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에서 북한지령 받고 5만명 투표한다구요?
재외국민 선거법 둘러싼 '괴담'에 영사 답변 "일본 현실 전혀 모르는 이야기"
해외한인사회의 연말행사가 줄을 잇고 있습니다. 정치권에서도 해외한인사회가 주최하는 행사장을 찾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습니다. 게다가 2012년부터 시행되는 재외국민참정권 시대가 본국 정치권과 해외한인사회를 더욱 가깝게 만들고 있지요.
이런 상황에 대해 여러가지 입장이 있을 수 있으나 저는 좋은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왜냐면 재외국민선거가 본국과 해외동포사회를 하나로 묶는 탄탄한 끈이 되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해외한인들도 한국정치발전에 직접 참여할 수 있고, 한국 정부 및 정치권도 해외에 거주하는 우리 국민에 대해 책임감을 느끼게 됐으니까요.
지난 14일 오후, 저는 일본 동경에 도착했습니다. 해외한인무역인들의 모임인 '월드옥타' 동경지회 창립30주년 기념행사에 참석하기 위해서입니다. 원래 민주당을 대표해 일본통인 이낙연 의원이 참석할 예정이었으나 갑작스런 원내사정으로 인해 제가 세계한인민주회의 사무총장 자격으로 이 행사장을 찾게 된 거지요.
저는 이번 기념행사도 행사지만 일본에 온 김에 꼭 찾아보고 싶은 곳이 있었습니다. 바로 도쿄대한민국 총영사관입니다. 재외국민선거 준비와 관련해서 도쿄 대한민국 총영사관에서 유권자등록을 어떻게 접수하고 있는지 그 현장도 보고 싶었습니다. 이 바램은 오래전부터 제가 품어왔는데요.
왜냐면 "2012년 재외국민선거와 관련해 북한의 지령을 받고 투표에 참여하려는 친북재일동포들이 5만명이나 된다"는 뉴스를 서울에서 여러차례 접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이와 관련된 정보를 해당지역이라고 할 수 있는 도쿄 총영사관에서 직접 확인해보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일본에서 5만 명이 북한지령 받고 투표한다는 뉴스가 사실이라면 이것은 실로 엄청난 사건이 아닐 수 없는 일입니다. 만약 이런 일이 실제로 벌어진다면 재외국민선거법 자체를 원점에서 다시 재검토해야 할 중대한 사안이니 꼭 제 눈으로 확인해 보고 싶었던 거지요.
재외국민선거업무를 총괄하는 김기봉 선거담당 영사에게 전화로 면담을 신청했습니다. 점심시간을 이용해 일본내 한류중심지로 알려진 신주쿠 신오쿠보 거리를 둘러본 후 아자부쥬방에 있는 대한민국 도쿄 총영사관에 3시쯤 도착했습니다. 요쓰야에 있는 주일대사관과는 별도로 총영사관은 재일본 민단회관 안에 있더군요. 영사업무는 지난 몇십 년간 이곳에서 해 왔다고 합니다.
'세계 최고의 선거시스템'이란 문구가 빈말은 아닌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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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봉 영사님을 비롯해 재외선거업무를 지원하는 직원들이 친절하게 저희들을 맞아주셨습니다. 영사관을 안내해 준 지인도 영사관 방문기념으로 현장에서 바로 국외부재자 신고서를 작성했습니다.
여권만 갖고 현장에서 작성한 부재자신고서는 1분도 안 돼 본국 법무부와 선거관계 기관과 연결된 전산처리망을 통해 신원조회를 했고 즉시 유권자 접수증이 발급됐습니다. 마치 한국과 일본이 연결돼 있는 듯한 느낌마저 들 정도로 빨랐고 확실했습니다. 세계 최고의 선거시스템이란 말이 단순한 홍보성 문구가 아님은 분명해 보였습니다.
김기봉 영사는 "재외국민투표 시스템은 전세계 158개 공관이 하나의 전산망으로 연결되었기 때문에 일본에서 등록하고 미국에서 투표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또 그는 "한국 대통령선거에 이 시스템을 적용하면 전국이 하나의 투표소가 되는 것이기 때문에 부산 유권자가 광주에서도 투표가 가능하다"고 하더군요. 오래전에 개발된 이 시스템이 여야 정치권의 입장 차이로 적용이 지연되고 있다는 게 참 아쉽게 느껴지더군요.
