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FTA) 관련

"ISD 피해, 중남미 국가에 집중…미국과 FTA 때문"

道雨 2011. 12. 6. 16:03

 

 

 

 

"ISD 피해, 중남미 국가에 집중…미국과 FTA 때문"

다국적기업 ISD 활용사례, 미국과 FTA 맺은 나라에 피해 집중

 

천연자원 가격 상승에 발맞춰 다국적 기업들의 투자자국가제소제(ISD) 이용이 급증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ISD 피해의 대부분이 중남미 국가들에 몰렸으며, 이로 인해 피제소국의 경제비용이 급증한 것으로 조사됐다.

이는 박주선 민주당 의원실이 제공한 미국 워싱턴 소재 정책연구소(IPS, Institute for Policy Studies)의 지난달 보고서 '국제재판소에서의 이익 추구(Mining for Profits in International Tribunals)'에 소개된 내용이다. 보고서는 특히 엘살바도르와 에콰도르 정부가 ISD로 인해 피해를 입은 사례를 조명했다.

엘살바도르는 지난 2005년 코스타리카·과테말라·온두라스·니카라과·도미니카공화국과 함께 미국과 중미자유무역협정(CAFTA)을 체결했다. 에콰도르와 미국은 지난 2004년 FTA를 추진했으나 2006년 중단했다.

▲ISD로 늘어나는 중남미 국가의 피해를 다룬 정책연구소(IPS) 보고서. ⓒ정책연구소의 지난 11월 보고서 표지.

ISD 사례 절반 중남미에 집중

보고서를 보면 지난 11월 현재 국제투자분쟁해결센터(ICSID)에는 137건의 중재재판이 진행 중이며, 이들 중 43건이 원유, 가스, 채굴산업과 관련됐다. 2000년만 해도 ICSID에 오른 천연자원 관련 중재재판은 3건에 불과했다.

보고서는 천연자원 관련 중재재판이 급증한 이유로 관련 자원 가격의 급격한 상승을 꼽았다. 2000년 1월 배럴당 25달러이던 원유 가격은 지난 9월 현재 100.8달러까지 치솟았다. 온스당 282달러이던 금값은 같은 기간 무려 다섯 배나 오른 1900달러가 됐다.

그런데 특기할만한 점은 천연자원 관련 중재재판 43건 중 58%에 달하는 25건이 남미 국가를 상대로 일어났다는 것이다. 남미와 마찬가지로 보존 천연자원이 많은 아프리카는 8건(19%), 동유럽은 5건(12%), 중앙아시아는 4건(9%)에 불과했다.

보고서가 직접 명기하진 않았지만, 중남미 국가 상당수는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CAFTA 등의 FTA를 미국과 체결했다. 페루, 콜롬비아, 파나마 등은 미국과 FTA를 맺었거나, FTA 발효를 추진 중이다.

ISD로 국가 부담 늘어나

이와 관련, 보고서는 몇 가지 ISD 사례를 열거했다. 이들 사례 대부분은 국내에 처음 소개된다.

캐나다의 채굴기업 퍼시픽 림 케이먼 LLC(Pacific Rim Cayman LLC, 퍼시픽 림)는 지난 2009년 CAFTA를 맺은 엘살바도르 정부를 상대로 7700만 달러 규모의 소송을 걸었다. 환경부가 환경파괴와 공공 건강의 침해를 우려해 '엘 도라도' 금광에 대한 추출 허가를 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는 CAFTA 체제에서 ISD가 적용된 최초의 사례다. 보고서는 "캐나다는 CAFTA에 참여한 국가가 아니지만, 퍼시픽 림은 미국 네바다에 있는 자회사 레노(Reno)를 통해 CAFTA의 ISD 메커니즘에 접근 권한을 갖게 됐다"고 설명했다.

