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짓말하다 사임… 박근혜와 닉슨, 닮았지만 다르다
워터게이트와 국정원 대선개입 사건 비교해보니…‘거짓말’ 유사, ‘집권당·검찰 태도’는 차이
일각에서는 국정원 대선개입 사건을 워터게이트 사건과 유사점이 많다는 분석도 있다.
▷ 닉슨의 거짓말과 박근혜의 모르쇠=
워터게이트 사건과 국정원 대선개입 사건은 권력기관의 대형 선거공작이라는 점 뿐 아니라 사건 발생 직후와 당선 이후 불법행위의 수혜자인 대통령이 무관하다고 하거나 거짓말을 한 것도 유사하다.
29일 워싱턴포스트의 발행인이었던 고 캐서린 그레이엄 여사의 자서전(부제 ‘워싱턴포스트와 나의 80년’-1997년 중앙일보 발행)을 보면, “외과용 고무장갑을 낀 5명의 남자들이 민주당 전국위원회 본부에 침입하려다 체포된 사건”(워터게이트 사건)이 1972년 6월 18일자 워싱턴포스트 보도(‘민주당 사무실 도청음모로 5명 검거’) 등이 나간 뒤, 론 지글러 백악관 대변인은 “3류 주거침입 미수”, “특정 분자들이 이 사건을 실제 이상으로 확대하려 들지 모른다”고 부인했다.
이후 침입자들의 수첩에서 닉슨 재선위원회측 인사의 연락처를 발견해 연관성을 밝혀낸 보도(그해 8월 1일)가 나간 이후, 공화당 대선후보로 지명된 닉슨 대통령은 “조사결과 본인은 백악관과 행정부에 재직중인 어느 누구도 이 해괴한 사건에 개입하지 않았다고 단언할 수 있다”며, “은폐 기도는 있을 수 없다”고 발표했다.
이후에도 지속적인 모리스 스탠스 닉슨재선위원회 재정위원장(전 상무장관)의 금고에 비밀기금이 있으며, 이 기금은 존 미첼 법무장관 등 5인이 관리하면서 민주당 정보 수집에 쓰였고, 미첼이 장관 재직시 이 기금 사용을 인가한 사실도 보도됐다.
취재 과정에서 당사자인 미첼은 “그런 거짓말을 신문에 낸단 말이냐”며, “그걸 신문에 냈다가는 케이티(캐서린) 그레이엄의 젖꼭지를 커다란 탈수기에 처넣을 줄 알라고 하라”고 막말한 것은 유명한 일화였다.
고 닉슨 전 미국 대통령과 고 캐서린 그레이엄 전 워싱턴포스트 발행인(사주)이 만났을 때 사진. 사진=캐서린그레이엄 자서전 | ||
이후에도 워터게이트와 백악관의 관계를 폭로하는 기사가 계속됐으나, 닉슨재선위는 “꾸며낸 이야기일 뿐 아니라 모순투성이”라고 부인했으며, 당시 론 지글러 백악관 대변인도 “포스트지는 비아냥, 뜬소문, 입증되지 않은 혐의, 익명의 정보제공자 및 위협적인 큰 제목을 이용해, 백악관과 워터게이트 사건 사이에 직접적 관계가 있는 것처럼 보이도록 노력해왔다”고 부인했다.
심지어 밥돌 상원의원은 ”이 신문 기자들은 자기네 후보만큼이나 저질 선거운동을 착실히 벌이고 있다”고 음해하는 일을 일삼았다.
그해 치러진 재선에서 닉슨은 압도적인 지지율(60.1%)로 재선에 성공했다.
국정원 대선개입 사건에서도 박근혜 대통령은 초기엔 “국정원 여직원 인권침해”, “여직원은 무죄”, “증거가 없는 것으로 나왔다” 등 아예 그런 사실 자체가 없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검찰의 수사결과 발표시 해당 여직원은 선거법 국정원직원법 위반 혐의가 인정됐다(기소유예).
박 대통령은 선거운동 기간 동안 허위사실을 유포했다는 비판을 받고 있으나, 아무런 책임있는 설명을 하지 않고 있다.
▷ 닉슨의 “책임 인정”과 박근혜 “나와 무관한 일”=
초기엔 부인했으나 사건 진상의 일단이 드러났을 때, 닉슨의 태도와 박 대통령의 태도는 다소 차이가 있다. 닉슨이 재선하면서 워터게이트 사건과 이 소식을 주도적으로 보도했던 워싱턴포스트는 궁지에 몰렸으나, 구속된 침입자들이 연방대배심에서 뜻하지 않은 폭로를 하면서 진상규명이 시작됐다.
침입자 5인 중 한 명인 제임스 매커드가 1973년 3월 23일 시리카 판사에게 보낸 서한에서 ‘워터게이트 재판에서 위증이 저질러졌으며, 피고들은 유죄를 인정하고 입을 다물라는 압력을 받았을 뿐 아니라, 고위층 인사들이 실제로 개입했다’고 증언한 것이다.
캐서린 그레이엄 여사는 “매커드의 자백은 워터게이트 사건 최초의 돌파구였다”고 평가했다.
