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안함 관련

천안함 제3부표 미스터리와 잠수함 충돌설. 한주호 준위 제3의 부표에서 잠수.

道雨 2015. 7. 2. 18:48

 

 

 

천안함 제3부표 미스터리와 잠수함 충돌설

한주호 준위는 왜 크레인도 없는 곳에 잠수했나… 젖혀지지 않는 해치와, 뭔가를 건져서 남쪽으로 사라진 헬기

 

 

 

천안함 재판에 이른바 제3의 부표 지점에서 작업을 했던 이헌규 전 UDT 동지회장이 4년 만에 출석해 증언을 하면서, 이를 보도했던 KBS가 어떻게 취재 보도하게 됐는지에 대해 조명을 받고 있다.

특히 이 전 회장이 법정에서 당시 잠수한 뒤 연 문이 완전히 제껴지지 않았다고 증언한 것을 두고, 신상철 서프라이즈 대표는 천안함 좌현의 선실 문과 다르다고 반박했다.

 

이에 따라 신상철 대표는 1일 서울중앙지법 형사36부(재판장 이흥권 부장판사)에, 당시 KBS 사회팀장과 황현택 기자의 방송통신위원회 증언과 법정 제출 서면 증언 등을 담아 의견서를 제출했다.

 

이헌규 전 회장의 최근(지난달 22일) 법정 증언과 KBS 취재팀이 5년 전 취재당시 녹취록 등에 따르면, UDT동지회원들은 고 한주호 준위가 사망한 2010년 3월 30일 이튿날 철수했다가, 4월 2일 다시 백령도로 와서 3일 오전 10시 백령도 용트림 전망대에서 한 준위 추모제를 열었다.

이 곳에서 그들은 용트림 전망대에서 바로 보이는 이른바 ‘제3의 부표’를 바라보며 “부표 설치한 곳을 바라보며 추도사를 낭독하겠습니다”(실제 방송 육성)라고 읽었다.

 

문제는 이 곳이 함수(백령도와 대청도 사이-‘제1부표’)와 함미(용트림 전망대에서 바라본 우측 능선 지점-‘제2부표’)의 중간 지점이자, 용트림 바위에 가까운 지점이었다는 점이다.

실제로 이들이 철수한 뒤인 4월 5일, 함미와 함수를 인양하기 위해 투입된 해상크레인의 위치가 함수와 함미 침몰 지점으로, UDT동지회가 제3의 부표라고 지목한 곳에는 해상크레인이 들어서지 않았다는 것이다.

 

 

지난 2010년 4월 7일 KBS가 보도한 이른바 '제3의 부표' 관련 뉴스

UDT동지회원들은 한 준위가 작업하다가 사망한 장소가 함수 침몰 지점이라고 주장해왔다. 하지만 이들이 지목한 실제 위치는 함수와 함미 침몰 지점 사이(용트림 전망대 바로 앞 지점)인 ‘제3의 부표’였다.

이들은 함수와 함미 인양을 위한 해상크레인이 현지에 도착하기 전에 작업을 했기 때문에 함수와 함미의 정확한 위치를 알 수 없었으며, 이들이 제3의 부표 지점을 함수 위치라고 지목한 것은 고 한주호 준위가 그렇게 알려줬기 때문이라고 법정에서 증언했다.

함수와 함미 위치의 경우 “용트림 전망대에서 육안으로 식별이 불가능하며, 망원렌즈를 통해야 가능한 수준”이라고, 황현택 기자가 법정 제출 서면 증언에서 밝히기도 했다.

 

신상철 대표는 의견서에서 “문제는 한주호 준위가 왜 제3의 부표가 설치된 그곳을 함수라고 사실과 다르게 말했느냐인데, 그것은 역설적으로 한주호 준위가 진실을 말하지 못할 특별한 사정이 있었다고 밖에 해석할 여지가 없다”고 주장했다.

 

이처럼 고 한 준위가 용트림 전망대 앞바다에서 사망한 것으로 알고 있는 UDT동지회원들의 당시 증언(KBS 취재 당시)이 담긴 추모제 영상과 달리, 함수 함미 인양을 위한 해상크레인이 들어온 위치가 달랐던 점에 착안해, KBS 취재팀이 본격적인 취재에 들어가게 됐다는 것이 KBS 제작진의 증언이다.

 

박승규 당시 KBS 사회팀장은 2010년 5월 4일 방송통신심의위원회 9차 회의에 출석해 “추모제를 용트림 바위에서 UDT 동지회가 가졌는데, 용트림 바위 앞에 약 2km 정도 떨어진 빨간 부표가 있는 곳에서 ‘저기가 고 한주호 준위가 순직한 곳’이라면서 추모제를 지냈으며, UDT 동지회 회원들이 ‘저 부표가 한 준위가 발견해서 설치한 것’이라고 한 얘기를 우리가 녹취를 했다”며, “그때 기자들이 조금 의문을 가졌다”고 설명했다.

 

박 팀장은 “4월 5일 크레인이 들어와 함미의 위치와 함수의 위치 두 곳에 설치됐는데, UDT 동지회원들이 이야기하는 용트림 바위 앞 부표가 설치된 곳에는 크레인이 안 왔다”며, “그래서 기자들이 추모제를 지낸 UDT 회원들을 상대로 ‘고 한주호 준위 사망한 곳이 저기이고, 함수의 위치가 있는 곳은 크레인 위치가 있는 곳과 다르다, 도대체 어떻게 된 것이냐’고 (취재)하는 과정에서 녹취한 이야기를 들어보니, UDT 회원들은 용트림 바위 앞에 있는 부표 위치를 아마 함수 위치로 알고 진술을 했던 것 같다”고 밝혔다.

