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계·제작·발사 100% 우리기술...10월 발사 성공땐 매년 인공위성 운반
■ 韓 우주시대 열 ‘누리호’
1조9572억 들여 11년간 개발, 위성모형 싣고 시험발사 준비
통신·관제 기술도 순수 ‘국산’
타이밍 어긋나면 대형사고, 75t 엔진 테스트만 180회 진행
높이 47.2m·무게 200t 달해, 아파트 15층·전철 6량 맞먹어
* 용홍택(왼쪽)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제1차관이 나로우주센터 현지에서 이상률 한국항공우주연구원 원장과 환담을 나누고 있다. 오른쪽 사진은 누리호가 운반차량에 실려 발사대로 이동하는 모습. 한국항공우주연구원 제공
우리나라 최초의 한국형 발사체 ‘누리호’가 오는 10월, 지구에서 약 700㎞ 상공에 올릴 인공위성 모형을 싣고 우주로 날아오른다. 2010년부터 약 11년 동안 1조9572억 원의 거액을 들여 국내 독자 기술로 개발해온 우주탐사용 국산 로켓 1호가, 드디어 시뻘건 불꽃을 내뿜으며 창공을 향해 한 점으로 사라져 갈 장관을 몇 개월 후 직접 목격하게 된다.
설계에서부터 제작 및 시험·인증, 발사까지 전 과정을 한국 기술로 완성해, 우주 독립의 첫걸음을 내딛는 쾌거다. 이름 그대로 새로운 누리(세상) 시대가 열리는 것이다.
올해 누리호가 무사히 발사에 성공하면, 내년 5월에는 무게 180㎏의 성능검증용 위성과 위성 모사체(dummy)를 싣고 한 번 더 우주로 날아가며, 그 후에는 거의 매년 실제 인공위성을 탑재해 궤도로 올리는 운반선의 역할을 수행하게 된다.
발사체란 무엇이며, 이를 국산화한다는 것은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지닐까.
◇우주·군사강국 디딤돌 확보
=발사체란 인공위성·탐사선·우주정류장 등 우주 구조물을 우주 공간에 올려놓기 위해 사용하는 로켓을 말한다. 우주 탐사·과학적 연구 등 평화적 목적으로 이용되면 발사체로 불리지만, 군사적 목적에 맞춰 원격지의 목표물을 파괴하기 위한 로켓은 미사일이 된다. 특히, 다른 대륙까지 날아갈 수 있는 장거리 미사일은 대륙간탄도탄(ICBM)이란 별칭을 갖는 강력한 무기로 군림하고 있다.
미사일이냐, 발사체냐는 머리에 해당하는 탑재부에 탄두(화약)를 싣느냐, 인공위성 등 평화적 목적의 페이로드(payload·적재화물)를 싣느냐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그래서 독자적인 발사체 기술의 확보는 우주 강국에서 군사 강국으로 연결되는 미묘한 포인트로 작용한다. 우주로 날아가는 발사체는 보통 여러 개의 추진 로켓을 묶어(clustering·클러스터링) 강력한 추력을 얻는다. 대기권을 탈출하는 우주 속력을 얻는 데 가장 강력한 1단 로켓이 사용되고, 이후 조금 경량급인 2단 로켓과 3단 로켓으로 우주 공간을 이동하거나 자세를 제어한다. 인공위성을 목표 궤도에 올리거나 대륙간탄도미사일을 정확한 사거리로 조정하는 기술은 질적으로 다르지만, 근본적으로 같은 뿌리를 갖고 있다.
최근 개정된 한·미 미사일 지침으로 고체연료 사용 제한이 풀리면서, 한국형 발사체 개발에 참여 중인 민간기업들의 주가가 일시 상승한 것도 이 같은 이유에서다. 한·미 미사일지침 개정, ‘아르테미스 협정’ 참여, 한·미 위성항법 공동서명 등, 항공우주 분야에서 급격한 변화가 진행 중인 가운데, 한국형 발사체의 완성은 여러 가지 의미에서 우리나라의 자주적 지위를 높여줄 전망이다.
◇누리호의 EM·QM·FM 변천사
=지난 10여 년 동안 발사체의 모든 부품 제작과 조립, 성능 테스트 등을 우리 손으로 진행해온 과정은 결코 간단하지 않았다. 하나하나가 새로운 기록의 축적이었다. 매우 세밀한 단계별 계획에 따라 치밀하고 조직적으로 기술력을 끌어올렸다.