한 달여 뒤인 4월 30일 밤 9시 닉슨은 TV연설에서 “내가 택할 수 있는 가장 쉬운 길은 내가 선거운동의 책임을 맡겼던 사람들을 탓하는 것이겠지만…그건 비겁한 행동이 될 것이며…사건의 진상을 밝힌 공은 추상같은 대배심과 정직한 검사들, 용감한 시리카 판사, 강력한 자유언론에 돌려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고 그레이엄 여사는 전했다.
그 이튿날 론 지글러 백악관 대변인은 워싱턴포스트와 밥 우드워드·칼 번스타인 기자의 보도를 비난했던 점을 사과하기도 했다.
이와 달리 박 대통령은 수사결과 발표에 이은 국정조사에서조차 드러난 사실에 대해서도 “국정원에 도움받은 일 없다”, “나와 전혀 무관하다”고 주장했을 뿐 아니라, “내가 댓글 때문에 당선됐다는 말이냐”고까지 철저히 모르쇠로 일관했다.
닉슨은 ‘책임이 있다’고 했으나, 박 대통령은 객관적으로 인정할 수밖에 없는 사실에 대해서도 모르는 일로 자신과 연관성을 부인하는데 급급했다.
박근혜(오른쪽) 대통령과 문재인 전 민주당 대선후보의 TV토론 전 악수 장면.
ⓒ연합뉴스 | ||
▷ 닉슨의 특별검사 해임과 박근혜의 검찰총장 사표수리 및 특별수사팀장 교체=
닉슨이 상원 특별조사위원회 조사와 특검수사 과정에서 자신의 뜻을 거부한 장관, 차관, 특별검사까지 모두 해임한 사건과, 박근혜 정부가 국정원 사건 수사 총수인 검찰총장과 수사팀장을 몰아낸 것도 유사점이 있다.
그레이엄 여사의 자서전에 따르면, 1973년 7월 상원 조사위원회에서 대통령수석보좌관 홀드먼의 보좌관인 알렉산더 버터필드가 ‘백악관에 음성 녹음 장치가 있다’고 폭로한 이후, 닉슨은 지속적으로 녹음테이프를 넘겨주지 않겠다고 버티다, 고등법원에서 패소해 결국 테이프를 제출할 수밖에 없었다.
이 과정에서 ‘테이프와 함께 요약문을 함께 제출하겠다’는 닉슨의 제안을 콕스 특별검사가 거부하자, 10월 20일(토요일) 닉슨은 리처드슨 법무부장관에게 콕스를 해임하라고 지시했다.
그러나 리처드슨 장관이 거부하자, 닉슨은 아예 장관을 해임한데 이어, 차석(차관)이던 빌 루켈스하우스도 거부하자 그마저도 해임했다.
결국 차관보급에 의해 콕스 특별검사가 해임돼, 이날 밤만 3인이 해임돼 이른바 ‘토요일의 대학살’이 벌어졌다고 캐서린 그레이엄 여사는 전했다.
국정원 대선개입 사건의 경우, 사건을 소신껏 수사하라고 했던 채동욱 검찰총장에 대해 돌연 ‘혼외자’ 의혹이 터져나오면서 총수가 물러난 결과를 낳았다. 그 배경에 청와대와 국정원이 관여했다는 의혹도 제기됐다.
또한 수사팀이 국정원의 트위터 선거운동 혐의까지 밝혀내자, 추가 공소제기를 하는 과정에서 수사팀장이 업무에서 배제되는 초유의 일도 벌어졌다.
▷ 사건자체의 유사성…선거기간의 불법행위·정부의 조직적 동원·권력의 수사무마=
국정원 사건과 워터게이트 사건의 성격 자체가 갖는 유사성도 지목되고 있다.
표창원 전 경찰대 교수는 최근 자신의 블로그에서
△ 대선을 앞두고 발생한 불법행위
△ 야당에 대한 조직적·권력적 침해행위
△ 선거후 언론에 의해 사건이 더 확대
△ 증거인멸 및 수사무마
라는 점을 들어 두 사건이 유사하다고 분석했다.
표 교수는 차이점에 대해서도
△ 사건발생 책임자와 진상규명 책임자가 미국은 닉슨 한 사람인데 반해, 우리는 이명박 전 대통령과 박 대통령으로 구분돼 있고
△ 불법행위자가 미국은 민간인, 우리는 국정원 직원이며
△ 미국은 범인이 즉각 구속됐으나 우리는 공범관계로 의심되는 국정원으로 돌아갔을 뿐 아니라
△ 워터게이트사건은 선거에 영향을 안줬으나 우리는 경찰의 허위수사결과 발표 등으로 선거직전 상당한 영향을 미쳤다고 제시했다.
또한 진상규명에 대한 집권여당의 태도와 수사기관의 정치권력과 압력에 대응하는 태도에 있어 큰 차이를 보인 점도 표 전 교수는 꼽았다.
표 교수는 “대한민국 국정원 게이트의 끝은 어떤 모습일까”라며, “적어도 1970년대 미국보다 2013년 대한민국의 진실규명과 정의구현 수준이 결코 뒤처지지 않길 바란다”고 지적했다.
[ 조현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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