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제이(CJ)가 박근혜 대통령의 눈 밖에 나 있다는 걸 처음으로 감지한 건 2013년 7월이다.
조원동 청와대 경제수석이 손경식 회장을 한 호텔로 불러내 이미경 부회장의 퇴진을 요구한 것이다. 손 회장은 이를 이 부회장에게 알렸고, 이 부회장은 믿기 어려웠는지 손 회장에게 전화를 걸어 다시 확인해보라고 부탁한다.
조 수석과 손 회장의 통화는 이 부회장 방에서 스피커 폰으로 이뤄진 것으로 알려졌다. 대화 내용은 고스란히 녹음이 됐고 최근 들어 <엠비엔>(MBN)에 공개됐다.
씨제이에 ‘미운털’이 박히기 시작한 건 영화 <그때 그 사람들>로부터 비롯된다는 게 정부와 씨제이 쪽의 공통된 의견이다.
2005년 개봉된 이 영화는 10·26 사건을 다룬 임상수 감독의 블랙코미디 영화로, 박지만씨가 “아버지의 명예를 훼손했다”며 법원에 상영금지 가처분신청을 내는 등 크게 반발했다.
씨제이는 이 영화의 배급을 맡았다가 논란이 일자 철회를 결정한 바 있다.
그 뒤에도 씨제이가 투자배급한 영화 <광해, 왕이 된 남자>(2012)나 씨제이가 운영하는 케이블 채널 <티브이엔>(tvN)이 방영한 정치풍자 코너 ‘여의도 텔레토비’가 대통령의 심기를 건드렸다는 건 정설이다.
그러나 2013년 말까지 청와대의 압박은 말로만 이뤄졌지 행동은 없었다. 그러니 씨제이도 크게 겁을 내지 않았다. 오히려 이미경 부회장 퇴진 요구는 조원동 수석이 괜히 ‘대통령의 뜻’을 입에 올리며 개인적인 이익을 도모한 것으로 봤다. 그래서 녹음 파일을 청와대로 보내며 조 수석의 월권행위를 일러바친다. 그게 2014년 1~2월 무렵이다.
씨제이가 제대로 상황 파악을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결정적인 건 씨제이가 투자사로 참여한 영화 <변호인>이었다. 2013년 12월 개봉된 이 영화는 한달여 만에 1000만명을 돌파하며 청와대의 심기를 크게 건드렸다. 이 영화 이후로 청와대는 말에 그치지 않고 행동에 돌입한다. 문화체육관광부에 ‘손을 보라’고 구체적인 지시를 내린 것이다.
문체부 전직 고위 관계자는 “그때는 정확히 이유를 몰랐으나 요즘 들어 당시 일했던 사람들과 이리저리 퍼즐을 맞춰보니, 결국은 영화 <변호인> 때문이었다”고 말했다.
2014년 1월 스위스 다보스포럼의 ‘한국의 밤’ 행사 때는 박근혜 대통령이 이미경 부회장한테 눈길 한 번 주지 않았다고 한다. 씨제이로서는 매를 번 셈이다.
문체부가 미적거리자, ‘행동대장 역’은 공정거래위원회 쪽으로 넘어갔다.
물론 유진룡 장관을 비롯해 문체부의 고위 공무원들은 그 뒤 줄줄이 옷을 벗기 시작한다. 씨제이 때문만은 아니었겠지만 청와대의 지시를 제대로 이행하지 않은 데 대한 책임을 물은 것이다.
청와대의 의지를 읽은 공정위는 2014년 4월부터 씨제이에 대한 조사에 착수해 32억원의 과징금을 물렸다. 공정위뿐만 아니라, 2014년에는 검찰과 국세청도 차례차례 씨제이에 대한 고강도 조사를 벌인다.씨제이 한 관계자는 “한꺼번에 들이닥치니 정신이 없었다. 윗분들이 ‘검찰에서 조사하는 것 말이야’라고 물어보면, ‘검찰에서 조사하는 게 여러 가지인데 그중에 뭘 말씀하는 거죠?’라고 되물을 정도였다”고 말했다.
그런 소용돌이 속에서 이미경 부회장은 결국 회사 경영에서 손을 떼고 2014년 9월 미국으로 떠났다. 아직 경영 일선에 복귀할 일정은 잡혀 있지 않다고 한다.
씨제이 관계자는 “씨제이와 박근혜 대통령의 인연은 <그때 그 사람들>로 시작해 <광해, 왕이 된 남자>를 거쳐 <변호인>으로 끝난, 영화에서 시작해 영화로 끝난 역사”라고 말했다.
김의겸 선임기자 kyummy@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