김 영사는 저에게 '전세계 공관별 유권자 접수현황' 자료를 건네주었습니다. 15일 오전 8시 현재 전세계 등록자는 2만2961명, 일본대사관(도쿄총영사관) 975명, 오사카 총영사관 693명, 나고야 총영사관 601명 등, 전세계 공관의 유권자 등록현황이 일목요연하게 나열돼 있었습니다. 전체 공관 가운데 베트남 호찌민 총영사관이 1248명으로 가장 많이 등록했더군요.
그에 따르면 "유권자 등록 초기에는 도쿄 총영사관이 1등을 했는데 호찌민 총영사관이 1등으로 올라간 이후 한 달 동안 계속 1등을 하고 있다"며 "조만간 도쿄 총영사관이 다시 1등을 탈환할 것"이라고 투지(?)를 불태우더군요. 예상보다 등록자가 적은 이유를 물어보니 김 영사는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등록절차가 어렵다는 것과 공관을 직접 방문해 등록해야 하는 어려움, 그리고 한국 정치에 대한 무관심 등 여러 가지 복합적인 이유가 있습니다. 또 일본에는 여권 자체가 없는 분들이 많습니다."
여권자체가 없다는 말이 상당히 생소하게 들려 그게 무슨 의미인지 물어보니 이런 답이 돌아왔습니다.
"여권 없이도 일본에서 사는데 아무런 지장이 없기 때문에 여권 없는 동포들이 상당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분들이 선거에 참여하기 위해서는 여권을 새로 만들어야 하는데요. 여권 만드는데 비용이 5500엔입니다. 한국 돈으로 7만5천 원정도 됩니다. 투표만을 위해 그 돈 내고 여권 만들어서 다시 공관 방문해 위에서 말한 이런저런 절차를 밟아야 한다는 거 아주 귀찮은 겁니다. 사실 이런 분들을 설득시키는 게 아주 어렵습니다."
일본 거주기간에 따라 뉴커머와 올드커머 동포로 나뉘는데 여권 없는 분들은 대부분 올드커머이고 재일동포 2세나 3세도 여기에 해당합니다. 뉴커머는 한국에 있다가 1985년 여행자율화 조치 이후 일본에 건너간 분들이기 때문에 당연히 여권을 소유하고 있지요. 재일동포 여권이야기가 나온 김에 오랫동안 묻고 싶은 본론으로 들어갔습니다.
친북재일동포 5만 명이 투표? 일본 현실 전혀 모르는 이야기
"한국 신문에 가끔 등장하는 기사 중에 북한 지령을 받고 재외국민선거에 투표하려는 친북재일동포들이 5만 명이나 있다는데요. 현장에 계신 분으로서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아, 그거요? 그런 말도 안되는 소리 하지 마십시오. 그거 그냥 하는 소리입니다."
김 영사는 목소리를 높이면서 두 손을 들어 ×자를 그려 보이더군요.
"그래도 그런 말이 한국 언론에 자주 등장하고 있는데요."
다시 한번 묻자 그는 진지한 목소리로 차근차근 현지상황에 대해 설명해 주었습니다.
"일부에서 혹시나 하는 우려를 말하는 것이겠지요. 저도 기자들에게 그런 질문을 많이 받았는데 그건 말도 안되는 소리고 사실상 불가능한 것입니다. 김대중 전 대통령 재임 당시 남북화해 분위기가 있었을 때 일본 내 무국적(조선적) 동포들이 재외국민 등록을 많이 했습니다. 그 중에 재외국민등록을 하면서 한국 여권을 만든 분들이 있었습니다. 등록만 하고 여권 안 만든 분들도 많았지요.
그게 통계를 보면 2000년에 2천 명, 2001년에 3천 명정도 되는데 그 숫자를 다 합치면 2000년부터 2011년까지 대충 한 5만 명 정도 됩니다. 그 숫자를 가지고 그러는 것 같은데 이걸 북한이 지령을 내려서 친북재일동포 5만 명이 투표한다고 하는 것은 일본현실을 전혀 모르고 하는 이야기지요.
