접종률 0.03%... 프랑스인들은 왜 코로나 백신 거부하나
요양 간호사들도 거부... 신뢰받지 못하는 마크롱 정부 방역정책
지난 12월 27일, 논란 속에서 마침내 프랑스에서도 코로나 백신 접종이 시작되었다. 그러나 닷새만인 2021년 1월 1일 발표된 프랑스 내 백신 접종자 수는 332명. 하루 평균 56명이 접종한 셈이다. 이런 속도라면 6700만 명이 다 맞는 데 3천 년도 더 걸린다는 우스갯소리마저 나왔다.
다보스포럼의 의뢰로 여론조사기관 입소스가 15개국에서 실시한 조사 결과(21년 1월 4일 발표), 프랑스는 조사국 중 가장 높은 60%의 백신 거부율을 보였다. 그러나 백신을 맞을 의사가 있다고 표명한 사람도(확실 12%, 아마도 28%) 적지 않아서, 닷새간 접종된 숫자는 나라 안팎으로 적잖은 놀라움을 안겼다.
마크롱 정부가 좀 더 속도를 내겠다고 발표한 후 1월 7일까지 총 1만 9500명이 백신을 맞았으나, 여전히 프랑스는 접종이 시작된 45개국 가운데 가장 낮은 비율(0.03%)을 기록하고 있다. 프랑스의 백신 접종 속도는 왜 이리 느린 걸까.
백신 접종 책임자의 뜻밖의 발언
▲ 마크롱 정부가 임명한 '무슈 백신' 알랭 피셰. 백신접종을 책임지는 전략위원회 위원장이다. ⓒ 프랑스정부
지난해 말인 12월 3일, 카스텍스 총리는 국민들 앞에 코비드 백신접종전략위원회 위원장 알랭 피셰(Alain Fischer, 71)를 소개했다. 코로나 백신 접종 순서, 속도, 방향을 정할 위원회를 이끌 인물이다. 저명한 면역학자이자 생물학자이며 소아전문 병원인 네케르 병원 센터장을 역임하기도 했던 그는, 처음 정부가 물망에 올렸던 제약회사 로비스트 출신 인물(비난이 빗발치자 철회)을 대신해 최종 선택된 사람이었다.
그런데 총리와 함께 한 첫 번째 기자회견에서 그는 뜻밖의 얘기를 국민들에게 전한다.
① 현재로선 제약회사(화이자)가 제공한 보도자료 정도의 자료밖에 갖고 있지 않다. 과학자로서 곧, 백신에 대한 과학적 자료를 볼 수 있기를 바란다.
② 현재까지 전해진 바에 따르면 백신의 효능은 2~3개월에 지나지 않는다.
③ 가장 허약한 인구층, 즉 노령층과 기저질환자들에게 이 백신이 얼마나 효과적인지에 대해 정확히 알려진 바 없다.
④ 백신 접종 받은 사람은 더 이상 코로나19에 안 걸리고, 남한테 옮기지 않는지에 대해서도 확신할 수 없다.
나란히 서 있던 총리가 몇 번 그를 놀란 듯 쳐다봤으나, 알랭 피셰는 '과학자로서'를 강조하며 자신이 갖고 있는 백신에 대한 의구심들을 드러냈다. 이 사실을 전한 CNEWS, BFM 등의 방송 진행자들도 "이 얘기 듣고 백신 맞으러 갈 사람 있겠냐. 난 안 맞는다. 내가 소수에 속하진 않을 것이다" 등의 발언을 내뱉었고, 그 얘기는 현실이 되었다.
▲ 12월 3일 기자회견장에서 장 카스텍스 총리가 알랭 피셰를 조금 놀란듯한 표정으로 쳐다보고 있다. ⓒ 프랑스 정부 유튜브 캡처
물론 알랭 피셰 이전에도 많은 방송에서 백신에 대한 토론이 수차례 이뤄졌고, 그 속에서 회의론, 무용론도 나왔지만, 정부가 백신전략위원회를 이끌도록 선택한 바로 그 사람이 지금까지 이어져온 찬반 논란에 종지부를 찍는 듯한 발언을 한 것이다. 해당 기자회견 영상은 SNS를 통해 급속도로 확산됐다. 그의 이야기를 듣고 있노라면 그가 왜 이 직책을 수락했는지 의아할 정도다.