 

당시 박 팀장은 “현장에 작업을 했던 UDT 동지회원들은 ‘제3의 부표’가 고 한주호 준위가 작업하고, 사망한 지점인 곳이고, 거기에는 구조물이 있는 것 같다는 의문을 제기하는 리포트를 하게 된 과정”이라고 증언했다.

 

 

지난 2010년 4월 7일 방송된 KBS <뉴스9>. 함수, 함미, 제3의부표 위치. 이미지=신상철 재판부 제출 의견서

 

지난 2010년 4월 7일 방송된 KBS <뉴스9> 'UDT동지회원 추모제' 장면

그 회의에서 함께 출석한 황현택 KBS 기자는 “(추모제를 지낸지) 이틀 있다 크레인이 들어오고 나서, 크레인이 들어왔을 때 UDT 동지회원 분들은 이미 백령도를 떠났다”며, “‘크레인이 왜 저희가 본 적이 없는, 기존에 함수라고 생각하지 않은 지점에 들어와 있을까?’라는 합리적 의심이 생긴 것”이라고 증언했다.

황 기자는 “실제로 본인이 직접 들어가서 함수를 봤다고 하는 분들한테 전화를 해, 저한테 화를 낼 정도로 확인과 확인을 거듭해 보도하게 된 것”이라고 밝혔다.

황 기자는 “제가 보기에도 백령도 앞에 있는 부표와 군이 발표한, 함수로 확인된 위치에 서 있는 부표와는 한눈에 보기에도 차이가 많이 나는 곳이었다”고 덧붙였다.

 

이와 함께 신상철 대표는 증인채택 4년 만인 지난 22일 법정에 출석한 이헌규 전 UDT동지회장의 증언에 대해 의미를 부여했다.

이 전 회장은 당시 자신이 구조작업을 위해 바닷속에 들어가 연 해치의 생김새에 대해 신 대표가 제시한 잠수함 해치 가운데 하나를 선택했다. 해치 모양은 모두 둥근 형태였다.

이 전 회장은 두 팔 벌려 한바퀴 돌만한 좁은 공간이었다고 법정에서 증언했다. 그러나 검사와 재판장이 재차 확인 질문을 하자, 둥근 모양인지는 모르겠다고 번복했다.

 

신 대표는 “천안함 좌현 출입구에는 둥근 해치로 출입할 곳이 존재하지 않는다”며, “천안함은 우현으로 90도 누워있었으므로 좌현 선실쪽 출입구가 유일한 통로였으며 모두 대형 사각 해치였다”고 설명했다.

 

또한 이 전 회장이 해치를 열었을 때, 해치가 완전히 180도 제껴지지 않았다고 증언한 것도 도마에 올랐다. 신 대표는 “거주구인 선실 내부의 목재 출입문을 해치라고 표현하지 않는다”며, “외부 혹은 수밀격벽에 설치돼 완벽히 밀폐(tight)되는 금속제 구조의 출입문을 해치(hatch)라 한다. 해치 자체는 견고하고 무거우며 강력한 개폐장치가 달려 있다. 천안함 좌현 선실의 해치는 모두 대형 사각 해치로, 열었을 때 안전이 보장되도록 완전히 제껴지도록 만들어져 있다”고 설명했다.

 

잠수함 해치의 한 유형. 사진=신상철 법정 제출 의견서

이와 달리 잠수함의 해치에 대해, 신 대표는 “완전히 제껴지지 않도록 설계돼 있는데, 그 이유는 완전히 제껴질 경우 해치 무게로 인해 하부로 내려가면서 해치를 닫을 수 없기 때문”이라며, “하부로 내려가면서 해치를 닫을 수 있도록, 통상 120도 정도의 기울기에서 멈추도록 설계돼 있으며, 스스로 닫히지 않도록 시건장치가 돼 있다”고 지적했다.

신 대표는 “따라서 ‘한 손으로 열었고, 완전히 제껴지지 않았다’는 이헌규 전 회장 증언은, 그가 천안함이 아닌, 다른 구조물 또는 그런 해치를 가진 수중함선에 들어갔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주장했다.

 

제3의 부표 위치에서 작업한 헬기와 관련해, 미 제7함대 홈페이지에 실린 사진에 유사한 헬기와 수송장면이 등장하는 것과 관련해, 신 대표는 “한주호 준위가 사고를 당했을 때 미 함선의 산소탱크를 이용한 것 외에, 미 해군이 천안함 관련 구조작업을 도왔다는 소식은 어디에도 찾을 수 없다”며, “그들의 작업이 천안함 사고와 어떠한 연관관계가 있는지 밝히는 것이야말로 천안함 사고 원인규명의 나머지 반쪽을 찾는 것이라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KBS는 당시 뉴스에서 제3의 부표 장소에 대해 “이 곳은 어제 해군이 길이 2미터의 파편 2개를 건져 올린 곳이기도 하다”며, “이 파편을 실은 해군 헬기는 백령도나 인근 바다에 떠 있는 독도함이 아닌 남쪽 어딘가로 사라졌다”고 보도했다.

 

신 대표는 의견서에서 “제3의 부표와 관련된 일련의 작업은 천안함 사고 원인 규명에 있어 대단히 중요한 위치를 점하고 있다”며, “그럼에도 제3의 부표 하부에 또 다른 가라앉은 구조물의 존재 여부, 예비역 UDT 대원의 증언, 미 해군의 이해할 수 없는 작업 등, 그 어느 하나도 국방부에서 공식 발표하고 해명한 내용과 일치하는 것이 없다”며, “의구심이 가는 모든 관련자에 대해 신문이 이뤄져, 진실이 펼쳐질 수 있도록 헤아려 달라”고 촉구했다.

