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팡의 미 상장이 ‘기업 규제’ 탓이라는 견강부회
쿠팡의 미국 뉴욕 증시 상장 추진을 두고, 보수언론이 일제히 미국과 달리 우리나라가 경영권 방어장치인 ‘차등의결권’을 허용하지 않는 등 기업을 과도하게 규제하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쿠팡이 창업자인 김범석 이사회 의장의 주식에 보통주 29배의 차등의결권을 부여한 건 사실이다. 하지만 미 증시 상장은 쿠팡의 모회사가 미국 법인인 점, 자본조달의 용이성, 만년 적자기업에 대한 한국증시 상장 제한 등 복합적 요인이 작용했다고 봐야 한다. 차등의결권을 부각시키며 ‘기업 옥죄기’ 주장을 펴는 건, 현실을 왜곡하는 ‘견강부회’가 아닐 수 없다.
한국 쿠팡의 모회사는 지분 100%를 가진 미국 기업 쿠팡 엘엘시(LLC)다. 5% 이상 지분을 가진 주주는 재일교포인 손정의 회장이 주도하는 비전펀드 등 글로벌 투자자들이다. 미 증시 상장은 한국 쿠팡이 아니라 쿠팡 엘엘시가 한다. 미국 기업이 미국 증시에 상장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이를 알면서도 쿠팡의 미 증시 상장을 차등의결권 탓으로 몰아가는 보도는 ‘가짜뉴스’라는 지적을 피하기 어렵다. 쿠팡 초창기 투자자로 참여했던 알토스벤처스의 김한준 대표도 15일 페이스북에서 “차등의결권 때문에 어떤 증시에 상장하는 결정은 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보수언론은 한발 더 나아가 과도한 규제가 기업의 ‘한국 이탈’을 가속화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감사위원 분리선임 및 대주주 의결권 3% 제한을 담은 상법 등을 사례로 든다. 공정경제 확립을 위해 필요한 최소한의 규제까지 부정하는 것이다.
이는 또 두 나라 규제 시스템의 차이를 외면한 억지가 아닐 수 없다. 미국은 사전적 규제보다 징벌적 손해배상제나 집단소송제와 같은 엄격한 사후적 규제를 통해 기업의 불법행위를 억제한다. 하지만 한국은 사후적 규제 강화가 재계와 보수언론의 반대에 막혀 지지부진하다. 한마디로 사전 규제는 풀고 사후 규제는 못 받겠다는 속셈이다.
정부와 여야는 벤처 활성화를 명분으로 ‘벤처 차등의결권’ 허용 법안을 발의했다. 경제개혁연대 등은 재벌 세습 악용 위험 등을 이유로 반대한다. 엄격한 사후적 규제가 도입된다면 제한적 허용을 검토할 수 있겠지만, 전제조건이 충족되지 않고 있다.
보수언론은 쿠팡을 앞세운 억지 주장을 멈춰야 한다. 재계도 규제를 탓하기 앞서, 공정경제를 위한 최소한의 사후적 규제에 대한 반대부터 철회해야 한다.
[ 2021. 2. 17 한겨레 사설 ]
원문보기:
http://www.hani.co.kr/arti/opinion/editorial/983233.html#csidx481391208033a55bd4592587baa2b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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