언론들은 백신 접종자 수가 현저히 적은 사실을 두고 알랭 피셰를 비난 중이다. 그러나 그는 여전히 자신의 원칙대로 백신접종을 진행시키고 있다.
1월 중엔 노인요양원 입소자들과 50세 이상의 요양원 근무자들이 접종 대상이며, 2~3월에는 75세 이상의 노인, 이후 65세의 은퇴한 노인들에게 접종하는 것이 현재의 계획이다.
또, 접종 전에 각 개인의 동의 여부(요양원 노인의 경우 가족과 본인 동의)를 분명히 하고, 금지 대상(백신 투약을 금해야 하는 환자, 기저질환 여부)에 대해 상세히 검토한 뒤 접종을 진행하며, 주사 후 적어도 15분간 의료진이 곁에서 이상 징후가 없는지 살펴야 한다. 이 같은 과정이 시간을 지연시키는 요인이 될지라도 백신이 유발할 부작용을 최소화하기 위해 필요한 절차라는 것이 알랭 피셰의 생각이다.
2009년 신종플루의 기억
2009년 신종플루 때에도 프랑스인들은 백신에 대해 지금과 비슷한 태도를 보였다. 당시 인구의 7.6%만 접종에 응해 10%의 독일, 8.6%의 영국, 60%의 스웨덴, 36.6%의 한국과 견줘 가장 낮은 접종률을 보였다. 보건부 장관이던 로즐린 바슐로가 직접 카메라 앞에서 팔뚝을 걷어 보이며 백신을 맞는 등 정부차원의 대대적인 백신 캠페인도 진행됐으나, 다수의 사람들은 "플루 보다 백신이 더 위험"하다는 세간의 말에 더 귀를 기울였다.
1900만 명분의 백신을 구입했던 정부는 대부분을 폐기해야 했고, 접종자 중 일부에게는 기면증이라는 희귀병이 부작용으로 남았다. 그 중 증상이 심한 61명에 대한 보상이 이뤄졌고, 평균 보상액은 33만 8100 유로(약 4억6천만 원)였다. 당시 프랑스 상원에서는 신종플루 팬데믹에서 WHO가 취해온 태도에 대하여 의구심을 제기하며, 21인의 조사위원회를 구성하고 2010년 7월 163페이지의 보고서를 발표하기도 했다.
전체 인구의 60%가 접종에 참여해 유럽에서 가장 높은 수준의 접종률을 보였던 스웨덴에서는, 700명이 넘는 청소년에게서 기면증이 나타나 사회적으로 큰 충격을 남겼다. 스웨덴은 아직까지도 당시 피해자들에게 보상금을 지급중이다. 당시 경험은 스웨덴이 코로나 팬데믹에 맞서 독자 노선을 걷게 하는데 영향을 미쳤고, 코로나 백신에 대해서도 다수 국민들이 신중한 입장을 취하게 만들고 있기도 하다.
백신 거부한 사람 중 82% "안정성 못 믿겠다"
프랑스 정부가 지난해 12월 16일~18일 진행하고 24일 발표한 설문조사에서도, 백신을 거부한다고 응답한 사람은 60%에 달했다. 이들이 내놓은 첫 번째 이유는 '이번 백신은 성급히 만들어져서 안정성에 대한 신뢰가 없다'(82%)는 것이었다. '다른 방법으로 코로나19에 대응하겠다'(약 혹은 비타민 등을 통한 면역력 향상) 26%, '백신 자체를 불신한다' 16% 순이다.
TV토론에 나선 의사들 역시 찬반진영을 막론하고, 프랑스인들이 이번 백신에 보이는 소극적 태도에 일리가 있다고 수긍하는 편이다.
▲ 여론조사 기관 ipsos가 지난 1월 4일 발표한 코로나19 백신에 대한 여론조사. 프랑스, 미국, 한국을 비롯한 15개국에 걸쳐 실시했다. ⓒ ipsos
다보스포럼의 의뢰로 입소스가 진행한 코로나19 백신 관련 설문조사는, 15개국에서 12월 17~20일 18~74세 대상으로 이뤄졌다. 가장 높은 수준으로 백신을 맞겠다는 나라는 중국으로 80%에 달했으며, 브라질(78%), 영국, 멕시코(77%), 한국(75%), 미국(69%), 독일(65%), 스페인, 이탈리아(62%), 일본(60%), 러시아(43%) 등이다. 반면 백신을 거부하는 사람들 가운데 그 이유를 부작용에 대한 우려 때문이라고 답한 사람은 한국(80%), 일본(75%)에서 가장 높게 나타났다. 프랑스인들은 72%가 부작용 우려해서 거부한다고 답했다.
