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후감, 감상문, 관람후기

[스크랩] 역사적인 관점에서 살펴본 `태평천하`

道雨 2008. 10. 18. 16:09

'역사적인 관점에서 살펴본 '태평천하'

- 채만식의'태평천하'를 읽고 -

 

 

  채만식의 '태평천하'는 1938년에 잡지[조광]에 연재되었던 중편 소설로 1930년대 일제시대를 살아가는 윤직원 영감 일가의 이야기이다. 1930년대의 후반 우리나라는 일제가 민족말살 통치를 시작하는 시점이었고 일제는 중국을 식민지화하기 위해 전쟁을 벌이면서 그 전쟁비용을 식민지국인 우리나라의 살림에서 착취하고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극심한 굶주림에 시달리고 지식인들 또한 사상을 통제 당하고 일제에 협력하라고 협박당하고 있던 시기였다. 그래서 뜻이 있는 지식인은 붓을 꺽고 침묵하던 시기로 접어들던 시기였고 또한 지식인들은 자발적이든 강제로든 간에 일제에 협력하지 않으면 사회활동을 할 수 없던 시기이기도 했다. 일제의 수탈이나 정치적인 억압에 대해 언급하지 않고 넘어가는 작가의 한계가 드러나고 있지만 이런 시대적 상황에서 발표된 '태평천하'속의 우리 역사는 어떠했는지 살펴보기로 한다.

 

군산의 너른 평야의 만석꾼 지주인 윤직원의 아버지 윤용규는 노름꾼이었으나우연히 200냥이라는 돈이 생기자 노름을 딱 그만두고 재산을 불린다. 재산이 형성되는 과정에는 가난한 소작농이나 빈농들에게 고혈을 짜는 모진 짓을 했다. 고리대를 빌려주고 또 소작료를 높이 받거나 하였기 때문에 빠르게 부농이 되기는 했지만 그 당시 불안한 사회상태를 반영하듯 화적이나 도적들이 많았다. 윤용규가 자신들을 의적이라고 자칭하는 활빈당들에게 재물을 뺏기고 실수로 죽게 되자 윤직원은 '나만 빼고 모두 망해라'는 악담을 퍼부으며 서울로 올라온다.

  윤직원 영감이 돈 관리하는 모양도 역시 돈을 높은 이자로 빌려주고 또 인색하게 쓰는 것이었다. 그의 아들은 첩을 두고 두 집 살림을 하면서 직업도 없이 무위도식하고 큰 손자 종수는 돈으로 군수 자리를 사려고 지방에 내려가서 돈을 물쓰듯 하면서 주색을 밝힌다. 일제시대의 군수는 일제의 손발이 되다시피 한 자리이지만 또한 막강한 권력을 휘두를 수 있는 자리이기도 했다. 작은 손자 종학은 윤영감이 동경 유학을 보내면서 공부하고 돌아와 경찰서장이 되기를 바라는데 종학은 일본에서 사회주의 운동을 하다가 경찰서에 잡혀갔다는 전보를 받는다. 이때 윤직원 영감은 '이 좋은 세상에 웬 사회주의냐!'하며 고함을 지른다.

 

1) 작품 속에 나타난 활빈당

 대한제국기의 대표적인 반봉건`반침략 민족항쟁중에는 활빈당의 투쟁이 있다. 허균이 지은 '홍길동전'에서 이름을 딴 활빈당은 가난한 사람을 살려내는 무리라는 뜻을 지닌 의적이었으나 벼슬아치나 양반 지배층이나 지주들이 보기에는 도적 떼에 지나지 않았다. 전국에 흩어져 화적 노릇을 하던 이들은 1900년 전후 충청과 경기, 낙동강 동쪽의 경상도, 소백산맥 부근의 전라도 등지에서 각 지역을 중심으로 독자적인 활동을 하면서 때로는 서로 연합하기도 하였다. 무장을 하고 비밀스럽게 행동하는 활빈당은 평소에는 십여 명에서 수십 명씩 무리를 지어 때로는 군인으로, 때로는 행상인으로 변장하여 다니며 활동하였던 이들은 단순한 의적활동에서 벗어나 차츰 정치적인 성격을 띠어갔다.

  활빈당은 이념적으로는 봉건사상을 벗어나지 못했다. 그러나 그들은 양반부호의 집이나 지방관청에서 빼앗어 재물을 가난한 사람이나 밑천이 없어 장사를 못하는 소상인들에게 나누어주고 부패하고 탐학하는 관리와 양반들을 응징하는 등 민중의 입장에 서서 활동하였다. 활빈당은 1905년 을사조약이 체결되어 나라의 운명이 바람 앞의 등불 모양 위태로워지자 활동의 변화를 모색하였다. 1906년이 되면서 일부는 의적활동을 계속하는 가운데 다른 일부는 전국 곳곳에서 들불처럼 타오르던 의병항쟁에 주도적으로 참여하게 된다. 이렇게 하여 1894년 동학농민전쟁의 이념을 계승한 활빈당활동은 민족적 위기가 급박해진 정세변화 속에서 반일 의병전쟁으로 이어져 갔다. 윤용구는 이런 활빈당의 표적에 해당되는 탐학한 지주이었다.