이미 무차별 채굴산업에 반대하는 엘살바도르 시민단체는 연합체를 만들어 저지활동을 벌이고 있었다. 이들은 환경과 건강권 침해를 우려해 29개의 채굴 프로젝트를 반대해왔으며, 이 과정에서 지난 2년 간 두 명의 활동가가 살해당하기도 했다.

엘살바도르 정부는 "차별 대우"라는 퍼시픽 림의 주장에 근거가 없다고 강조했다. 퍼시픽 림에 채굴권을 주긴 했으나, 이 권리가 채굴사업의 자동적인 권리를 보장한 것은 아니라는 얘기다. 그러나 2010년 ICSID는 엘살바도르 정부의 주장을 기각하고 사건을 진행시켰다.

이 과정에서 2009년 8월, 커머스 그룹(Commerce Group)과 샌 세바스찬 골드 마인(San Sebastian Gold Mines)사가 엘살바도르 정부를 상대로 또 1억 달러 규모의 중재재판을 ICSID에 걸었다. 이 소송 역시 추가 채굴권에 관한 기업과 정부의 견해 차이로 인해 발생했다.

커머스 그룹의 중재재판 요구는 ICSID에서 기각됐으나, 엘살바도르 정부는 소송비용으로 80만 달러를 썼다. ISD 제도로 인해 중재재판에서 승소하든 패소하든, 정부 부담은 늘어나는 셈이다.

지속적으로 터지는 ISD 악용 사례

중남미 국가에서 이와 같은 사례는 무수히 많다. <프레시안>이 지난 2월 소개한 렌코그룹과 페루정부의 소송뿐만 아니라 다국적 기업의 ISD 활용 사례는 지속적으로 새로이 알려지고 있다. (☞ 관련기사 : FTA 독소조항 ISD, 국내법은 이렇게 무너졌다)

지난해 3월 30일, 다국적 기업 셰브론(Chevron) 사는 에콰도르 정부를 국제상거래법위원회(UNCITRAL)에 제소했다. 에콰도르 정부가 국내 시장에 쓰일 원유를 싼 값으로 거대 원유기업에 팔고, 국제 시장에는 비싼 값으로 팔았다는 이유다. 셰브론 사는 에콰도르 법정에 이 사건을 가져갔으나, 이후 국제중재재판소로 사건을 다시 끌고갔다. UNCITRAL 역시 ISCID와 마찬가지로 ISD 중재재판을 여는 곳이다.

UNCITRAL은 에콰도르 법정이 이해하기 힘든 이유로 이번 사건을 끌었다고 판단했고, 이는 미국과 에콰도르의 양자간 투자협정(BIT) 위반이라고 판단했다. 셰브론은 이 7억 달러짜리 소송에서 승소했다. 7억 달러는 에콰도르 국내총생산(GDP)의 1.3%에 달하는 규모다.

캐나다의 채굴회사 블랙파이어(Blackfire)는 지난해 2월 멕시코 정부를 상대로 ISD를 활용했다. 치아파스 지역의 중정석 광산 개발을 멕시코 정부가 막았다는 이유로 NAFTA의 투자 관련 조항을 근거로 8억 달러 상당의 중재재판을 신청한 것. 이미 환경파괴를 우려한 지역민과 활동가들의 반대는 오래 전부터 이어졌으며, 이 과정에서 2009년 11월에는 블랙파이어에 가장 비판적이던 활동가인 마리아노 아바르카 로블레로가 집 현관에서 총에 맞아 죽기도 했다.

이 밖에도 페루 정부는 베어 크릭 채굴사에, 베네수엘라 정부는 크리스탈렉스사에 의해 국제법정에 끌려갔다.

정책연구소는 "ISD에 따라 중남미 국가가 입는 잠재적인 경제 충격은 심각한 수준"이라며 "중남미 국가에 늘어나는 ISD 제소와 경제적 비용은 미래 환경과 입법활동을 방해할 것"으로 우려했다.
 

 

/이대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