1월초 요양병원협회(FEHAP)가 자체조사한 설문조사 결과, 요양 간호사 중 76%가 백신을 거부(19% 백신 수용, 6% 미정)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일반인들보다 백신에 대한 의학적 정보를 더 많이 가지고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이들의 부정적 판단은 백신 접종에 대한 전망을 더욱 어둡게 만들고 있다.
▲ 1월 2일 LCI방송에서 보도된 요양원 간호인력들에 대한 코로나 백신 여론조사 결과. ⓒ LCI방송 캡처
프랑스 정부는 수차례에 걸쳐 백신 의무화는 검토하고 있지 않다고 밝혔지만, 상황이 이렇게 되면 정부가 입장을 바꿀지도 모른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이탈리아의 경우 코로나19 백신 접종을 거부하는 의사들에게 정부와 의협이 감봉, 파면, 징계위 회부 등의 강경책을 구사하기로 했다는 언론보도가 나오기도 했다.(마리안느, 1월 5일자)
흩어진 여론, 조급한 정부
다급해진 마크롱 정부가 미국계 경영컨설팅 회사 맥킨지에 백신 접종 캠페인 전략을 위한 자문을 의뢰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국회에서는 좌우를 막론하고 "이 같은 처사는 정부의 무능을 고백하는 것"이라며 비난을 퍼부었다.
이런 가운데 200명의 연출가와 배우들이 "우린 백신을 맞겠다"는 선언에 나서면서, 백신 거부 시민들을 설득하는데 나서기도 했다. 연출가 스타니슬라스 노르디가 주도한 이 선언에 줄리 가예, 다니엘 오퇴이 등 배우들이 함께 했다. 그들은 "이 속도로 가다간 올 한해도 여전히 극장 문을 닫고 있을 수밖에 없다. 백신은 우리의 유일한 출구"라며 어서 접종에 참여하고 일상을 되찾자고 호소했다.
또 한편에선, 3개의 소수정당 DL, UPR, LP가 한 목소리로 정부를 향해 백신을 유일한 출구 전략으로 삼지 말고, 다른 치료약을 통한 해법도 동시에 모색하라고 요청하기도 했다. 그동안 코로나19 예방과 치료에 효과를 보인 다른 약들을 통해서도 다각도의 해법을 찾자는 주장이다.
이는 250명의 의사집단 '제4의 길(la quatrième voie)'이 중심이 되어 제기되고 있는 서명운동과 맥락을 같이 한다. 이들은 "더 이상의 봉쇄령, 통행금지 등 통제조치에 반대하며, 활발하고 정기적인 신체활동과 비타민C, D, 아연의 섭취를 통한 면역력 강화를 통해 코로나에 맞설 것을 제안"한다. 그들의 목소리는 백신에 대한 신용이 하락하는 만큼 프랑스 시민들 사이에서 지지를 얻고 있다.
코로나19 상륙 시점부터 백신이 개발되어 접종이 시작된 지금까지, 프랑스의 방역정책은 끊임없이 시민들과 의사들의 반대에 부딪혀 왔다. 그 저항의 단서는 거짓말을 반복해온 정부가 제공했다는 평이다. 마크롱 정부 하에서 더는 병상을 줄이지 않겠다고 약속했다가 이를 번복한 것 등이 대표적인 예다. 그 사이 코로나 팬데믹의 진실을 밝히겠다는 다큐멘터리가 4~5개 만들어지고, 방역 정책의 모순을 해부하는 책들이 수십 권 쏟아져 나온 것도, 결국은 정부가 신뢰받을 만한 길을 제시하지 못하고, 국민들 앞에서 솔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정부가 국민과의 약속을 계속해서 저버린다면, 그런 정부가 추진하는 백신 정책에 대해 국민들이 신뢰를 보낼 수 없는 것은 당연하다. 마크롱 정부의 방역 정책 혼란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목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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