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의 '천마도'-하나밖에 못 봤다고요? 웬걸, 여섯 점이나 나왔다던데요
눈이 오는 날, 강원도 인제 원대리의 자작나무 숲에 간 적이 있다. 하늘로 쭉쭉 뻗어오른 새하얀 자작나무 줄기들이 눈과 어우러지니 더 빛났다. 나무색이 아닌 흰색의 나무, 거친 게 아니라 아기 속살같이 부드러운 감촉의 나무. 색다름을 넘어 신비롭다. 고대 북방 민족들이 ‘샤먼의 나무’로, 하늘의 문을 열어 지상과 천상을 연결하는 나무로 여겼다는 게 새삼 다가왔다.
그래서일까, 1500여년 전 신라인들이 하필 자작나무 껍질에 ‘천마도(天馬圖)’를 그린 것이….
하늘을 나는 듯한 흰 말이 그려진 ‘천마도’는 삼국시대는 물론 신라의 희귀한 회화 유물이다. 교과서 등을 통해 꽤나 유명하지만 사실 진품을 본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워낙 귀중하고 보존도 너무 까다로운 유물이어서 전시장에서 제대로 공개된 것은 발굴된 지 40년이 지났지만 세 번뿐이다. 잘 아는 듯하지만 잘 모르는 문화유산이 천마도다.
■ 천마도, 1점이 아니라 6점?
우리가 흔히 ‘천마도’라 부르지만 공식 명칭은 ‘백화수피제 천마문 말다래’(국보 207호)다. 백화수피는 자작나무 껍질을, 천마문은 하늘을 나는 말(천마) 무늬를, 말다래는 말 안장 양쪽 아래에 달아 늘어뜨린 네모난 판을 말한다. 즉, 자작나무 껍질에 천마무늬가 그려진 말다래다.
말다래는 장니(障泥)라고도 하는데 장식효과와 말을 탄 사람의 권위를 드러내고, 말과 말 탄 사람을 보호하는 역할도 한다.
천마도가 발굴된 것은 1973년 8월22일이다. 경주의 고분들 중 하나인 ‘황남동 155호분’에서다. 숫자 155호로 불리던 이 고분은 천마도를 비롯, 금관 등 유물이 쏟아지면서 왕릉급 무덤으로 확인돼 명칭 부여가 필요했다. 여러 이름이 거론되다가 천마도가 나온 왕릉급 무덤이란 의미에서 ‘천마총’이라 붙여졌다.
100기가 넘는 신라 고분들 가운데 유일하게 내부가 공개돼, 학생 시절 수학여행이나 지금도 경주 여행객이라면 꼭 들르는 곳이다. 천마총에 묻힌 왕의 신원이 확인됐다면 ‘릉’이 됐겠지만 왕릉급임에도 어떤 왕인지를 몰라 ‘총’이 됐다.
천마총은 당초 고고학계가 발굴 경험을 쌓기 위해 ‘연습 삼아’ 발굴한 고분이다. 당시 박정희 정부는 경주관광종합개발계획의 하나로 경주의 고분 1기를 발굴, 내부를 공개하는 등 관광자원화하기로 하고 가장 큰 고분인 황남대총을 발굴키로 했다.
하지만 고고학계의 발굴 경험이 부족하다보니 그 옆에 있던, 상대적으로 규모가 작은 155호분을 시험 삼아 먼저 발굴해보기로 한 것이다. 1973년 4월부터 12월까지 발굴한 천마총에서는 놀랍게도 1만1500여점의 유물이 나왔고, 그중 국보·보물로 지정된 것만 10여점에 이른다.
사실 ‘천마도’도 1점만 나온 것이 아니다. 1쌍으로 제작됐기에 1점이 더 있다. 또 ‘천마도’라 불리는 자작나무제 말다래 2점 외에도, 대나무살 위에 금동 천마를 붙인 말다래(죽제 천마문 금동장식 말다래), 옻칠을 한 칠기제 말다래(추정)도 발견됐다. 말 안장 양쪽에 매다는 특성상 말다래는 1쌍으로 제작되니 모두 3쌍 6점인 것이다.
