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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사직구장에 가보셨나요

道雨 2008. 5. 15. 15:26

 

 

 

     아무튼, 사직구장에 가보셨나요

7천원짜리 5시간 코스 ‘노래방+술집+댄스클럽’, 사직구장 관중석에 빠지다

 

▣ 김동환 <스포츠 월드> 기자 hwany@sportsworldi.com

 

혹시 야구팬이세요? 아님, 부산 시민이세요? 야구팬이 아니라도, 부산 시민이 아니라도 상관없어요. 저와 함께 사직야구장 한번 가보지 않을래요? 사직구장을 다녀와본 한 사람의 국민으로서 감히 말씀드릴게요. 한번 가보시면 절대 후회하지 않아요. 3∼4시간 동안 모든 스트레스를 다 풀 수 있고, 다음에 또 오고 싶어질 겁니다. 거긴요, 단순히 야구장이 아니라, 흥에 젖은 사람이 있고, 정이 있고, 노래가 있고, 음식이 있고, 춤사위가 있는 한판 축제의 마당이에요.


△ ‘비닐봉투 꺼냈으니, 져도 이기는 거고, 이겨도 이기는 거고….’ 한국 프로야구가 출범 11년만에 최소 경기 100만 관중 돌파를 눈앞에 두고 있는 4월29일 부산 사직야구장 1루 쪽 관중석에서 부산 팬들이 롯데 자이언츠 특유의 ‘비닐봉투 응원’을 펼치고 있다.(사진/ 연합 조정호)

 

‘괜히 오버하는 거겠지’ 했는데…

사실 저도 첨엔 언론에서 하도 ‘부산 야구 열기 폭발’ 하고 떠들어대니 ‘에이, 괜히 오버하는 거겠지. 사람이 좀더 많을 뿐 어차피 자기 좋아하는 팀 이기라고 응원하는 거야 다른 야구장이랑 다를 게 뭐 있겠나’ 싶었어요. ‘그래봐야 경기 지면 후회와 짜증밖에 더 남겠어’ 했죠. 근데요, 직접 그 모습을 딱 보는 순간 ‘뭐 이런 데가 다 있나’ 싶었어요. ‘저 사람들 좀 미친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했어요. ‘도대체 왜들 저러지? 진짜 뭐 다른 게 있나?’ 싶어 관중석으로 들어가 처음부터 끝까지 함께 봐봤죠. 하하하, 30분도 안 돼서 저도 같이 미쳐버렸어요.

요전 주말에는 3일 연속 매진이 됐다죠? 프로야구에서 한 구장이 3일 연속 매진된 건 3년 만이래요. 2005년 5월 중순 이후 처음이라는데, 그때도 매진된 곳은 사직구장이었다네요. 좀더 놀라운 걸 말해드릴까요? 사실 프로야구 출범 뒤 27년 동안 3일 연속 매진된 건 이번까지 딱 4번 있었는데, 그게 다 사직구장이래요. 이쯤 되면 여러분도 궁금하지 않으세요. 도대체 거기에 뭐가 있는 건지?

자, 지금부터 제가 사직구장으로 안내할게요. 일단 가는 날이 주말이라면 미리 표 예매를 하세요. 그렇지 않으면, 고생 좀 하셔야 해요. 경기가 오후 5시 시작이면 오후 2시부터 매표를 시작해서 출입구가 열리지만, 요즘엔 1시간 만에 현장 판매분이 동나기 때문에 늦어도 2시까지는 도착해야 하고요, ‘명당 자리’를 잡으려면 12시부터 와서 먼저 줄을 서 있어야 해요. 물론 꼭 그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어요. 어느 자리나 신나는 건 마찬가지니까요.

근처 대형 마트에서 먹을 것을 사와도 좋지만, 사직구장 앞에서 간단히 살 수 있는 ‘사직 간식 3종세트’도 괜찮아요. 튀긴 닭과 족발, 김밥이 그것인데요, 앞의 두 가지는 7천~1만원, 김밥은 한 줄에 1천원이면 살 수 있어요. 줄을 서 있어도 그렇게 지루하진 않을 거예요. 여기저기서 신문을 나눠주고요(신문을 다 봤다고 절대 버리면 안 돼요. 그게 최고 응원 도구가 되거든요), 앞 뒤 사람들하고 저절로 야구 토론에 말려들게 돼 있어요.

출입구가 열리면 뜀박질 좀 하실 각오하셔야 됩니다. 좋은 자리를 잡기 위해 100m 출발선상에서 총소리를 들은 양 일제히 달리기 시작하거든요. 숨을 헐떡거리며 자리에 앉으면 제일 먼저 옆사람들이 하는 대로 밖에서 받은 신문지를 반으로 접으세요. 사직구장 명물 ‘신문지 총채’를 만드는 건데요, 접힌 면 반대쪽에서 3∼4cm 간격으로 오징어 다리 뜯듯 쭉 찢되 끝까지 찢지 말고 손잡이 부분 10cm는 남겨둬야 해요. 다 찢으면 동그랗게 말아서 접착 테이프나 고무밴드로 고정시키면 돼요. 이걸 누가 제일 먼저 시작했는지는 알 수 없어요. 1990년 전후해서 나타났다는 게 중론인데, 당시엔 그냥 구겨서 흔들었던 것이 한두 사람 찢기 시작해 오늘날의 모습으로 자리를 잡았다네요.

