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 상식

당신은 나의 고통을 알고 있습니까

道雨 2021. 8. 10. 10:34

당신은 나의 고통을 알고 있습니까

 

1992년 미국 대선의 분기점 중 하나는 조지 부시 대통령과 빌 클린턴 민주당 후보의 두번째 텔레비전 토론이다.

경기 불황에 고통받는 한 청중이 후보들에게 이렇게 물었다.

“부채가 후보의 삶에 구체적으로 어떤 영향을 끼쳤습니까? 저는 주택 융자금과 자동차 할부를 갚을 여력이 없어 고통받는 사람들을 압니다. 후보가 그런 감정을 모른다면 어떻게 진정으로 우리를 도울 수 있겠습니까?”

 

부시 대통령은 당황한 듯 말이 꼬였고 “질문의 정확한 의미를 다시 설명해달라”고 되물었다.

 

빌 클린턴은 그 청중에게 한발짝 다가서면서 이렇게 말했다.

“저는 12년간 작은 주(아칸소)의 주지사를 지냈습니다. 중산층에 대한 워싱턴의 지원은 줄어드는 반면, 부유한 사람들이 세금 감면을 받는 걸 지켜봤습니다. 직장을 잃고, 공장 문을 닫은 사람들을 만났습니다. 나는 당신의 고통을 잘 알고 있습니다.”

 

나는 당신의 고통을 압니다(I feel your pain), 이 구절은 대통령이 되려는 사람에게 가장 중요한 게 무엇인지를 압축적으로 일깨운다. 국민의 삶에 깊게 팬 아픔과 상처를 함께 느끼고, 그걸 개선하려 노력하는 자세보다 더 중요한 건 없다. 대통령이 모든 정책 현안을 꿰뚫고 있을 필요는 없지만, 적어도 지금 국민의 삶에서 중요한 건 뭔지, 그걸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 건지 끊임없이 고민을 했어야 한다.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의 가장 중요한 치적으로 꼽히는 ‘오바마 케어’(의료보험 개혁)는 그런 공감에서 비롯됐다. 오바마는 “내 어머니는 암으로 돌아가시기 전 몇년간 암으로 인한 고통보다 병원비를 더 두려워했다. 나는 질병보다 병원비를 걱정하는 그런 시민들을 무수히 만났다. 이게 내가 의료개혁을 하려는 이유”라고 말했다.

 

어쩌면 당연한 것을 지금 다시 새기는 건 다른 뜻에서가 아니다. 정부 고위직을 그만두고 대선에 뛰어든 두 사람의 요즘 언행을 보면, 이들이 국민의 아픔에 단 한번이라도 제대로 공감하고, 진지하게 고민해본 적이 있는가 의문이 들기 때문이다. 문재인 정부의 부동산정책 실패를 맹렬히 비판하지만, 그들은 과연 집 없는 서민의 아픔을 이해하고, 엄청난 불로소득을 얻는 일부 다주택자에게 분노를 느껴본 적이 있을까 궁금하기 때문이다.

 

윤석열·최재형 두 사람의 ‘실언’이 유독 일반 국민의 삶의 영역인 사안에서 두드러지는 건 우연이 아니다.

“일주일에 120시간이라도 바짝 일하고, 이후에 마음껏 쉴 수 있어야 한다”거나 “가난한 사람은 부정식품이라도 먹을 수 있게 선택의 자유를 존중해야 한다”는 윤석열씨의 발언은, 실제 그런 처지에 놓인 이들의 절박함을 너무 쉽게 재단하고 있다.

기준에 이르지 못했다고 해서 모든 식품이 불량인 것은 아니다. 하지만 누군가 그런 식품을 먹어야 하는 상황을 자유시장경제의 예시로 드는 윤석열씨 사고에선, 낭떠러지까지 떠밀린 이들의 박탈감과 그런 현실을 방관하는 정부·사회의 책임에 대한 성찰은 찾아보기 어렵다.

“일하고 싶은 사람의 일자리를 빼앗는 최저임금 인상은 범죄와 다름없다”는 최재형씨 발언도 다르지 않다. 최재형씨 캠프에선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의 부작용을 강조한 말’이라고 해명했지만, 저임금 노동자들 처지를 생각하면 아무리 그래도 최저임금 인상을 ‘범죄’라는 단어로 규정할 수는 없다.

 

‘대통령이 될 준비’라는 건 분야별로 현안을 속성 과외 받듯이 대충 파악하거나, 나라 사랑하는 마음을 애국가 완창으로 보여주는 것과는 본질적으로 다르다. 항상 국민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국민의 아픔을 함께 느끼려는 자세가 밑바닥에 깔려 있어야 한다.

 

평생을 검찰과 법원에서 누군가를 심판해온 두 사람에겐, 서민의 삶이란 기소장이나 판결문에나 등장하는 메마른 단어에 불과할지 모른다. 그 점에서 이들이 낡은 정치에 찌든 것처럼 보이는 홍준표·유승민·원희룡보다 나을 건 없다.

세 사람은 그래도 지역구 선거를 하고 작은 도의 지사를 지내면서 일반 국민과 훨씬 가까이 있었다. 부동산값이 폭등하던 십수년 전, 홍준표 의원이 무주택자에게 반값 아파트를 지어 공급하자는 주장을 편 걸 기억해보라.

 

대통령은 애국심이 충만하다고 누구나 할 수 있는 자리가 아니다. 현 정부에 대한 분노와 증오심만으로 도전할 자리는 더더욱 아니다.

중요한 건 국민의 아픔과 처지를 정확하게 이해하고 있는지 여부다. 그래야 미국 청중의 말처럼, 정말 국민을 위한 정책을 펼 수 있지 않겠나.

 

박찬수 : 선임논설위원 pc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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