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정 세웠지만 처벌할 순 없었던 검찰의 ‘꼼수’ : 산케이 기자는 무죄, 우리 국민은 유죄
道雨2015. 12. 19. 12:25
법정 세웠지만 처벌할 순 없었던 검찰의 ‘꼼수’
[분석] 공인 아닌 사인 박근혜 명예훼손? "허위사실 맞지만" 빠져나갈 구멍 찾은 법원
가토 다쓰야 전 산케이신문 서울지국장은 무죄였다.
1심 재판부는 “피고인(가토 다쓰야)이 소문 내용이 허위임을 미필적으로나마 인식하고 있었다 하더라도, 그 대상은 대한민국의 ‘대통령’으로 보일 뿐, ‘대통령’이 아닌 ‘사인(私人)’ 박근혜에 대한 비방의 목적을 인정하기 어렵다”고 판시했다. 미필적 고의에 의해 허위내용을 기사에 담았으나, 비방 목적을 찾을 수 없어 무죄라는 결론이었다. 대다수 언론은 ‘허위 보도’, ‘비방 목적은 없어’, ‘검찰의 무리한 기소’ 등의 프레임으로 접근했다.
그런데 가토 다쓰야 무죄 판결에는 몇 가지 특이한 점이 있다. 크게 세 가지다.
첫째, 검찰은 정보통신망이용촉진및정보보호등에관한법률위반(명예훼손)으로 가토 다쓰야를 기소했다. 만약 검찰이 재판과정에서 비방 목적을 증명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면, 형법 307조 일반 명예훼손 혐의로 공소장을 변경할 수 있었다. 그럼 가토 다쓰야는 유죄를 받을 가능성이 지금보다 높아졌을 것이다.
언론법에 밝은 한 변호사는 “공소장을 일반 명예훼손 혐의로 변경했다면 비방 목적을 증명하지 않아도 되므로 검찰에게 유리해졌을 텐데, 왜 공소장 변경을 검토하지 않았는지 의문”이라고 전했다.
검찰은 왜 공소장을 변경하지 않았을까. 검찰이 법을 잘 몰랐거나, 혐의 입증에 소극적이었거나 둘 중 하나로 보인다.
선고공판이 한 차례 미뤄지고 “선처를 부탁한다”는 외교부 공문이 재판부에 전달됐던 점에 미뤄봤을 때, 검찰 또한 공판 내내 외교적 압박에 시달렸을 가능성이 있다. 검찰 역시 정부 측 관료이기 때문에 외교마찰에 민감할 수밖에 없다.
최보식 조선일보 기자를 포함해 보수 성향 언론사 간부들까지도 기소단계부터 검찰기소가 무리하다고 지적한 바 있다.
그럼에도 검찰이 기소를 해야만 했던 이유는 다들 알고 있을 것이다.
▲ 한국일보 12월18일자 2면 사진기사.
재판부는 “허위보도이나 언론자유를 폭넓게 인정한다”며, 박근혜정부의 면도 살려주고 외교 마찰도 최소화하는 ‘묘수’를 찾았다.
검찰도 ‘무리한 기소’였다는 비판은 어차피 감수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가토 다쓰야의 유죄를 피하기 위한 방안을 찾을 수밖에 없었을 것이란 해석이 나오는 대목이다.
재판부는 박근혜정부의 면을 살리기 위해 독특한 논법을 구사하기도 했다. 이번 판결문에 드러난 두 번째 특이점이다.
검사는 대통령으로서의 박근혜와 사인으로서의 박근혜가 모두 피해자라고 주장했는데, 재판부 역시 이러한 구분 짓기 프레임을 따라간다.
박근혜 대통령은 ‘대한민국 대표 공인’이다. 공인 중에서도 공인이다. 이번 판결에선 이례적으로 공인 박근혜와 사인 박근혜를 구분했다. 보통 공인보도가 법정으로 갔을 때 쟁점은 공인의 사생활 보도 범위와 위법성조각 사유다.