하지만 제작된 지 워낙 오래돼 발굴될 때 이미 상당 부분 손상된 상태였다. 발굴단과 전문가들은 6점 모두 말다래이고, 천마무늬도 있었을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이들 말다래는 무덤 주인의 머리 쪽에 있던 껴묻거리(부장품) 궤 속에서 쇠솥, 토기 등 각종 유물과 함께 발견됐다.
‘죽제 천마문 금동장식 말다래’(81×56㎝)는 금동판에 새겨진 천마가 돋보인다. 1쌍이 눌러붙은 채 발견됐는데, 위쪽 것은 발굴 때부터 형태를 알아보기 힘들 정도여서 사실상 아래쪽에 있던 1점이 남아 있다.
그것도 보존 상태가 좋지 않아 말다래인 줄 몰랐다가 2000년대 들어 국립경주박물관 전문가들이 보존처리 과정에서 말다래인 점과 천마무늬를 확인했다. 그러곤 2014년 3월 특별전을 통해 처음 일반에 공개했다.
이 말다래는 얇고 가는 대나무살을 엮어 바탕판을 만들고, 그 위에 마직천을 댄 뒤 천마를 뚫음기법으로 표현한 금동판 10개를 조합해 금동못으로 부착했다. 달개들을 장식한 흔적도 있어, 제작 당시엔 찬란한 금빛을 내며 화려했을 것으로 보인다.
이 말다래의 천마는 눈·귀의 표현, 목과 꼬리의 갈기 형태 등이 자작나무제 천마도의 말과 흡사하다.
‘칠기제 말다래’는 발견 때부터 워낙 손상이 심해 발굴단을 안타깝게 했다. 현재 남아 있는 부분도 매우 적어 형태를 알아보기 힘든 실정이다.
■ 삶과 죽음의 의미를 되묻다
나머지 1쌍이 천마도란 이름으로 우리에게 익숙한 ‘백화수피제 천마문 말다래’(73.2×55.2㎝)다. 2점이 아래위로 눌러붙은 상태로 발견됐다. 2점 중 위쪽에 있던 것은 손상이 심각했고, 아래쪽의 것은 비교적 선명했다. 그동안 알려진 천마도의 이미지가 바로 이 아래쪽 말다래 사진이다.
천마도는 발견되면서부터 학계를 흥분시켰다. 삼국시대의 귀한 회화 유물, 그것도 온전한 것이 없던 신라시대 회화 유물이 모습을 드러냈기 때문이다.
한반도 회화의 시작, 그 뿌리는 선사시대 작품인 울산 울주의 ‘반구대 암각화’(국보 285호)로 본다. 하지만 고대는 물론 삼국시대 회화 유물도 전하는 게 거의 없다. 다만 평양, 만주 지역의 고구려 고분벽화가 전해져 그나마 다행이다. 고구려 고분벽화는 ‘삼국시대의 타임캡슐’로 불릴 만큼 한국 미술사에서 획기적인 자료다.
백제의 회화 자료도 빈약하다. 공주 무령왕릉 옆 ‘송산리 6호 고분’의 사신도나 부여 능산리 고분의 사신도와 연꽃무늬, 공예품 등을 통해 그 발달 과정을 짐작해볼 수 있다.
신라는 고구려, 백제보다 회화 자료가 더 없었다. 고구려·백제와 달리 천마총 같은 신라의 무덤 구조는 돌무지덧널무덤이어서 무덤 안에 매끈한 벽이 없다. 벽화 같은 회화 자료를 남기기 어려운 것이다.
물론 신라도 회화가 발달했을 것이다. 황룡사에 소나무를 그렸는데 새가 와 앉으려다 부딪쳐 떨어졌다는 일화가 있는 솔거 같은 화가의 이름은 전해지고 있어서다. 하지만 그것을 증명할 고고학적 유물은 거의 없다.
그런데 ‘천마도’가 나왔으니 학계가 흥분할 만했다. 삼국시대는 물론 신라 회화사 연구에 소중한 자료이자, 당시 사람들의 회화적 감각이나 사상, 생활문화상을 유추할 수 있는 것이다.
특히 천마총에서는 천마도와 함께 인물이 말을 타고 달리는 모습을 나무판 위에 그린 ‘기마인물문 채화판’, 새와 풀 등을 그린 ‘서조문 채화판’ 같은 회화 유물도 나왔다. 이 유물들은 자작나무 껍질을 다듬은 8장의 판을 도넛처럼 동그랗게 붙이고 그 위에 그림을 그린 것이다.
