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을 돌보기에도 힘겨운 그녀에게
- 2002년 이상문학상 대상 권지예 '뱀장어 스튜'를 읽고 -
우리는 누구나 자신의 짐을 지고 걸어간다. 우렁이가 자신을 보호하는 무거운 껍질을 끌고 다니듯이, 넓은 바다를 항해하는 배가 바닥에 무거운 짐을 실어서 무게중심을 잡듯이 ``````.
지난날의 기억 속에서는 아직도 화끈 달아오르는 뜨거운 기억의 조각들. 지금도 가끔은 가슴을 놀라게 하는 짐이 되어 마음 바닥 한 쪽에서 자리하고 있음을 알겠다.
은근한 불로 오랜 시간 조리해야 하는 뱀장어 스튜처럼 사랑과 신뢰도 그렇게 만들어진다는 것을 그녀는 배워간다. 상처는 딱지를 입고 새 살이 돋아야 비로소 드러내 보일 수 있는데`````. 그녀는 너무 아파서 남편을 돌보지 못했나보다. 그녀만큼 아픈 남편이었을텐데``````.
상처는 이중성을 가진다. 상처는 부끄러우면서도 치유되어야 할 어떤 것, 또한 치유의 과정을 거치면서 상처는 우리를 보호해주는 바닥짐이 될 그런 것이다. 호오돈의 '주홍글씨' 에서 A 자 모양의 브롯치는 헤스터에게 치욕의 상징으로 부여되었지만 그녀에게 그것은 자신의 사랑에 대한 확신이었으며 비난과 고통의 시간을 통과하는 동안 자신의 삶을 단련하는 수단이 되었다. 나의 상처만을 돌보려고 하면 끝없는 돌봄으로도 부족하지만 그의 아픔을 이해하고 배려하려고 할 때 그의 기쁨은 나의 아픔을 오히려 빠르게 치유시키고 회복하게 한다.
* 2003년에 읽고 간단하게 정리한 자료이다.
작가에 대한 나의 일반적인 상식은
모순되고 상식이 흔들리는 상황들이 우리가 사는 세상이고 우리의 삶이라면 이것들을 바라보면서 흔들리는 것은 바로 잡아주고 모순되는 것은 상식으로 풀어서 바르게 되돌려 주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했었다. 헌데 그렇지 않은 경우의 글들도 더러 더러 보게 된다. 그것은 세상을 거울에 비추듯 드러냈을 때는 사실 그러하다. 우리들이 열심히 살았다고 자신의 생애 안에서 이루고자 하는 것들이 이루어지고 정리될 것이 정리된다는 보장이 없듯이.
오히려 프랑스의 모파상의 소설에서는 현실의 우리의 삶 또는 삶의 실상이 잘 드러내고 있다. 잃어버린 가짜 진주목걸이를 진짜로 알고 수년을 고생하면서 진짜를 사서 돌려주자 그때사 잃어버린 목걸이는 가짜였다는 진실을 알게 되는 것처럼``````.
'뱀장어 스튜'는 차라리 모파상과 닮은 글쓰기라고 이해하면 쉬울 것 같다.
주인공 여자가 살아가는 방식은 내 맘에는 들지 않지만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웃에는 이런 사람도 있고 아주 파렴치하게 살거나 또는 아주 희생적으로 살고 있는 사람도 있다. 그렇다 한들 어쩔 것인가.
내가 느끼는 것들을 그들에게 말한다 해도 무엇이 달라지지 않는다. 또한 말할 수도 없는 것이다. 누구나 자신 앞에 주어진 생을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서 살고 있는 것이다. 그것이 남의 눈에는 좋은 평가를 받든 혹은 아니든 간에``````. '뱀장어 스튜'는 이렇게 사는 사람도 있구나! 라고 사람이 살아가는 모양 하나를 새롭게 알게 되었다는 사실만으로도 그저 그만한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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