경기가 시작되면 그냥 옆사람들이 하는 대로만 하면 돼요. 롯데 선수가 안타라도 하나 치면 몸이 저절로 공중으로 솟구치고요, 이대호나 카림 가르시아, 강민호의 홈런이라도 터지는 날엔 옆사람하고 끌어안고 어깨동무하고 난리도 아니죠. 파울 된 공이 관중석으로 날아오면 그쪽을 향해 다 같이 “아 주라”고 외치는데요, 그게 무슨 말인고 하면 “아이에게 줘라”는 뜻의 부산 사투리예요. 이 역시 기원은 확실치 않지만 개인적으로 이 ‘아 주라’ 문화가 오늘날 한국 야구 응원의 메카 사직구장을 만들지 않았나 생각해요. 제가 만나본 20∼30대 관중 말로는 어릴 때 아버지 손 잡고 야구장에 놀러왔는데 다른 아저씨들이 야구공이며 먹을 것이며 아이들을 최우선해서 챙겨주니까 야구장이 그렇게 좋더라네요.

 

“아 주라”로 대물림되는 야구사랑

정수근이나 박기혁 등 발이 빠른 롯데 선수가 1루에 나가면 하나같이 “뛰라”고 외치는데요, 이건 무슨 말인지 알겠죠? ‘뛰어라’, 즉 도루하라는 말이에요. 근데 이 주자한테 상대 투수가 견제구라도 던지면 모두 눈에 불을 켜고 “마”를 서너 차례 외칩니다. ‘야, 인마’의 줄임말인데 원래 부산에서 쓰는 ‘얌마’를 빨리 말하다 그렇게 된 거예요. 그 한 음절에 ‘야, 이놈아. 왜 감히 우리 선수한테 견제구를 던지고 그러느냐’는 꾸짖음이 담겨 있는 거죠. 그 소리가 어찌나 크고 힘있는지 서울 연고 팀의 한 젊은 투수는 “사직구장에서는 겁나서 견제구도 못 던지겠다”고 하소연한답니다.

또 하나 재미난 구호가 있는데 바로 ‘어느 날’이란 겁니다. 개인적으로 이게 제일 신기하고 궁금했어요. 롯데 투수가 상대 타자를 삼진으로 아웃시키면 ‘빠밤바 빠라바라밤빰빠’라는 전주에 이어 다 같이 노래를 부를 것처럼 ‘어느 날∼’이라고 외치고는 거기서 뚝 끊어버려요. 조사를 해봤더니 그게 그룹 위치스의 노래 <떳다 그녀>의 첫 소절이더군요. 그런데 왜 첫 소절만 부르고 마는지는 아무도 몰라요. 다들 그러더군요. “아∼무 이유 없어!”

4∼5회쯤 되면 그 유명한 사직구장 공식 응원곡 <부산 갈매기>를 합창할 수 있어요. 롯데가 이기고 있으면 기뻐서, 롯데가 지고 있으면 다 같이 힘내자고 부르게 되는 거죠. 흥에 겨우면 <돌아와요 부산항에> <뱃놀이>까지 연결되고요. 3만 명이 얼마나 큰 소리로 신명나게 노래를 불러제꼈으면 선동열 삼성 감독이 “사직구장은 세계에서 제일 큰 노래방”이라고 했겠어요.

 

신문지 총채에 쓰레기봉투 풍선까지

사직구장에는 이름 없는 ‘응원의 달인’도 부지기수예요. ‘16년간 하루도 빠짐없이 사직구장에서 응원 연습을 한’ 이 달인들은 기발한 문구의 손팻말이나 깜찍한 응원복, 가발, 가면 같은 것들을 알아서 잘도 준비를 해와요. 이 사람들, 5∼6회 분위기가 무르익으면 누가 먼저랄 것 없이 온 국민의 응원 ‘파도타기’를 시작한답니다. 1루 응원석 쪽에서 시작된 물결은 오른쪽 외야쪽으로 시원스럽게 퍼져나가 네댓 바퀴는 돈 뒤에야 멈추지요.

그리고 7회부터는 사직구장 응원의 상징이 돼버린 주황색 비닐봉투가 등장해요. 1만 장의 봉투가 거의 동시다발적으로 배포되면 알아서들 척척 공기를 넣어 절반쯤 부풀리고 묶은 다음 머리에 얹고는 양쪽 손잡이를 고리 삼아 귀에 거는 거죠. 세상 어디에도 없는 이 ‘비닐풍선 머리’ 군단은 2006년 무렵부터 형성됐어요. 롯데의 한 계열사가 쓰레기를 담으라고 자신의 회사 광고문구를 찍은 주황색 비닐봉투를 롯데 구단에 제공했는데, 장난기 많은 팬들이 머리에 쓰면서 의외의 깜찍한 모습 때문에 급속도로 확산됐죠.

비닐봉투까지 머리에 썼으면 이제 경기 결과는 상관없어요. 머리에 썼던 봉투에 자기가 남긴 쓰레기를 모두 담아 줄지어 걸어 나오면 광장까지 이르는 동안 <부산갈매기> <돌아와요 부산항에>를 부르며 여흥을 달랠 수 있어요. 어때요? 저와의 7천원짜리 5시간 코스 ‘노래방+술집+댄스클럽’ 복합 테마파크 유람 괜찮았나요? 이제 여러분도 절반은 사직구장 마니아가 된 겁니다. 자, 그럼 언제 한번 직접 사직구장에 가보지 않을래요?

 

 

***  윗 글은 '한겨레 21' 에서 옮겨온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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