 

 

2010년 4월 23일 인양된 천안함 함수 좌현의 선실 해치(표시한 부분). 사진=신상철 법정제출 의견서

 

KBS가 제3부표 부근에서 이동중인 것이라고 보도한 헬기. 뉴스화면 캡처

 

[ 조현호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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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원제출 의견서] ‘제3의 부표’관련 UDT 대원 증언에 대하여
대형 구조물, 두 팔 벌려 둥그런 햇치.. 위에서 아래로 들어갔다

신상철 | 2015-07-01 10:2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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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원제출 의견서] '제3의 부표'관련 UDT 대원 증언에 대하여


의 견 서

사건번호 : 2010고합1201
피 고 인 : 신상철

제 목 : 제38차 공판 이헌규 증인신문에 대한 의견서


존경하는 재판장님,

지난 6월 22일 제38차 공판(이헌규 전 UDT대원에 대한 증인신문)과 관련하여 첨부와 같이 의견서를 제출하고자 하오며 그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용트림 바위 앞 제3의 부표 하부에 어떠한 물체가 존재했는지 여부는 천안함 침몰사고의 진실규명에 있어 가장 중요한 사안 중 하나입니다.

둘째, 2010년 4월 7일 “한주호 준위 다른 곳에서 숨졌다”는 제목의 KBS 보도가, 국방부의 정정보도 요청과 함께 서버에서 삭제되고, 방통위에 제소된 것은, 그만큼 사안의 중요성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셋째, 한주호 준위가 현장에서 작업 중 사망함으로써, 증인 이헌규씨는 제3의 부표 하부의 물체(대형구조물)에 접근하였던 유일한 사람으로서, 그가 알고 있는 사실을 말하는 것이 대단히 중요한 사안임에도, 그는 지난 4년간 여러차례의 증인소환에 불응한 바 있습니다.

넷째, 따라서 이헌규 증인의 법정증언의 진실성에 대한 판단의 기준으로, 당시 상황을 취재하고 대화를 나누었던 언론인인 황현택 기자의 진술내용과 대화내용(녹취록)이 무엇보다 중요한 근거라 할 것입니다.

* 첨부 : ‘제3의 부표’ 관련 의견서

2015년 6월 30일
피고인 신상철

서울중앙지법 형사36부 귀중


 

‘제3의 부표’ 관련 의견서

 

1. KBS 취재팀(황현택, 최영윤, 이병도 기자) 녹취록 제출 배경

 

2010. 3. 30 UDT 베테랑인 한주호 준위가 작업 중 사망하자 KBS는 특별취재에 들어갑니다. 그리고 4월 7일 저녁 9시 뉴스에서 <한주호 준위 다른 곳에서 숨졌다>는 타이틀의 보도가 나가면서 큰 파장을 불러옵니다.

 

 

 

하지만 국방부는 ‘보도내용이 사실과 다르다’며 KBS측에 정정보도를 요청하였고, 관련 기사는 다시보기가 정지됩니다. 이후 KBS 취재기자팀과 보도내용은 방송통신위원회에 회부되고, 몇몇 기자는 지방으로 전출되는 불이익을 당하였습니다.

 

피고인은 KBS 보도내용 속에 천안함 침몰사건의 핵심적인 실마리가 담겨 있다는 판단하에 KBS 황현택 기자에게 연락을 취하였으며, 법정에 출두하여 증언석에 서 줄 것을 여러차례 요청하였습니다만, KBS 상부에서 허락해 주지 않는다며 증인출석은 곤란하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던 중 2012년 초 강남 모처에서 황현택 기자를 만나 간곡히 요청을 하니, 황현택 기자는 고민 끝에 법정진술이 아닌 서면진술로 하면 좋겠다며, 취재한 내용을 녹취록과 함께 공증 후 재판부에 제출하는 것에 동의함으로써, 2012년 2월 21일 관련서류 일체에 대하여 ‘법무법인 두레’에서 공증하여, 재판부에 <증 제39호증>으로 제출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2. KBS 취재팀의 백령도 체류 및 취재 기간

한주호 준위가 작업중 사망하자 KBS 백령도 특별취재팀(황현택, 최영윤, 이병도 기자)은 2010년 4월 1일(목) 백령도에 입도하여 4월 10일까지 취재를 합니다. (증 제39호증 2항, 황현택 기자의 답변)

 

그리고 천안함 침몰사건과 관련 가장 중요하다고 할 수 있는 놀라운 사실에 접근하게 됩니다.


3. KBS 취재팀과 UDT 대원들과의 긴밀한 관계

 

황현택 기자는 취재를 위해 UDT 대원들과 숙식을 함께하며 상당한 신뢰관계를 쌓았다고 진술합니다. (증 제39호증 3항, 황현택 기자의 답변)

 


4. UDT 동지 회원들의 활동 내용

 

황현택 기자가 제출한 자료에 의하면 UDT 대원들의 활동내용은 다음과 같으며 이번 법정에 출석한 증인 이헌규 씨는 1차 및 2차 모두 참여하였던 것으로 증언한 바 있습니다. (증 제39호증 첨부 1, 황현택 기자 제출자료)

 

UDT 동지회 1차 활동(총 18명)

  • 3월29일 7명 백령도 헬기로 입도 (이흥규, 김진호, 장승권, 신상철 씨 등)
  • 3월29일 23시40분, 5명 장비 갖추고 추가 입도
  • 3월30일 6명 배편으로 추가 입도 3월30일 오전, 함수 수중 탐색 활동
  • 3월30일 오후 3시 쯤 故 한주호 준위 사망
  • 3월31일 UDT 동지회원 18명 전원 철수

