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계부채와 한국은행의 역할
지난달 한국은행 총재는 금리인상 가능성을 비교적 강하게 시사했다. 코로나 상황이 계속되고 있고 미국 등 다른 선진국에서는 금리인상이 아직 가시권에 있지 않다는 점을 고려하면 다소 의외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 가계부채 상황을 고려하면 바람직한 방향이라 생각한다. 오히려 다소 늦었다는 생각마저 갖고 있다.
우리나라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은 작년 말 기준으로 103%에 이르러, 40여개 선진국 중 7위이며, 증가 속도 역시 최고 수준이다.
가계부채는 올해 들어 더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7월까지 금융권 전체의 가계대출 증가액은 79조원으로 작년 같은 기간에 비해 무려 71.6%나 늘었다.
이런 급증세의 가장 큰 이유는 물론 부동산 가격 상승에 따른 주택 관련 대출 수요 증가에 있다.
금융기관의 과도한 대출은 경제 전체의 안정을 위협하고, 때로는 금융위기의 원인이 된다. 그래서 경제 전체 부채의 양과 질을 적절히 관리하는 것은 금융정책 당국의 중요한 임무 중 하나다.
특히 부동산 가격 상승과 연계된 대출의 과도한 증가는 매우 위험하다. 흔히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로 기억되는 2008년 미국 금융위기나, 일명 피그스(PIIGS: 포르투갈, 이탈리아, 아일랜드, 그리스, 스페인) 국가의 디폴트 위기는 모두 부동산 대출의 급증과 그 이후 버블 붕괴에 근본 원인이 있었다.
이런 버블의 진짜 문제는 터지기 전에는 그 위험을 알기 어렵다는 점이다. 그래서 국제기구나 전문가들은 금융정책 당국이 이런 위험을 항시 모니터링하고 예방하는 것을 최우선 정책 목표 중 하나로 삼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코로나 상황임에도 한국은행 총재가 금리인상을 예고한 것은 이런 배경에서 비롯된 것으로 생각한다.
그런데 일각에서는 가계부채 급증의 위험은 인정하지만, 그것을 한국은행의 기준금리 인상으로 대응하는 것이 적절한가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신관호 교수의 <한국경제> 칼럼, 6월29일치). 사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한국은행조차 부동산 가격 상승과 가계부채 문제의 대응에 매우 소극적인 것으로 보였다.
금리인상을 부정적으로 보는 사람들은 자산시장 버블과 가계부채 관리 같은 소위 거시건전성 정책은 중앙은행의 정책 영역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기준금리를 조정하는 한국은행은 물가안정 목표의 달성에 집중하면 되고, 거시건전성 정책은 주택담보대출비율(LTV)이나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을 조정하는 금융위원회가 담당해야 한다는 시각이다. 또한 금리는 경제 전반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부동산 가격 안정에 사용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는 입장이다.
필자의 생각은 다르다.
우선, 금리를 조정하는 통화정책과 금융시스템 안정을 위한 거시건전성 정책은 결코 양분되는 것이 아니다. 금리는 가계나 기업이 대출을 얼마나 이용할 것인가 하는 위험에 대한 태도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금리 수준이 결국 가계부채 규모, 나아가 금융안정에 결정적인 변수가 될 수밖에 없다.
국제결제은행(BIS)이 거시건전성 정책을 권고할 때부터 중앙은행이 그 중심에 있어야 하며, 통화정책과 거시건전성 정책의 상호작용에 대해 깊이 생각해야 한다고 수차례 강조한 이유도 바로 이 때문이다.
그리고 금리인상이 경기둔화를 초래할 수 있다는 우려는 이해하지만, 모든 정책 결정에서 그렇듯 문제는 이 시점에서 무엇이 더 시급한가의 판단이다.
지난 3월 이후 우리 경제는 물론, 글로벌 경제 전체가 빠른 회복세를 보이고 있다. 코로나의 재확산에도 불구하고, ‘위드 코로나’의 단계로 접어들면서, 경기둔화 조짐은 심각하지 않다. 오히려 인플레이션 압력이 가중되는 양상이다. 따라서 금리 조정에 있어 경기 조절과 가계부채 관리 사이의 상충관계에 관한 고민은 줄었다.
금리인상에 따른 자영업자의 이자 부담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지만, 이 문제야말로 금리라는 일반적 정책수단이 아니라 다른 정책수단으로 얼마든지 대응할 수 있다. 손실보상과 같은 재정정책 수단도 있고, 이미 시행되고 있는 상환유예나 저금리 대출과 같은 금융지원 제도들을 유연하게 활용하면 된다.
마지막으로 엘티브이나 총부채상환비율(DTI)과 같은 대표적 거시건전성 정책수단의 여력이 거의 남아 있지 않다는 점도 생각해야 한다.
결국 지금이야말로 한국은행이 거시건전성 정책의 주체가 되어, 2011년 한국은행법 제1조에 추가된 조항대로 ‘금융안정에 유의’하여 통화정책을 결정할 때다.
박복영 | 경희대 국제대학원 교수
원문보기:
https://www.hani.co.kr/arti/opinion/column/1007982.html#csidx70e8f56a1cac7bc8e97d0654032f9b3
'시사, 상식' 카테고리의 다른 글
여야 합심해 ‘종부세 후퇴’, 이러고도 집값 안정 바라나 (0) | 2021.08.20 |
---|---|
징벌적 손해배상과 형사처벌 (0) | 2021.08.19 |
역사의 종말 (0) | 2021.08.18 |
‘국익’으로 포장하지 말라 (0) | 2021.08.18 |
20년 만의 탈레반 재집권, 아프가니스탄의 교훈 (0) | 2021.08.1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