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권 비판 막으려고 ‘위헌 대체입법’ 할 셈인가 | |
헌법재판소가 인터넷 등을 통한 허위사실 유포 행위를 포괄적으로 처벌하는 내용의 전기통신기본법 제47조 1항을 위헌으로 결정하자 정부여당이 곧바로 대체입법 추진 방침을 밝히고 나섰다.
법무부는 “전쟁·테러 등 국가적·사회적 위험성이 큰 허위사실 유포 사범에 대한 처벌규정 신설을 추진하겠다”고 밝혔고, 한나라당도 “무차별적인 유언비어 확산을 막을 수 있는 대체법을 마련해야 한다”(안상수 대표)고 거들고 나섰다.
참으로 염치없는 태도가 아닐 수 없다. 헌재의 결정은 사문화된 전기통신법을 악용해 누리꾼들의 정부 비판이나 의혹 제기에 재갈을 물려온 그릇된 행태에 대한 준열한 심판이자 질책이다. 정부여당은 마땅히 그동안의 억지 법적용과 공소권 남용을 반성하고 국민에게 사과부터 하는 것이 순서다. 그럼에도 자성은커녕 대체입법부터 들고 나오니 참으로 어이가 없다.
헌재 결정을 두고 한나라당은 “앞으로 인터넷 등에서 허위사실 유포를 막을 방법이 없어졌다”고 호들갑을 떤다. 하지만 허위사실로 다른 사람의 명예를 훼손하는 행위는 지금도 정보통신망법으로 규제를 받으며, 형법상 명예훼손죄 등으로도 얼마든지 처벌이 가능하다. 헌재 결정의 핵심 취지는 국가가 ‘국익’이니 ‘공익’이니 하는 따위의 막연한 개념을 내세워 국민의 기본권을 함부로 침해하지 말라는 것이다. “세계적인 입법례를 살펴봐도 허위사실 유포 자체를 처벌하는 민주국가의 사례를 찾기 힘들다”고 헌재가 누누이 강조했는데도 정부와 한나라당은 들은 척도 하지 않는다.
정부여당이 어떤 방향으로 대체입법을 하려는지는 모르겠으나 또다른 위헌 법률이 나올 가능성이 농후하다. ‘공익을 해할 목적으로’ 대신 ‘국가적·사회적 위험성이 큰 허위사실 유포’ 등 어떻게 표현을 바꾸든 죄형법정주의의 명확성 원칙에서 벗어나기 쉽기 때문이다.
헌재도 지적했듯이 시민의 기본권을 제한하려면 ‘명백하고 현존하는 위험’을 야기하는 행위가 있어야 한다. 문제는 친구들에게 보낸 장난 메시지까지도 ‘공익을 해할 목적의 현존하는 위험’이라고 우겨대는 정부의 태도다.
헌재의 결정은 이런 비상식적인 인식을 바꾸라는 것인데도 정부여당은 귀를 막고 있으니 답답할 노릇이다.
정부와 한나라당은 대체입법 추진에 앞서 헌재의 결정 내용부터 꼼꼼히 다시 공부하기 바란다. |
정부비판을 유언비어로 처벌하는 ‘신 긴급조치’ 퇴출 | |
‘전기통신기본법 위헌 결정’ 무엇을 담았나 | |
“명백한 허위사실 표현도 언제나 타인 침해는 아니다
인터넷에선 실시간 반론 가능…국가 교란 위험 없어 국가가 해악성 재단해선 안돼…사상경쟁에 맡겨야”
28일 ‘거짓말’을 했다는 이유만으로 사람을 처벌하던, 반문명적인 법 조항이 사라졌다. 정부정책 등에 대한 비판까지도 유언비어·허위사실 유포로 처벌해 ‘인터넷·스마트폰 시대의 긴급조치’로 불리던 전기통신기본법 제47조1항에 대해 헌법재판소가 위헌 결정을 했기 때문이다. 헌법학계와 시민단체 등에선 ‘허위사실의 표현’까지도 헌법의 보호영역으로 끌어안은 헌재의 결정이 우리 사회에 통용되는 ‘표현의 자유’의 개념과 수준을 한 단계 높였다고 평가했다.
■ ‘허위사실’ 표현도 보호 대상 헌재는 ‘공익’과 ‘허위’의 개념을 용어사전 수준으로 자세히 풀어 썼다. 전기통신기본법이 두 개념을 모호한 상태로 두면서 표현의 자유를 제한하고 처벌하는 근거로 악용됐기 때문이다. 헌재는 전기통신기본법의 ‘공익을 해할 목적’에서 말하는 ‘공익’의 개념이 매우 추상적이어서 어떤 표현행위가 공익을 해치는 것인지 사람마다 그 판단이 달라질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이어 “표현행위가 어떤 공익에는 촉진적으로 작용하는 동시에, 다른 공익에 대해서는 해가 될 수도 있다”며 ‘복수의 공익’이 존재한다는 점을 전제로 들었다. 조대현·김희옥·송두환 재판관은 보충의견에서 “해당 법 조항이 제정된 이후 40년 이상 적용되지 않은 채 사문화한 상태였는데, 최근 몇년 사이에 갑작스레 적용되기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이 조항을 근거로 처벌을 일삼아 온 검찰이 이번 정부 들어 모호한 개념을 확대해 자의적으로 적용해 왔다는 비판이 깔린 셈이다. 이번 결정에서 가장 중요한 대목은 ‘허위’에 대한 헌재의 판단이다. 헌재는 “어떤 표현에서 의견과 사실, 객관적 진실과 거짓을 구별하는 것은 매우 어렵다”며 ‘허위사실의 표현’을 판단하는 과정이 단순하지 않다고 설명했다. 특히 명백한 허위사실을 표현하더라도, 그 행위가 ‘언제나’ 타인의 명예·권리, 도덕, 사회윤리를 침해하는 것은 아니라고 봤다.
■ 사상·의견 자유경쟁에 맡겨야 헌재는 사실과 거짓, 객관과 과장의 구분이 확실하지 않은 인터넷에서의 여론형성 기능에 대해서도 진일보한 의견을 내놨다. 헌재는 인터넷을 ‘가장 참여적인 시장’, ‘표현 촉진적인 매체’로 규정하면서, “인터넷에서는 특정 표현에 대한 반론·반박도 실시간으로 가능하다. 허위사실을 표현하더라도 국민의 올바른 정보획득이 침해되거나 범죄 선동, 국가질서 교란 등이 발생할 구체적 위험이 있다고 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헌재는 “표현이나 정보의 가치, 해악성 유무를 국가가 1차적으로 재단해서는 안 되며, 이는 시민사회의 자기교정기능, 사상과 의견의 경쟁메커니즘에 맡겨야 한다. 세계적인 입법례를 살펴봐도 허위사실 유포 자체를 처벌하는 민주국가의 사례는 찾기 힘들다”고 했다. 반면 목영준·이동흡 재판관은 “지금 우리 현실에서는 명백한 허위통신에 대해서는 통상의 표현행위보다 엄격한 규제가 필요하다”며 합헌 의견을 냈다. 참여연대 공익법센터는 논평을 내어 “예컨대 천안함 사건이나 연평도 사건과 관련해 모든 표현의 자유가 무제한 보호되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런 표현들이 단순히 허위라고 처벌할 수는 없다는 것이 이번 헌재 결정의 본질”이라며 환영했다.
<김남일 기자 namfic@hani.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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