공인을 공인/사인으로 구분함으로서 재판부는 다음과 같은 결론을 도출했다. “허위 소문 내용을 근거로 한 대통령의 업무수행에 대한 비판이 타당하지 않다고 하여, 이 사건 기사로 ‘대통령’ 박근혜에 대한 명예훼손이 곧바로 성립된다고 할 수는 없다.” 즉 공인 박근혜의 명예훼손혐의는 성립하지 않았다. 그러나 재판부는 곧바로 “(산케이 기사는) 사인 박근혜의 명예를 훼손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판시했다. 공인 박근혜 명예는 훼손되지 않았으나, 사인 박근혜 명예는 훼손됐다는 것이다.
이 같은 구분 짓기로 “세월호 당일 박 대통령 행적 의혹 보도 명예훼손 해당되나 비방 목적 아니다”(중앙일보 18일자 10면), “가토 칼럼, 허위사실·명예훼손 맞지만 비방 목적은 없다”(조선일보 18일자 10면)와 같은 기사 제목이 가능해졌다. 정확한 표현은 ‘사인 박근혜의 명예훼손’이지만 이 부분은 기사 제목에서 생략됐다. 그 결과 독자들은 대통령에 대한 명예훼손이 인정됐다고 오해하기 쉽다. 공인보도관련 판결에서 ‘사인의 명예훼손’을 구분한 특이점에 대한 의문도 기사에서 찾기는 어려웠다.
이 같은 구분 짓기 프레임이 일반적이고 정당하다면 채동욱 전 검찰총장도 “사인 채동욱의 명예가 훼손됐다”고 주장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사실여부와 상관없이 사인 채동욱의 내밀한 영역이 까발려졌기 때문이다.
▲ 가토 다쓰야 전 산케이 서울지국장의 17일 기자회견 모습. 사진=이치열 기자
이번 재판의 또 하나 특이점은 선고공판 이전에 기사의 허위사실 여부를 규정한 점이다.
보통은 선고공판에서 허위사실여부를 판단하지만, 재판부는 지난 3월30일 공판에서 “가토 전 지국장이 기사에 게재한 소문의 내용은 합리적 의심이 없을 정도로 허위”라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변호인 측이 요구했던 4월16일 당일 청와대 경호기록 사실조회 신청 당시 “납득하기 어려운 주장에 기초한 사실 조회 요청을 받아들이지 않겠다”며 거부하기도 했다.
재판부가 일찌감치 정리한 허위사실은 이렇다.
①대통령이 세월호 침몰 사고 당일 비밀리에 접촉하는 사람인 정윤회와 함께 있었다.
②두 사람은 단순히 업무상 아는 사이 이상의 긴밀한 남녀관계이다.
정윤회씨의 휴대전화 발신지 추적기록이나 청와대 경호실 출입 관련 공문, 정씨와 점심을 먹었다는 지인 이아무개씨의 증언 등으로 박 대통령의 사라진 7시간 동안의 알리바이가 입증되지는 않는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박 대통령의 행적을 둘러싼 사실관계는 박근혜 정부에서 객관적으로 나오기 어렵다. 누구나 인정할 수밖에 없는 전제다.
결국 행적에 대한 논란은 판사의 판단영역으로 정리하고, 비방이냐 공익보도냐 문제로 전환하며 판결의 정치적 부담을 덜었다는 해석이 나온다.
오랜 기간 법조를 담당한 종합일간지 기자는 “재판부가 사건의 본질에 해당하는 비방에 초점을 두고 위법성 조각사유를 판단하려는 것 같다. 판사로선 대통령의 행적이 객관적으로 안 나올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7시간을 둘러싼 공방보다는 사건의 본질인 언론 자유의 문제에 주력하려는 것이 낫다고 판단한 것”이라 지적하기도 했다.
재판부는 △대통령이 세월호 침몰 사고 당일 정윤회와 함께 있지 않았다는 사실 △두 사람이 긴밀한 남녀관계가 아니라는 사실을 검찰이 입증해야 한다면서도 “대통령과 정윤회가 긴밀한 남녀관계가 아니라는 사실은 특정되지 않은 기간과 공간에서 구체화되지 않은 사실의 부존재에 관한 것이므로, 이에 대한 증명책임은 다소 완화되어야 한다”고 밝히며 검찰의 부담을 덜어주기도 했다.
