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굴꾼이 40년 숨겼던 신안 앞바다 '보물선 유물' 되찾았다
1980년대 잠수부 고용해 공소시효 만료 기다려
문화재청과 대전경찰청 협업수사 결과 발표
도굴꾼은 40년 가까운 세월을 꼼짝하지 않고 기다렸다. 오직 팔기 위해서.
그의 집에는 700여년 전 만든 중국산 고급 청자유물들이 깊숙이 숨겨진 채 잠자고 있었다. 1980년대 초 전남 신안 바다 속에서 몰래 끄집어올린 것들로, 수중에 들어온 뒤로는 전혀 손대지 않았다. 도난품 공소시효를 넘기면 적절한 때 내놓아 팔아치우려는 속셈이었다.
하지만 뛰는 놈 위에 나는 놈이 있는 법. 도굴되거나 도난당한 문화재가 세상에 다시 나타나는 때만 끈기있게 기다린 경찰과 문화재청의 그물에 걸려들었다.
문화재청 사범단속반과 대전경찰청 광역수사대는 13일 오전 대전경찰청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지난달 추적조사 끝에 도굴범 ㅇ씨한테서 회수한 신안 해저 도굴품 57점과 수사 관련 성과들을 공개했다.
장물들은 신안군 증도 앞바다(국가사적) 해저에 가라앉은 14세기 중국 원나라 침몰선(신안선)의 선적품들. 13~14세기 청자접시 등의 도자기 유물들이 주종이었다. 특히 청자 구름·용무늬 큰접시(청자첩화룡문대반), 청자 모란무늬 병청자양각목단문량이병), 청자 물소모양 연적(청자우형연적) 등은 완벽한 모양을 갖춘 고급품으로, 당대 동아시아 문화교류를 실증하는 중요 도자유산들이다.
특히 높이 7.5cm의 흑유잔은 중국 송대 푸젠성 건요 가마에서 만들어진 작품으로, 검은빛 유약이 칠해진 표면의 바탕에 토끼털 모양의 무늬가 남아있어 ‘토호잔’으로도 불리는 중국 도자사의 수작으로 평가된다.
도굴범 ㅇ씨는 1983년께부터 유물을 거처에 숨겨왔으며, 최근 들어 팔 곳을 찾아다니다가 첩보를 입수한 경찰에 매장문화재 보호 및 조사에 관한 법률위반 혐의로 검거됐다.
조사결과 회수된 장물들은 80년대 도굴범들이 증도면 앞바다에서 사설 잠수부를 고용해 몰래 끄집어올린 뒤 빼돌린 신안선 해저유물들이었다. ㅇ씨는 장물들을 입수한 뒤 36년동안 어디에도 반출하지 않고 보관해온 것으로 드러났다.
문화재청과 경찰은 “ㅇ씨는 최근 경제적 어려움에 처하자, 해저유물을 국외 반출하려고 계획했던 것으로 파악됐다”고 설명했다.
경찰에 따르면, ㅇ씨는 애초 중국쪽으로 반출을 꾀했으나, 공항검색이 까다로워 쉽지않다는 것을 알게되자, 유물을 가지고 일본으로 건너간 뒤 중간 브로커를 만나 팔 뜻을 타진하기도 했던 것으로 밝혀졌다.
1975년 어부들의 그물에 도자기가 걸리면서 처음 실체가 드러난 증도 앞바다의 신안 해저 유물 매장 해역은, 그뒤 추가수중발굴을 통해 14세기 중국 원나라 시대 교역사 유물들의 보고로 확인됐다.
1976년부터 1984년까지 당시 문화재관리국과 군 당국이 모두 11차례 수중 발굴조사를 벌여, 침몰한 교역선의 주요 선체, 잔해와 함께 청자, 백자, 흑유자기 등의 도자기 및 토기류 2만여점, 석재료 40여점, 금속류 720여점, 동전 28톤 등의 막대한 유물들을 뭍으로 건져 올렸다.
배에 수하물과 함께 실렸던 물표의 먹글씨(墨書)에는 출항지, 도착지가 표기되어 있었는데, 판독한 결과 침몰선은 중국 경원(慶元:현재의 닝보항)에서 출항해 일본 하카다와 교토의 큰 절 토후쿠지(東福寺)를 향해 항해하다가 1323년 가라앉은 교역선으로 추정됐다.
신안선 침몰 해역은 서해 남부지역의 중요한 옛 연안항로로, 7~8세기 이후 한·중·일 교역의 중요한 길목이기도 했다. 회수된 도굴품을 포함한 신안 해역의 인양도자기들은 대부분 1320년대 중국 절강성 지역과 강서성 지역에서 생산된 제품들이다.
청자는 중국 저장성 용천시를 중심으로 한 용천요 가마, 백자와 청백자는 중국 장시성 경덕진요 가마에서 만들어진 것으로 각각 추정된다.
문화재청 관계자는 “신안 해저 발굴은 8년간 진행된 장기 작업이어서, 당시 도굴꾼들은 조사단의 수중 발굴 작업이 쉴 틈을 노려, 밤에 잠수부를 데려와 수중 문화재를 도굴하는 사례가 적지않았다”면서 “이번에 회수한 도자기들은 숨겨진 신안 해저발굴의 흑역사를 실증하는 유물이라고 할 수 있다”고 말했다.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사진 문화재청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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