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 존엄'에 질문한 기자는 어떻게 왕따가 되는가
'1호기 민간인 특종'부터 '바이든 날리면'까지
권력에 굴하지 않은 '별종 기자'의 취재분투기
권언관계를 드러낸 21세기판 기자풍토 종횡기
신간 <기자유감>, 이기주, 메디치미디어
"기자가 질문도 못해요?"
MBC 이기주 기자가 윤석열 대통령의 마지막 도어스테핑(출근길 문답) 당시 대통령실 이기정 홍보기획비서관과 벌였던 설전은 지금도 눈에 선하다.
기자가 만난 기자 중에 MBC 이기주 기자만큼 제대로 따져 묻는 기자가 지금 대한민국 언론에 몇이나 있을까.
당시 한 치의 굽힘 없이 설전을 벌이는 장면을 보면서, 이기주 기자답다고 생각했다.
이 장면을 마지막으로 도어 스테핑은 자취를 감췄다.
이기정 비서관과 설전은 MBC를 노골적으로 비난하고 뒤돌아선 대통령에게, "뭐가 악의적이에요?"라고 질문을 던졌다는 이유로 시작됐다. '국가 존엄'의 뒤통수에 대고 감히 기자가 질문을 하는 게 불경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 이면엔 MBC에 대한 용산의 '반감'이 자리잡고 있다고 보는 편이 합당하다.
민간인 신분인 인사비서관 배우자가 김건희 씨를 사적 수행한 사실을 드러낸 '1호기 속 수상한 민간인' 특종 보도, '바이든-날리면' 최초 발견 및 보도 등을 한 MBC는, 도어스테핑 설전 직전에 이미 '전용기 탑승 불허' 조치까지 당한 터였다.
그리고 이러한 보도의 중심엔 늘 이기주 기자가 있었다.
그러나 전무후무한 전용기 탑승 불허, 도어 스테핑 설전은 그를 네이버 구독자 '1위' 기자로 만들었지만, '질문하는 기자'의 대가는 혹독했다.
정치권은 슬리퍼를 신었다는 이유로 조리돌림했고, 언론은 가짜뉴스를 써댔다.
살인 예고를 받고도 평소처럼 대통령실에 출근했던 그를 힘들 게 했던 것은 동료 기자의 태도였다. 대통령실은 이기주 기자 퇴출을 요구했고 공공연하게 그에게 압력을 가했으며, 권력의 의도를 눈치챈 기자들은 슬그머니 그와 멀어졌다.
권력에 굽히지 않은 '별종'이 된 그는, 그렇게 대통령실 기자실과 기자 사회에서 왕따 신세가 됐다.
기자가 질문하는 일은 당연한 데, 질문하는 일은 인간을 고독하게 만드는 일이 되어버렸다.
이 책은 윤석열 정권 초기, 가장 주목됐던 정치적 사건의 한복판에 있었던 MBC 기자가, 자신이 겪은 일들을 담담하게 풀어내고 있다. 책의 상당 부분은 대통령실과 MBC를 둘러싼 일련의 사태와 관련해 그 뒷이야기를 담아내고 있지만, 그 기록은 결코 기자 개인의 기록에만 머물지 않는다.
그가 대통령실을 출입하면서 겪은 일들은, 살아있는 권력에는 개처럼 순종하고 죽은 권력엔 하이에나처럼 달려드는, 우리 언론의 쓸씁한 뒷모습을 날것 그대로 그리고 있다.
그래서 이 책은 한 개인의 분투기이자 사회 고발서이고, 21세기판 '기자풍토 종횡기'라고도 할 수 있다.
"살아있는 권력과 여러 차례 충돌하면서, 기자란 국민에게 어떤 존재여야 하고, 기자가 지켜야 하는 가치는 무엇인지를 생각하기 시작했다"고 밝힌 저자는, 여러 사건 속에서 권력과 언론의 속성을 가감없이 드러낸다.
"일부 기자들은 힘들게 얻은 질문 기회를 권력 칭송으로 소모하고, 질문을 가장해 대통령에게 야당 비판의 장을 마련해준다"거나 "권력을 향한 불편한 질문을 거부할 바에는 국민을 대신해 질문한다는 말도 더는 입에 올리지 말아야 한다"는 그의 일침은, 이 시대 언론인이 뼈 아프게 들어야 할 말이다.
아울러 책은 평범한 직장 생활을 하다가 우연히 광우병 집회에서 경찰이 곤봉으로 시민을 폭행하는 모습을 목격한 뒤, 기자가 되기로 결심한 그의 사회 초년생 시절 모습과, 정의감 넘치던 수습기자에 대비되는 언론계의 부조리와 관행, 김재철 사장 시절 MBC로 이직해 비주류로 겪었던 차별과 폭언, 폭행 등 여러 이야기 조각들이 엮여 있다.
그가 수습기자에서 정치부 기자로 성장하기까지 과정을 따라가다보면, 자연스럽게 '기자란 무엇이어야 하는가' '기자는 어떻게 해야하는가'라는 고민을 끊임없이 던지게 된다.
책은 단순히 기자에 대한 유감으로만 그치진 않는다.
묻힐 뻔했던 비정규직 순찰원의 죽음을 파헤치는 과정이나 이춘재 초등학생 살인 사건 은폐 의혹 보도 과정은, 저널리즘의 모범을 보여준다.
그의 취재 과정은, 진짜와 가짜도 구분하기 힘든 윤석열 정부 시대에, 아직 저널리즘에 희망이 있다는 메시지를 던져준다. 그렇기에 "그동안 실망과 좌절도 많았지만, 그래도 여전히 기자의 힘을 의심하지 않는다"는 그의 말이, 공허한 메아리로만 들리지 않는다.
우리에겐 이미 그 힘을 보여준 괜찮은 기자가 최소 1명은 있기 때문이다.
김성진 기자mindle1987@mindle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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