이번 판결에서 주목할 점은 재판부가 “대통령의 세월호 침몰 사고 당일의 행적 또한 공적 관심 사안에 해당한다”고 판시한 사실이다.
재판부는 “이 사건 기사에서 다룬 소문의 취지는 대통령이 정윤회와 긴밀한 남녀관계이고, 세월호 침몰 사고 당일에 정윤회를 만나느라 사고 수습에 주력하지 않았다는 것이다”라고 전한 뒤 “소문에 관한 표현 방법과 내용은 부적절하나, 위 소문 내용 자체는 공적 관심 사안에 해당한다”고 판시했다.
재판부는 “이 소문을 보도하는 데 있어서도 언론의 자유는 폭넓게 인정되어야 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한국 언론은 이 같은 소문 또는 의혹과 관련된 보도에 굉장히 소극적이다. 이는 외신보도까지 기소하는 박근혜정부의 언론통제 상황과 무관하지 않다.
또 한 가지 짚고 넘어갈 점이 있다.
국경없는기자회가 발표한 언론자유지수(2015)에서 61위를 기록한 일본이 60위를 기록한 한국에게 ‘언론자유’를 운운하게끔 만들고, 반공을 가치로 내건 극우신문 산케이와 가토 다쓰야를 언론자유투사로 만든 이는 누구인가.
검찰이 무리한 기소에 나서고, 재판부가 공인을 공인과 사인으로 나눠 판결해야만 했던 건 누구 때문인가.
그 누군가가, 떠도는 ‘소문’을 신나게 받아 적은 일본의 황색저널리즘에 정색하고 달려들지만 않았다면, 애초에 일어나지도 않았을 일을 국민들이 겪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이 세월호 참사 당일 7시간 동안 박 대통령의 보좌관 출신 정윤회씨와 같이 있었다는 소문과 의심을 게재한 것에 대해, 법원은 공적 관심의 영역이며, 허위라 해도 사인 여성 박근혜를 비방했다고 볼 수 없다고 판단해 파장을 낳고 있다.
특히 재판부는 산케이신문 기자가 그 만남에 대한 소문을 허위라고 인지했다고 판단하면서도 비방의 목적이 있다고 볼 수 없다고 봤다. 이에 따라 문제의 7시간 동안 박 대통령과 정씨의 만남을 거론한 누리꾼 등이 박 대통령 명예훼손으로 유죄를 선고받은 사건도 동일한 잣대가 적용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0부(재판장 이동근 부장판사)는 17일 박 대통령 명예훼손 혐의로 기소된 가토 다쓰야 산케이신문 전 서울지국장에 대해 무죄를 선고한 판결문에서 박 대통령의 행적을 공적 관심 사안에 해당한다고 분명히 밝혔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대한민국 대통령은 국가원수이자 행정부의 수반인 국가기관으로서 세월호 침몰 사고 당시의 구조 활동에 관해서 필요한 모든 지시를 할 수 있는 권한이 있다”며 “따라서 세월호 침몰 사고 당시 대통령이 어떠한 업무를 수행하였는가는 당연히 공적 관심 사안”이라고 밝혔다. 재판부는 “나아가 대한민국헌법과 정부조직법에 규정된 대통령의 지위·의무·권한 등을 고려하면, 대통령은 그 지위 자체가 공적 존재이므로, 업무수행 과정에서 한 직접적 행위뿐만 아니라 그와 관계된 행위 역시 원칙적으로 공적 관심 사안에 해당한다”며 “(박근혜) 대통령의 세월호 침몰 사고 당일의 행적은 공적 관심 사안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박 대통령이 정씨와 만나느라 사고 수습에 주력하지 않았다는 산케이신문의 주장에 대해 재판부는 “소문에 관한 표현 방법과 내용은 부적절하나, 위 소문 내용 자체는 공적 관심 사안에 해당한다”며 “대통령의 업무수행 측면에서 보면 대통령의 업무수행에 대한 비판에 해당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따라서 이 소문을 보도하는 데 있어서도 언론의 자유는 폭넓게 인정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가토 다쓰야 전 산케이신문 서울지국장이 17일 박근혜 대통령 명예훼손 1심 재판에서 무죄 판결을 받고 프레스센터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이치열 기자 truth710@
박 대통령이 정씨와 만났다는 소문을 두고 재판부는 “허위이므로, 이를 근거로 한 대통령의 업무수행 비판 역시 타당하다고 할 수는 없겠으나, 대통령의 업무수행에 대한 비판이 타당하지 않다고 ‘대통령’ 박근혜에 대한 명예훼손이 곧바로 성립된다고 할 수는 없다”고 썼다.