UDT 동지회원 2차 활동(총 17명)

  • 4월 2일 UDT 동지회원, 2차로 백령도 입도
  • 4월 3일 오전 8시, 함미수색 준비.. 기상악화로 중단(KBS 촬영)
  • 4월 3일 오전 10시, 용트림 바위에서 故 한 준위 추모제 (KBS 촬영)
  • 4월 5일 오전 수색 중단, 인양 전환되면서 전원 철수

황현택 기자 제출 자료

 


5. ‘제3의 부표’ 명칭

‘제3의 부표’라는 명칭은 KBS취재팀이 붙인 이름입니다. KBS 황현택 기자는 기존에 설치된 함수, 함미의 부표(제1부표, 제2부표)와 구분하기 위하여 ‘제3의 부표’라 칭했던 것입니다. (증 제39호증 14항, 황현택 기자 답변)

 

 

 

 

함수 및 함미는 각각 3.28 오후 8시경(함수) 및 3.28 오후 10:30분경(함미) 발견되고 제1부표(함수)와 제2부표(함미)가 설치됩니다.

그러나 UDT 대원들이 한주호 준위가 사망한 지점으로 지목한 제3의 부표는 천안함 함수, 함미가 발견된 다음 날인 3월29일 한주호 준위에 의해 설치되었다는 사실이 밝혀졌습니다.


6. ‘제3의 부표’는 누가 언제 설치하였나?

 

함수와 함미는 사고 후 이틀이 지난 3월 28일 저녁 차례대로 발견되고 각각 부표가 설치됩니다.

 

[연합뉴스] 국방부 원태재 대변인은 이날 브리핑에서 "28일 오후 7시57분께 함수에 위치표식 `부이'를 설치한 데 이어 오후 10시31분께 옹진함이 음파탐지기로 함미를 찾아 오늘 오전 9시께 `부이'를 설치했다"며 "함정의 정확한 위치가 확보된 만큼 이에 대한 탐색을 집중적으로 실시하고 있다"고 밝혔다.

연합뉴스 2010-3-29

 

이로써 제1부표(함수)와 제2부표(함미)의 위치는 확고히 정해진 것입니다.

그런데 그 다음 날인 3월 29일 한주호 준위는 백령도 어선을 빌려 수색에 나섭니다. 그리고 어탐(어군탐지기)을 이용하여 해저에 가라앉아 있는 물체(대형구조물)를 발견한 뒤 그곳에 한주호 준위가 직접 부표를 설치합니다.

 

 

한주호 준위는 또 하나의 부표(제3의 부표)를 제1부표(함수) 및 제2부표(함미)와는 분명히 다른 위치에 설치하였으며, 날짜 또한 함수, 함미보다는 하루 뒤인 3/29 설치하였습니다.

그리고 그곳을 찾기 위해 한주호 준위는 어선을 빌려 어군탐지기를 작동하면서 수색을 하였습니다. 해난구조대가 발견한 함수, 어선이 발견하고 웅진함이 확인한 함미와는 확연히 다른 내용인 것입니다.


 

7. UDT 대원들은 왜 ‘제3의 부표’를 함수라 했을까?

 

한주호 준위가 방금 막 백령도 현장에 도착한 예비역 UDT대원들에게 그렇게 말했기 때문입니다. 하루 전인 3/28일 저녁 함수를 발견했기 때문에 함수가 어딘지 모를리 없는 한주호 준위가 UDT예비역에게 그렇게 말했기 때문입니다.

복수의 UDT 대원들이 모두 제3의 부표 위치를 함수로 인지한 것을 보면, UDT대원들이 잘못들은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황현택 기자가 취재한 녹취록에는 이번 공판의 증인으로 출석한 이헌규 씨와의 통화내용 외에 정철 UDT 대전지회장과의 대화가 담겨 있는데, 대화의 내용을 보면 정철 지회장 또한 그곳을 ‘함수’로 알고 있었고, 심지어 크레인이 세워진 곳(함수)을 함미로 알고 있을 정도로 잘못 알고 있습니다.

[첨부 6] 정철 UDT 대전지회장 전화녹취 (2010. 4. 6 저녁)

- 용트림 바위에서 추도사에도 나왔었고 한 준위가 세운 부표가 맞아요? 한 준위님이 사망하신 거예요?
= 네. 함수 부분에요.

- 거기가 함수 부분이에요?、
= 네.

- 함수 부분에 UDT 동지회 분들이 들어갔다 오신 적 있으시죠?
= 네.

- 함수 인양하겠다고 크레인이 세워졌잖아요. 크레인 세워진 위치가 용트림 바위 바로 앞이 아니고,백령도하고 대청도 사이에 해상으로 3~4킬로 떨어진 곳에 세워졌거든요?
= 거기 함수가 아니고 함미 아닙니까? 그쪽이?

황현택 기자 제출 녹취록 - 첨부 6

 


8. 전망대에서 바라 본 함수, 함미 그리고 제3의 부표 위치 분석

 

용트림 전망대 쪽에서 대청도를 바라보면 중간에 <함수크레인>이 있으며, 그곳에 제1부표가 설치되어 있습니다.

용트림 전망대 쪽에서 우측해안 능선을 바라보면 <함미크레인>이 있으며, 그곳에 제2부표가 설치되어 있습니다.

 

 

 

한주호 준위가 설치하고, 작업하다가 숨진 제3의 부표는 용트림 전망대 바로 앞에 위치해 있습니다.

