(NLL) 포기 발언 △금강산관광 재개 △비무장지대(DMZ) 내 겨울올림픽 경기장 건설 등에 대해서도 칼날을 세웠다. “노무현 NLL 관련 회담을 준비했던 사람들이 모두 문재인 캠프에 참여했습니다. NLL은 과거형이 아니라 현재형입니다.”(11월16일)
반면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에겐 든든한 지원세력이 됐다. 인혁당 사건이 재심에서 무죄판결을 받은 것을 두고 박 후보가 “두 개의 판결”이라며 인정하지 않는다는 뜻을 내비쳤을 때다. “인혁당 사건이 자꾸 보도되는 것은 박근혜가 예상외로 잘나가자 수세에 몰린 야당과 좌파 떨거지들이 박근혜를 과거사에 옭아매려고 기획적으로 터트려서 그런 것이다.”(9월12일)
대통령 선거에 개입한 혐의로 원세훈 전 국정원장은 2013년 6월 불구속 기소됐다. 1심에서는 ‘정치 개입 유죄, 선거운동 무죄’로 판결했지만, 지난 2월9일 2심에서는 선거운동까지 유죄로 인정했다. 유무죄를 뒤집은 결정적 증거는 국정원 심리전단 김아무개씨의 개인 전자우편 첨부파일에서 나왔다(제1030호 사회 ‘면죄부 주느라 애쓰셨습니다’ 참조).
검찰은 압수수색을 통해 김씨가 ‘내게 쓴 메일’에 보관하던 두 가지 텍스트 파일을 입수했다.
민병주 심리전단장이 2012년 4월25일부터 12월5일까지 매일 전달한 ‘이슈와 논지’를 담은 ‘425지논’(4월25일논지)과 국정원 직원 이름과 269개 트위터 계정, 비밀번호, 활동 내용 등을 담은 ‘ssecurity.txt’(시큐리티 파일)였다.
국정원의 트위터 활동을 밝혀낼 핵심 증거였다.
김씨는 법정에서 “이메일 계정을 내가 사용한 것은 사실이지만 시큐리티 등의 첨부파일은 작성한 기억이 없다”고 진술했다.
1심 재판부는 문서의 경우 그 자체로는 증거능력이 없고, 작성자의 법정 진술만 인정하는 형사소송법 ‘전문 증거 배척 법칙’에 따른다며, 이 파일을 증거로 채택하지 않았다. 결국 국정원 직원들이 인정한 175개 트위터 계정과 이 계정에 담긴 11만여 트위트 내용만으로 선거법 위반 여부를 가렸다.
결론은 선거법 무죄. 국정원의 트위터 활동이 “선거에 영향을 미치는 행위”라고 볼 수 있지만 “선거운동”이라고는 할 수 없다는 이유에서다. 특정 후보자의 당선·득표·낙선을 목적으로 두지 않았고 능동적·계획적 행위도 아니라는 뜻이다.
그러나 2심 재판부는 ‘425지논’과 ‘시큐리티 파일’ 모두 증거로 채택했다. 형사소송법 제315조를 보면 “업무상 필요로 작성한 통상문서는 증거로 할 수 있다”고 돼 있기 때문이다.
“김씨의 트위터 활동 업무는 통상적 업무이고, 두 파일 내용은 업무와 관련한 자료를 수시로 참고하며 필요한 내용을 계속 추가·보충한 것이라 통상문서로 평가함이 타당하다.”
그 결과 증거로 채택된 트위터 계정은 175개(1심)에서 716개(2심)로, 트위트·리트위트는 11만3621건(1심)에서 27만4800건(2심)으로 늘었다.
그 증거를 면밀히 검토한 2심 재판부의 결론은 선거법 유죄.
국정원이 원세훈 전 원장의 일관된 지시에 따라 낙선운동을 목적으로 조직적·체계적으로 야당 후보에 대한 반대 댓글 전파 활동을 벌였다는 것이다.
“종북세력에 대한 사이버 심리전이라는 명분을 도대체 읽어낼 수가 없다.” 특히 국정원이 심리전 대상인 종북세력의 개념을 명확하게 하지 않는 것이 근본 원인이라고 지적했다. “북한이 우리 정부 정책에 반대하고 있는 이상 정부 정책에 반대하는 세력은 곧 북한에 동조하는 세력이라는 입장에 기초해 사이버 활동을 했다. 그 결과 북한과의 관련성 등 근거도 없이 정부 정책 등에 반대하는 입장을 비난했고, 특정 정당이나 후보자를 반대하고 지지하는 글을 (국정원이) 전파했다.”
집행유예를 선고한 1심과 달리, 2심은 원 전 원장에게 징역 3년, 자격정지 3년을 선고하고, 곧바로 법정구속까지 했다.
재판부는 양형 이유를 설명하며, 2007년 국정원이 발간한 ‘과거와 대화, 미래의 성찰’ 보고서를 인용했다.
“정보기관의 정치 개입은 민주주의 근본을 무력화하고 민주주의 자체에 대한 위협이며, 그중 ‘선거 개입’은 어떤 명분으로도 정당화되거나 합리화될 수 없는 문제다.”
구치소에 수감된 첫날, “잠도 제대로 못 잔” 원세훈 전 원장은 “2심 판결에 황당해하며” 받아들일 수 없다고 대법원에 상고했다. 다시 출발선이다.
정은주 기자 eju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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