재판부는 다만 “‘사인(私人)’인 박근혜의 명예를 훼손한 것으로 보인다”고 추정했다. 가토 전 지국장이 기사에서 △단순히 소문을 적시하거나 의혹을 제기하는데 그치지 않고 정씨의 과거 경력이나 이혼 사실을 구체적으로 기재할 뿐 아니라 정부가 소문의 확산을 막으려 한다는 느낌이 들도록 썼으며 △소문 자체는 공적 관심 사안이라 해도 모두 허위이고 △소문의 사실관계에 대해 별다른 확인도 하지 않고 미필적으로나마 허위성에 대한 인식도 있었던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재판부는 그런 추정과 근거를 설명하면서도 “(그렇다고 해서 산케이신문이) 전달하고자 했던 대상은 세월호 침몰 사고 당시 대한민국의 ‘대통령’이지, 어떤 남성과 남녀관계라는 소문이 있는 대한민국의 일반적 여성 ‘개인’이라고 보기는 힘들다”고 판단했다. 결국 “공적 관심 사안을 빙자하여 ‘사인(私人)’ 박○○를 해하려는 의사로 이 사건 기사를 작성하였다고 보기 어렵다”는 것이 재판부의 판단이다.
그러나 산케이신문 기사의 핵심인 박근혜-정윤회 만남 여부에 대해 재판부는 허위일 뿐 아니라 가토 전 지국장이 허위로 알고 있었을 것으로 판단했다. 재판부는 “박 대통령이 세월호 침몰 사고 당일 정씨를 만났음을 암시하고 있다”면서 “당일 박 대통령이 정씨와 함께 있었다는 사실과 두 사람이 ‘긴밀한 남녀관계’라는 것이 모두 객관적 사실과 합치하지 않아 허위임이 인정된다”고 밝혔다. 더구나 기사 작성에 있어 어느 정도 주의를 기울여야 하는지를 인식했을 것으로 보이는 가토 전 지국장의 기자 경력 등으로 볼 때 한 나라의 국가원수 관련 소문을 기재하면 파급력 어떨지도 충분히 알고 있었다고 보인다고 재판부는 지적했다. 재판부는 “이는 소문 내용이 허위임을 미필적으로나마 인식하고 있었던 것으로 판단된다”고 밝혔다.
기자가 허위임을 인지한 상태에서 소문을 전달한 것인데도 공적 관심의 영역에 해당하므로 박근혜 7시간 의혹제기가 무죄라는 판단이다.
그러나 산케이신문 기자가 아닌 다른 일반인 신분 또는 누리꾼이 온라인에 박 대통령과 정윤회씨 만남을 다소 거칠게 묘사하고 과장된 표현을 쓴 것은 명예훼손 혐의가 인정돼 유죄 판결을 받았다.
