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 상식

탄소배출권 거래는 현대판 면죄부

道雨 2021. 8. 30. 11:48

그리고 아무 상쇄도 없었다

 

탄소 상쇄(offset)는 마술 같다. 비행기를 타서 탄소 배출하는 게 찜찜하던 차에, 몇천원만 내면 그 탄소가 ‘뿅’ 하고 상쇄된단다.

정확히 어떻게 상쇄되냐고? 글쎄, 나무라도 심나? 바쁜 고객은 몰라도 된다.

자, ‘탄소배출권’을 구입했으니 ‘죄’를 사하노라! 기업도 배출권을 사면 책임 있는 기업이 된다. 이런 탄소 상쇄 시장의 규모는 100조원 이상으로 확대될 전망이다.

 

탄소 상쇄라는 발상이 등장했을 때, 많은 이들이 중세 시대의 면죄부를 떠올렸다. 다른 게 있다면 탄소 상쇄는 혹세무민뿐만 아니라, 지구를 망치는 데도 기여한다는 점.

상쇄되는데 왜 망치냐고? 상쇄가 제대로 되려면, 돈 내는 게 다가 아니다. 지구 어딘가에서 정말로 좋은 일이 일어나야 한다. 가령, 파괴되던 숲이 지켜지는 일. 그게 어디 쉬운가? 나름 환경 의식이 투철한 그룹 콜드플레이도 그래서 망신을 당했다. 탄소 배출이 심한 해외 공연 투어를 상쇄해보겠다고, 인도의 망고나무 심기 프로젝트에 통 크게 기부했지만, 몇년 후 나무들은 말라 죽어버렸다. 그나마 그들은 해외 투어를 잠시 중단이라도 했으니 염치는 있다. 그조차 없는 이들도 많다.

 

지난 월요일, 나는 <한겨레>에 캄보디아에서 벌어진 산림파괴를 폭로하는 기사를 기고했다. 산림청이 캄보디아에서 “레드플러스”(REDD+)라는 사업을 벌이고 숲을 잘 보호해 무려 “65만톤의 탄소배출권을 확보한 성과”를 자랑했는데, 정작 그 숲의 3분의 1 이상이 사업 시작 후 파괴됐다는 내용이다.

위성 데이터, 현지 활동가의 리포트, 드론 사진 등 증거를 확보해 이를 뒷받침했지만, 산림청의 해명은 마치 에이아이(AI) 같았다. “대규모 산림 파괴는 없었음.”

매년 3500헥타르의 숲이 사라지는 게 소규모란 말인가?

 

이런 말도 있었다. ‘본 사업은 노르웨이나 독일도 함.’ 그래서 어떻다는 것인가?

 

내가 이 일에 주목한 첫 동기가 바로 노르웨이가 지원하는 아마존의 레드플러스였다. 숲도 보호하고 원주민의 삶의 질도 개선한다던 레드플러스가, 둘 다 실패했다는 게, 사업에 참여한 많은 전문가과 원주민의 결론이다. 실제로 아마존은 현재 전례 없는 속도로 파괴되고 있다.

 

두번째 동기는 한국에 정부의 홍보 말고는 레드플러스에 대한 기사가 전혀 없기 때문이다. 이렇게 문제의식이 없다 보니, 최근 탄소중립위원회가 발표한 탄소중립 시나리오에도, 레드플러스 같은 해외 사업을 활용해 부족한 감축분을 채운다는 계획이 제시됐다.

 

아무리 기후 대응에 뒤처졌어도, 눈높이가 이렇게 낮아지면 곤란하다. 레드플러스는 전세계적으로 비판받는 사업이다. 캄보디아 사례처럼 숲을 보호하지 못해 탄소 상쇄가 안 되는 경우가 허다하고, 원주민의 삶을 개선하는 데도 대부분 실패하고 있으며, 심사 체계도 허술하기 때문이다.

오죽하면, 탄소배출권의 3대 인증 기관 중 하나인 골드스탠더드조차, 레드플러스는 심사 체계에 문제가 많아 인증도 안 하고 있다. 숲 관련 탄소 상쇄 시장의 80%가 레드플러스인데도!

 

게다가 숲 자체가 변하고 있다. 올해 발표된 연구에 따르면, 아마존마저 탄소 저장원이 아닌 배출원으로 전락했다. 주원인은 벌채·방화지만, 지구 가열에 따른 가뭄도 있다. 탄소 배출원에서 무슨 수로 배출권을 추출한단 말인가?

 

레드플러스는 이런 허구성을 난해한 용어로 가리려 한다. 그중 하나가 ‘추가성’인데, 해당 사업이 어떤 가치를 추가했는지 내세운다. 즉 ‘이걸 안 했으면 어쩔 뻔했냐’다.

이번 조사에서 위성정보 분석을 도와준 해외 지리정보 전문가에게 “아마도 산림청은 숲이 이만큼이라도 남은 건 우리 덕”이라 주장할 거라고 말했다.

그가 답했다. “설마! 그런다면 그들의 기준은 굉장히, 굉장히 낮다.”

정곡을 찌르는 말이다. 이 정도를 가짜라고 느끼지 못한다면, 잘못된 건 우리의 기준이다.

 

김한민ㅣ작가·시셰퍼드 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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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www.hani.co.kr/arti/opinion/column/1009609.html#csidx1e46c063e445e2abfab89530facdd8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