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간인 사찰 관련

“검찰·사법 개혁, 더는 미룰 수 없다”

道雨 2012. 3. 31. 16:09

 

 

    “검찰·사법 개혁, 더는 미룰 수 없다”


 

                         “검찰·사법 개혁, 더는 미룰 수 없다” 

조국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의 ‘디케의 선택’
       
법정 드라마 오프닝에서 종종 본 듯한 ‘정의의 여신’ 디케는 두 눈을 가린 채 저울과 칼을 들고 있다. 가린 눈은 편향 없음을, 칼은 엄정함을, 저울은 균형을 상징한다고 한다.

 

우리나라 법정, 특히 민사 법정에서는 눈을 가리는 정도가 아니라 아예 조는 능력이 탁월하게 진화한 디케의 후손이 많다는 우스갯소리로 사회자인 소설가 서해성씨는 특강의 문을 열었다.

 

인간미를 가진 법을 제시하며 큰 호응을 얻은 조국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가 바라본 한국 사회의 정의는 어떤 모습일까. 그리고 그가 기다리는 디케의 선택은 어떤 것일까.

 

 

“법학자 보기에 너무 이상한 일들 벌어져”

 

» 검찰·사법 개혁이란 말은 쉽지만 실은 엄청나게 어려운 일이라고, 절대적으로 시민들의 관심이 필요한데 이 특강이 그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고 조국 교수는 강조했다. <한겨레21> 탁기형

 

조국: 어느 사회나 정의와 평화의 문제가 묘한 긴장을 가진다. 정의가 실현되지 않으면 평화는 오지 않는다. 권리를 위한 투쟁은 평화를 위한 것이며, 합리적이고 공정해야 한다.

우리 사회에서는 정의를 집행하는 사람이 주로 검찰과 법원이다.

내가 재작년 정도부터 사회적 발언을 많이 하는데, 법학을 전공한 사람 처지에서 너무 이상하다 싶은 일이 많이 발생해서다.

 

우선 검찰의 사례를 보자.

김종익씨는 자기 블로그에 이명박 대통령을 비판하는 글을 썼다. 여러분이 다 하는 일이다. (모두 웃음)

갑자기 국무총리실에서 이 사람을 덮쳐 먼지털기를 시작했다.

우리나라의 어떤 기관도 민간인 사찰을 할 수 없게 돼 있다. 범죄 혐의가 있는 경우 절차를 거쳐서만 가능한데, 이 사람은 그런 게 아니다. 그런데 사찰이 일어났다.

 

며칠 전 전 청와대비서관 이영호씨가 나와서 기자회견을 했는데, 가관이다. 화를 버럭버럭 내며 “내가 한 거 맞다, 내가 몸통이다”라고 한다.

그런데 이영호씨는 전에도 자기가 몸통이라며 잡혀갔다. 이제 자기 이름이 나오니까 또 몸통이라며 나온 거다.

보통의 몸통은 그런 얘기 안 한다. 울부짖고 넘어지고 하는데 측은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사람은 몸통이 아닌 게 분명하다. (모두 웃음)

더 코미디 같은 일은 검찰이 당시 이 사람을 제대로 수사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한 번 소환한 뒤 돌려보냈다. 통화추적, 계좌추적 하나도 안 했다.

 

김종익씨의 회사는 거덜이 났다. 회사 장부에서 부조까지 이 잡듯이 수사를 했다. 모든 파트너가 거래를 끊고 회사가 망할 수밖에 없게 만든 거다. 회사 장부를 털고 털어 공금에서 일부를 빼 학교 은사님의 병원비를 대준 걸 찾았다. 횡령으로 기소했다.

엄격히는 물론 안 되는 일이지만, 김종익씨는 엄청난 정신적 고통을 받았다.

 

최근 매일매일 사건이 도미노처럼 터져서 묻히고 있지만 민간인 사찰은 헌정문란 범죄다. (검찰이) 실제 헌정문란 범죄는 솜방망이로 마사지를 해주고, 이 사람에 대해서는 철퇴를 휘둘렀다.

 

우리나라 검찰이 왜 이렇게 됐는가 보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가운데 대한민국 검찰이 가장 많은 권한을 갖고 있다.

 

예를 들어 일본은 1945년 이후부터 수사는 모두 경찰이 하고, 기소만 검찰이 한다. 한국은 검찰이 수사도 하고 기소도 한다.

미국에선 검사장급은 선거를 통해 뽑는다. 한국은 검찰에 대한 대중적 통제가 없다.

 

독일은 검찰 내에 자체 수사 인력이 없고 범죄사실이 확인되면 무조건 기소해야 한다. 한국은 기소편의주의라 하여, 범죄사실이 있더라도 검찰이 기소 여부를 결정한다.