서울중앙지법 형사4단독 전기철 판사는 지난 16일 해경 123정의 밧줄 전복 의혹과 잠수함 충돌 가능성, 7시간 동안 박 대통령과 정윤회씨의 만남 등을 거론했다 명예훼손 혐의로 기소된 IT보안전문가 김현승씨에 징역 10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김씨는 지난해 9월~11월 “그시간 박근혜는 정윤회와 진도에서 해경123정 김경일 경정에게 전화해 세월호 뒤집으라 명령”, “박근혜와 정윤회 7시간이 사적으로 무슨 큰 문제인가, 연인 최태민 사위와의 대를 이은 패륜이란 문제 외에는” “××× 박근혜가 모독을 입에 올려?” 등의 표현을 트위터 등에 올렸다.
전기철 판사는 이를 두고 “대통령 관련 피고인이 게시한 글도 특정되지 아니한 기간과 공간에서의 구체화되지 아니한 사실로서, 피고인은 이에 대하여 증명을 하지 못하고 있다”며 “게시된 글의 내용은 아무런 근거가 없는 원색적 허위의 적시이고, 세월호 침몰사고에 대한 아픈 마음에서 비롯된 정당한 의혹제기라는 주장마저 무색하게 만드는 내용에 불과하다”고 판단했다.
전 판사는 “증거에 의해 인정되는 허위사실의 내용, 표현의 방법, 훼손될 수 있는 명예의 침해 정도 등을 고려하면 피고인에게 비방의 목적도 충분히 인정된다”고 밝혔다.
박근혜 대통령이 세월호 참사가 터진 지난해 4월 16일 7시간 만에 중앙재난안전본부를 방문했다. 사진=청와대
김씨의 변호인 김용민 변호사는 18일 미디어오늘과 인터뷰에서 “가토 전 지국장이 박 대통령과 정윤회씨의 만남을 거론한 것이라면, 김씨는 박 대통령이 현장에서 세월호 전복에 관여했다고 주장한 점에서 차이가 있다”면서도 “하지만 맥락과 취지는 다를 게 없다. 김씨 역시 공적 관심사인 박 대통령의 7시간에 대한 합리적 추론이나 나름의 근거를 토대로 얘기한 것인 만큼 적어도 정윤회와 관계를 문제삼은 부분은 무죄여야 한다”고 밝혔다. 그는 “(다른 대통령 관련 언급에 대해) 자유로운 토론과 비판을 허용해야 한다”며 “대통령에 대해서는 더 그렇다”고 강조했다.
항소심을 진행할 때도 산케이 전 지국장 판결을 인용해 항변하게 될 것이라고 김 변호사는 전했다.
가토 전 지국장이 거론한 박 대통령-정윤회 만남설 자체를 허위로 판단한 것을 두고 김 변호사는 “그 재판부(가토 지국장 판결)는 사실관계를 섣불리 단정한 면이 있는 반면, 우리 판사는 김씨가 제기한 수많은 의혹을 하나도 구체적으로 판단하지 않았다”며 “그런 면에서 가토 판결의 경우 후속사건에 안좋은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세월호 특조위에서도 7시간을 조사한다고 했는데, 이에 대한 법원의 가이드라인의 효과를 줄 수 있기 때문”이라고 평가했다.
더구나 누리꾼인 김씨에 대해 의혹을 증명하지 못했다고 죄를 물은 것도 가토 판결구조와 다르다는 지적이다. 김 변호사는 “가토 판결은 사실관계를 판단한 뒤 판결을 한 반면, 김현승씨 판결의 경우 판사가 사실관계를 확정짓지 못하고 유죄로 결론 내린 판결”이라며 “김씨가 박 대통령 문제 뿐 아니라 세월호 침몰원인의 의혹을 제기한 것이 거짓이려면, 진실한 침몰원인이 따로 있어야 한다. 하지만 진상은 조사중이며 아직 결론이 나지 않았다. 그렇다면 판단의 여지를 남겨놓았어야지 섣불리 유죄로 결론을 내서는 안됐다”고 밝혔다.
다만 거친 표현이나 욕설이 포함된 글에 대해, 변호인과 김씨는 모두 모욕죄를 적용한다면 받아들이겠다는 입장이다. 모욕죄는 친고죄에 해당한다.