함수.함미가 발견된 다음날인 2010. 3. 29일 백령도에 도착하자마자 독도함으로 이동하여 간단한 설명을 듣고, 곧 바로 UDT Rib 보트를 타고 제3의 부표로 이동하였던 UDT예비역 대원들은 어디가 함수이고 어디가 함미인지 알지 못했을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을 것입니다.

 

문제는 한주호 준위가 왜? 제3의 부표가 설치된 그곳을 함수라고 사실과 다르게 말했느냐인데, 그것은 역설적으로 한주호 준위가 진실을 말하지 못할 특별한 사정이 있었다고 밖에 해석할 여지가 없다 할 것입니다.


9. 故 한주호 준위 추모제 - 2010. 4. 3

2010. 3. 29 백령도에 입도한 UDT 예비역 대원들은 3/30 한주호 준위가 사망하는 사고를 당하자, 3/31 전원 철수합니다. 그리고 4/2 다시 2차로 백령도에 입도하여, 4/3 오전 10시 용트림 전망대에서 故 한주호 준위 추모제를 갖습니다. 용트림 전망대는 백령도 남쪽 바다를 바라볼 수 있는 최적의 위치입니다.

 

그런데 추모제에서 추모사를 낭독한 정철 UDT 동지회 대전지회장은 의미있는 발언을 합니다.

 

화면 자막에는 <부표가 있는 곳 앞에서 추도사를 읽겠습니다.>라고 되어 있습니다만, 동영상을 실제로 돌려보면, <부표 설치한 곳을 바라보며 추도사를 낭독하겠습니다.>라며 낭독을 시작한 것입니다.

<부표 설치한 곳>은 <한주호 준위가 부표 설치한 곳>을 의미하며, 용트림 전망대에서 <바라보는> 부표는 <제3의 부표>를 의미합니다.

또한 용트림 전망대에서 함수의 부표는 잘 보이지도 않을 뿐만아니라, 함수 부표는 한주호 준위가 설치하지도 않았습니다.

 

피고인측 변호인은 혹시라도 용트림전망대에서 함수 크레인에 설치된 부표가 잘 보이는 것은 아닌지 질의를 하였습니다만, 황현택 기자는 “육안으로는 식별이 불가능하고, 망원렌즈를 통해 가능한 수준”이라는 답변을 하였습니다.

 


10. KBS 취재기자들이 ‘제3의 부표’에 의문을 가진 계기는?

 

KBS 취재팀의 황현택, 최영윤, 이병도 기자가 ‘제3의 부표’에 관한 취재에 돌입하게 된 계기는 ‘크레인’ 때문이었습니다. UDT 동지회 외원들과 백령도에 함께 있을 당시 KBS 취재기자들은 4/3 추모제에 이르기까지 단순 취재에 열중하였으며 일체 개입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2010년 4월 5일, <구조>에서 <인양>으로 전환되면서 UDT 대원들이 백령도를 떠났고, 공교롭게도 그날 함수와 함미가 가라앉은 지점에 크레인이 세워지는데, 그 위치를 보니 그때까지 UDT 대원들이 작업을 하고, UDT 대원들 스스로 ‘함수’라고 지목한 위치가 아닌 곳에 함수 크레인이 세워지는 것을 확인한 취재진들이, 합리적인 의심과 함께 본격적인 취재에 돌입하였던 것입니다.

 

그에 따라 상황을 정리한 KBS 취재기자들은 4월 6일, 정철 UDT 대전지회장, 이헌규 전 UDT 대원, 그리고 최영순 소령에게 전화를 통해 인터뷰를 하고, 인터뷰 내용을 취합하여 4월 7일 보도하였던 것입니다.

 

이러한 사실은 아이러니하게도 KBS 보도내용에 대한 방송통신위원회 제소 및 심의과정에서 <박승규 KBS 보도국 사회팀장>과 <황현택 KBS 보도국 기자>가 출석하여 증언함으로써 소상히 밝혀지고 있습니다.

○ 박승규 KBS 보도국 사회팀장 (2010. 5. 4. 방통위 제9차 회의)

 

제가 간단하게 취재과정과 그 결과에 대한 저희 입장을 말씀드리겠습니다. 故 한주호 준위가 30일에 사고를 당하고 나서 4월 3일 백령도에서 추모제가 있었습니다.

추모제를 용트림 바위에서 UDT 동지회가 가졌는데, 용트림 바위 앞에 약 2km 정도 떨어진 빨간 부표가 있는 곳에서 “저기가 故 한주호 준위가 순직한 곳이다.”라고 하면서 거기를 향해서 추모제를 지냈습니다.

그리고 거기에서 UDT 동지회 회원들이 “저 부표가 故 한주호 준위가 발견해서 설치한 것이다.”라는 이야기들을 하는 것을 우리가 녹취를 했습니다. 그때 기자들이 조금 의문을 가졌습니다.

그 당시에는 함수, 함미의 위치 같은 것이 확연히 드러나지 않는 시점이었고, 정확하게 알지 못하는 시점이었고, 정확하게 설명해 주는 사람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알기로는 함수에서 故 한주호 준위가 사망한 것으로 알고 있는데, 저 앞에 있는 부표에서 사망했다고 추모제를 지내는 자체에 조금 의문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故 한주호 준위 사망 후 추모제를 지내고, 4월 4일에 구조에서 인양으로 작업방식이 전환됐습니다. 그러면서 4월 5일 크레인이 들어왔는데, 크레인이 함미의 위치와 함수의 위치 두 곳에 설치가 됐는데, UDT 동지회원들이 이야기하는 용트림 바위 앞 부표가 설치된 곳에는 크레인이 안 왔어요.