천마도는 보존이 워낙 까다로워 발굴 직후 국립중앙박물관으로 옮겨, 특수제작한 아크릴 상자에 넣어져 수장고에 보존됐다.
천마도가 원형복원 작업을 거쳐 일반에 제대로 공개된 것은 1997년이 돼서다. 훼손이 심했던 위쪽의 말다래는 2014년에야 처음 전모를 드러냈다.
천마도의 바탕판은 자작나무 껍질 두 판(앞판 1장, 뒤판 2장)을 접합시킨 것이다. 결을 서로 엇갈려 접합시켰는데, 이는 뒤틀림 현상을 줄이고자 한 신라 장인의 지혜다. 바탕판의 외곽에는 천과 가죽을 덧대고 넝쿨무늬 등 무늬를 배치했다. 가운데에는 흰색 천마를 그렸다. 다리 모양이나 몸체는 물론 뒤로 날리는 말갈기와 꼬리털 등의 표현에서 역동성이 느껴진다. 입에서는 ‘서기’ ‘영기’라 부르는 신비로운 흰색 기운을 내뿜는 등 당당하고 힘찬 모습이다.
적외선과 X선 형광분석 등 과학적 분석 결과를 종합하면, 천마를 비롯한 천마도의 흰색 표현은 고대 안료의 하나인 연백을 사용했다. 붉은색은 천연광물인 진사, 천마와 넝쿨무늬 등의 외곽선의 검은색 안료는 먹, 녹색은 석록을 쓴 것으로 보인다. 천마도 제작은 최소 10단계의 공정을 거쳐야 했는데, 제작 과정에는 바느질 등 당시의 다양한 공예기법이 적용됐다.
천마도는 그림 속 동물이 말이냐, 상상 속의 동물 기린이냐는 논쟁으로도 유명하다. 지난 수년 동안의 논쟁과 과학적 분석 결과로 볼 때, 천마도의 동물은 말이라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특히 ‘죽제 천마문 금동장식 말다래’의 무늬가 말로 확인된 것도 결정적 근거다. 하지만 기린이라는 주장도 여전히 남아 있다.
양측의 쟁점은 정수리 부분에 흰색으로 표현된, 툭 튀어나온 것을 무엇으로 볼 것이냐다. 기린이라 주장하는 측은 이를 기린의 상징인 뿔로 본다. 말이라 주장하는 측은 뿔이 아니라 갈기를 위로 모아 올려놓은 표현으로 본다.
입에서 뿜어내는 흰색의 서기가 있어 기린이라는 주장에 천마 역시 신령스러운 상상 속 동물인 만큼 신기가 나온다는 주장이다. 여기에 말이라는 주장이 설득력을 가지는 것은, 머리나 몸체, 발굽 등으로 볼 때 기린보다 말의 특성이 두드러진다는 점이다. 또 신라 건국설화에서도 말이 주요 요소로 등장한다.
일부에서는 천마도의 천마가 고구려 벽화고분인 덕흥리 무덤 등에 그려진 천마와 흡사하고, 넝쿨무늬 등에서 고구려적인 요소가 강해 고구려 작품이라는 주장도 한다. 그러나 고구려의 영향을 받은 것은 분명하지만 신라 작품으로 보는 게 유력한 견해다.
현재 우리에게 남아 있는 신라의 천마무늬 말다래는 3점이다. 보존과학자들의 복원 노력 덕분에 그나마 우리 곁에 있다.
여러 기록으로 보면, 당시 천마는 자작나무가 지닌 상징처럼 지상과 천상을 연결하는 신령스러운 동물로 여겨졌다.
결국 천마도는 죽은 자가 천상으로 잘 가기를 바라는 산 자들의 간절한 염원이 빚어낸 작품이다. 영원한 안식을 기원하며 무덤에 넣어준 것이다.
1500년 전이나 지금이나 인간의 삶은 유한하다. 그래서 ‘우리는 누구이며 어디에서 와 어디로 가는가’ 같은 근원적 질문은 예나 지금이나 계속된다.
신라인이 남긴 소중한 회화 문화유산인 천마도는 인간의 죽음과 삶의 의미도 새삼 떠올리게 한다.
도재기 문화에디터 jaeke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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