세월호 참사 당일 박근혜 대통령의 ‘사라진 7시간’의 행적에 관한 의혹을 칼럼으로 다뤘다가, 검찰에 의해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상의 명예훼손 혐의로 기소된, 일본 <산케이신문>의 가토 다쓰야 전 서울지국장이 무죄 선고를 받았다.
서울중앙지법 형사30부(재판장 이동근)는 17일, 1년여의 심리 끝에, 가토 전 지국장에게 ‘기사 내용은 명예훼손에 해당하나, 대통령에 대한 개인 비방 목적은 없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또 산케이의 해당 기사는 “언론자유의 보호 영역에 해당한다”고 밝혔다.
법원이 검찰의 ‘대통령 눈치 보기’에 따른 무리한 기소에 철퇴를 가한 셈이다.
이번 무죄 판결에 따라 우선 검찰은 책임을 피할 수 없게 되었다.
검찰의 무리한 기소가 국내외에 언론자유 탄압이라는 거센 비판을 불러일으켰고, 한-일 관계에도 악영향을 끼친 점을 생각하면, 평지풍파를 일으킨 검찰에 무거운 책임을 물어야 마땅하다.
명예훼손죄가 당사자가 처벌을 원하지 않으면 기소를 하지 못하는 ‘반의사 불벌죄’임을 고려하면, 그런 의사를 밝히지 않아온 박 대통령에게도 상당한 책임이 있다.
법원의 무죄 판단은 법리나 판례, 국제적 흐름에 비추어도 합당하다.
유엔을 비롯한 많은 국제기구가 명예훼손 형사처벌 제도의 폐지를 권고하고 있고, 대법원도 국가기관과 공직자의 업무와 관련한 의혹 제기는 명예훼손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단해왔다.
이번 기회에 정부는 아예 국제적 기준에 맞게 명예훼손 형사처벌 제도를 폐지하는 것을 적극 검토하기 바란다.
이번 판결로 한-일 관계의 큰 악재가 제거된 것은 다행이다. 외교부가 법무부를 통해 ‘한일관계를 위해 선처를 바란다’는 공문을 이례적으로 재판부에 제출한 것만 봐도, 이번 사건이 얼마나 한-일 관계 발전에 민감한 현안인지를 짐작할 만하다. 실제 일본 정부는 이 문제를 민주주의 가치가 걸린 사안으로 보며, 정상회담을 비롯한 외교 통로를 통해 지속적으로 문제를 제기해왔다.
물론 이번 보도가 무죄가 되었다고 해서 산케이의 해당 기사가 정당성을 확인받은 것은 아니다. 산케이의 해당 기사는 사실 판단의 오류와 자의적인 판단이 섞인 ‘불량제품’임이 분명하다.
이번 사건은 언론자유는 폭넓게 용인해야 하지만, 언론인도 보도를 책임있게 해야 한다는 무거운 교훈을 던져주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의 세월호 사고 당시 행적에 대한 의혹을 보도했다가, 박 대통령 등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혐의로 불구속기소된 가토 다쓰야(加藤達也·49) 일본 산케이(産經)신문 전 서울지국장이, 1년 2개월만의 재판 끝에 1심 법원으로부터 무죄를 선고받았다.
다만 가토 전 지국장이 작성한 기사의 내용이 허위라는 점은 법원도 인정했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0부(부장판사 이동근)는 정보통신망법상 명예훼손 혐의로 기소된 가토 전 지국장에 대해 17일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박 대통령과 정윤회씨를 둘러싼 소문이 거짓이라는 점을 인정하면서 "가토 전 지국장은 기사 작성 당시 소문의 내용이 거짓이라는 점을 미필적으로 인식했다"고 판단했다.
또 개인 박근혜와 대통령으로서의 박근혜를 엄밀히 구별하면서 "대통령의 업무수행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비판에 해당하지만, 개인 박근혜의 명예를 심각하게 훼손했고, 정씨의 명예도 훼손했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재판부는 명예훼손 혐의가 유죄로 인정받기 위한 마지막 요건인 '비방의 목적'을 인정하지 않았다.