 

그래서 기자들이 추모제를 지낸 UDT 회원들을 상대로 ‘故 한주호 준위 사망한 곳이 저기이고, 함수의 위치가 있는 곳은 크레인 위치가 있는 곳과 다르다, 도대체 어떻게 된 것이냐?’ 하는 과정에서 녹취하고 이야기를 들어보니까, UDT 회원들은 용트림 바위 앞에 있는 부표 위치를 아마 함수 위치로 알고 진술을 했던 것 같고,

우리도 그 말이 다수를 상대로 추모제도 지내고 또 현장 수중작업 잠수를 했던 분들도 그 증언을 하기 때문에 그것을 토대로, 해군은 함수 위치가 저기라고 발표했는데, 현장에 작업을 했던 UDT 동지회원들은 ‘제3의 부표’가 故 한주호 준위가 작업했고, 사망했던 지점인 곳이고, 거기에는 구조물이 있는 것 같다라는, 말하자면 의문을 제기하는 리포트를 하게 된 과정입니다.

방통위 제9차 정기회의 Page 5, 6

 

 

그리고 황현택 기자는 다음과 같이 진술합니다.

○ 황현택 KBS 보도국 기자 (2010. 5. 4. 방통위 제9차 회의)

 

4월 3일 추모제를 지낼 때, 지금 상황과 한달 전 상황이 약간 다릅니다만, 백령도에 있는 모든 항구의 배는 기자들을 태우고 밖을 나가지 못한 상황이었고, 그리고 어떤 의문이 생겼을 때 사실관계를 확인해 줄 수 있는 채널이 굉장히 제한적이었다는 상황을 모두에 설명드리겠습니다.

 

현장에 제가 간 것이 4월 1일이었는데, 망망대해이기 때문에 군에서 발표한 함수, 함미 좌표라는 것이 뭍에서는 사실 확인할 방법이 거의 없습니다.

4월 3일 용트림 바위에서 故 한주호 준위 추모제를 지낼 때, 당시까지만 하더라도 UDT 회원 열일곱 분께서 오셔서 추모제를 지냈는데, 그 추모제 과정에 저희가 개입한 바 없습니다.

 

그 분들이 하시는 추모제 자체를 뉴스로 보도도 해야 되겠다고 생각하면서, 자연스럽게 화면에 담았던 것들이 제출되어 있는 자료들입니다.

그 화면을 보면 저희가 개입하지 않고, UDT 동지회원 분들께서 그 부표를 보면서 저쪽이 함수이고, 저쪽이 故 한 준위가 부표를 설치했다는 그림들이 나옵니다.

 

그러고 나서 이틀 정도 있다가 크레인이 들어오고 나서, 크레인이 들어왔을 때 UDT 동지회원 분들은 이미 백령도를 떠나신 상황이었습니다. 크레인이 들어오는 날 UDT 동지회원 분들은 백령도를 떠났습니다.

 

그래서 저희는 ‘크레인이 왜 저희가 본 적이 없는, 기존에 함수라고 생각하지 않은 지점에 들어와 있을까?’라는 합리적 의심이 생긴 것이지요.

그래서 UDT 동지회원 분들한테 다시 전화를 드렸습니다. 실제로 본인이 직접 들어가서 함수를 봤다라고 하시는 분들한테 전화를 드려서, 아까 위원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저한테 화를 낼 정도로 확인과 확인을 거듭했었습니다.

 

제가 바다에 대해서 잘 모르지만 제가 보기에도 백령도 앞에 있는 부표와 군이 발표한, 함수로 확인된 위치에 서 있는 부표와는 한눈에 보기에도 차이가 많이 나는 곳이었습니다.

그런데 최정예의 UDT 동지회원 분들이 직접 작전을 수행했고, 물속에 들어갔다 오신 분들은 저보다 좀 더 정확할 것이라고 생각을 했었습니다.

방통위 제9차 정기회의 Page 8, 9

○ 이진강 위원장
- 그런 의문점을 가지고 4월 7일 방송의 15번째, 16번째 아이템을 취재하기 시작한 것은 언제부터입니까?

○ 황현택 KBS 보도국 기자
- 크레인이 현재의 함수위치에 들어선 4월 5일부터입니다.

방통위 제9차 정기회의 Page 21

○ 백미숙 위원
- 그러면 UDT 동지회원인 이○○ 씨가 잠수해서 나왔던 곳을 ‘제3의 부표’라고 진술을 한 것은 4월 3일인가요, 4월 4일인가요?

○ 박승규 KBS 보도국 사회팀장
- 4월 3일 추모제에서 우연히 그 사람들이 다 ‘저기가 故 한주호 준위가 작업했던 곳이고, 부표 설치했던 곳이다’에서 의문이 출발됐던 것입니다.

○ 백미숙 위원
- 그리고 현재 UDT 동지회원은 그곳을 함수라고 표현한 것이지요. 그래서 함수에 들어갔다 나왔고, 그러니까 제3의 부표지점에서 잠수를 해서 무언가 조사했다는 것이고, 그 분이 작업한 지점을 그 분 본인은 함수지점이라고 확신하고 있었다는 것이지요. 그것은 4월 3일에 잠수한 것이고, 실제로 전화 인터뷰를 한 것은 그로부터 3일이 지난 6일이었는데, 그 사이에 일어났던 현장의 일들을 그 분은 모르기 때문에, 즉 4월 5일에 해군이 이야기한 새로운 함수지점이 있다는 것을 모르기 때문에 그것을 확인한 것이었다….

○ 황현택 KBS 보도국 기자
- 그렇습니다.

