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청난 사건이 하루에 한 번도 아닌 두 번씩이나. 지난 10월 24일이 그 특별한 날이다. 오전, 대통령의 개헌 추진 선언. 국민과 정치권은 깜짝 놀랐다. 오후, ‘최순실 PC’ 속 파일 공개. 오전의 놀람은 오후의 월등히 더 큰 놀람에 의해 완전히 밀려났다.
검찰과 언론의 갈 길 밝힌 촛불
여론은 분개했다. 언론도 대통령을 때리기 시작했다. 대통령이 살짝 겁이 났던 모양이다. “죄송하다”고 사과했다. 단지 추락을 막기 위한 거짓사과였다. 최순실은 유럽에 있었다. ‘럭셔리 도피행각’이 언론 카메라에 포착됐지만, 최순실은 모든 사실을 부인했다.
여론이 흉흉해졌다. 이때 대통령은 청와대 참모진 ‘일괄 사표’를 지시한다. 국민의 지탄을 받는 수석 몇 명을 제거하는 것으로 추락을 막으려 했다. 하지만, 이튿날 또 켜진 촛불에 밀려 대통령의 추락은 계속됐다. 그러자 다시 작업에 돌입한 대통령. 노무현 정권 출신을 총리로 내정하고, 김대중 정권 인사를 비서실장 임명했다. 하지만, 약발은 없었다.
밀어 올리는 힘보다 추락의 무게가 컸다. 급기야 ‘대국민담화’가 나왔다. 소용없었다. 그 다음 날 광화문과장엔 10만 개 촛불이 켜졌다. 더 빠른 추락이 불가피해 보였다. 다급했을 것이다.
대통령은 국회로 갔다. ‘국회가 추천한 총리 수용’ 이런 선언을 했다. 하지만 국민적 분노의 한 자락조차 덮지 못했다. 그 주 주말, 100만 개 촛불이 '박근혜 하야'를 외쳤다.
촛불은 추락의 무게를 열배, 백배로 불려놓았다. 또 촛불은 검찰과 언론이 갈 길을 환히 밝혔다. 가려졌던 국정농단의 실체가 드러나기 시작했다. 그래도 한 나라 대통령인데 이럴 수 있나. 조악하고 추잡한 내용의 저 보도가 사실이란 말인가. 국민들은 자괴감에 빠졌다. 대통령에겐 추락하는 자신을 ‘밀어 올릴 힘’이 더 이상 없어 보였다.
우주가 도와주길 기대하나?
‘엘시티 엄정 수사 지시’ 추락에 가속도가 붙은 대통령의 ‘발악’이었다. 그래서 그 주말 촛불이 또 켜졌다. 이번엔 방방곡곡에서다. 촛불이 안 켜진 곳이 없을 정도였다. ‘박근혜 체포’, ‘대통령 구속’이란 구호가 자연스럽게 터져 나온 주말이었다.
촛불에 ‘길 밝힘’을 당한 검찰이 그나마 제 길을 찾아가는 내용을 담은 수사결과를 발표했다. ‘박근혜는 공범’. 상승의 기회를 엿보던 대통령의 어깨에 천근의 무게가 얹혀진 셈이다. 그 무게를 지고는 버틸 수도 없어 보였다.
여기서? 내가 주저앉아? 간절히 바라면 우주가 도와주는데. 내가 왜? 이렇게 생각했던 걸까. 대통령은 버티기에 들어갔다. 검찰 수사도 거부했다. 그러자 검찰은 '촛불을 횃불로 만들 수 있는 증거가 있다'며 말하며 촛불을 바라봤다. 검찰이 촛불과 시선을 같이하는 순간이 올 줄이야!
추락을 막고 어떻게든 밀고 올라가자. 이게 최근 한 달 간 대통령이 매달리고 또 매달린 유일한 일이다. 대통령은 신화 속 인물 흉내를 냈다. 추락하면 밀어 올리기를 반복하는 시지푸스처럼 행동했다. 어디까지나 흉내였다. 질은 완전히 달랐다.
거짓으로 지은 사상누각
시지푸스는 그나마 정직했지. 돌이 떨어지면 제 힘으로 밀고 올라갔으니까. 또 성실하다고 평가할 수도 있어. 밀고 올라가기를 열심히 반복했으니. 그래서 알베르 카뮈는 그를 통해 현대인의 부조리를 발견할 수 있었던 거야.
그런데 대통령은 달랐다. 제 힘으로 밀어 올리려고 하지 않았다. 거짓해명과 거짓사과, 변명과 남 탓, 물타기와 꼼수를 동원했다. 거짓에도 힘이 실릴 거라고 믿었던 모양이다. 감출 수 있는 거짓이라면 몰라도 이미 들통 나고 있는 거짓에는 힘이 실릴 리 전혀 없는데도 말이다. 대통령은 어리석었다. 기막힌 우를 범하고 말았다. 이렇게 말이다.
‘거짓의 힘’으로 ‘촛불의 정의’와 맞서자. 권력이 아직 내 손안에 있지 않은가. 5%에 내 권력이 더해지면 95%를 누를 수 있다. 그러니 붙어보자.
밀고 올라가려고, 추락을 막으려고 용을 쓸수록 우수수 낙하하는 것들이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감옥으로 떨어졌다. 최순실은 물론 안종범, 정호성, 송성각, 차은택, 장시호, 김종 등이 구속됐다. 혐의도 다양하다. 직권남용, 문서유출, 강탈, 사기미수, 강요, 강요미수, 횡령 등등.
용을 쓸 힘조차 빼앗긴 대통령. 그런데도 버틴다. 버틸수록 많은 이들이 추락할 수 있다. 김기춘, 우병우, 이재만, 안봉근, 조원동 등등 다수의 측근들. 강요로 느껴 돈을 낸 재벌 총수들. 정유라 부정입학과 학사특혜에 연루된 다수의 교수들. 대리 처방해준 의료진까지.
어디 이뿐이랴. 진행 중인 검찰수사와 향후 특검 수사로 또 얼마나 많은 이들이 늦가을 도토리 떨어지듯 대통령과 함께 추락할까.
명분 티끌만큼도 없는 버티기
모든 일엔 명분이 필요하다. 버티기 역시 그렇다. 남북전쟁의 한복판에서 링컨 대통령은 모두의 가치로 승화시킬 수 있는 명분이 있으면 처참한 전쟁도 감수해야 한다며 이런 말을 했다.
“우리는 이 나라, 아니 민주주의로 잉태되고 민주주의에 대한 믿음을 가진 모든 나라가 얼마나 오래 버틸 수 있는가를 시험하는 전쟁을 하고 있다.”
그런데 대통령은 어떤가. 가치도 명분도 없는, 아니 애당초 티끌만큼도 없었던, 그런 투쟁에 목숨을 건 듯하다. 그의 집요함과 무모함을 링컨의 연설에 빗대보자. 이런 게 되지 않을까.
“나는 이 정권, 아니 권력욕으로 잉태되고 권력에 대한 강한 믿음을 가진 이 정권이 얼마나 오래 버틸 수 있는가를 시험하기 위해 ‘국민과의 싸움’을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