재판부는 "한국의 정치·경제 사안에 대한 시각을 일본에 전달하고자 한 의도로 기사를 작성한 것"이라며 "개인 박근혜를 비방하려는 목적은 없었다"고 판단했다.
다만 "재판부가 이같이 판단한 것은, 검사가 기소한 구성요건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것이지, 가토 전 지국장의 행위가 타당하고 적절하다는 것은 결코 아니다"며, "잘못된 사실을 기초로 공직자를 희화화하는 행동이 적절하다고 보기는 어려우며, 이 사건이 건전한 언론 풍토가 조성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고 강조했다.
한편 우리 외교부는 선고를 앞두고 가토 전 지국장의 선처를 호소하는 일본 입장을 재판부에 전달했다.
가토 전 지국장은 조선일보의 한 기명칼럼을 인용해 세월호 참사 당일인 지난해 4월16일 낮 7시간 동안 박 대통령의 소재가 파악되지 않았다고 지적하면서 사생활 의혹을 제기했다.
이후 사단법인 영토지킴이 독도사랑회 등 보수단체는 가토 전 지국장을 "근거없는 허위사실로 국가원수의 명예를 훼손하고 국기를 문란케했다"며, 같은 해 8월 가토 전 지국장을 검찰에 고발했다.
이어 검찰은 가토 전 지국장이 근거없이 박 대통령에게 부적절한 남녀관계가 있는 것처럼 허위로 적시해 명예를 훼손했다고 보고 정보통신망법상 명예훼손 혐의를 적용해 같은 해 10월 불구속기소됐다.
검찰은 1년에 걸친 재판 끝에 지난 10월 열린 결심 공판에서 "대한민국이 사회적, 정치적으로 혼란한 상황에서 출처불명한 소문을 근거로 대통령의 명예를 훼손했다"며, 가토 전 지국장에 대해 징역 1년6월을 구형했다.
당시 일본 정부 대변인인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관방장관이 "무척 유감스럽다"고 성명을 발표하는 등, 일본 정부 역시 이례적일 만큼 민감하게 대응하기도 했다.
"민·형사상 책임을 끝까지 물을 것"이라던 한국 정부가, 박근혜 대통령과 정윤회씨의 명예를 훼손한 혐의로 기소됐던 가토 다쓰야 일본 <산케이신문> 전 서울지국장의 무죄 판결에 대해 "한·일관계 개선의 계기가 되기를 기대한다"고 환영 입장을 밝혔다.
정부의 입장이 돌변한 것도 어리둥절하지만, 애초 죄가 안 되는 일로 외국 언론인을 1년 4개월 동안 괴롭히며, '언론 자유 후진국'이란 오명만 초래했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게 됐다.
17일 서울중앙지법은 "특히 공직자에 대한 비판은 가능한 보장되어야 하며, 공직자의 지위가 높거나 권한이 클수록 보장의 범위도 넓어야 한다"고 판결했다. 지난해 8월 검찰이 가토 지국장을 출국금지한 때부터 많은 언론과 법조인들이 비판한 것과 같은 맥락이다.
이 판결이 내려지기 직전, 외교부는 '일본 측의 선처 요청을 참작해달라'는 공문을 법무부에 보낸 걸로 확인됐다. 법무부는 검찰을 통해 재판부에 외교부의 선처 호소 내용을 제출했다. 가토 전 지국장 변호인들에 따르면 이 문서가 재판부에 제출된 건 지난 15일로, 선고가 이뤄지기 겨우 이틀 전이다.
외교부의 선처 호소가 판결에 영향을 미쳤다고 보긴 어렵다. 가토 전 지국장의 변호인인 전준영 변호사(법무법인 동인)는 "원래 선고기일이 11월 26일이었는데 한번 연기해 오늘 선고한 것이기 때문에, 사건기록을 검토하고 판결문을 쓸 시간은 충분했다고 본다"며, "외교부 문서를 판결에 반영했을 거라는 건 시간상으로도 맞지 않다"고 설명했다.