방통위 제9차 정기회의 Page 42

 


11. UDT 동지회 회원들의 고충과 딜레마

 

2010년 4월 7일 KBS 보도가 나간 후, UDT 동지회 회원들은 상당한 곤욕을 치루었을 것은 짐작을 하고도 남음이 있습니다.

 

(1) 국방부 및 해군의 초강경 조치 및 반응
국방부는 KBS측에 항의하며 정정보도를 요구합니다. KBS는 관련 기사를 내렸음에도 방송통신위원회에 제소됩니다.

 

(2) UDT 동지회의 KBS 방문 항의
UDT 동지회는 보도에 대한 항의 차원에서 KBS 보도국을 방문합니다. 비록 유감을 표하는 정도였다고는 하나, 방문을 받은 KBS입장에서는 압박감을 느끼기에 충분하였을 것입니다.

 

(3) 제보자(UDT 동지회 회원)와의 통화 - 굉장히 많이 힘들다
황현택 기자에게 “굉장히 많이 힘들다”라고 말한 제보자는 황현택 기자와 가장 많은 대화를 나누었던 UDT 대원이었을 것입니다.

 

 

(4) UDT 명예회장의 전화 - “우리가 착각한 것이다”

 


12. 이헌규 증인의 법정 증언가운데 중요한 사실들

 

지난 6월 22일 제38차 공판의 증인으로 출석한 이헌규 대원의 증언 가운데 매우 중요하고 핵심적인 내용이 몇 가지 있습니다.

 

(1) 두 팔 벌려 둥그런 햇치.. 위에서 아래로 들어갔다

 

이헌규 증인은 자신이 들어갔던 수중 구조물의 입구에 대한 설명으로 “두 팔 벌려 둥그런 햇치”라는 표현은 이미 언론보도를 통해 널리 알려져 있는 바와 같습니다. 이번 재판에서도 이헌규 씨는 그 부분에 대해 다시 확인차 질문을 한 피고인에게 “맞다”라며 재차 확인해 주었습니다.

그리고 이헌규 증인은 햇치의 생김새에 대하여 피고인이 제시한 샘플 가운데 하나를 선택하였으며, 그것은 다음과 같습니다.

 

검사와 재판장께서 햇치에 대해 재차 확인 질문을 하자,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생각을 들었는지 오락가락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습니다만, 그가 자신있게 지목한 것은 둥근 그림과 같은 햇치였습니다.

그러나 천안함 좌현 출입구에는 그런 둥근 햇치로 출입할 곳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천안함은 우현으로 90도 누워있었으므로 좌현 선실쪽 출입구가 유일한 통로였을 터인데, 그곳의 햇치들은 모두 대형 사각 햇치 뿐입니다.

 

2010. 4. 24 인양중인 천안함 함수.
천안함 함수의 좌현 출입구는 모두 대형 4각 햇치이다

 

천안함과 동급의 초계함인 영주함의 햇치. 사람이 서서 출입하기에 충분하며
햇치는 180도 열려 고박되게 되어 있고 상당한 중량의 구조물임

 


(2) 한 손으로 들어올렸고, 햇치가 완전히 제껴지진 않았다

 

이 역시 중요한 증언입니다. 거주구인 선실 내부의 출입문은 햇치라고 표현하지 않습니다. 외부 혹은 수밀격벽에 설치되어 밀폐(tight)가 완벽하게 되는 금속제 구조의 출입문을 햇치(hatch)라고 합니다. 따라서 햇치 자체는 견고하고 무거우며 강력한 개폐장치가 달려 있습니다.

위의 그림에서 본 바와 같이 좌현 선실에 있는 햇치들은 모두 대형 사각 햇치입니다. 그리고 선박의 햇치들은 열었을 때 안전이 보장되도록, 완전히 제켜지거나 직각으로 열린 상태에서 고박(시건장치) 되어야 합니다.

천안함 선실 좌현의 햇치들은 모두 180도 완전히 제켜지도록 만들어져 있습니다. 그러나 왼쪽 그림과 같이 잠수함의 햇치인 경우 완전히 제켜지지 않도록 설계되어 있습니다.

그 이유는 완전히 제켜진다면 햇치의 무게로 인하여 하부로 내려가면서 햇치를 닫을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하부로 내려가면서 닫을 수 있도록 통상 120도 정도의 기울기에서 멈추도록 설계되어 있으며, 스스로 닫히지 않도록 시건장치가 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한 손으로 열었고, 완전히 제켜지지 않았다”는 이헌규 씨의 증언은, 그가 천안함이 아닌 다른 구조물 - 그러한 햇치를 가진 수중함선에 들어갔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3) 들어가 보니 소방호스가 얽혀 있었고 격실이었다.

 

천안함 좌현 출입구로 진입할 수 있는 공간은 모두 선실 햇치 뿐입니다. 이곳은 거주구획으로 진입하는 곳이므로, 통로가 좌에서 우로 연결되어 있거나, 충분히 다른 구획으로 이동이 보장됩니다.

따라서 격실이라는 표현은 천안함 선실 구획과는 관련이 없습니다.

 

그리고 선실 구획내에 소화전이 있고 소화전에는 소방호스가 감아져 있겠지만, 출입에 불편을 느낄 정도로 소방호스가 얽혀 있는 곳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들어가보니 소방호스가 가득차 있었고, 격실이어서 그냥 나왔다는 이헌규 씨의 증언은, 천안함의 상황과는 상당한 거리가 있다고 생각됩니다.