발사체는 최소 세 차례에 걸쳐 반복 제작된다. 엔지니어링 모델(EM·Engineering Model), 인증 모델(QM·Qualification Model), 비행 모델(FM·Flight Model)이 그것이다. 부품을 모두 조립해 전체 시스템이 잘 돌아가는지 제작 단계에서 검증하는 EM, 제작된 발사체가 연료 주입과 기립 등 발사에 필요한 공정 및 동작을 무리 없이 해내는지 테스트하는 QM, 실제 비행에 사용하는 FM은 겉보기엔 똑같이 생겼다.
지난 1일 전남 고흥 나로우주센터에서 발사대에 수직으로 서 있는 모양을 공개한 누리호는 QM, 오는 10월 실제 발사될 누리호는 FM이다. 발사체를 지지하는 발사대를 국산화하는 작업도 쉽지 않았다.
누리호를 쏘아 올릴 제2발사대는 영어로 탯줄을 의미하는 엄빌리컬(umbilical) 타워로 불린다. 산모가 태아에 산소와 영양분 등을 탯줄로 전달하는 것처럼 기립한 발사체에 케로신·산화제 등 연료를 공급하는 지상 구조물이다.
고정 장치로 발사체를 최대 추력에 이를 때까지 꽉 잡고 있다가 정확한 타이밍에 놔줘야 하는 임무를 맡는다. 자칫하면 발사체가 땅을 떠나지도 못하고 사고를 당할 수도 있다.
◇최첨단 기술 총동원
=한국형 발사체 누리호의 성능을 대략 살펴보면, 1.5t급 실용위성을 600~800㎞ 상공의 지구 저궤도에 진입시킬 수 있는 힘과 덩치를 갖고 있다. 키는 47.2m, 무게는 200t으로, 아파트 15층 높이에 지하철 6량의 중량과 맞먹는 수준이다. 75t급 추력을 내는 액체로켓 엔진 4기로 클러스터링된 1단부와, 75t급 액체엔진 1기의 2단부, 7t급 엔진 1기의 3단부 등 총 세 부분으로 구성돼 있다.
발사체에서 가장 중요한 액체엔진의 성능 검증을 위해 그동안 수많은 연소 시험이 행해져 왔다. 75t 엔진은 180회, 7t 엔진도 91회의 테스트를 거쳤다. 하단부 1단의 경우 75t 대형 엔진 4개를 묶어 하나의 엔진처럼 작동해야 하므로, 조작의 시간적 정합성과 균형을 잘 유지해야 한다.
75t급 이상의 중대형 액체엔진은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7번째로 독자 개발 엔진 기술을 보유한 국가로 기록됐다. 이 엔진은 케로신이라는 로켓 연료와 산화제를 초당 1016㎏ 소모한다. 200ℓ 크기의 드럼통 2개를 1초에 다 태울 정도로 빨라 1단이 작동하는 130초 동안 260개의 드럼통을 텅 비우게 된다.
또, 발사체의 몸통에 해당하는 추진제 탱크와 배관을 만드는 일도 단순해 보이지만 고도 기술이 요구된다. 발사체 부피의 80%를 차지하는 추진제 탱크는, 경량화를 위해 2.5~3.0㎜의 얇은 알루미늄 합금 단일 벽으로 제작한다. 특히 영하 183도의 액체산소와 영하 196도의 액체질소 등 극저온 물질의 온도 변화를 최소화하기 위해, 벽과 벽 사이에 진공 상태가 유지된 이중벽으로 만드는 기술이 어렵다.
최대 높이 10m, 지름 3.5m의 거대 구조물을 이렇게 얇은 금속판으로 만들면서도, 내부는 삼각형 형태의 격자 구조를 설계해 넣어야 한다. 탱크 내부에 대기압의 4~6배 정도의 압력이 걸리고, 비행 중에 관성력·공력 등 추가로 가해지는 하중에도 견딜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발사체를 쏘아 올린 다음, 비행 중에 통신을 교환하고 관제하는 기술도 모두 우리 힘으로 이뤘다. 누리호를 추적하기 위해 나로우주센터와 제주도에 추적 레이더와 텔레메트리(telemetry·원격통신) 안테나를 설치했고, 비행 후반부의 추적을 위해 태평양 서부의 섬 팔라우에도 추적소를 두고 있다.
한시라도 신호를 놓치지 않기 위해, 선박에도 이동형 데이터 수신장치를 달고, 만에 하나 예상 비행궤적을 이탈해 안전 영역 밖으로 움직이거나 주거지역 방향으로 비행하는 등 비정상적인 비행이 지속돼 지상의 인명과 재산에 피해를 입힐 가능성이 생길 경우, 비행 종단(termination) 명령을 보내 발사체를 안전하게 유도하는 일도 빠질 수 없는 기능 중 하나다.
노성열 기자 nosr@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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