외교부가 재판부에 일본 측의 선처 호소를 전달하며 참작해 줄 것을 요청한 건 '한국 정부는 양국 관계 악화를 원하지 않았다'는 증거를 남기기 위해서일 가능성이 높다.
가토 전 지국장이 유죄를 받아 일본 정부의 강력한 항의가 제기되면 '면피용'으로, 무죄를 받으면 '한·일관계 개선 계기'로 활용할 수 있다는 계산이 성립된다.
하지만, 애초 기소할 거리가 되지 않는 일을 국내외의 비판을 무릅쓰고 강행한 일은, 두고 두고 '무리한 명예훼손 기소 사례' 혹은 '대통령 심기 경호수사'라는 혹평에 시달릴 걸로 보인다.
윤두현 청와대 홍보수석은 지난해 8월 7일 가토 전 지국장의 칼럼에 대해 "입에 담기도 부끄러운 걸 기사로 썼다. 민·형사상 책임을 끝까지 물을 것"이라며 "거짓말을 해서 독자 한 명을 늘릴지 모르겠지만, 엄하게 대처할 것"이라고 공언했다.
기소 거리 안 되는 일에 강력했던 처벌 의지
▲ 박근혜 대통령 명예훼손 혐의로 기소된 가토 다쓰야 전 산케이신문 서울지국장에 대한 무죄 선고가 난 17일 오후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가토 전 지국장이 기자회견을 열고 판결에 대한 입장을 발표하고 있다.
명예훼손죄는 피해 당사자가 처벌을 원치 않으면 기소를 할 수 없기 때문에, 검찰은 우선 피해자의 처벌 의사부터 확인하는 게 보통이다. 박 대통령이 직접 가토 지국장을 처벌해달라고 말하진 않았지만, 검찰은 윤 수석의 발언을 박 대통령의 처벌 의사로 간주하고 조사와 기소를 진행했다. 많은 언론이 '청와대 하명수사'라 지칭하는 이유다.
17일 무죄 선고 직후 열린 내·외신 기자회견에서, 가토 전 지국장은 "(검찰은) 이 피의자는 꼭 유죄로 만들겠다, 절대로 용서하지 않겠다는 마음을 갖고 모든 진술을 그 쪽으로 끌어들여 조합하면서 유죄로 만들겠다는 강한 의지를 갖고 조사했다"고 밝혔다. 그만큼 검찰의 처벌의지는 강력했다.
'강력처벌'이었던 정부의 입장이 '무죄 환영'으로 바뀐 것이다. 외교부는 재판부에 제출한 문서에서 최근 한·일관계가 개선될 조짐이라고 언급하며, '오는 18일이 한일 기본조약 발효 50주년이니, 일본 측의 요청을 진지하게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일관계의 변화로 가토 전 지국장의 처벌 필요성도 없어졌다는 것이다.
가토 전 지국장은 문제의 칼럼을 쓴 이유로 여러 보수 성향 시민단체들로부터 고발을 당했고, 검찰은 기다렸다는 듯 출국정지하고 이틀 뒤 곧바로 소환조사했다. 출국정지는 9개월 여가 지나서야 풀렸고, 약 1년 4개월 동안 검찰 조사 및 재판을 받았다.
가토 전 지국장 출국정지에서부터 무죄 판결까지의 상황이 일본은 물론 해외 언론에 상세히 보도됐다.
언론의 자유나 인권 문제에는 어떤 고려도 없이, 외교 상황에 따라 외국 기자의 처벌을 원하기도 하고 선처를 호소하기도 하는, 한국 정부의 무원칙한 행태도 함께 알려지게 됐다.
급기야 일본의 극우세력을 대변하며 한국을 폄하하는 보도를 이어온 <산케이신문>의 기자에게 "공인 중에 공인인 대통령에 대한 기사가 마음에 안 든다고 기소하는 이런 일이, 근대적인 민주주의 국가에서 일어날 수 있는 일인지 생각해주기 바란다", "최근 한국의 언론 자유를 둘러싼 상황은 매우 우려할 만한 상태가 아닌지 걱정하고 있다"는 비판을 듣는 상황이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