 


13. 이헌규 증인 녹취록 중 중요진술 - “45도 기울어져 있었다”

 

이번 재판에서 나왔던 증언은 아니나 황현택 기자가 이헌규 씨와 나눈 대와의 녹취록 가운데 매우 중요한 내용이 들어 있었습니다. 그것은 “약간 45도 정도, 오른쪽 육지쪽이었나, 기울어져 있었다”는 부분입니다.

 

 

왜냐하면 천안함 함수는 45도 기울어져 있었던 것이 아니라. 우현으로 완전히 90도 넘어져 있었기 때문입니다. 

 

 

 

(백령도=연합뉴스) 김남권 최우정 기자 = 침몰한 천안함의 함수 부분 인양을 맡은 민간업체가 22일 3, 4번째 인양용 체인 연결에 성공했다. (중략)

이날 오후 6시께 3, 4번 와이어를 다시 크레인에 연결한 인양팀은 남은 체인 2가닥을 연결하는데 성공함으로써 인양에 필요한 작업을 마쳤다.

해군과 인양팀은 오른쪽으로 90도 기울어진 함수를 세운 뒤 수면 위로 끌어올릴 계획이다.

연합뉴스 2010-4-22 kong79@yna.co.kr

 

45도와 90도는 착각하거나 오판할 수 없는 각도입니다. 천안함은 우현으로 90도 넘어져 있었으므로, 천안함 좌현으로 접근하는 사람은 평평한 평지와 같이 느껴지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45도 정도 기울었다”는 이헌규 씨의 진술은 그가 천안함이 아닌 다른 침몰선에 갔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14. 제3의 부표 위치에서 진행된 의문의 작업

 

2010. 4. 7 KBS는 ‘한주호 준위 다른 곳에서 숨졌다’ 제하의 보도를 하면서 ‘제3의 부표’ 장소에서 군이 행하였던 의문의 작업에 대해 문제를 제기합니다.

 

 

 


(1) 제3의 부표 아래의 물체는 <대형구조물>

 

국방부 윈태제 대변인은 ‘천안함에서 떨어져나온 파편 조각’이라고 해명을 하지만, 정작 UDT 대원들의 증언은 다릅니다.

그곳에는 단순한 파편이 아닌 <대형구조물>이 있었다는 겁니다. 그리고 문이 달려 있으며, 그 안은 소방용 호수 등으로 가득차 있는 공간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KBS는 제3의 부표가 설치된 장소에서 <해군이 길이 2m의 파편을 건져올린 곳>이며, 파편을 실은 헬기는 <독도함이 아닌 남쪽 어딘가>로 사라졌고, 한때 <해군 정보탐사선 다도해함이 장시간 머물렀다>는 사실을 알립니다.

 

 

(2) 헬기가 건져올린 물체는 파편 ?

 

KBS 보도에는 ‘길이 2m 파편’이라고 표현되었지만, 실제 영상을 분석해 본 다수의 네티즌들은 그것이 단순 파편이 아닌 <시신인양용 백>과 <환자용 들것>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입니다.

 


<KBS> 제3의 부표 위치 에서 작업중인 헬기 | 해군정보선 다도해함

 

 

그런데 이 작업의 상세 사진은 아이러니하게도 미7함대 홈페이지에 게재됩니다. 한국군의 작업이 아니라 미해군이 작업을 하였던 것입니다.

 

 

(

3) 제3의 부표에서 작업한 헬기는 미군헬기

 

제3의 부표에서 작업을 하고 미상의 물체를 건져올렸던 헬기는 한국군의 헬기가 아닌 미군헬기라는 사실이 밝혀졌습니다.

그리고 미 해군의 잠수사들 역시 매우 바쁘게 움직였음은, 그들의 홈페이지를 통해 충분히 알려지고도 남음이 있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사실은, 미 해군의 잠수사들이 천안함 함수와 함미 그리고 인명구조 작업에 간여하였다는 증거는 찾을 수 없다는 점입니다.

한주호 준위가 사고를 당하였을 때 미 함선의 산소탱크를 이용한 것 외에, 미 해군이 천안함 관련 구조작업을 도왔다는 소식은 어디에도 찾을 수 없습니다.

 

미 해군은 그들 나름대로의 작업에 대단히 바빴습니다. 그들의 작업이 천안함 사고와 어떠한 연관관계가 있는지 밝히는 것이야말로, 천안함 사고 원인규명의 나머지 반쪽을 찾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15. 결언

 

제3의 부표와 관련된 일련의 작업은 천안함 사고 원인 규명에 있어 대단히 중요한 위치를 점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제3의 부표 하부에 또 다른 가라앉은 구조물이 있었는지 여부, 예비역 UDT 대원의 증언, 미 해군의 이해할 수 없는 작업 등, 그 어느 하나도 국방부에서 공식 발표하고 해명한 내용과 일치하는 것이 없습니다.

 

저는 천안함이 최초 좌초한 후 침수가 발생하였고, 이후 기동성에 제약을 받는 상황에서 수심 47m 지점에 이르렀을 때, 또 다른 함선(수중함선)과의 충돌로 인하여 침몰하였다고 판단합니다.

제3의 부표 하부에 가라앉아 있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대형구조물>의 존재여부는, 피고인이 주장하는 <충돌>의 존재여부와 직결되는 것입니다.

 

존경하는 재판장님,

부디 관련된 모든 상황에 대해 면밀히 살펴보아 주시고, 의구심이 가는 그 모든 관련자들에 대해 법정에 출석하여 심문이 이루어져, 천안함 침몰 사고의 진실이 한 점 가리워짐이 없이 만천하에 펼쳐질 수 있도록 헤아려 주시기를 간곡히 소원합니다.

2015. 6. 30 피고인 신상철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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