재외국민선거법은 잘 아시다시피 2009년 2월에 만들어진 것입니다. 근데 아까 말씀드린 5만 명은 이미 2009년 이전에 재외국민등록을 마친 분들이 대부분이죠. 지금도 한달 평균 500여 명 정도 재외국민등록을 새롭게 하는 분들이 있다고 듣고는 있습니다만 선거권하고는 관련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김 영사의 확실한 보충설명에 저 역시 의문이 풀렸습니다. 그의 설명을 요약해 보면 햇볕정책 당시의 남북화해분위기가 재일본 무국적 동포들에게 한국국적을 회복할 수 있는 중요한 계기가 됐으며 그 숫자가 대략 5만 명인데 이들은 재외국민선거법이 실시되기 이전에 한국국적을 회복한 것이니까 일부 언론에서 보도하고 있는 '북한지령설'과는 전혀 무관하다는 것이지요. 그리고 김 영사는 한마디 더 추가하더군요.
"또 그때나 지금이나 아무에게나 한국여권 발급하지 않습니다."
저 역시 이 말을 듣고 안심했습니다. 앞서 말씀드린대로 혹시라도 일부 언론의 보도가 사실이라면 이미 시행 중인 재외국민 선거투표법 자체를 전부 바꿔야 하는 대사건이었는데 실제 현장에서 선거관련 업무를 담당하시는 분이 확실하게 답변을 해 줬기 때문입니다.
앞으로는 '사실'에 맞지 않는 신문기사 좀 안 봤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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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영사관을 나와 숙소로 도착해서 사실이 그렇다면 정리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습니다. 왜 이런 신문기사가 심심하면 튀어나올까? 일본 현장에서 만난 실무책임자가 북한지령 받고 투표하는 재일동포 5만 명은 말도 안 되니까 걱정 말라고 했으니 이런 말도 안 되는 내용이 언론에 다시 반복되는 것을 막기 위해 확실한 자료를 찾아야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래서 귀국을 하루 연기하고 이곳저곳 수소문한 끝에 꽤 유의미한 자료 하나를 확보할 수 있었습니다. 외교통상부 재외동포과에서 직접 작성한 이 자료 앞 부분에는 이 자료에 대한 설명도 친절하게 적혀져 있었습니다.
"요청하신 일본 내 조선적자(者)의 재외국민등록 현황 송부합니다. 다만 조선적자와 조총련계가 정확하게 일치하는 것은 아니므로 재외국민등록을 한 5만여 명이 모두 조총련계라고 볼 수는 없음을 참고하십시오. 또한 재외국민등록이 반드시 여권발급으로 연결되는 것은 아닙니다. 여권 발급을 신청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거의 김기봉 영사의 발언과 일치하지요. 또한, 다음 자료는 16일 오전 확보한 재일본무국적(조선적자) 동포들의 재외국민등록현황 통계입니다.
2000년 1629명, 2001년 3779명, 2002년 7633명, 2003년 1만895명, 2004년 6492명, 2005년 4304명, 2006년 4901명, 2007년 3420명, 2008년 2049명, 2009년 2361명, 2010년 2264명, 2011년(1~7월) 982명, 2000년부터 2011년 7월까지 합계 5만709명
이 자료를 보면 2002년부터 2004년까지 가장 많은 무국적 재일동포들이 재외국민으로 등록한 사실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이번 선거법 시행 때문에 5만 명이 북한지령을 받았다는 언론보도는 전혀 사실과 다르지요. 왜냐면 2002년부터 2004년에는 이번 재외국민 선거법의 논의조차 없었기 때문입니다.
제가 속해있는 조직의 특성상 저는 재외국민 선거법을 비롯해 지구촌의 한인사회에 관심을 기울일 수밖에 없습니다. 비록 이 조직이 민주당 산하단체이긴 하지만 저 역시 뉴욕 출신의 한인으로 자랑스러운 조국 대한민국의 지도자를 뽑는 중요한 국정선거에 전세계 한인들이 직접 참여할 수 있다는 기회가 열렸다는 것을 마음 깊이 반기고 있습니다.
하지만 '5만명 북한지령설'이라는 기사만 보면 이런 들뜨고 기뻤던 마음이 순식간에 사그라집니다. 제발 앞으로는 이런 '사실'에 맞지 않는 신문기사 좀 안 봤으면 좋겠습니다.
덧붙이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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