권력이 집중되면 무조건 부패가 생기기 마련이다. 검찰 개혁의 요체는 권력 분산이다.


 

“법의 생명은 논리가 아니라 경험”

 

법원으로 넘어가자. 영화 <부러진 화살>에 대중이 열광했다.

법률가적 관점에서 보면, 영화에 허구가 좀 있다. (영화에서는) 1심 과정이나 경비원의 증언 등이 빠졌고, 실제 사건으로 보면 쟁점이 남아 있다.

 

그러나 사실과 영화의 싱크로율은 의미가 없다. 문성근씨가 탁월하게 연기한 판사의 비웃는 듯한 표정, 아래로 내려 깔아보는 시선, 고압적이고 권위주의적인, 진리를 독점하는 듯한, 소통보다는 군림하려는 판사의 태도가 드러난다.

영화는 사법부에 대한 대중의 불만과 불신을 극화했고, 이것이 영화에 대중이 열광한 이유라고 본다.

 

만약 석궁 사건을 배심재판으로 했다면 어땠을까.

그랬다면 이렇게 불만은 생기지 않았을 것이다. 우리나라는 전체의 5% 이하로 소수만 배심재판으로 진행하는데, 다른 나라에 비해 너무 낮다. 배심 사건 비중을 무조건 높여야 한다.

지금은 재판에서 피고인조차 못 알아들을 만큼 법률 용어가 많이 나오는데, 어려운 법률 용어는 직업 이익을 보호하기 위한 일종의 은어 같은 측면이 있다. 배심재판이 많아지면 어려운 법률 용어를 비법률가가 알아들을 수 있게 다 풀어서 쓰게 된다. 재판 진행 과정을 일반인이 알아들을 수 있게 되고 결과에도 참여하게 되는 것이다.

 

미국 법률가 올리버 홈스가 이런 말을 했다.

“법의 생명은 논리가 아니라 경험이다.”

보통 사람들의 경험을 모르고, 법을 논리로만 적용하게 되면 그 법은 실패한다. 나는 판결에서 결론도 중요하지만 그 결론에 이르는 과정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결론이 올바르다 해도 절차에서 불만이 생기면 승복되지 않는다. 적어도 나는 그렇다. 과정과 절차에서의 경험이 승복할 수 있게 이뤄져야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혹시 디케의 한쪽 저울에 뭔가 놓여 있지 않나, 디케가 눈가리개를 살짝 내리고 앞에 있는 사람을 슬쩍 살펴보다가 망나니칼을 들었다가 솜방망이를 들었다고 하지 않나 싶다.

앞으로 여러 국가적 과제가 있지만 검찰·사법 개혁은 정말 꼭 해야 한다. 그래야만 디케가 제대로 된 모습일 수 있지 않겠나 생각한다.

 

 

청중1: 주위의 사법고시 준비생이나 로스쿨 학생 등 법을 공부하는 사람들이 여러 현실 사안에 어쩔 수 없다거나 냉정한 태도를 취하는 것에 실망했다. 학생들을 어떻게 교육하고 있는지 궁금하다.

 

조국: 내 수업에 들어오는 학생들은 다양하다. 나는 진보를 강요하지 않는다. 다만 반대 의견이 무엇인지 생각하라, 자신이 주장할 때 근거가 무엇인지 생각하라고 한다. 다양한 사람이 다양하게 법을 추구하고 그 과정에서 많은 사람들이 양쪽 이야기를 듣고 ‘네 말이 옳다’ 생각하는 변화가 생긴다.

 

 

‘진보 아이돌’이 바라는 새로운 선택

 

청중2: 법 집행 과정의 공정성을 주로 이야기했는데, 법 제정 과정의 공정성은 어떻게 지켜질 수 있을까.

 

조국: 법률가들이 입법부에 너무 많이 들어간다. 법을 만들 때는 국회전문위원이나 국회의원 비서관 등으로 보좌해도 된다. 또 법사위를 거의 검찰 출신들이 장악하고 있다. 적어도 반은 비법률가로 바꿔야 한다.

 

검찰·사법 개혁이란 말은 쉽지만 실은 엄청나게 어려운 일이라고, 절대적으로 시민들의 관심이 필요하며 이 특강이 그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고 조국 교수는 강조했다.

길게 줄지어 기다리는 이들에게 사인을 해주는 것으로 특강 일정을 마무리하는 그는, 역시 ‘진보의 아이돌’이다. 그의 인기는 단지 조각상 같은 외모 때문이 아니라, 그 척박하다는 법학계에서 인간미를 지켜낸 품성 때문인지 모른다.

어쩌면 그가 기다리고, 또 간구하는 것은 2007년 12월, 눈을 질끈 감아버린 우리의 새로운 선택은 아닐까.

 

조원영 제23기 독자편집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