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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 해병 사건, 반쯤 열린 진실의 창

道雨 2024. 5. 17. 11:38

채 해병 사건, 반쯤 열린 진실의 창

 

 

 

채 해병 사망과 관련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와 경북경찰청의 최근까지 수사를 살펴보면, 국방부와 군에 윤석열 대통령과 대통령실 관계자들의 수사 외압을 부인하는 증인은 거의 남아 있지 않다.

굳이 꼽으라면 윤 대통령 편은 이종섭 전 국방부 장관, 김계환 해병대 사령관, 그리고 박정훈 대령을 기소한 김동혁 국방부 검찰단장 정도다.

 

4월 말에 공수처에 출석한 유재은 국방부 법무관리관은, 작년 8월2일에 이시원 대통령실 공직기강비서관과 한차례 통화했다는 언론 보도를 훨씬 뛰어넘는 진술을 했다.

유 관리관은 그날 외에도 국방부 조사본부가 해병대 수사단의 수사 결과에 대해 검토회의를 개최한 그달 9일과 17일에도 이 비서관과 다수의 통화를 했고, 8월에만 그 횟수가 26회에 이른다.

 

대통령실이 임성근 당시 해병대 1사단장을 보호하기 위해 수사 전반을 직접 통제했음을 드러내는 데 이보다 더 분명한 증거는 없다.

 

5월 초에 공수처에 출석한 김 사령관의 태도는 더 이상하다. 그는 박 대령의 항명 재판에서 작년에 대통령실이 윤 대통령의 격노로 인해 해병대 수사에 외압을 행사한 일은 없었다고 증언했다. 공수처의 집요한 압박 때문이었을까. 막상 공수처에 출석한 그는 대통령의 격노 외압설에 대해 묵비권을 행사한 것으로 보인다.

일부 언론이 김 사령관이 공수처에서 외압설을 부인했다고 보도했지만, 이는 사실이 아닌 듯하다. 더 이상 대통령실을 비호하기 위해 자신을 희생할 생각은 거둔 것 같은 태도다.

 

 

5월9일에 열린 윤 대통령의 취임 2주년 기자회견에서도 채 해병 사건 수사에 대한 격노와 외압 관련 질문이 있었지만, 묵비권이 이어졌다.

국민이 가장 궁금해하는 대목에서 말문이 막힌 권력은, 이 공직기강비서관을 돌연 경질했다. 아마도 최악의 경우에는 대통령 본인이 아닌 참모와 국방부 공무원의 무리한 수사 개입으로 처리하려는 일종의 꼬리 자르기가 아닌가 싶다.

 

더 황당한 일은 지난 13일에 경북경찰청에 출석한 임 전 사단장이 채 해병 사망에 대한 자신의 책임을 부인하며, 그 책임을 육군 50사단에 전가한 장면이다.

50사단장은 채 해병 사망 전날에 폭우로 육군 병력을 전원 철수시켜 그 이후 현장 사정을 전혀 모르는 지휘관이다. 작전통제권을 부여받았다는 육군 사단장은 현장에 나온 적도 없고, 해병대와 협조 회의를 한 적은 더더욱 없다.

 

반면 임 전 사단장은 채 해병 사망 이전에 사건 현장에서 상륙돌격장갑차를 투입하는 등 중요한 작전을 직접 통제하며, 이와 관련된 언론 보도까지 챙겼다.

복장 통일과 경례 철저는 사단장의 현장 지휘에서 나온 지시 사항이고, 장화를 신고 제방 아래로 내려가 바둑판식으로 찔러보며 수변에서 정성껏 수색하라는 지시가 사단장으로부터 나왔다는 여단장과 대대장의 증언도 있다.

이에 대해 임 전 사단장이 이를 지휘통제가 아니라 “의견 제시였다”고 둘러대는 장면에서는 헛웃음이 나온다.

 

 

이들이 대통령의 격노와 그 뒤에 이어진 외압에 대해 침묵한다고 해서 진실이 은폐되는 것인가.

문제의 격노 사건은 작년 7월31일에 열린 대통령실 수석보좌관회의에서다. 대통령이 주재하는 공식적인 정례회의인 수석보좌관회의는 참석자만 수십명에 이르며, 회의 결과는 반드시 녹취록을 작성하고 대통령 지시 사항은 후속 조치를 보고하기 위해 철저하게 관리한다. 공수처가 제대로만 수사한다면 대통령실 곳곳에서 윤 대통령의 격노와 외압의 정황, 증거는 얼마든지 확보할 수 있다.

바로 이 점 때문에 윤 대통령마저도 자신의 격노를 차마 부인하지 못하는 것이라면, 장차 가장 결정적인 진실의 몸통을 마주할 수 있을는지도 모른다.

 

아직 공수처도 이 몸통을 건드리지 못하는 상황에서, 윤 대통령이 채 해병 특검을 거부하게 되면, 국민의 분노는 임계점을 넘게 될 것이다.

그 많은 정황 증거와 진영을 초월한 언론 보도에 일일이 대응하기에는 외압 은폐 세력의 상황이 너무나 불리하다.

이제 반쯤 열린 채 해병 사건의 진실의 창문이 다시 닫히는 순간, 민주공화국은 불복종과 항쟁의 시간을 선포하게 될 것이다.

 

이미 윤 대통령을 지키는 국방부와 군의 방어 전선은 무너졌다.

다가올 파국을 막아야 한다는 절박함으로 각성된 여당 의원들이 있다면, 대통령이 국회에 재의를 요구하더라도 찬성표를 던지는 것이 양심과 순리에 맞지 않겠는가.

 

 

 

김종대 | 연세대 통일연구원 객원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