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 대한민국의 언론자유 폭망 사건
* 전국언론노동조합 조합원들이 지난달 8일 오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윤석열 정부 언론탄압 분쇄!’ 기자회견 및 집중 선전전을 하고 있다. 김영원 기자
“언론을 쥐려면 그 방법을 내가 잘 알고 있는데, 그럴 생각이 전혀 없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달 29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와의 회담 자리에서 했다는 말이다. 회담 배석자가 라디오 방송에 나와 전한 얘기다.
‘언론 장악 기술자’ 이동관 전 방송통신위원장이 했던 말을 떠올리게 한다.
“언론은 장악될 수도 없고 또 장악해서도 안 되는 영역이다.”
헛웃음이 나온다. 윤 대통령의 말에 고개를 끄덕일 국민이 과연 얼마나 될까.
언론 장악 방법을 아주 잘 알고 있을 뿐만 아니라, 철두철미하게 실행에 옮긴 장본인이 윤석열 정권 아닌가.
며칠 지나지 않아 윤 대통령의 ‘호언’을 무색하게 하는 소식이 들려왔다.
‘세계 언론 자유의 날’(5월3일)을 맞아, 국제 비영리단체인 국경없는기자회가 발표한 언론자유지수 조사 결과다.
대통령이 취임 이후 2년간 공식 메시지에서만 ‘자유’를 1천번 넘게 설파했다는 ‘자유 대한민국’의 성적표는 초라했다.
문재인 정부 기간 180개국 중 41~43위를 유지하던 언론자유지수 순위가, 지난해 47위로 낮아지더니, 올해엔 62위로 추락했다.
언론 자유 관련 국가 분류에서도 ‘만족스러움’에서 ‘문제 있음’ 단계로 내려앉았다. 올해 조사 결과는 2023년 언론 상황에 대한 평가다. 지난해부터 본격화한 언론 장악 폭주가 감점 사유로 작용했으리라는 건 의심의 여지가 없다.
국경없는기자회는 누리집에 올린 글에서 “민주주의 국가에서 언론 자유가 공격받고 있다”며, 한국을 그 사례로 들었다.
“최근 몇년 동안 개선이 이뤄졌던 몇몇 국가에 검열이 다시 돌아왔다. 한국에서는 일부 언론사들이 명예훼손 혐의로 정부로부터 기소 위협을 받고 있다.”
이 단체가 제시하는 ‘언론 자유’의 척도는 “언론(인)이 정치적, 경제적, 법적, 사회적 간섭으로부터 독립적으로, 그리고 신체적, 정신적 안전에 대한 위협 없이 공익을 위해 뉴스를 선택·생산·배포”할 수 있는지 여부다.
언론이 간섭과 위협 없이 자유롭게 취재와 보도를 하는 것은 민주주의의 핵심 요소다.
이 단체의 조사에서 노르웨이, 덴마크, 스웨덴, 네덜란드 등 북유럽 국가들이 최상위권을 차지했는데, 이 나라들은 각종 조사에서 민주주의 선진국으로 꼽혀온 나라들이다.
국경없는기자회는 5개 지표(정치, 사법, 경제, 사회, 안전)를 활용해 각국의 언론 자유를 평가하는데, 한국은 사회(52위→89위)와 정치(54위→77위), 안전(34위→55위) 지표에서 순위가 큰 폭으로 하락했다.
사회 지표는 언론을 향한 공격 및 자기 검열 압력, 정치는 국가나 정치인의 정치적 압력에 대한 언론 자율성 지지와 존중, 안전은 폭력·구금·실직·압수 등 언론인이 겪는 위험 정도를 주로 측정한다.
하나같이 윤석열 정부 들어 한국에서 급격하게 악화하고 있는 것들이다.
증거는 셀 수 없이 많다.
끊이지 않는 언론사·기자 압수수색, 명예훼손 고소·고발, 언론에 대한 정치권의 색깔 공세와 협박, 정부 비판 보도에 대한 심의기구의 법정제재 남발, 온갖 무리수를 동원한 공영방송 경영진 교체와 낙하산 사장 임명….
이런 상황에서 한국의 언론자유지수 순위가 급락하지 않았다면 오히려 그게 더 이상한 일 아닐까.
한국 언론인들이 체감하는 현실도 이런 조사 결과를 뒷받침한다.
기자협회보가 지난해 8월 한국기자협회 창립 59주년을 맞아 기자 994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응답자의 63.2%가 ‘전임 문재인 정부와 비교해 윤석열 정부에서 취재·보도 등 언론 활동이 자유롭지 않다’고 답했다.
한국언론진흥재단이 지난해 11월 발표한 ‘2023 언론인 조사’ 결과를 보면, ‘언론의 자유를 직간접적으로 제한하는 요인’으로 정부나 정치권을 꼽은 비율이 50%로, 2021년(32.4%)과 견줘 17.6%포인트나 높아졌다.
한국 언론 자유 훼손의 몸통은 윤석열 대통령이다.
‘비판 언론 재갈 물리기’의 신기원을 연 류희림 방송통신심의위원장, 6개월도 안 되는 짧은 기간에 공영방송을 ‘대통령 헌정 방송’으로 전락시킨 박민 한국방송(KBS) 사장에게 ‘언론 탄압 완장’을 채워준 사람이 누구인가.
류희림과 박민, 두 사람은 정치권력에 한없이 취약한 한국 공영방송 제도와 심의 제도의 일그러진 자화상이다. 윤 대통령이 잘 알고 있는 ‘언론을 쥐는 방법’의 살아 있는 야전교범이라 해도 손색이 없다.
이제 그만 정치권력의 손아귀에서 언론을 놓아 주자.
공영방송의 정치적 독립을 위한 방송 3법 개정이 시금석이다. 윤 대통령이 재의요구권(거부권)만 행사하지 않으면 되는 일이다. 언론을 쥘 생각이 전혀 없다는 말이 진심이라면 마다할 이유가 없다.
언론 자유 후진국이라는 오명은 ‘자유 대한민국’의 국격에 어울리지 않는다.
이종규 : 저널리즘책무실장·논설위원 jk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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