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한마디에 ‘유병언 계엄령’인 양 호들갑
호들갑도 이런 호들갑이 없다.
검찰과 경찰은 11일 구원파의 본산인 경기도 안성 금수원을 압수수색했다. 서울·경기지역 경찰 기동대의 절반 가까운 6천여명과 헬리콥터, 물대포까지 동원된 대규모 작전이다.
수배중인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 체포를 위한 것도 아니고, 유씨의 도피를 도운 여성 신도 등을 잡으려던 것이라고 한다. 그나마 체포 대상도 제대로 몰라 허둥대다 엉뚱한 사람 몇명을 체포하는 데 그쳤다.
‘태산명동서일필’은 이런 모습을 두고 하는 말이겠다.
누구에게 보이려고 이런 호들갑을 떠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소동은 이에 그치지 않는다.
안전행정부는 유씨 신고를 독려하기 위한 임시반상회를 13일 전국에서 일제히 연다고 밝혔다.
반상회는 일제 때 주민통제를 위해 시행됐다가, 유신시절인 1976년 같은 목적으로 부활한 제도다. 감시와 신고 따위 통제에 온 국민을 동원하겠다는 발상이 되살아 나온 것이다.
앞서 10일에는 유씨 검거를 위한 유관기관 회의가 긴급 소집됐다.
이날 오전 박근혜 대통령이 유씨를 아직 붙잡지 못한 데 대해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한다”며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하라고 말한 직후다.
대통령의 한마디에 정부 전체가 화들짝 놀라 허둥대는 모양새다.
실제 회의 내용은 그동안 해오던 일들을 재확인하는 정도였을 뿐이다. ‘보여주기’ 외에는 달리 의미를 두기 어렵다.
이날 회의에는 군의 핵심 장성인 합동참모본부 작전부장도 군복 차림으로 참석했다. 군은 유씨의 밀항을 막는 경비 책임을 지기로 했다고 한다.
민간인 검거에 군까지 투입된 것은 창군 이래 처음이다. 역대 정부가 이런 일을 하지 않았던 것은 자칫 잘못된 전례가 될 수 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이는 헌법 정신에도 어긋난다.
헌법이 ‘군사재판을 받지 않을 권리’를 명시한 것은 체포·구속·재판 등 민간 사법절차에 군이 개입할 위험을 경계한 것이겠다.
헌법은 또 ‘국군은 국가의 안전보장과 국토방위의 신성한 의무를 수행함을 사명으로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민간인 검거는 결코 군의 사명도 아니거니와, 가뜩이나 대북 경계태세 강화가 필요하다는 지금 그런 일까지 맡기는 것은 분별없는 처사다.
유씨는 세월호 침몰의 직간접 원인을 제공한 핵심 책임자다. 그를 시급히 체포해 법적 책임을 묻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세월호 참사의 책임은 유씨만이 아니라, 사고 예방과 구조 등에 총체적으로 실패한 정부에도 물어야 할 일이다.
이런 식의 호들갑으로 책임 소재를 흐리려 해선 안 된다.
[ 2014. 6. 12 한겨레 사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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