 

2) 일제하의 친일 지주계층

  1876년 '강화도조약'을 일본과 맺고 나서 일본은 조선을 자신들의 식량 기지로 이용하였다. 산업화 단계에 들어선 일본은 자기나라의 노동자의 저임금을 유지하려고 조선의 값싼 쌀을 대량으로 수입해 갔다. 이로 인하여 국내 쌀값이 크게 오르게 되어 민중의 생활은 한층 어려웠으나 지주와 부농, 상인들은 이익을 챙겼다. 일제는 조선 쌀을 안정되게 수탈하고 농촌사회를 통제라려고 소수의 조선인 지주를 보호`육성하였다. 지주들이 쌀을 일본에 수출하여 이익을 챙기고 국내 쌀값이 오르면 창고에 저장해 둔 쌀을 내다팔아 더욱 부자가 되었다. 이렇게 소수가 부자가 되는 동안 대다수의 농민들은 생활용품을 사기 위해 곡식을 헐값에 내다 팔고 춘궁기에 비싼 이자 돈을 빌려쓰고 나중에는 땅을 넘겨주고 소작농이나 품팔이 농민이나 거리의 유랑민으로 전락해 갔다.   고리의 이자를 받고 돈을 빌려주고, 소작농들의 어려운 사정 이야기는 듣지 않으려는 윤직원 영감도 이런 경우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윤직원 영감은 그러면서 이 시절이 얼마나 태평세월이냐고 반문한다. 경찰이 사회 치안을 해주어서 활빈당 같은 도적이 없고 일제는 친일지주를 보호해주고 있으니 말이다.

 

3) 사회주의 운동

  윤직원 영감의 손자 종학은 동경에 유학을가서 사회주의를 받아들이고 활동하다가 경찰에 체포된다. 1920년에 들어서면서 사회주의 사상이 조선 사회 안팎에서 빠른 속도로 번져갔다. 반제국주의의 기치를 내걸고 피압박 민족의 해방을 돕겠다고 나선 소련은 3`1운동 뒤 기대했던 제국주의 열강의 외면에 실망한 조선의 청년`지식인들에게 큰 매력으로 다가왔다.

  일본에서 사회주의 사상에 눈뜬 조선 유학생들과 러시아령 연해주, 중국의 상해 등지에서 사회주의자로 변신한 청년`지식인들이 국내에 들어와 사회주의 사상을 퍼뜨리기 시작하였다. 이들은 사회주의를 노동자와 농민의 계급해방 사상으로서 뿐만 아니라 일제의 압박에서 벗어나 민족해방을 이룩할 수 있는 이념적 무기로 생각하고 노동운동과 농민운동에 적극 뛰어들었다. 윤영감의 손자 종학도 이러한 시대적 흐름의 물결 한 가운데 서 있었다고 볼 수 있다.

 

4) '우리만 빼놓고 모두 망해라'

  윤직원 영감을 한마디로 압축할 수 있는 말이다. 나라가 일본제국주의의 식민지가 되어 나라의 경제적 실권이 다 뺏기고 있고 민족의 정신이 식민주의 사관의 주입으로 인해 자기비하의 열등감으로 시달리고 있고 농민들은 먹을 것이 없어 거지가 되고 중국으로 유랑의 길을 떠나는데 같은 시대를 사는 사람들의 아픔을 그는 못 본체 하는 것이었다. 첩을 거느리고 본부인과 자식을 돌보지 않는 윤영감의 아들 창식과 손자 종수가 사는 태도도 이 사람들이 앞으로 어떻게 될 것인가가 눈에 보이는 듯 하다. 우선은 있는 재산으로 버티지만 '3대 부자 없다'는 말을 증명이라도 하려는 듯이 말이다.

 

  '태평천하'는 태평스럽지 않은 세상을 태평스럽게 살고 있는 윤영감의 이기주의를 꼬집고 있다. 윤직원영감은 소작료를 낮춰달라고 애원하는 소작인들과 농토를 잃고 먹고 살 길이 없어 탄식하는 사람들의 소리가 들리지 않고, 여자로서 인권이 없이 살아가는 며느리와 손자며느리의 삶을 안타까워하기는 커녕 오히려 구박하고 있다. 자신의 이익만 침해받지 않는다면 어떤 세상이 된다해도 아랑곳하지 않는다는 윤직원 영감의 생각의 구조는 현대의 이기주의와도 닮은 점이 있다. 윤직원영감과 현대인이 사는 세상이 다른 점이 있다면 그는 농업자본으로 인정사정없이 돈을 모았고 , 현대는 산업자본, 상업자본 그리고 정보산업이 돈이 되고 있다는 점이다. 문명의 이기를 누리느냐 그렇지 않느냐의 차이가 확연할 뿐, 사람 사는 세상은 근본적으로 옛날이나 지금이나 별로 다르지 않다. 나는 윤직원 영감적인 사고의 틀에서 얼마나 걸어 나왔는가를 점검해 본다는 것과 이웃과 더불어 사는 삶에 대해서 얼마나 의식하며 살고 있는 가를 점검해 본다는 것. 이것이 정신이 문명화되는 정도를 재는 여러 개의 잣대 중 하나로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채만식의  '태평천하'는 태평스럽지 않은 시대를 태평스럽게 사는 사람의 무지를 꼬집고 있지만, 현대의 우리에게도 어떤 면에서는 태평스럽지 않은 세상에 살면서 혹시 태평스러운지도 모를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기를 요구하고 있다. 그리고 자기중심의 이기적인 시각에서 벗어나 바라보기를, 깨어 있기를 바라는 선각자의 외침으로 들린다.

 

출처 : 해운대 부실이
글쓴이 : 부실이 원글보기
메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